불교계의 좌익화(?)

  • 등록 2008.07.12 0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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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 촛불난동 주동자들 몇 명이 피신해 들어 숨어 있다고 하는군요. 경찰에서 촛불난동자들을 내놓으라 하지만, 조계사가 이를 거부하고 있는 모양새이군요.

범법자들이 종교로 피신하고, 종교가 이들을 보호하는 양태는 아주 오래된, 퀴퀴한 곰팡이 냄새마저 나는 낡은 양태입니다.

삼한시대에도 소도라는 것이 있어, 이곳으로 도망친 범죄자, 심지어는 살인자에 대해서까지 세속권력이 건드리지 못하는, 세속권력이 그 안에 들어가 권력행사를 하지 못화는, 그런 관습이 있었지요.

제정분리기의 과도기적 양상에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종교의 힘이 막강하고, 이에 세속권력이 경외심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양태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제정분리가 명확해지면서 소도란 사라졌습니다. 이 세상의 땅은 모두 가이사의 것이어서, 신의 땅은 없고 있을 수 없다는 게 사람들 사이에 명확히 인지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천국이 어떻게 가이사의 땅 가운데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땅은 모두 가이사의 것이라는 게 명확해지면서 나타난 종교가 기독교요 불교입니다.

오늘날 살인자가 피신할 신의 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계사는 촛불난동자들을 보호하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스스로의 땅을 소도화, 성역화하는 일인데, 아주 오래된 고대적 양태로 회귀하는 일이며, 미신에 기반하는 일입니다. 조계사는 자신의 땅을 소도화, 성역화하는 넌센스를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그건 스스로를 성역화함으로써, 세속권력을 고대적 양태로 만드는, 치명적이고도 위험한 일입니다. 지금이 삼한시대인가요, 아님 로마시대인가요 아님 중세시대인가요.

조계사의 촛불난동자 보호 행태는 넌센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21세기라는 첨단의 시대에 고대적 가피를 덧씌우는 착시적 행태일 뿐입니다. 현대세계에서는 세속권력도 종교권력도 법의 지배 아래 있을 수 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법이 그 목적과 기능을 다하도록 길을 비켜주어야만 합니다.

오늘날 불교계가 촛불난동자들을 보호하기로 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불교계의 좌익화에 있습니다. 성(聖)이 아니라 속(俗)의 목적 때문에 그리하고 있는 거라는 겁니다. 성의 뒤에 숨어 속을 구현하려 하는 거라면 불교계는 더욱 법의 지배에 길을 비켜주어야만 합니다.

다른 여타 종교와는 달리 불교계는 중앙집중적인 권력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인사권이 중앙에 집중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인사권에 있어서의 개별성 수평성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어찌보면 봉건적 양태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 불교계가 봉건적 양태를 지닌다는 게 그 역사과정을 들춰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이의 세력이 막강하다는 건, 몹시 나라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하는 게 사실이라고 할 수 밖엔 없겠습니다.

하여간 불교계는 중앙만 바꿔놓으면, 그 전체를 바꿔놓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긴데, 중앙을 퍼렇게 바꿔놓으면 불교계 전체가 퍼렇게 되고, 중앙을 빨갛게 바꿔놓으면 불교계 전체가 빨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30여년 사이 불교계에서 두번의 큰 법난이 있었습니다. 이런 법난이 일어난 까닭은 역시 그 중앙집중적 봉건적 성격 때문이라고 밖엔 할 수 없는 일이겠습니다.

첫번째 법난은 전통에 의해서 야기된 법난입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실은 별개 아닌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중앙권력에 지방의 군소권력이 반란을 일으킨 건데, 전통은 기존의 중앙권력에 힘을 실어 주었지요. 법난이라 하였지만, 실은 기존의 중앙권력의 성격은 바뀐 게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번째 법난은 김대중 때 야기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일이지만, 불교계 내에서는 거의 쿠데타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불교계의 중앙권력의 패권이 완전히 바뀐 사건이었으니까요. 불교계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었다는 겁니다. 불교계란 중앙집중성이 강해서 중앙권력이 바뀌면 전체가 바뀌게 마련이니까요.

이승만 이래 우리나라 불교계의 성격은 퍼랬는데, 김대중 이후 우리나라 불교계의 성격은 빨갛습니다. 김대중이 야기한 법난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조계사가 촛불난동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조계사가 촛불난동자들을 보호하면서 성과 속의 대립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성과 속의 대립같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 성과 속은 결코 대립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과 속이 대립한다면 그건 이미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탈을 쓴 그 무엇일 뿐이겠지요.

불교계는 이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무원장 지관이 물러나야 합니다. 불교계는 지금 지나치게 빨간 데로 가 있고, 균형을 찾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야/프리존 nabucoma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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