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할 줄 모르는 대통령에게 분노한다

  • 등록 2008.07.15 07: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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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을 갔던 우리 국민이 죽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자녀들의 어머니로, 평생 고생만 하다가 모처럼 친구들과 관광을 떠났던 우리 이웃의 아주머니가 새벽에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가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북한군의 고함 소리에, 자기 등 뒤로 들려오는 총소리에, 아주 잠깐이지만, 그 아주머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녀의 죽음을 보고 받은 ‘대한민국 대통령’ 이명박은 예정대로 국회에 나가 대북 유화책을 발표했다. 국회에서 예정대로 연설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면, 먼저 사건 발생을 국회의원들에게 보고하고, 고인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이명박의 가슴 속에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무고한 우리 국민이 김정일의 총에 맞아 죽어도 그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죽은 아주머니의 가족들의 입장에서 애통해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그날 국회에서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6.15 및 10.4선언 준수’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북한에 대한 항복 선언이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이명박과 대한민국 정부에 퍼부었던 온갖 저열한 독설들을 상기해 보면, 이는 더 없는 굴욕이었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 굴욕을 감수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의 가슴 속에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조국, 자기가 수반으로 있는 정부가 모욕을 당하고, 협박을 당해도, 그의 가슴 속에 ‘분노’가 없기 때문에 그는 굴욕을 감수한 것이다.


지난 6월19일 이명박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첫 머리에서 그는 밑도 끝도 없이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래 소리도 들었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라고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 노래 소리를 들었다던 그 시간, 거리에서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전경들이 폭도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폭도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지고 있었다. 미친 듯 파이프를 휘둘러 대는 폭도들에게 포위된 나이 어린 전경들이 “제발 살려 달라”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그런데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은 그 폭도들에 대해 ‘정서적 공감’을 표시하는 말로 대국민 성명을 시작했다. 그의 성명 어디에도 폭도들에게 맞아 다치고 상한 그 어린 전경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은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이명박의 가슴 속에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보다도 어린 그 전경들, 단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선 나이 어린 전경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폭도들에 대한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우습게 알고, 법과 질서를 우습게 아는 폭도들에 대한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일까? 이명박은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참상에 대해. 그 참상을 만들어낸 김정일 집단에 대해 분노할 줄 모른다. 영화 <크로싱>이 개봉된 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 각료들, 탈북자들과 함께 영화 <크로싱>을 관람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왜일까? 이명박의 가슴 속에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감이 없기 때문이다.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 대한 연민, 그들을 그런 고통 속으로 몰아 넣은 전제군주에 대한 분노가 없기 때문이다.


1981년 12월, 폴란드 공산정권이 자유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워싱턴 주재 폴란드 대사 로무알드 스파로브스키는 이에 항의하여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레이건은 즉각 이들 부부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면담하고 위로했다. 헤어지기 전, 스파로브스키 대사는 레이건에게 부탁을 하나했다.

“오늘 밤 폴란드 국민들을 위한 촛불을 켜서 창가에 놓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레이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가 촛불을 켠 다음 창가에 올려 놓았다.

레이건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탄압받는 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이었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레이건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명박은 6.3 사태 주동자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이다. 그 자신도 스스로를 ‘운동권 1세대’라고 자부한다. 도대체 젊은 시절 한일국교정상화를 ‘굴욕’이라며 거리로 나섰던 그의 분노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명박은 교회 장로다. 성경은 ‘공의로운 분노’나 "애통하는 마음"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이명박을 보면, ‘이 사람이 교회 장로가 맞나? 교회 장로라는 자가 어떻게 이렇게 분노할 줄 모르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명박을 보면 가슴이 차가운 사람, 영혼이 없는 사람,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할 줄 모르고, 감사해야 할 일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이명박에게 나는 분노한다.
강철군화/프리존 nabucoma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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