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 같은 폭탄선언에 가장 당황한 것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도력과 국제적 위신이 이 한마디에 시궁창에 처박히는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은 의장국으로서 책임과 체면을 되찾기 위해 북한의 의도파악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부랴부랴 지난 9월18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자격으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보내 ‘양자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하겠다는 김정일의 답변을 듣긴 했으나 명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10월 4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양제츠 외교부장, 천더밍 상무부장,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장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6자회담 의장) 등등 중국의 외교책임자 모두가 방북하기에 이른 것이다. 10월 6일발 북한 중앙통신에 의하면 김정일은 5일 방북중인 원자바오 총리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원 총리 일행을 위해 만찬을 열었으며 만찬에는 북측에서 장성택, 김양건 노동당 부장과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영일 외무성 부상 등이 참석했다. 만찬에 앞선 대담에서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 조미 양자회담을 통하여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는 반드시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돼야 한다. 조선반도 비핵화 목표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미회담 결과를 보고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다자회담에는 6자회담도 포함돼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중국 신화통신은 6일자 기사를 통해 김정일과 원 총리가 주고받은 발언내용을 정리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김정일 발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원자바오 총리께서 조·중 수교 60주년과 양국우호의 해를 맞아 조선을 공식친선 방문해 주신 것은 중국의 당과 정부가 조․중 관계의 발전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양측의 유관 경축행사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조·중간 전통적 우의를 심화시켰습니다. 조선은 중국과 함께 노력해 조·중 우호협력 관계를 부단히 공고하게 하고 강화하길 희망합니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니다. 조선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조·미 양자회담을 통해 조·미간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선은 조·미 회담상황을 지켜보며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길 원합니다. ◇ 원자바오 총리 발언 먼저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안부와 축하인사를 전합니다. 중·조 우의와 협력관계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며 여러 세대가 공동노력 한 결과입니다. 양국 선배세대의 심혈이 응축된 것으로 양국인민의 열망에도 부합합니다. 현재의 사물과 접촉하면서 과거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선배들의 사업을 계승해 앞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중·조 우호관계를 대대손손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이는 역사와 선배에 대한 존중일 뿐만 아니라 미래와 후손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북한과 함께 고위급 교류를 지속하고 실질적인 협력을 심화시켜 중요한 문제에서의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화목한 이웃으로서 우호협력 관계를 부단히 발전시켜 나가길 원합니다. 조선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대화를 통해 이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 중국은 조선 및 나머지 유관 당사국과 함께 노력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공헌을 할 것입니다. 이에 앞서 이날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일 북한 총리 및 당국자와 원 총리 및 수행원 간에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문서’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협정, 합의문, 의정서, 양해문 등이 조인됐다. 여기에는 중국이 요청한 압록강 대교건설, 북측이 바라는 2천만 달러 규모의 식량 및 에너지 원조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유엔 제재결의 1874호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그러면 이번 회담의 결산서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김정일의 완승이다. 개구쟁이 손자 녀석이 동네에서 개망나니 짓으로 이웃 어른들이 항의하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야단치겠다고 하고 이웃 어른들이 가고나니 손자 머리 쓰다듬어 주면서 용돈 준 격이다. 김정일은 중국으로부터 자기가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조·미 양자회담을 통해 조·미간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선은 조·미 회담상황을 지켜보며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길 원합니다.”라며 선 양자회담 후 다자회담을 결론지었고 6자회담을 다자회담 꼬리에 붙혀 놓고 미․북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원자바오 총리는 “조선이 한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대화를 통해 이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밝힌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라며 지지하고 “중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공헌을 할 것입니다.”라며 평화협정 체결을 뒷받침할 것을 시사했다. 이는 원자바오 총리를 수행중인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이 평양에서 인터뷰를 갖고 "중국은 북핵문제가 제기된 이후 줄곧 대화를 권고하고 촉진해왔다. 과거 4자회담은 물론 6자회담에서도 북한과 미국이 상호신뢰를 증진하고 상호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건설적인 대화를 하도록 교량역할을 해왔다. 김 위원장이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북미 간 적대관계를 반드시 평화관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북한은 북미회담 상황에 따라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라며 북한의 입장을 확인해준 데에서 알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미양자 회담이 진전되어 중국이 소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자회담 꼬리에 6자회담을 붙힘에 만족하고 유엔 제재결의 1874호에 위배여부 문제가 있음에도 경제적 지원약속도 한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북미관계 개선에 신경 쓰는 것을 적절이 이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교활하다고만 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김정일의 발언에 대해 중국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이 "현 시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언론보도를 통해 본 것뿐이며 중국 측으로부터 보다 상세한 내용을 들을 때까지 성격규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코멘트 했다. 또한 국무부의 고위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미․북 양자대화는 알맹이가 있는 것이어야 하며, 단순히 OK 하고 자리에 함께 앉을 수만은 없다. 만남은 준비돼야 하며 사전정지도 이뤄져야 하고 6자회담 파트너들과 조율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북한이 무얼 했는지 확인해야하고 주변국들에게 입장도 알려야 하며 북한과의 실질적인 조율도 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이미 북한 손을 들어준 이상 6자회담 틀 이내라는 단서를 달고 어떤 형태로든 양자회담에 응할 것이다. 아프칸 문제, 이락 문제, 이란 문제 등 미국으로서는 골치 아픈 문제가 너무 많아 북핵문제를 계속 끌고만 다닐 수 없는 입장이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북핵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그랜드 바겐"에 대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5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북핵 일괄타결안"의 성공 가능성을 묻는 박상천(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북한 자신이 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6자회담 5개 참가국간에 협의해 온 사항"이라며 "핵심부분인 핵무기와 핵물질의 폐기 등을 합의해 놓고 이행은 단계적으로 해 나가겠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로드맵을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다자회담 의제로 상정하고 있음을 시사했으나 양자회담 결과에 따라 의의가 변할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임기가 없는 김정일에 비해 임기직 대통령들은 핸디캡을 안고 있다. 따라서 시간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것은 힘이므로 유엔 제재결의 1874호를 강력하게 밀고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에서 이를 허무는 듯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제공조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없지 않다. 우리 정부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므로 이를 빌미 삼으면 변명하기도 궁색해질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