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북송저지밀파공작원 자유투사로 보훈하라!(동영상)

  • 등록 2009.12.15 19:34:57
크게보기

그들은 지금 나라 위해 바친 젊은, 제발 아는 척이라도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최근 심대평 무소속의원 등이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에 발의를 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가슴에 있는 응어리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12월15일 오후2시 여의도국회 앞 여의도공원 정부는 재일동포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을 자유투사로 보훈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촬영 장재균




▲올인코리아 대표 조영환(촬영 장재균)

▲나라사랑실천운동 대표 이화수(촬영 장재균)


▲청년국장 유인근(촬영 장재균)


▲우국충정단 대표 박정섭(촬영 장재균)

▲한나라당 민원국 담당자에 성명서 전달(촬영 장재균)

이날 주최 측은 성명서에서

소위 민주투사에 대한 국가적 보상을 넘치고, 자유투사들에 대한 국가의 보훈은 알렸다. 해방 후 나라를 위해 희생된 국가 유공자들이 너무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재일동포 북송작전을 저지하려던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보다 더 희생적인 국가유공자들도 드물 것이다.

특히 재일동포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은 바로 일본과 북한의 야합으로 일본에 남아있던 재일동포들을 북한으로 실어나르는 ‘재일동포 북송작전’이 진행된 사실이었다. 1945년 8.15 해방 무렵 200여만 명에 달하던 재일 동포들 중 140여만 명을 해방 직후 대부분 귀국했지만, 나머지 60여만 명은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귀국하지 못한 채 일본에 잔류해 있었다. 이 재일동포들을 북한으로 미혹하거나 강요해서 송출한 것이 바로 일본과 북한이 짜고 벌인 북송작전인 것이었다.

1959년 4월 13일 제네바에서 재일한인 북송에 관해 일본과 북한적십자사간의 회담이 열렸다. 북한 공산사회가 생지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이승만 남한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해 8월 11일 일본과 북한은 인도 캘커타에서 ‘북한적십자사와 일본적십자사간의 재일조선공민들의 귀국에 관한 협전(일명 캐커타 협정)’에 정식 조인한다. 그래서 이러진 것이 1959년 12월 14일 일본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첫 북송선의 출발이다. 사실 재일동포의 북송은 공산주의의 망상에 빠진 무지몽매한 군중들의 자멸행렬이었다.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망상적 자멸행렬을 안타깝게 생각한 이승만 자유정부는 재일동포들의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해군을 경계태세로 전환시키기도 했지만, 별로 성과를 거둘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이승만 자유정부는 비정상적 수단으로서 ‘북송저지밀파공작원’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66명의 요원을 긴급하게 차출하여 2개월 정도 교육시킨 후 일본으로 밀파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일동포의 북송을 막기 위해서 한국의 자유수호자들을 일본에 보낸 것은 세계적인 자유투사로 평가받을 이승만 초대 대통령다운 발상이다.

1959년 9월 초 내무부 치안국은 경찰간부시험 합격자 24명과 재일학도의용대 출신 41명, 예비역 장교 1명 등 66명을 재일 동포북송저지 공작원으로 선발한 후에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이승만 정부에서는 젊은 애국자들을 일본땅으로 재일 동포의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서 밀파했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가 파견한 북송지지밀파공작원들은 조국으로 위해 특수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한국 정부의 명을 기꺼이 받들어 낯선 일본땅으로 떠났으나, 그 곳에도 아무 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구체적인 임무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 도착했다고 한다. 안가도 없었고 접촉 하인도 없었다고 한다. 조국에서 급한 마음에 체계적인 준비도 없이 재일동포들의 북송을 저지하기 위해서 낯선 땅에 떨어져, 한국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조국을 위해 자생하면서 북송 저지공작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4.19, 이승만 자유정권이 무너진 후에 그 다음 정부로부터는 간간히 오던 연락도 끊어졌다고 한다.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이모둬 신변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해 5월 초 국제방송을 통해 한국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왔다고 한다. 그것이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에게 행한 한국정부의 마지막으로 명령이었고, 그 후 그들은 50년 간 정부로부터 방치되었다고 한다. 66명의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 중 12명은 사망, 9명은 행방불명되었고 나머지 생존자 45명은 한국정부의 감시하에 살다가, 지금은 겨우 13명만 살아있다고 한다. 아무도 몰라주는 처지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조국을 위해 낯선 외국땅에서 옥살이로 헌신한 애국지사들을 그렇게 내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던 좌익정권은 물론이고, 지금 이명박 중도정부도 재일동포의 북송을 막으려던 북송저지밀파공작원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승만 정부의 자유정신을 평가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정부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이라도 정부에서는 재일동포의북송을 저지하려고 했던 자유투사들의 희생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 나라 위해 바친 젊은, 제발 아는 척이라도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최근 심대평 무소속의원 등이 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에 바르이를 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가슴에 있는 응어리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평생 고생시킨 마누라며 자식들에게 남편이 아버지가 나라를 위한 일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국가에서 인정해주고, 현재 살아 계시는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그들에 대한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해주는 최소한의 보답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국가나 개인이나 숨기고 싶은 역사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들 66명을 우리는 너무 차갑게 버렸다. 다시 한번 간곡히 이번 정권에 호소한다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를 바란다.

2009년 12월15일

재일교포북송저지밀파공작원회(김성용 011-460-4445)

장재균 기자 wo5rbs@han mail.net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大佛總 ), 전재 및 재배포 허용>

PC버전으로 보기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25길 37 (양재동) 양촌빌딩 2층 전화 : 02) 2265-0570 / 팩스 : 02) 2265-0571 / E-mail : sblee2k@hanmail.net Copyright NaBuCo.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