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 등록 2014.02.23 11: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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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부터 사죄 하라-

 

중국 정부가 하얼빈 역에 극비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安重根 義士 紀念館)’을 세우고 지난 1월 19일 개관식을 갖자,

아베 일본 정부는 이에 스가요시 히데 관방장관을 시켜

“안중근은 일본 총리를 살해한 테러리스트 이며 일본 법률로 처형된 살인자”라고 말하면서

한-중 양국을 비난 하였다. 이건 한마디로 가소로운 일이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 1번 프랫홈에서

기차에서 내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권총으로 저격 사살한 것은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적장을 조선 의병대장이 응징한 것에 불과하다.

 

자기 나라 황제를 폐위 시키고 국권을 침탈한 원흉을 처단한 것이 문자 그대로 의로운 거사,

즉 의거(義擧)이지 무슨 살인이 될 수는 없다.

일본은 자기 나라 총리 이토를 조선인이 응징한 것만 생각지 말고 자기 자신들이 저질은 천인공노의 살인 만행, 을미사변(乙未事變)에 대하여 먼저 한국에 사죄하고 참회 해야 할 것이다.

 

1895년 일본은 미우라고로(三浦梧樓) 공사를 시켜 48명의 낭인을 동원, 궁성을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시해 하였다 .

그러나 저들은 그 범인들을 종래는 증거가 없다는 핑게로 하나도 처벌하지 않았다.

왕조 시대에 남의 나라 국모를 이렇게 시해하고 정치적 야심을 채운 사례는 사상에 유례가 없다.

이토 히루부미는 조선 침략의 원흉중 원흉이다.

메이지 유신 때 초대내각 총리를 지내고.

5대 7대 10대 총리를 역임한 그는 1905년 11월 특명전권대사로 대한제국에 부임 한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강압하여 을사보호 조약을 체결,

외교권을 박탈함과 동시에 조선의 내정을 장악한다.

 

그리고 을사조약에 의거하여

대한제국에 통감부가 설치 되자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다.

이어서 1907년에는 이완용 이근력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등 을사 5적을 중심으로 친일 내각을 구성,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황제에서 퇴위 시킨다.

 

고종황제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밀사로 파견해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일본의 조선 침략을 폭로하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토록 한 것인데,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강제 퇴위의 비극을 맞았던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처럼 을사보호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를 퇴위시키며 조선의 국권을 침탈 했다.

안중근 의사는 이런 국적(國賊)을 당시 3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침략자에 대한 피침략자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이고

더불어 인류사회의 보편적 정의를 실현 시키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크게 칭송 받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그의 독립운동과 독립정신은 그후 3.1운동을 비롯한 상해 임정 등 항일 독립운동의 원천이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 주석에게

하얼빈 안중근 의사의 거사 유적지에 표지판 설치를 요청한 바 있는데,

중국 정부는 이에 화답, 이후 7개월간 극비리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세우고

사진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개관식을 가졌던 것이다.

 

3.1절 제 95주년을 맞아 안중근 의사의 충의(忠義)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2014. 3. 1 실버타임 제 150호)

송재운/동대석좌교수, 대불총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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