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가 유죄라면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 사형(私刑)으로 머리에 몽둥이질을 해서는 안된다. 아이가 있는 부녀자가 머리를 다쳐 뇌에 이상이 오면 부녀자는 물론이요, 아이까지 불행이 속출하고, 원한과 분노가 깊어지는 것이다.
수일전 심야에 고향의 친척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선산의 묘소들을 파내어 납골당을 만들고자 하니 묘소를 파내는 작업을 하는 날, 선산으로 오라는 것이다. 선산에는 나의 부모의 묘소가 있다. 부모의 묘소를 돌보는 자식은 나혼자 뿐이기에 속세를 떠나 할애사친(割愛捨親)을 주장하는 나도 아니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번 고향을 찾는 길에 부모의 유해를 화장하여 고향산천에 뿌려 드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하며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못이루는 밤, 나는 추억속 어머니를 상기하며 노안(老顔)을 적셨다.
어머니는 30대 중반에 청상의 운명이 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한 6개월만에 하루아침 지아비를 허무하게 잃었다. 어머니는 여늬 가난한 시골 부녀자들과 같이 노동을 하면서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밤이 깊도록 호롱불에 책을 벗했고, 집에 야학당 같이 공부방을 만들어 한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했다. 청상의 어머니에게 또 불행이 찾아왔다. 한국전이 일어나고, 나의 고향에는 인민군이 점령했다. 붉은 완장을 하고 죽창과 몽둥이를 든 남로당의 패거리들이 적대시 하는 사람들을 인민재판에 의해 마구잡이로 살상(殺傷)하는 무렵, 깊은 밤에 고모가 찾아와 고모부가 붉은 완장부대에 쫓기고 있으니 숨겨달라고 간청해왔다. 잘 숨어있던 고모부는 친구의 유인책에 속아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붉은 완장들에게 잡혀 죽창을 맞고 절명했다.고모부는 과거 면장을 했다는 이유로 죽창을 맞아야 했다.
붉은 완장들은 범인 은익죄로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지서로 개끌듯이 끌고갔다. 끌려가는 어머니를 따라 나도 지서에 갔다. 인민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붉은 완장들은 반동분자를 숨겨준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몽둥이로 머리를 난타했다. 머리가 깨져 선혈이 낭자한 어머니는 의식을 잃었다. 울부짖는 나에게 인민군은 인민군의 노래를 가르친다며 닦달했다. “앞으로 동무들아...” 노래를 빨리 외우고 힘껏 부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가 깨져 피범벅이 되어 죽은 듯 의식이 없이 지서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노래를 부를 수 있나! 인민군은 반동놈의 새끼라서 인민군의 노래를 거부한다며 나의 양뺨을 좌우왕복으로 후려쳐댔다. 아들도 코피를 줄줄 흘려야 했다. 어머니는 그날 머리에 몽둥이질을 당한 후로 실성기 있는 여자로 변해 버렸다.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이었다. 정신이 들어오면 “너를 잘 키울 수가 없겠구나. 네가 장가가는 것을 보고 죽어야 하는데…” 실성기 있는 어머니는 훗날 자결하고 말았다.
소년시절 무덤가에 혼자 있을 때 전생의 인연이 나타나서 속삭였다. 40대 초반의 승려 둘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야, 무덤가에서 혼자 훌쩍이는 것을 보니 전생에 지독히도 복을 닦지 않았구나. 넌, 우리 처럼 중이 되어야 할 운명이야. 절에 가면 밥도 있고 떡, 과일 먹을게 많지. 그리고 공부도 할 수 있어. 우리와 같이 부처님 곁으로 가자. 넌 속세에 인연이 없는 게야” 나는 그들을 따라 나섰다. 책을 좋아하던 어머니의 유전자인지 나역시 책을 좋아했다. 불교계는 나같은 비운의 출가자들에게 무료로 먹여주고 재워주며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전 이후 산사에는 세가지 유형의 출가자들이 많았다. 첫째는 불심깊은 가정의 자녀들이 출가위승(出家爲僧)한 것이요, 둘째는 나같은 처지의 출가자들이요, 셋째는 한국전 때 붉은 완장의 부형(父兄)을 둔 자제(子弟)들이 산사에 피신해왔다. 불교계는 자비문중이다. 노사는 남로당에 분노하는 나같은 사람들과 대한민국에 분노하는 남로당의 후예들을 한자리에 모와놓고 속세의 분노를 모두 잊고, 오직 불교인으로써 새로이 태어나라고 가르쳤다. 오직 화두를 가없는 중생을 제도(衆生無邊誓願度)하는 것으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한국불교는 좌우익(左右翼)의 후예들에게 자비를 베플었다.
그러나 비유컨대 붉은 수수밭을 베었다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남로당 전력이 있는 호남 정치인을 중심으로 불교계의 남로당 후예들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호남정치인이 국가원수가 되었을 때, 호남정치인의 하수인이 또다시 국가원수가 되었을 때 사라진 줄 알았던 붉은 수수밭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산사에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남로당의 후예들이 남로당 부형들이 걷던 길을 마치 경주(競走) 바통을 이어 받고 뛰듯이 하는 것이다. 남로당의 후예들은 불교의 정각(正覺)보다는 주체사상을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하는듯 했다. 그들은 다투어 평양행을 하고 있다. 그들은 16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한국불교계의 사령탑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압력에 의해 언제부터인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선되면 입조알현(入朝謁見)하듯이 평양행을 하게 하고 있다. 면벽을 하거나 서책을 대하거나 기도 목탁을 치던 나는 목탁을 놓고, 심우(深憂)의 눈으로 불교계를 진지(陣地)화 하는 남로당의 후예들을 보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나는 붓을 들어 한국역사를 회귀 시키려는 남로당을 꾸짖기 시작했다.
불교계에 진지(陣地)를 확보하는 남로당 후예들의 불교중흥은 공염불이다. 그들은 북한정권이 북한에 단 한 명의 삭발위승(削髮爲僧)한 승려가 전무 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북한정권이 중심이 되어 조국통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한국 불교계에 신세를 지면서도 승려가 전무한 세상을 만들려고 광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김정일을 위해 하나같이 “미군철수, 국가보안법폐지!”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정부 다음으로 부동산이 많고, 관광지가 많고, 천문학적인 사찰의 재정을 대남적화사업에 악용하려들 때 호국불교의 전통을 주장하는 대한민국 불교계는 대재앙의 태풍에 휘말리게 되고 말 것은 물론이요, 대한민국에 급속히 확산되는 암(癌)적인 우환(憂患)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애국 사부대중의 각성과 행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나는 어머니의 유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오는 4월 2일, 고향행을 하게 된다. 남로당 붉은 완장들의 몽둥이에 맞아 머리가 부서진 어머니의 해골을 안고 소리죽여 울며 참회해야 할 것같다. 나는 소시(少時)적에 실성기 있는 어머니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북로당의 김일성, 남로당의 박헌영이 권력의 탐욕으로 외세인 소련군과 중공군을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남북한 수백만 무고한 생명들이 어육(魚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인가, 김정일은 한반도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아비보다 더 악랄하게 무고한 남한의 인명을 어육으로 만들려는 것인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핵폭탄을 폐기하지 않고 있다. 남한의 남로당 후예들은 여전히 도처에서 북핵을 앞세워 대한민국에 공갈협박을 해대고, 대북퍼주기를 외치고 끝내는 대한민국을 말살하려 하고 있다. 나는 비탄의 심정에서 독백한다. “부녀자의 머리에 몽둥이질 하는 붉은 완장의 시대는 다시 없어야 한다.”◇
이법철(bubch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