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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중심사상

  • No : 182269
  • 작성자 : 뉴스관리자
  • 작성일 : 2022-09-28 21:11:17
  • 조회수 : 45
  • 추천수 : 0

화엄경의 중심사상

이행구(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본 자료는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과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이 불국사에 제공한 학술자료입니다.

 

화엄경의 중심사상

화엄경의 사상과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화엄사상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화엄경의 사상이 말 그대로 화엄경에 설해 지고 있는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면,

화엄사상은 화엄가(華嚴家)들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전개되어온 사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전자보다는 후자 쪽의 뜻이 명확하여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 사상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화엄경에 있고,

화엄경의 내용은 화엄가의 견해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불설(佛說) 그대로라고 하는 점에서 전자가 가지는 의미는 자못 크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화엄사상보다는 화엄경의 사상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화엄경의 사상은 다음과 같이 크게 5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법신불사상(法身佛思想)

부처란 무엇인가

법신불(法身佛)이란 "()을 몸으로 하는 붓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법()이란 진리(眞理)를 말한다.

그러므로 법신불이란 "진리를 몸으로 하는 붓다", "진리의 붓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vairocana)이라고 한다.

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비로자나 법신불은 어떤 모양이나 색깔이 없다.

, 무상(無相)이며 무색(無色)이다.

둘째, 법신불은 아니계신 곳이 없다.

온 법계에 충만해 있어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 무소부주(無所不住).

 

화엄경에서는

부처님 몸 법계에 가득하시니(佛身充滿於法界)

중생들 앞에 항상 계시네(普現一切衆生前)

인연따라 어디에나 나타나시니(隨緣赴感靡不周)

언제나 이 보리좌에 항상 계시네(而恒處此菩提座)라고 설하고 있다.

 

비로자나(vairocana)는 광명변조(光明遍照)라는 뜻이다.

태양의 광명(光明)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추는 것과 같이 법신불은 온 법계에 충만해 있다. 충만해 있으면서 와도 온 곳이 없고, 가도 가서 머무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셋째, 법신불은 그 능력이 부사의 해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

화엄경여래광명각품(如來光明覺品)에서는

한 몸(一身)을 무량신(無量身)으로 나투기도 하고

무량한 몸(無量身)을 다시 한 몸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중생들의 성질을 모두 알기에 그를 따라 온갖 곳에 다 나타나시네.

라고 설하고 있다.

 

십지품(十地品)에서는

날아가는 새가 허공을 가듯 석벽(石壁)을 지나갈 수 있고, 땅 위를 걸어가듯 물위를 갈 수 있다. 또 물 속을 들어가듯 땅 속에도 그렇게 갈 수 있다.

고 설한다.

 

넷째, 법신불의 공덕은 무량하다.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에 법신불의 공덕은 불가사의해서 보는 사람은

누구나 번뇌가 다 없어지고 환희의 마음이 솟아난다.고 하며,

보왕여래성기품에서는

해가 떠서 광명이 비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중생은 광명을 보지 못한다. 육안(肉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앞을 보는 사람과 똑같이 광명의 이익을 받는다.

그와 같이 사견(邪見)이나 무지(無智)에 빠져 신심안(信心眼)이 없기 때문에 법신 부처님의 지혜광명은 보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그 공덕을 입으며 살아간다.

고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이 법신불의 기능이며 작용이다.

다시 요약하면 법신불은 모양도 색깔도 없다.

태양광명과 같이 법계(法界)에 충만해 있어 아니 계신 곳이 없지만

()한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신통이 자재하여 못하는 일이 없으며,

그 공덕 또한 무량해서 법신의 광명을 한번만 봐도 부처님의 지혜가 얻어져

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요약해서 말하면

법신불은 전지(全知)하고 전능(全能)하며 무소부주(無所不住)한 존재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

불교 교학에서는 그것을 법()이라고도 하고,

제법의 실상(諸法實相)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며, 자연의 섭리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도리(道理)라고도 할 수 있다.

제법의 참모습(實相)과 사람의 도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법칙을 자각하신 분이 인간 샤카무니 붓다이다. 그 법의 자각에 의해서 싯다르타 태자는 붓다가 되었고, 붓다에 의해서 자각된 그 법을 우리는 법신불이라고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여호아신()이나 알라와 다를 바가 없지않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유일신교의 신은 만물을 창조하거나 인간을 심판하여 상을 주거나 벌을 주는 일을 한다지만, 법신불은 무공용(無功用)이라는 점이다.

무공용(無功用)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태양광명과 같이 온 세계를 두루 비출 뿐이다.

무공용이기 때문에 법신불은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다.

 

보살사상(菩薩思想)

어떻게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보살사상이란 우리와 같은 범부중생이 대자재한 해탈의 법신불을 추구해

닦아가는 수행의 길과 실천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이란 무슨 뜻인가.

보살이란 보리살타(菩提薩  : Bodhisattva)의 약어(略語)이며 음역(音譯)이다.

 

구역(舊譯)에서는 도중생(道衆生)이라 번역하고 있고

신역에서는 각유정(覺有情)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살이란 각()을 구하는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유정(有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각, 즉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서 정진하는 자()를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보살에는 구도(求道)의 보살 서원(誓願)의 보살 여래(如來)의 활동자로서의 보살 등이 있다.

여기서구도의 보살이란 선재동자(善財童子)와 같이 도()를 구하기 위해서 일로(一路)를 추구해 가는 사람을 말하며,

서원의 보살이란 법장(法藏)보살과 같이 깨달음을 남에게 주는, 혹은 남을 깨닫게 하겠다는 원()을 세운 보살을 말한다.

여래(如來)의 활동자로서의 보살이란 여래의 기능이나 역할을 대신하는 보살을 말한다. , 여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文殊), ()을 상징하는 보현(普賢),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觀音)보살 등을 말한다.

 

여기서 는 상구보리(上求菩提)의 보살이라면

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살이란

자기완성과 이웃구제의 원()을 세워 정진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하기 위해 수행하고 정진하는 자를 보살이라 한다면, 그와 같은 보살사상은 언제부터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보살이라는 용어 내지 관념의 유래를 고찰함에 있어서

조각문(彫刻文) 보살상()의 각문(刻文) 불교성전(聖典) 등이 참고가 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조각문(彫刻文)이라고 할 수 있는 아쇼카왕[阿育王] 때의 석주(石柱)에는 보살이라는 명칭이 보이지 않는다.

,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 있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세존 탄생(世尊誕生)으로 되어 있지보살탄생(菩薩誕生)으로 되어있지 않다.

 

여기서 세존(世尊)이라고 하는 용어는 정각을 이룬 붓다를 부르는 호칭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붓다께서 탄생할 때는 태자의 신분이었지,

성불(成佛)한 세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세존 탄생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석주가 만들어진 아쇼카왕대까지는 보살이라는 명칭이 없었거나, 아니면 있었다고해도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쇼카왕이 재위했던 B.C 3세기에는 아직 보살이라는 관념이 일반화되어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로 유명한 녹야원(鹿野苑)에서 보살상(菩薩像)이 출토된 일이 있는데, 그 상에는 카니시카왕 3년에 비구 발라(Bala)가 만든 보살상임을 알게 해주는 기록이 있다.

 

카니시카왕 3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재위 년이나

그가 살해된 해(서기 152년 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를 참고해 보면

서기 2세기 중엽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다음 성전(聖典)상에서 보살의 개념을 살펴보면,

팔리의숫타니파타법구경(法句經)등에는 보살의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원시경전이나 율문(律文)에는 가끔 보이고 있으나,

그것들의 성립 연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승경전에는 보살의 개념이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 후반에 지루가참(支婁迦讖)이 한역(漢譯)도사경(兜沙經)이나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2세기에서 3세기 중엽의 용수(龍樹)가 주석(註釋)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등이 있다.

이들 성전을 통해서 보면 2세기 후반 이전에는 이미 보살의 관념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3가지 논술에 의하여 살펴보면 보살이라는 명칭이 생겨나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서기 전 2세기 이후에서 서기 후 2세기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좁혀서 적극적으로 추정해본다면 B.C를 전후한 시대에 보살이라는 명칭이나 관념이 생겨나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살도란 우리와 같은 범부중생들이 수행해서 부처의 지위(地位)에까지 가는 과정을 말한다. , 보살의 수행도라고 할 수 있다.

보살의 수행도에는 본생(本生)10(十地)나 반야(般若)10지도 있으나 화엄교학에서는 화엄경의 10지를 포함해서 보다 세밀하게 52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 첫단계가 믿음()이다.

10(十信) 다음에 10(十住)가 있고,

그 다음에 10(十行)10회향(十廻向) 그리고 10(十地)가 있다.

 

여기까지의 50()는 중생의 단계다.

그 다음에 등각위(等覺位)와 묘각위(妙覺位)가 있다.

그러므로 중생의 단계에서 불위(佛位)까지를 합하면 52단계가 된다.

이것이 화엄교학에서 말하고 있는 보살도의 구조다.

10(十信)으로부터 10(十住)10(十行)10회향(十廻向)10(十地)까지의 보살 계위(階位)는 그 명칭은 각각 다르지만, 그 내용은 10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십지품(十地品)에서 말하는 보살의 10(十地)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명지(明地) 염지(焰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 등이다.

 

10(十信)에서부터10(十地)까지의 50()는 중생의 단계며,

그 다음은 불()의 단계로서 등각묘각의 계위가 있고,

그 다음에 정등정각(正等正覺)의 불위(佛位)가 있어 전체로 보면 53계위가 된다.

 

이와 같은 보살도의 계위는입법계품53선지식의 계위에 맞도록 체계화

한 것으로써 화엄교가들에 의한 구상일 뿐 화엄경 자체의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범부 중생이 크게 자재한 법신불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행을 실천해야 하는 데 화엄경에서는 그 실천행을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보살의 10(十地)만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제1 환희지(歡喜地)보살의 실천행에만도 10가지가 있고 제10 법운지(法雲地)보살의 실천행에도 10가지가 있다.

그러므로 10지위(十地位)보살의 실천행을 모두 합하면 100가지 이상이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10신위10주위10행위10회향위의 보살행을 모두 합하면 그 수가 대단히 많아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보살행도 명칭이나 설명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요약하면 명법품(明法品)에 나오는 보살의청정 10바라밀(淸淨十波羅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 보살의 청정 10바라밀이란 무엇인가.

 

명법품에서 말하는 10바라밀이란

청정한 단()바라밀 ()바라밀 찬제( )바라밀 비리야(毘梨耶)바라밀 ()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 방편(方便)바라밀 ()바라밀 ()바라밀 ()바라밀 등이다.

 

10바라밀(十波羅蜜)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에 방편지의 4바라밀을 추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만일 그렇다면 제반야바라밀과 제지바라밀은 어의(語意)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에 지바라밀이 중복되게 된다.

여기서 제 반야(般若)바라밀은 보살의 10(十地)에서 보면 제6 현전지(現前地)에 해당하고 제 ()바라밀은 제10 법운지(法雲地)에 해당한다.

현전지(現前地)에서는 지혜만이 나타나지만 법운지(法雲地)에서는 지혜와 함께 대비(大悲)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제 반야바라밀은 지()의 행()만이 요구되지만 제 지바라밀에서는 지와 함께 동체대비( 大悲)의 행까지 요구된다.

 

유심사상(唯心思想)

만물(萬物)의 주체는 누구인가

불교 교학에서 마음()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부파불교시대에도 인간의 심성(心性)은 본래로 깨끗하다고 하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이 있었고,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래장(如來藏)사상이나 유식(唯識)사상 또는 선()사상에 있어서도, 그 중심과제는 마음()의 탐구 혹은 마음의 정화(淨化)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문제를 떠나서는 불교사상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은 불교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왔다.

 

마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유심설(唯心說)이 대두되게 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보면 유심설(唯心說)이냐 유신설(唯神說)이냐 하는 양대 주장이 있어왔다.

, 천지만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자연물을 포함한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나 행불행 등은 무엇에 의해서 좌우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것들은 오직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유신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작용(가짐)에 달려있다고 하는 유심설(唯心說)도 만만치 않게 주장되어 왔다.

 

전자를 신본주의(神本主義)라고 한다면 후자는 심본주의(心本主義)라고 할 수 잇다.

 

불교는 물론 심본주의에 가까운 종교다.

불교 경전상에 유심설이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화엄경10지품(十地品)이 처음이다.

3계 유심(三界唯心)으로 표현되는 10지품의 유심설(唯心說)

유심구(唯心句)의 시초인 것이다.

화엄경에는 참으로 다양하게 유심(唯心)이 설()해지고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만일 삼세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법계의 본성이나 모든 것들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인 줄을 알아야 한다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10지품(十地品)

"삼계는 허망하나니 단지 이 마음이 지은 것일 뿐이며 12연분(緣分)도 또한

마음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三界虛妄 但是心作 十二緣分 是皆依心."

 

2경문이 화엄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유심구(唯心句).

12연기는 물론 욕계색계무색계로 불리는 온 법계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붓다까지도 오직 이 마음()에 의한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천지만물을 포함한 모든 것(一切)은 오직 이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이나 행불행 등도 모두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일체(一切)를 만들었다고 할 때,

좀더 구체적으로 마음()은 어떤 마음이며, 마음에는 어떠한 종류가 있을까.

일체라고 하는 것에는 어떠한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용수(龍樹)나 세친(世親)징관(澄觀) 등의 화엄교가들은

마음()2종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 마음에는 진심(眞心)과 망심(妄心)2종심(二種心)이 있다는 것이다.

 

유심구(唯心句)를 해석함에 있어

마음에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과 중생심(衆生心)이 있다고 하는

이들 화엄교가들의 해석은 후대 유식사상(唯識思想)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화엄교가들은유심구에서의

마음()을 이와 같이 2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화엄경자체의 경문(經文)에서는 그 마음을욕심(欲心), 또는탐심(貪心)으로 분명하게 못을 박고 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심(唯心)에서의 마음을 고정불변하는 청정심(淸淨心)으로 잘못 해석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일체유신조(一切唯神造)로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고정불변의 유심(唯心)이 일체를 만든다고 하면

절대 유일의 신()이 천지(일체)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는 불교의 근본사상과는 먼 얘기가 된다.

 

유심구(唯心句)에서의 마음()

화엄경에서는 욕심 또는 탐심으로 설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찰라찰라로 생멸변화하는 중생심(衆生心)임을 알 수있다.

 

다음 일체에는 어떠한 것들이 포함되는 것인가.

희로애락(喜怒哀樂) 등 인간의 감정

사람이 생각하고 설계해서 만든 인공물(人工物)

산천초목과 같은 자연물 등이 모두 포함되는가,

아니면 만 포함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마음가짐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조금도 부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러나 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산천초목과 같은 자연물까지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화엄경에서는

유심구(唯心句)의 마음()을 욕심 또는 탐심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탐내고 욕심내는 그 마음은 곧 중생심이다.

 

그런데기신론(起信論)에서는

중생심(衆生心)은 곧 법()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찰라찰라로 생멸변화하는 이 중생의 마음()이 곧 법()이며,

이 법은 곧 연기법(緣起法)인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는 것은

일체유법조(一切唯法造)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체는 법()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법()인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고 할 때의

그 마음은 능소(能所)2원적(二元的)인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심(唯心)이 일체를 만든다고 해서 일체(一切)를 만드는 심()[]이 있고,

그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일체[]가 따로 있다고 하면

그것은 유일신교(唯一神敎)에서 어떤 절대자가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와 같은 것은 불교의 근본사상과 어긋나며

주체()와 객체()의 구족(具足)을 설하는 화엄사상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의 마음()은 초월의 절대적인 유심(唯心)이 아니라, ()하여 생()하면서 동시에 멸()해 가고,

멸하면서 동시에 생하는 연기의 작용, 그 자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주()와 객()이 일여(一如)인 마음()이며 법()이다.

 

이와 같은 마음이나 법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끊임없이 생멸변화하는 연기법의작용그 자체이기 때문에

정형(定形)의 실체( )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화엄경에서는 삼계(三界)는 허망(虛妄)하다고 하는

공관(空觀)에 입각한 유심(唯心)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 법계연기사상(法界緣起思想)

만물(萬物)은 어떤 관계로 존재하는가

 

불교의 교학사상에 있어서 실상론(實相論)과 연기론(緣起論)은 양대 중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론에는 소위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로부터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설이 있지만 이중에서 법계연기설은 화엄교가들에 의해서 체계화된 연기사상이다.

 

이 법계연기사상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緣起諸法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혹은 어떻게해서 생겨났는가 라고 하는

제법(諸法)의 발생론이나 생성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개개물물이 서로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계연기설이란 제법의 존재론 또는 존재 양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주법계의 모든 것들은 어떠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을까.

첫째, 연기(緣起)의 제법(諸法 : 존재하는 모든 것들)

현상적으로 보면 천차만별의 형태로서 서로 다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상의상성(相依相成)한다.

, 모든 존재물은 서로 즉()하고 서로 입()해서 걸림이 없이 원융하게 서로 관계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바닷물과 파도와의 관계와 같다.

현상에서 보면 바닷물과 파도는 서로 다르지만

본질면에서 보면 바닷물과 파도는 둘이면서도 하나다.

이 둘은 상즉상입하여 서로 걸림없이 바닷물이 되었다 파도가 되었다 하는 작용을 계속한다. 이와 같은 작용을 상즉상입이라 하고 상의상성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연기의 제법은 상즉상입하여 주반구족(主伴具足)의 관계에 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다름(차별차이)은 있을지언정

높고 낮음이나 주종의 관계에 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주반구족이라는 말의 본 뜻은

()와 반()이 따로 없이 절대 평등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수직의 주()와 종()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평의 평등관계에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예를 들어 남자가 있기에 여자가 있고, 여자가 있기에 남자가 있다.

인간이 있기에 자연이 있고, 자연이 있기에 인간이 있다고 보는

절대평등의 사상이다.

 

남자와 여자, 자연과 인간은 서로 모습은 다를지언정

그 가치에 있어서는 높고 낮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제법은 상즉상입하여 중중무진(重重無盡)한 관계에 있다.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서로 거듭되는 연관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고 있다.

 

내가 먹은 쌀 한 톨을 예로 들어 보면

나는 이 쌀 한 톨을 매개로해서 농부와 연관되어 있고,

쌀을 운반해 준 운전수와 연관되어 있고, 밥을 지어준 어머니와 연관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쇠사슬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이 서로가 거듭거듭 연결된 관계 속에서 의존하며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와 같이 3가지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법계연기사상은 절대평등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법계연기사상은 수직사관(垂直史觀)이 아니라 수평사관(水平史觀)이다.

 

이와 같은 법계연기사상이 최초로 형성된 것은

두순(杜順)3(三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두순은 법계관문(法界觀門)에서 법계(法界)

, 이 온 누리를 진공문(眞空門)이사무애문(理事無碍門)주변함용문(周遍含容門)3으로 나누고 있고,

 

지엄(智儼)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등의

10현문(十玄門)으로 설명하고 있고,

 

법장(法藏)6상원융(六相圓融)으로 설명하고 있다.

6상이란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을 말한다.

 

신라 의상(義湘)

연기6(緣起六門)에 의해서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설명하고 있고,

 

징관(澄觀)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사리무애법계(事理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4종법계(四種法界)로 나누고 있으며,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가 곧 법계연기(法界緣起)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법계연기사상은

현상적으로는 서로 서로 다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평등하여 같다고 보는 사상으로써

남과 북, 동과 서, 흑과 백, 혹은 종교간의 이념 등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모두가 하나로 될 수 있는

사상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정토사상(淨土思想)

청정한 불국토는 어디에 있는가

 

화엄교학은 철학적이며 논리적이고 자력적인 사상인데 반해서,

 

미타정토(彌陀淨土)교학은

종교적이고 신앙적이며 타력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듯한 양대사상이

과연 화엄경에서 양립(兩立)할 수 있을까.

 

화엄경에는 염불(念佛) 염불삼매(念佛三昧)본원(本願)왕생(往生)정토(淨土)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아미타불(阿彌陀佛)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 등의 용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들은 과연

미타정토사상적인 의미로 설해지고 있을까.

미타정토사상적인 내용으로 설해지고 있다면 화엄경의 어디에 어떤 형태로서 설해지고 있을까.

화엄교가들은 사상적으로는 화엄경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신앙적으로는

왜 미타정토신앙을 수용하고 있을까.

라고 하는 등의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엄경에서 말하는

부처의 뜻(佛身義), 정토의 뜻(淨土義), 염불의 뜻(念佛義)을 살펴 본 후,

그것이 미타정토교에서 말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화엄경에서의 주불(主佛)은 비로자나불이고,

미타경전에서의 주불은 아미타불이다.

비로자나불은 온 법계에 두루한 광명(光明遍照)라는 뜻이고,

아미타불은 무량한 수명(無量壽)무량한 광명(無量光)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서 보면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은

그 용어는 서로 다르지만 의미는 서로 같다고 할 수가 있다.

 

또 이 2 붓다가 성불하게 된 인연을 살펴보면,

 

비로자나불은 구원겁(久遠劫)전에 많은 공덕을 닦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한 공덕으로 정각을 이루었다고 한다.

, 상구보리(上求菩提)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하는 보살행의 실천에 의해서 비로자나불이 되었다고 한다.

 

아미타불의 경우도 법장(法藏)이라는 비구가 구원겁전에

48가지의 원을 세워 실천한 공덕으로 성불했다고 한다.

48대원도 역시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겠다는 보살의 원행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2 붓다는 성불의 인연이 모두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화엄의 교가들은 자나(遮那)와 미타(彌陀)의 불이(不二)를 말하고 있다.

둘째, 정토(淨土)란 무슨 뜻인가.

정토라는 말은, ()이 동사로 쓰이는 경우와 형용사로 쓰이는 경우에 따라서 2가지의 뜻이 있다.

동사로 쓰이는 경우의 정토는() 즉 국토를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이 되고, 형용사로 쓰이는 경우는 깨끗한 국토 즉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이 된다.

 

화엄경에서의 정토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써 연화장장엄세계(蓮華藏莊嚴世界)가 바로 그것이다. 줄여서 연화장세계 혹은 화장세계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화장(華藏)세계는

구원겁 전에 비로자나불이 닦은 원()과 행()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고 하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또한 법장(法藏) 비구의 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점에서 보면 화장(華藏)과 극락(極樂)은 서로 같다.

다만 그 정토(淨土)의 위치만 서로 다를 뿐이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화장정토(華藏淨土)

특정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방(十方)의 불국토 어디에나 있지만

 

미타정토는 사바세계가 아닌 타방(他方)에 있다고 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 미타정토는 이 사바세계로부터 10만 억 국토나 떨어진 서방(西方)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장정토와 미타정토(彌陀淨土)는 그 소재의 위치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다.

 

정토의 위치가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 갈 수 있는 실천행 또한 서로 다른 것으로 설하고 있다.

 

화장세계에 갈 수 있는 방법으로는 보살행이 제시되고 있는 반면

미타정토에 가는 왕생(往生)의 길은

구족10(具足十念)이나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제시되고 있어 서로 다르다.

 

화장정토와 미타정토의 장엄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요약해서 "중보(衆寶)장엄"이라는 점에서 같다.

, 갖가지의 보배로서 꾸며져 있다는 점에서 화장정토와 미타정토는 서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화장정토와 미타정토는 다른 점도 있지만 같은 점도 적지 않다.

그래서 화엄교가들은 화장(華藏)과 극락(極樂)의 불이(不二)를 주장하기도 한다.

 

셋째, 염불(念佛)의 뜻은 같은가 다른가.

화엄경에서의 염불은 말 그대로부처님을 생각한다고 하는

자력적인 지관의 념(觀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미타정토교학에서의 염불은

아미타불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는 타력적인 칭명염불(稱名念佛)이다.

 

화엄경에서의 염불은

붓다의 지혜나 공덕 혹은 모습(相好)을 관()하는 자력적인 염불인 데 반해

미타정토교학에서의 염불은 구족10(具足十念), 또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그러면화엄경에는 미타정토적인 사상은 없을까.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화엄경의 불신의 뜻(佛身義)정토의 뜻(淨土義)염불의 뜻(念佛義) 등은

미타정토교학에서의 그것들과 유사한 점이 적지 않으며,

불신의(佛身義) 내지 정토의(淨土義)에 국한해서 보면

그 내용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의(敎義)에서 보면

2사상은 자력교(自力敎)와 타력교(他力敎)라고 하는 점에서

양립할 수 없는 사상이다.

 

사실 60화엄경이나 80화엄경에는

현수보살품(賢首菩薩品)심왕보살문아승지품(心王菩薩問阿僧祗品)2곳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미타정토사상적인 내용이 설()해 지고 있지 않다.

 

2곳의 내용도 구체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이 사바세계와 극락세계에서 시간의 장단(長短)의 비교,

또는 염불삼매에 의해서 사후에 붓다 앞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는 것 등

지극히 단편적이다.

 

그러나 40화엄경의 마지막 권인 제 40권에는

미타정토사상이 구체적으로 설해지고 있다.

보현보살의 10대원(十大願)이 설해 지고 있는데, 그 마지막 원()보개회향원(普皆廻向願)에 미타정토사상이 구체적으로 설해지고 있다.

이것은 미타정토사상이 성행할 때 반야(般若)

문수사리발원경(文殊舍利發願經) 등에 의해서 구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출처] 화엄경의 중심사상|작성자 각원사불교대학 / 다음 브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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