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월10일 일요일 구정연휴와는 관계 없이 지인 한분이 강원도 거진에 급한 볼일이 있어 가는데 별일 없거던 함께 동행하자고 해서 다녀왔다. 아침 일찌기 떠나는데
날이 몹씨 추었다. 올 겨울 추위는 유독 더한 것같아 손을 호호 불며 그의 승요차 문을 열고 앞좌석에 탔다. "지구의 온난화가 문제라는데 올겨울 추위는 왜 이렇게 오래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혹시 나만 유독 그런가?"고 했더니 지인의 말이 "그러게 말이지. 추위가 좀처럼 숙으러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며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날씨마저 기승부린다면서 뭔가 설명할 수없는 이유가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육신이 추운건가 마음이 추운건가?
차는 외곽도로를 타고 구리에서 한강북로로 접어들어 양평 홍쳔을 거쳐 44번국도를 달려 눈덮인 설악을 오른쪽에 끼고 진부령을 넘어 거진읍에 도착한 시각이 정오 12시, 겨울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르고 밀려와 부서지는 백파의 해조음을 잠시 감상할 수있는 귀한 시간은 이 우울한 시기에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었다.
거진 공형진 그리고 양양, 세 곳에 들러 일을 마치고 속초로 다시 올라가 미시령을 넘어, 갔던 길을 거슬러 집에 돌아온 시각이 밤 11시 반. 추위에 떨며 침상에 들기 전, 요즘 말썽피우고 있는 컴 앞에 잠시 앉아 몇번 시도 끝에 열어보니 남대문에 불이 났다는 것 아닌가.
누전으로 인한 부분 화재일것이니 소방당국이 어련히 알아서 초기진화 했겠지..... 그 밤은 대소롭지 않게 생각하고 춥고 피곤한 몸을 전기장판 속에 묻고 잠들었다.
나는 노무현 정연주 출현 이후 티비는 다락 속에 수납하고 신문은 눈에 띄면 잠시 들쳐보고 아니면 말고하는 정보암흑시대에 살고 있다. 안보고 안들으면 차라리 마음 편해서다.
오직 인터넷 창에 비치는 커더란 제목활짜들만 일별할뿐, 그리고 극히 필요한 기사들은 뽑아 스크랩해서 사회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하곤 한다.
11일 아침 일어나 또 말썽피는 컴을 두둘겨 깨워 창문을 열어보니 어잿밤 화재 소식이 대서특필 되어있지 않은가.
남대문의 온전한 예전의 모습과 화마가 핱퀴고 간 뒤 남긴 形骸를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하면서 말썽피는 컴을 이리저리 두들기며 여기저기 창을 열어봤다.
끔찍스런 장면은 사실이었다. 아연실색,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이럴수가 ? 어젯밤 초기진화로 무사하기만을 바랐던 단견에 자괴감이 일며 나 스스로의 경솔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종일토록 생각했다. 방화, 방화? 누가 뭣때문에? 솟구치는 울분에 역시 말썽피는 컴을 두들겨 우선 몇 자 올렸다.
嗚呼 痛哉라 ! 崇禮門의 形骸를 보며...' 먼져 호보의 책임을 다하지 봇한 政權을 나무랬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마음이 왜 이리 추운지를 이제 알 것같다.
이 사회에 온갖 일로 인한 불만계층이 있다하더라도 하필이면 그런 식으로 사회불만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나? 가까운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들이 애꿎게 맨 먼져 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여서다. 이건 나의 커다란 편견이었다.
반드시 큰 불만이 반드시 큰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社會公理를 잠시 망각했던 것이다.
어떻든 지금 이사회는 누구의 탓이라고 딱히 찍어내기 힘든 불만과 좌절의 사회병리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 한 단면이 남대문 방화라는 형태로 발병했을뿐, 자칫 그보다 더 큰 사건을 불러올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이리 볼 때, 비약일는지 모르지만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영역에서의 사건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않은가.
전통사회에서 난동은 엄격히 법으로 다스린다.
허지만 지금 우리가 전통사회인가? 를 자문하며 남대문 방화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총체적 부조리사회, 국가 원수라는 사람이 국민 몰래 적에게 돈보따리를 바치며 내통하는 이적행위 사건, 정치자금 차떼기 사건, 철조망 전초기지에서 일어난 총기난동사건, 전통적 구국의 은인 맥아더동상 파괴 난동사건, 국가안보의 지렛대 평택 미군기지 파괴 난동사건, 초법적 노조의 파업난동, 직권을 이용한 고위공직자의 密愛사건, 그밖에 이루 열거하기 힘든 사회부조리, 이런 것들이 모두 사회병리의 發疹現象인 것이다.
왜 우리의 傳統社會가 이지경이 되었는가? 진단은 자뭇 간단하다.
이조 수 백년간 옳은 것을 섬기고 악한 것을 배척한다는 衛正斥邪 사상에 젖어 살아온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훈구파가 지배해 왔다. 잠시 사림파가 득세하려 했지만 그것은 이단일뿐이었다.
한 민족의 眞脈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서서히 변화를 겪으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거역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유전학적 DN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 한 민족 내면에 잠재되어 민족집단의식화한다고 심리학자 칼 융은 정의헸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해방 후는 차치하고 소위 말하는 민주화시대라는 최근 10여년간 국가 존망을 좌우하는 정치문제에 있어서 과거 탄압 받았다는 계층(사실은 國事犯)은 어떤 범법행위를 하더라도 민주화열사로 대접해서 '그럴 수있지! 그게 대수야? 괜찮아, 잠시 쉬어' 식의 법률우대를 받아왔다. 거리서 위반행위를 단속하는 경찰의 멱살을 잡는 것이 유행인 때도 있었으니....
비유적 사림파의 득세,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좌파정권의 초법적 국가통치 방식이었으니 어찌보면 정치허무주의에 빠진 나라같다.
무정부주의, 가공스런 사상이다. 기존의 질서 도덕 법률 종교 몽땅 해체하고 새 질서 아래 허무주의 동지들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자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자가 나쁜 법은 안키켜도 된다는 사회이니 자칫 좋은 법도 안지켜도 되는 오판은 하지 말라고 타이를 사람 누가 있겠나.
우리는 특히 지난 5년 동안 彈劾藥도 먹고 사법권으로부터는 선거법 위반이니 자꾸 그러지 말라는 타이름을 들으면서도 대통령도 정치인인데 어찌 선거에 개입 말라냐며 항거해온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살아왔다.
다행히, 그 사람이 며칠 뒤에는 방을 빼고 남녁 아느 마을 아방궁으로 귀향을 한다지만 그가 뿌린 無法風潮가 얼마나 오래 갈는지 자뭇 걱정이다. 다만 엊그제 온 국민의 억장을 문어뜨린 숭례문 화재사건으로 무법행진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졌으면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끝으로 한마디, 복구인가 복원이가에 십시일반 국민성금 이야기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공연히 많은 사람 心火만 키울것이기 때문이다. 2008.2. 15. 안중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