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6년 전인 2007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진행된 ‘노무현-김정일 회담’과 관련된 죄상(罪狀)이 증폭되고 있다. 회담 당시는 물론 그 후 많은 문제점이 노정(露呈)돼 왔으며, 급기야 정권 차원에서 회담록을 폐기하려 했다는 사실관계의 일단까지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려 했다는 원초적 잘못에 더해 김정일 앞에서의 굴욕적 저자세, 중요한 사초(史草)의 폐기·은닉·왜곡 시도, 이를 덮기 위한 또다른 거짓말 등 국기(國基) 차원의 범죄 혐의가 3중, 4중으로 겹쳐지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2일 대화록 실종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국가기록원에서는 회담록을 찾지 못하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청와대 문서관리 시스템 ‘이지원(e知園)’에서 원본이 삭제된 흔적을 찾아 복원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봉하 이지원’에서는 다른 문건 100여 건의 삭제 흔적도 발견됐다고 한다. ‘이지원’에 보관된 기록물 재분류 관련 회의 자료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이 회담록 폐기를 지시했던 사실 또한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7월 25일 수사를 본격화한 검찰이 대통령 이관기록물 755만 건과 ‘봉하 이지원’ 탑재 문건을 조사한 결과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많은 일들이 짚인다. 김정일 면전에서 과공도 넘어선 굴욕을 자초하고, NLL을 두고도 김정일과 북한에 청죄(請罪)하듯 했던 굴욕이 스스로도 낯뜨거워 원본에 첨삭, 가필함으로써 수정본과 국가정보원본이 따로 남기에 이르렀다는 추론이 상식에 부합할 것이다. 회담장 실책을 국민으로부터, 역사로부터 가리기 위해 범죄 수법을 무릅쓴 것으로 비친다.
“사초가 증발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로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8월 6일 지적이 아니더라도 사초 폐기는 중대 범죄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도 노 정권 인사들은 최종본이 만들어져서 초본을 없앤 것이 무슨 잘못이냐는 식으로 국민을, 역사를 우롱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이라며 이를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대통령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범죄 혐의부터 먼저 짚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의 선의’ ‘국면전환용 수사’ 등으로 우기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회담 당시의 집권당인 민주당은 문건 조사에 이어 내주 본격화할 관련자 수사에 협조할 의무부터 되새기기 바란다. 다른 누구에 앞서 문재인 의원이 당시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회담 준비와 기록물 이관을 총괄했던 만큼 합당한 책임을 지고 진실 재조명에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