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이하 대불총)은 2022년 7월 4일 오후 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 클럽에서 <보살도 실현을 위한 "한국불교의 틀"과 "재가불자 교육"> 이란 주제로 포럼을 실시하였다. - 1주제 : 대승불교 사상과 한국불교 발제 : 권기종 박사(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토론 : 최종석 박사(금강대학교 명예교수) - 2주제 : 한국불교의 재가불자 교육 발제 : 김용표 박사(동국대학교 명예교수) 토론 : 총지종 화령정사(동국대학교 불교철학 박사) 포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서의현 대종사, 설정 큰스님과 군종교구장 선일스님이 참석하시고 전총무원장 황진경 큰스님과 BTN 이사장 성우 큰스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보내 주셨다. 또한 현 역경원장이신 혜거 큰스님 께서 기조연설을 하셨다. 포럼은 회장인사말, 큰스님 격려사, 기조연설 후 포럼 순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대불총 박희도 회장은 인사말씀은 금번 포럼의 취지로 대신 하였다. [본 포럼은 대불총이 15년간 호국호법을 위하여 활동하면서 도출된 문제 중 우리 불교계가 발전되어야 할 2가지 분야에 공론화를 위하여 마련하였다. 하나는 한국불교의 틀이라 할 수 있는 한국대승불교에 대한 각
한국 20대 대통령 시대 초부터 한국사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병법 36계 가운데 제3 계인 차도살인(借刀殺人)이 기만당한 정통 보수우파 일부 국민들은 20대 尹대통령의 검찰에 애타게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0년 문민정부는 지유민주를 빙자한 사회민주로 미국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건국한 대한민국의 거목에 중단없는 도끼질을 해왔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분석한다. 30년 문민정부의 수상한 민주주의에 의해 대한민국은 과거 6,25 전쟁때같이 총소리도 없이 북-중-러에 넘어가는 수순에 들어갔다고 분석한다. 주한미군은 좌파정부가 던져주는 뼈다귀같은 분담급에 만족하는 맹견같이 만족해하고, 주한미대사는 보수우파의 집회는 애써 외면하고, 극성 좌파집회에는 우정 참석하여 축사와 격려사를 해주었다.(마크 리퍼트 대사) 따라서 한국 좌파는 미국의 지지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한 가운데 한국을 친중파, 친북파 세상으로 만들며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분석한다. 문민정부 30년동안 한국은 왜 좌파천국이 되었는가? 만주주의라면 진위여부(眞僞與否)를 가리지 않고 거의 무조건 추종, 맹종하는 일부 국민들 탓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민주당 간판과 민주의를 외치면
지구촌의 각나라의 행, 불행의 운명은 해당국 정치인이 주도(主導)한다. 말을 바꾸어 해당국에 원자폭탄을 맞게되는 원인은 정치인 탓이다. 한-일은 우선 북-중-러가 죄지우지하는 북헥에 의해 언제 기습딩할 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지 오래이다. 북핵을 기습할 수 있는 북은 이미 핵을 탑재할 미사일로 한-일에 사거리 측정을 마쳤다. 일본은 두 번이나 사거리 측정을 위해 깊이 잠든 심야에 일본 상공 위로 북의 미사일이 날았던 것이다. 영리한 일본 국민들, 이미 미제 원자폭탄을 두 개나 맞은 경험이 있는 일본이 북의 발사한 사거리 측정의 미사일에 대하여 전연 생각이 없이 일본 정치인들의 눈치만 보겠는가? 신속히 예방해야 한다는 일본인이 전연 없겠는가? 하지만 북핵에 기습 당하지 않기 위해 일본의 누구보다도 일본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이 대오각성하여 전체 국민들의 우려와 불안을 해소하는 데 총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의 북핵에 대한 방공망만 철저히 믿는지 아무런 대책이 없어 보인다. 미제 원폭으로 기습 당한지 70년이 흘렀어도 대책을 세우는 재무장이 없다. 일본도 한국처럼 딱한 나라라는 불쌍한 생각이 든다. 일본 국민들은 이제 언제고 북핵이 기습해
한국의 항간(巷間)의 일부 여론에서는 목전에 다가온 5월 10일에 20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두고, 한국은 골수 대통령으로 회자되는 文대통령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라는 말이 충천하듯 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되었으면 오직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를 위한 경제번영에 진력해야 할 대통령이 북의 백두혈통에 충성하는 짓만 해오는 文대통령이라면, 깨어난 국민들은 오래전에 혁명적으로 권좌에서 축출했어야 했다고 나는 주장한다. 한국의 가장 큰 불행은 문민정부 때 수상한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대통령이 된 자들이었다. 관찰해보면, 한국에서 가장 독보적인 민주주의를 외치고 국민에게 자신은 민주투사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세뇌해오는 인사들은 거의 북-중-러를 추종하는 친북, 종북주의자들인 사회민주의 투사들인 것이다. 따라서 문민정부 30년 대통령들은 거의 친북, 종북 대통령들의 세월이었다. 한국의 가장 우환의 큰 문제는 주권재민을 외치며, 선거의 투표로서 대선, 총선, 지자체 선거 등을 해오는 한국 국민들 가운데 일부 국민들의 투표행위이다. 나는 관찰하고 분석한다. 첫째, 한국의 선거의 투표 유권자들은 지역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는 심할 때는 96%를 친북 좌파
미국이 한국에 “좌파던 우파던 제멋대로 살고, 주한미군 주둔비, 미제 상품과 미제 무기만 구매하면 된다”듯이 방치하고 있을 때, 강대국의 눈치를 보던 한국 정치판의 좌파들은 친중공파(親中派), 친북파(親北派)들의 세상이 온 듯 날뛰듯 하여 마치 혁명하듯 하고 있다. 한국을 주도하는 정치판은 반미, 반일주의자들이 득시글하고, 친중, 친북파들이 거의 장악하다시피 분석된다. 한국의 수도 서울의 거리에는 어디서 지원금이 무제한 주어지는 지 일부 젊은이들은 문민정부 30년 내내 주한미군 철수와 반일구호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 전라도 말로 멸시하는 언어로 “홍어 젓”이 된지 오래이다. 특히 중공의 대한민국 접수 술책은 6,25 전쟁 때 같이 1백만 중공군이 몰려오는 것이 아니다. 첫째, 중공의 막대한 자본으로 한국 땅 사들이기에 총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유력한 정치인의 은밀한 협조와 중공의 돈에 혈안이 된 매국노같은 한국인을 내세워 중공은 제주도에서부터 수도 서울까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땅과 아파트 등을 사들이고 있다. 벌써 일부 한국인은 중공 국적의 아파트 임대업자에 아부하여 전세, 월세를 살아야 하는 딱한 지경이다. 근거의 하나는 중국국적을 가진
대한민국 건국 80년이 가까워오는 한국정치판과 한국사회는 작금 민주당에 이르러 “빨갱이 공화국이냐, 검찰공화국이냐”를 주제로 화제가 되어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현직 文대통령을(고영주 변호사 사건으로)공산주의자로 판시하고 있다. 진천동지(振天動地)할 일이다. 대한민국 건국 후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시작한 자유민주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타락했다면,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로 대법원에서 판시할 것이며 집권여당인 민주당에서는 20대 대통령으로 검찰총장 출신 尹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대선 불복성 규탄으로 “검찰공화국은 안된다” 고 발악하듯 하고 있다. 오죽 하면 국민 다수가 대한민국 살리기에 검철총장 출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했겠는가. 무법의 빨갱이 세상 보다는 준법의 검찰공화국이 낫지 않겠는가. 따라서 항설(巷說)에는 한국에는 공산주의자, 즉 빨갱이 대통령은 되고, 준법정신으로 빨갱이를 잡고 자유민주를 실천하는 검찰공화국은 안되느냐? 질타를 하고 나서고 있다. 만약 한국이 빨갱이 세상이 되었다면, 무슨 불행한 일이 오는가? 여러 불행한 주장과 근거를 댈 것 없이 애써 돈을 많이 모운 국민들은 빨갱이들의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선고를 받고 가슴에 죽창을 맞아
예전에 한국 곳곳에 마을 대항 투석전(投石戰)이 있었다. 투석전에는 반대되는 마을 사람들은 죽일듯이 미워하고 돌을 무섭게 던졌다. 투석전에 사람이 심하게 다치면 싸우는 상대 동네인들은 더욱 중오심이 무서워졌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각성하게 되자 마을 대항 투석전은 사라졌다. 그러나 악독한 한국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자유민주화를 운위(云謂)하면서 영원히 치유하기 난망한 전라도, 경상도 지역 싸움을 교묘히 공작하였다. 5,18 광주사태 당시 나는 무위사(無爲寺: 전남 강진군 성전면 죽전리 소재) 주지였고, 서울 조계종 총무원 불교신문 편집국장을 겸하고 있었다. 당시 총무원에서는 나 외에 교무부장과 총무원 간부 1명 도합 3명이 첫째, 광주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둘째, 무장봉기한 시민군이 무기를 자진 군경(軍警)에 바치고, 평화적 시위를 종용하게 하기 위헤 당시 육군본부와 사전 협의하고 총무원 검은 색 자동차로 광주로 갔다. 당시 전주 향토사단의 계엄군은 정읍시에서 장성으로 넘어가는 고속도로 터널부터 무장하여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당시 전주에 주둔하고 있는 향토사단본부에 가서 사단장을 만나고, 헌병 중위가 헌병차에 타고 선두에 서서 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