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비자금 행동대장 李모씨에게 돈떼인 피해자 30명 넘어

  • 등록 2010.01.27 01:58:31
크게보기

김대중 비자금 믿고 투자 했던 사람들 -김대중이 때문에 망쳤다..변호사, 단체장, 목사, 사업가 등 피해자 직업도 다양..김대중 측근들의 검은돈이 미국서 춤추고 있다 (41)

 
(뉴욕) 요즘 한국계 동포 사회에는 어디다가 속 시원히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수 십 명 있다. 그들은 모두 <김대중 비자금 뉴욕유입사건>의 얼굴마담 겸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李모(48․ 롱아일랜드 거주)씨에게 거액의 돈을 떼인 사람들이다.

피해자들 중에는 한인단체장 P 씨, 변호사 Y 씨, 여행업자 C 씨, 목사 S 씨, 사업가 K 씨 등 이름만 대면 동포들이 알 수 있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 씨가 ‘잘 나가는 사업가’인 줄 알고 투자 등의 명목으로 이 씨에게 돈을 건넸다가 떼였다. 이 씨가 이들로부터 끌어다 쓴 돈은 2천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피해자들 중에는 캐나다 동포와 한국 거주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피해자들은 현재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김대중 비자금>이 한국으로 회수 돼 이 씨에겐 가진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실수 한 것은 이 씨가 성공한 사업가인 줄만 알았지, 이 씨 사업체의 자본금이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는 제대로 몰랐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뉴스메이커와 자매지인 워싱턴의 www.usinsideworld.com이 지난 2006년부터 줄기차게 “김대중 비자금이 뉴욕으로 흘러들어 왔으며 행동대장은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 이모 씨”라고 보도했지만 개의치 않고 거액을 투자했다가 떼인 사람들도 있다.

과거 김대중 정권은 집권 중반이 넘어가자 자신들이 추진했던 대북사업을 김대중 퇴임 후에도 지속시키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3억달러 (3천억원) 의 비자금을 뉴욕으로 보냈다.

이 때 이 씨는 1백개가 넘는 위장 회사(Paper Company)를 만들어 한국으로부터 돈을 전해 받았다. 당시 김대중 비자금 뉴욕 총책임자는 플러싱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60대의 L 씨. 이 씨는 L 씨와 함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일했으며 <열린공간>이라는 사회봉사단체를 통해 주로 외부에 나서는 일을 맡았다.

돈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 씨가 갑자기 사회활동을 하고, 친북단체를 도우며 돈을 물 쓰듯 하자 본지는 그를 유심히 주목했다.

뉴욕의 비자금 관리인들은 김대중 처조카 이형택에게 거액을 줘 브루클린에 호화콘도를 사도록 도와줬으며 북한인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는 본지의 취재와 당시 돈 가방을 날랐던 양모 씨(코네티컷 거주)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연방수사국(FBI)은 이와 관련 기자를 두차례에 걸쳐 조사했으며 양 씨의 증언도 확보했다.

과거 이 씨는 친형과 함께 뉴욕에서 C 전자회사를 차려 승승장구 했던 사람이다. 그러던 이 씨가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을 벌어들이던 사업을 접었다.

김대중 비자금이 다시 한국으로 보내지기 시작하면부터 이 씨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일설에는 이 씨 형제가 사업이 안 돼 파산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이 소문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C 전자회사는 퀸즈에 본사를 두고 공채 직원까지 모집 할 정도로 번창 하던 회사였다.

이 씨 형제를 잘 안다는 R 씨는 “사업을 접은 후 상당액의 재산을 김대중 사람들에게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따라서 이 씨 형제는 김대중 정권 창출해 일조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R 씨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정치권과 관련이 없는 이 씨가 이후 김대중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R 씨는 “김대중 사람들이 이 씨가 동향(同鄕)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자금 관리를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당시 이 씨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손잡고 <열린공간>사업을 할 정도면 정권 차원의 지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 K 씨는 “이 씨와 친분이 있던 김대중 정권의 실세 P 장관(현 국회의원)이 깊숙이 개입 됐으리 추정 된다”며 “일련의 일들이 이 씨 힘으로는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돈이 없어 내게 20 달러를 빌리러 온 적도 있다”

이 씨는 지난 2002년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뉴욕 조선일보>(당시 사장 김교종)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욕 조선일보>는 돈이 없어 신문도 제대로 못 내던 회사였다. 이 씨는 당시 김 사장에게 50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 할 의사를 보였다.

당시 투자자를 찾던 김 사장이었지만 이 씨의 이 같은 제안을 “말 안 되는 소리”라며 일언지하에 거절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돈이 없는 회사였지만 이 씨가 너무 헐값에 회사를 인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이 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이 무슨 돈이 있기에 언론사까지 인수하려 하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플러싱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K 씨는 “C 전자를 접은 이 씨가 허름한 중고차를 몰고 다니며 돈이 없어 내게 20 달러를 빌리러 온 적도 있었다”면서 “어디서 뭉텅이 돈이 들어오지 않고서는 이 씨가 어느 날 갑자기 큰돈을 벌일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06년 1월부터 본지에 <김대중 비자금 뉴욕유입사건>이 대서특필 됐다. 이후 이 사건은 연방검찰, 백악관, 연방수사국 등지에 고발되고, 기사를 터뜨린 기자는 연방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 됐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김대중 사람들은 기사를 보도한 뉴스메이커 기자를 포함, 기자가 대표로 있는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 와 관계자, 워싱턴 인사이더월드사와 발행인 등 총 12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뉴욕주 법원에 고소했다.

그러나 그들은 법원에 고소만 해 놓고 법정에 나타나질 않았다. 정확히 말해 청문회(Hearing)에 나타나질 않았다.

재판에 앞서 ‘재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청문회가 열리기 마련인데 이 씨 측은 이곳에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따라서 법원은 이 사건을 기각시켰다. 이에 이 씨 측은 이 같은 결정에 불복하고 즉각 항소했다.

그러나 이 씨 측은 항소 90일 이후에 열리는 청문회에도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이에 법원은 이번 사건을 ‘영원히 기각’ 시켰다. 아마 재판이 열렸다면 판사는 틀림없이 이 씨에게 재산형성과정을 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씨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무일푼이던 그가 몇 년 만에 1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보유한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복권(lotto)이 맞았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지난 일이지만 무척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당시 기자와 청문회에 동행했던 주간지 기자 S 씨는 “재판이 열렸다면 오히려 이 씨 측이 불리할 상황 이었다”면서 “<뉴스메이커> 측은 연방수사국 등에 고발한 확실한 증거물을 갖고 재판에 임하는데 반해 상대방은 별다른 반박 증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하수인들은 기자 등을 고소는 했지만 사건이 시끄러워지자 뉴욕 비자금을 한국으로 회수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한국까지 가서 회수작업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한국 측 회수작업 책임자는 앞서 말한 뉴욕비자금 총책임자인 L 씨의 40대 아들이었다, 이와 더불어 1억 달러가 넘던 이 씨의 재산도 날라 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 씨에게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강타 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사태가 악재로 작용했다. 이 씨가 시세보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부동산들이 헐값이 되기 시작했다. 캐나다에 짓기로 했던 호텔건립사업도 무산됐다.

이 무렵 이 씨에게 돈을 투자했던 사람들이 “내 돈을 돌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던 여행업자는 소송까지 불사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까지 돈을 끌어다가 이 씨에게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명의로 되어있는 플러싱의 대형 쇼핑센터는 조만간 경매에 붙여 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화려하게 한인사회를 휘젓고 다니던 이 씨는 현재 한 없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피해자 A 씨는 “나는 정말 이 씨가 그런 인물인줄 모르고 투자했지만 부정한 돈을 관리하는 사람인 줄 알고 투자한 사람들은 정말 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기자회견을 하려해도 창피해서 못 하겠다”면서 “돈을 돌려받으려면 무슨 짓인들 하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법률상 이 씨는 파산신청을 하면 그만인 사람이다. 원래 돈이 없던 사람이라 잃을 것도 없다. 이 씨 재산은 현재 차압에 들어간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비자금을 관리하는 사람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씨에게 투자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한 이 씨가 몰락하게 된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잘 아는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의 크리스 강 사무국장은 그의 몰락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부정한 돈을 관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둘째, 이 씨에게 비자금 관리 공동책임을 맡긴 김대중 측 사람들이 ‘바보’이다.
셋째,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긴 이 씨가 너무 ‘있는 티’를 냈다. 원래 돈이 없던 사람이 한인단체에 마구 후원금을 전달하고, 사회사업을 하니까 좁은 한인사회에서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 ▲ 임종규 기자(가운데)- 지난 2006년 6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대중 비자금 욕 유입사건을 폭로하고 있다.
넷째, 그는 특정언론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다.
다섯째, <뉴스메이커>를 너무 얕봤다. 기사가 터지지 않게 일간지들만 막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섯째, 목숨 걸고 취재하는 <임종규 기자>에 대해 잘 몰랐다. 거의 평생을 탐사전문기자로 일한 임 기자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

일곱째, <뉴스메이커>의 <김대중 비자금 사건> 기사를 막을 충분한 여유가 있었는데 막질 않았다. 설마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 씨의 지인이 2006년 1월 이 씨를 찾아가 “다음 주에 <뉴스메이커>에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려 한다”고까지 알려줬지만 수수방관했다.

여덟째,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뉴욕 동포언론사가 한국 청와대, 국회, 미국 의회, 연방수사국을 상대로 취재하고 백악관 등지에 고발장을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질 못했다.

아홉째, 비자금을 갖고 동포경제에 피해를 줄 정도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해 동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실례로 당초 문모 씨가 보유했던 플러싱 쇼핑센터의 경우도 법정공시가격이 1천2백50만 달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경매를 통해 2천50만 달러에 매입했다.

열 번째, 비자금으로 친북단체들을 후원했으며 자신이 배포한 유인물에가 <북한은 내나라.우리가 돕자>며 친북사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는 동포사회 대다수가 보수우익인 구성원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이 씨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람들이 없었다”


일부 단체장들, 비자금인 줄 알면서도 이 씨에게 돈 뜯어가 …
돈 얻기 위해 “뉴스메이커 고소하라” 부추긴 단체장 등은 대오각성해야

이 씨의 몰락으로 인해 <김대중 비자금 뉴욕유입사건>은 어느 정도 막을 내리는 듯하다. 현재 비자금 상당액은 한국으로 다시 보내졌지만 어디에 쓰여 졌는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 팔리지 않은 뉴욕의 부동산에 대해선 앞으로 본지가 계속 추적해 볼 작정이다.

기자가 최근 만난 미국 수사기관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면서도 “왜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정치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대답한 후 입을 다물었다.

<김대중 비자금 뉴욕 유입사건>은 결국 애꿎은 피해자들만 남긴 채 종지부를 찍고 있다. 지금으로선 이 씨에게 돈을 상환 할 능력은 거의 없다. 그가 경제적으로 회생 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이 씨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비자금 관리하던 시절을 ‘한여름 밤의 꿈’으로 되새길 수 있겠지만 한인사회 일부 지도자들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가 돈을 펑펑 쓸 때 마치 ‘개떼처럼 달려들어’ - 김대중 비자금인 줄 알면서도 - 이 씨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돈을 뜯어간 지역한인회장 등 10여명의 동포단체장들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

또한 이 씨 편을 들며 “기사를 그만 쓰라”고 압력을 가한 P 권익단체장(이 씨에게 돈을 투자한 인물), L 한인회장(이 씨와 동향이란 이유)과 이 씨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뉴스메이커를 고소하라”고 부추긴 L 직능단체장 등은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 취재도 안 해 보고 무조건 이 씨 편을 들던 B 인터넷 신문 등의 친북좌파 언론과 지금도 이글을 본 후 “이번 사건은 임종규 기자의 소설”로 몰아붙일 한국의 J, M 씨 등 ‘친 김대중 계열’ 기자들은 앞으로 사회가 강력히 경계해야 할 인물들이다.
 
- ▲ 이 씨가 건물주로 되어 있는 플러싱의 한 쇼핑센터. 이 건물은 앞으로 경매에 붙여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정의는 반드시 승리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했으며 김대중 정권 사람들이 어느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불법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알면서도 덮어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수사를 안 하고 있는 한국검찰에게는 실망이 클 뿐이다.

ㅁ 임종규= <뉴스메이커> 선임기자

출처 : 인사이드월드
임종규= <뉴스메이커> 선임기자 nabucomaster@gmail.com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大佛總 ), 전재 및 재배포 허용>

PC버전으로 보기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25길 37 (양재동) 양촌빌딩 2층 전화 : 02) 2265-0570 / 팩스 : 02) 2265-0571 / E-mail : sblee2k@hanmail.net Copyright NaBuCo.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