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은 재벌들이 아닌 촛불민중과 전국에 민중이 신명나게 살만한 세상으로 변혁 시켜달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19대 대통령으로 선택해주었다. 文대통령은 정권 초기에 제백사(除百事)하고, 우선적으로 민중들의 민생을 위해 민중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악법폐지에 총력해야 했다. 그런데 文정부는 과거에 대한 한풀이같은 적폐청산에만 총력해보인다. 그것은 대통령으로 선택해준 민중을 정면 배신하는 행위이다. 대다수 국민은 민생없는 적폐청산에 나날히 분노가 가중되고 있다. 연속 혁명같은 민중봉기는 다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과거 대한민국에 붉은 완장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악을 쓰며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자들이 인민위원회를 열어 단죄하던 모습이 적폐청산에 “오버 랩” 된다. 민중이 그토록 바라는 정치가 그러한 정치였을까? 작금에 TV 등에서 한국 검찰의 수장은 강력하게 추진되는 적폐청산은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국민에 과시하고, 수사를 가급적 오래끌지 않겠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강변의 인터뷰를 하였다. 그것은 지켜보는 민중들은 기립박수의 지지를 표할까? 또 하나의 권부의 충견 세퍼드를 연상하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법부의 검찰과 법원의 재판에 대하여 이제야 정면으로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저항의 반론을 발표하며, 자신의 변호사들을 사임하게 하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각오라고 하겠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사법부는 제왕적 대통령의 상명하복(上命下服) 속성을 환히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이 작금의 재판부에서 무죄의 선처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을 뿐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과거나 현재나 제왕적 권력의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보비위하는 재판을 해온 것같다는 항간의 지배적인 의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보복에 결사항전하는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장의 근거로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판결을 하려는 직전의 판사에게 청와대든 정보부든 권부에서 형량을 요구하는 부전지(附箋紙)가 주어지면, 입으로는 사법정의를 고집하는 판사도 지위보전과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서 만부득히 “이미 작성한 판결문을 휴지통에 버리고 요구에 부응하는 판결문을 다시 써 판결해야 했다”고 회고록으로 고백하는 판사는 있었다. 예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 때, 조봉암 정치인에 사형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
50년 전의 조계종은 돈 쓰는 부정 선거판이 없었다. 무소유속에 청정한 수행자를 확인한 후 종정, 총무원장, 원로의장, 원로의원, 본사주지, 종회의원, 동대이사장 등을 추대하거나 임명하였다. 따라서 조계종은 감투 때문에 승려들이 분쟁할 일이 없었다. 청정한 수행자가 존중받는 시대였다. 은처승(隱妻僧)이 돈 싸들고 감투욕심을 낼 수는 더욱 없었다. 조계종의 부처님의 계율속에 불교정의가 강물처럼 흘렀다. 일제 36년의 한국불교는 공식적으로 일본식으로 대처승(帶妻僧)이 되어야 불교 감투를 쓸 수 있었다. 계행이 청정한 한국 전통불교의 비구승은 감투를 쓸 수 없었다. 불교종단의 감투를 쓰려면 “일제불교를 본 받는다” 취지에서 대처승이 되어야 한다는 조선 총독부의 지엄한 지침이 있었다. 예컨대 일제 시 시승(詩僧)이요, 지금은 독립운동가로 대우를 받는 유명한 한용운(韓龍雲)도 부인을 둘이나 거느리는 대처승이었다. 큰 부인에게는 아들을, 나이 젊은 둘째 부인에게는 딸을 낳게 하였다. 한용운의 처신은 이상했다. 조선독립운동을 하면서 다른 면은 자신의 저술인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에서는 조선총독에게 상소(上疏)같은 건의서를 올렸다. 건의서에서 한용운은 통감부령(統監
2016년에 시작된 촛불 민심의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 시켰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붛 민심의 대부분은 한국사회의 변혁을 갈망하는 민중들이었다. 민중들의 갈망은 무엇이었을까. 민중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작금의 文대통령은 민중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변혁의 정치를 하고 있을까? 아니다. 부지기수의 많은 민중들의 여론은 文대통령이 펼치고 있는 정치에 실망과 의혹과 개탄을 토해내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소리인 것이다. 한국의 수도의 한복판 광화문 광장과 전국 주요 도시, 저 흑산도에서 까지 민중의 횃불 봉기같은 촛불시위는 무엇에 저항하며 변혁을 바라며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한국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으로 오직 국민들을 위한 정치, 특히 경제난에 수심이 가득한 민중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지 않고, 너무도 개인적이고 동패들만의 부정한 검은 돈 먹기의 주역 노릇을 하였기에 민중들은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충천하듯 하여 한국사에 유일하게 임기중의 대통령을 축출한 것이었다. 그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여망속에 오매불망 대통령의 감투를 원하며 거리 투쟁하던 문재인은 대통령의 소원을 아루었다.
금년의 추석 연휴는 유례없이 길어서 황금연휴라고 한다. 이번 추석은 조상숭배의 예의를 마친 후 친지들과 모여 즐거운 놀이판도 좋지만, 한국정치의 현안문제 가운데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도 바람직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토론해야 할 주제는 좌파 대통령이 집권하면 으레 등장하는 “전시작전권환수”에 대해서다. 19대 文대통령 시대에 와서 더욱 노골적으로 국군 대량 감군(減軍)과 전시작전권 환수는 추진되는 듯 하다. 전시작전권은 한국에 언제 왜 생겼나?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은 소-중-북의 동맹군의 전쟁인 6,25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없었으면 생기지 않았다. 중-소-북의 동맹군의 6,25 전쟁 기습 공세에는 한국군 혼자서는 도저히 맞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만약 한국군 혼자 작전하고 대응 하였다면 6,25 전쟁 때 대한민국은 공산군에 의해 패망하였을 것이다. 패망하지 않은 것은 미군이 전시작전권으로 유엔군을 지휘하여 전쟁을 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보전할 수 있었다. 미군이 행사하는 전시작전권에 대하여 두 가지 전해오는 설이 있다. 첫째, 6.25전쟁 중 일부 한국군은 북의 인민군을 대하면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생각에 전쟁을 피하여 무기를 버리고 패
文대통령 취임이 100일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여론조사의 발표는 물론 항간의 여론에서는 벌써 文대통령의 지지도의 민심은 물거품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특히 文대통령을 만든 한국 대다수 민중들은 북핵에 대한 안보나, 민생에 대해서 더 이상 文대통령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것같다. 왜 그런가? 지구촌의 민중들의 반란과 혁명은 민중이 억압받는 세상이 아닌 자유, 평등, 인권,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왔다. 민중들은 민중의 신명나는 세상, 유토피아를 위해 끝없이 세상의 변혁을 위해 더욱 저항하고 투쟁해 갈 것이다. 한국, 2016년의 촛불시위의 핵심은 재벌이 아닌 민중들이 주체였다. 민중들은 보다 나은 한국정치, 억압받는 민중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는 한국을 꿈꾸었다. 하지만 19대 文대통령과 그의 청와대 참모들은 일심동체이듯 스스로 민심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치보복같은 적폐청산에만 총력하는 것같다. 검찰은 여전히 대통령의 명령에 충실한 충견 세퍼드와 같은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文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경선 후보자 가운데는 볼 수 없는 야비한 정치를 했다는 항간의 논평이다. 그는 18대 대선에서 낙마한 후부터 18대 대선 당선자인 박근혜 대통령에
1950년 6월 25 새벽, 김일성의 군대인 인민군은 남북군사분계선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기습 남침하였다. 김일성을 선봉장으로 내세운 자들은 중공의 마오쩌둥이요,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이 세 악한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는 속셈은 각기 달랐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자들을 이용하여 한반도에 김씨 왕조를 세우는 것이요, 중-소는 공산제국을 만들기 위해 우선 미군을 김일성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미군을 내쫓아 주기를 바라는 흉계였다. 아직도 중-러는 미군을 동북아에 내쫓는 선봉장으로 북의 김씨 왕조를 이용하려 혈안이 되어 보인다. 6,25 전쟁 개전당시 당시 주한미군은 무슨 속셈인지, 대부분 한국을 떠났고, 당시 국무장관 애치슨은 “한국은 미군의 방어선에서 제외된 것” 같은 공식 발언을 하여 국제적 이목을 모왔다. 그 말을 중-러-북은 확신하고 “얼씨구나 좋다” 6,25 전쟁개시를 한 것이다. 그것은 오판이었다. 북의 인민군이 38선을 돌파 하였다는 보고를 자다가 받은 당시 美 트루먼 대통령은 불같이 화를 내고 중-러-북에 욕설을 퍼붓고, 동경에 있는 맥아더 장군에 인민군의 퇴치 명령을 긴급히 내렸다. 마침내 미국은 한국을 떠난 것처럼 보이던 미군은 중-러-북이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