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연설
대불총이 실시하는 <금산의총의 승군 역사 재조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열리게 된 것을 충심으로 경하합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승군들의 실체를 구명하고, 현재 <700의총>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홍보책자의 표현은 승군을 포함한 <1500의총>이어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뜻 깊은 모임이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은 잘못된 국가관을 바로잡고, 후세들에게 건전한 안보의식을 심어주는 중요한 불교단체입니다. 2009년에도 의미 있는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고, 이번에 또 주목할 만한 모임을 주선하였습니다. 박희도 회장님을 비롯하여 이석복 연구원장님, 강영근 실장님 등 관계자들에게 충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또 오늘 발표를 맡은 김덕수 법사님, 토론에 참석하신 분들께도 노고를 치하하는 바입니다.
흔히 승군 하면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연상하겠지만, 사실 그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해인사의 정중탑(庭中塔) 해체 공사 시에 승군 조직을 언급한 기록이 발견된 바 있습니다. 신라 하대에 이르러 중앙정부의 힘이 미약해진 틈을 타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지자 심산유곡의 스님들이 자구책으로 승군을 조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을 거치면서 승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국가의 위난을 당했을 때는 목탁 대신 창검을 들고 전쟁터에 나섰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서민들의 삶이 위협받을 때면 구휼, 도시재건사업 등 각종 공사에도 동참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의승군 활약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병자호란 직후에 남한산성을 복원한 이들 또한 벽암 문하의 스님들이었습니다.
불살생을 추구하는 신성한 승가에서 전쟁에 나서는 일이 합당한 가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무조건 자비만을 되뇌이는 나이브한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보살의 기개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사현정 破邪顯正」의 이념 때문입니다. 『약사경』에서는 불가피하게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정황을 ① 외적의 침입 ② 도적의 창궐 ③ 호국 ․ 호법의 기개 등으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즉 의승군의 이념은 원적의 노략질을 막고 중생들의 삶을 보전하며, 불도를 완성하는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멀리는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서부터 이 상황윤리는 충실히 이행되어 왔고, 한국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이 땅에서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전쟁의 하나였습니다. 관군은 곳곳에서 패하고, 민심마저 흉흉한 풍전등화의 위기였습니다. 전쟁 발발 3개월 후에 이순신 장군의 승전보가 전해지고, 곧이어 명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닫습니다. 이 때 승군의 가세는 국운을 바꿔 놓은 쾌거였습니다. 특히 당시의 승려 신분이 사회의 최하층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조선초기부터 자행된 억불숭유의 정책은 제도적으로도 불교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승려의 도성 출입금지, 도첩제 폐지 등의 정책으로 승려들은 사회의 가장 비천한 계층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즉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천민층으로 전락한 승려 그룹이 목숨을 바쳐 궐기한 사건은 단순한 호국의 차원만이 아닙니다. 불교의 이상인 호법의 실천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서산대사가 의승군의 궐기를 촉구한 선언문은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있을 수 있음은 나라 때문이다. 이제 사미(어린 스님)나 늙고 병든 스님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궐기하라.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스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원적의 노략질에서 벗어남을 기원하라.‘
그러나 의승군의 활약상은 여전히 축소되고 있거나 도외시 되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인 금산 전투를 보더라도, 전투 당시의 병력을 의병 7백 명, 승병 수백 명이라고 기록하고도 승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7백의총의 기념관에 전시된 그림이나 소개책자 등에도 당연히 승군 관련의 언급과 소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이번 세미나의 발표와 토론을 통해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그에 근거한 시정조치들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촉구합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일 뿐 아니라, 미래를 조명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그릇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일은 미래의 희망을 가꾸는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명언이 있지만 적어도 과오의 흔적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일이야말로 참다운 용기이며, 지식인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 당국의 후속조치를 주시합니다.
2012. 12. 6
금강대학교 총장 정 병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