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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론자 : 김의환 교수

  • No : 69610
  • 작성자 : 편집자
  • 작성일 : 2012-12-09 11:25:48
  • 조회수 : 2122
  • 추천수 : 1

「영규대사와 8백의승군」토론문

김 의 환(충북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

* 이 글은 임진왜란 때 승군으로 활동한 靈圭大師와 8백 義僧軍에 대한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발표자가 서언에서 밝히고 있듯이 당시 僧軍이 淸州城 전투와 錦山 延昆坪 전투에서 활약하다가 순절하였지만, 趙憲의 의병군은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승군은 이와 달리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아래 7백 의총에 ‘8백 의승탑’을 건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토론자는 이 글이 발표자의 원래 의도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점을 언급하면서 토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1. 우선 목차의 구성 문제이다. 1장은 영규대사와 팔백의승군이고, 2장은 기허당 영규대사와 8백의승군으로 같게 구성되었다. 발표자가 밝힌 의도대로 내용을 서술하려고 한다면, 당시 영규대사를 비롯한 승군의 활동을 중심으로 역사적 내용을 재구성하는 형태로 목차를 설정한 후 내용도 이와 부합되게 서술할 필요가 있겠다.

2. 발표자는 서언에서 조선시대 불교의 말살과 탄압 상소가 10만 건이 넘는다면서 11가지를 대표적인 예로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당시 정책과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적 근거와 성격을 제대로 드러내고자 한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하는 것보다 먼저 정확한 자료의 나열과 전거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사료 역시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은 이 글 전체의 내용에서 계속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글의 내용이 발표자의 생각인지 자료의 해석인지 구분이 불명확하게 서술함으로써 글의 이해와 신뢰성에 문제가 되고 있다. 따라서 먼저 사료를 정확히 나열(해석)한 후 이를 논리의 전개와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인용한 사료는 모두 반드시 명확하게 전거를 밝히고, 기존의 연구성과(이석린, 곽호제 등) 역시 밝히면서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영규대사와 의승군의 활동 문제이다. 1592년 8월 15일 조헌과 영규대사의 승병은 儒城에서 합류하여 금산으로 진격한 후 8월 18일 금산 延昆坪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였다고 한다. 의승군이 참여한 당시의 전투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실정이고, 그 규모 역시 수백 명(趙寅永,『朝鮮佛敎通史』「騎虛堂靈圭大師殉義碑銘」), 300명 혹은 800명(『宣祖實錄』권29, 宣祖 25년 8월 癸丑), 충청 義僧 2천여 명과 조헌의병군 1,800명(吳希文,『瑣尾錄』壬辰日錄 8월 22일) 등 다양하다.

이 글의 취지를 제대로 드러내려고 한다면, 다양한 사료에 입각하여 이들의 활동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부분이 제대로 해명되었을 때에만 앞으로 의승군의 활동은 물론 ‘8백 의승탑’ 문제 등 다른 논의가 한 걸음 더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당위성만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고, 자료의 이용과 논리 전개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두 조사하여 연곤평 전투 과정에서 활동상과 그 후의 동향 등 다양한 모습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밝혀질 때 발표자의 의도 역시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어떤 승려가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면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이다’ 라고 하고, 그 무리를 모아 지팡이를 들고 왜적을 쳤다고 합니다. ...... 靈圭라는 자가 있어 3백여 명을 불러 모아 ‘우리들이 일어난 것은 조정의 명령이 있어서가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나의 군대에 들어오지 말라’ 하니, 승려들이 다투어 스스로 앞장서서 모여 거의 8백여 명이 이르렀는데, 趙憲과 함께 군사를 합쳐 淸州를 함락시킨 자가 바로 이 승려라고 합니다.”(『선조실록』권29, 선조 25년 8월 계축). 이 외에는 오희문의『瑣尾錄』(임진일록 8월 22일)과 『大東野乘』의「亂中雜錄」(선조임진 25년 8월 27일)이 있다.

4. 조선시대 불교 정책의 내용과 성격을 이해하고 승군의 활동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보다 불교와 관련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불교 관련 ‘자료집’을 발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조선 전․후기의 불교정책, 임진왜란 시기 승군의존재와 금산전투의 구체적 양상, 성곽의 수축․보수에서 승려의 역할과 사찰의 성격, 왕실과 비보사찰 문제 등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면을 규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와 함께 당시 왜군이 기록한 자료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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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