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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통령 李承晩의 피말리는 3년세월

  • No : 69050
  • 작성자 : 華山
  • 작성일 : 2008-08-29 10:32:06

 
 
[역사는 때로 돌연, 한 사람의 인물 속에 자신을 응축하고 세계는 그 뒤 이 인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편과 특수, 動態와 靜態가 그의 인격에 집약되어 있는 위인들은  국가나 종교나 문화나 사회의 위기를 체험하는 존재다.
 
위기에 처해서는 낡은 것과 새 것이 교차하여 하나가 되고 위대한 개인 속에서 정점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이들 위인들의 존재야말로 세계사의 수수께끼다]
 
브루크하르트는 저서 [세계사의 고찰}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대한민국 60년사가 어떻게 시작되고 전개되어 왔는가?
우리들은 정영 역사의 방관자는 아니었는가?
 
건국 60주년을 맞아 지난 15일 거행된 공식기념식은 일부 정파가 거부했을뿐만 아니라 진정 기려야할 60년 전 건국과정을 되새기는 경과보고나 과거 위인에 대한 감사의 념 한마디 없이 행사 위주의 전시효과만 노린 겉치레로 끝났다.
 
그야말로 역사방관자들의 소행이 아닐 수없다.
 
부르크하르트의 말대로 [위기에 처해서 낡은 것과 새 것이 교차하여 하나가 되고 위대한 개인 속에서 정점에 도달한] 역사 전환점의 위기를 누구의 炯眼으로 극복하게 했는지를 모르는 국민이라면 그들 모두가 역사의 방관자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역사의 질책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지금이라도 나부터 역사공부 좀 해야한다.
 
건국의 아버지 雩南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의 역사인식이 국민에 뿌리내리기가 왜 이렇게 어려웠는가를 뒤늦게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이승반은 우리시대의 영웅이었을뿐만 아니라 선각자였다.
30여년의 망명생활 끝에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기가 왜 그렇게도 어려웠는지부터 살피고 그 이전은 차치하고 해방정국 3년간 어떠한 고초를 겪으며 우리의 자주독립을 이루어냈는지를 잠시나마 한번 더듬어 보아야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이승만, 그의 생애를 모르고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알 까닭이 없기때문이다.
 
선각자 이승만은 국가 존망이 풍전등화 같던 식민제국시절, 벌써 20대에 무능한 왕권통치를 폐하고 입헌군주정만이 자주독립국가로  유지되는 길이라며 독립협회의 일원으로 국가개조를 외치다 무기형을 선고 받고 옥중에서 유명한 [독립정신]이라는 저술을 낸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서재필 등 선각자들과 함께 노력했으나 국가개조에 실패하고 일본 식민통치 하에 들어간 조국을 등지고 다시 미국 망명길에 오른 이승만의 독립운동은 오직 합리적 외교활동만이 해결의 열쇠라보고 일관되게 열강들을 상대로 설득외교에 의존해 왔다.
 
미국에 대하여 무기대여법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적용하여 참전용 무기를 달라고 성화같이 졸랐으나 교전국 일본을 의식한 미국은 끝내 이를 거절하고 말았다. 여기서 보듯이 이승만은 무력 사용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세계정세가 그걸 용납할만큼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외교적 노력에 일관할 수밖에 없어던 것이다.
 
좌익들은 미국이 이승만을 앞세워 남조선에 먼저 분단 국가를 세웠다고 억지를 쓰고
있으나 그런 이승만이 1945년 귀국하는 것을 미국은 왜 그토록 못마땅히 여겨 여권 발급을 미루었던가?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한반도는 막말로 먼저 먹는 놈이 임자였을만큼 무주공산이 되었다. 여기서 영토야욕이 없는 미국과 19세기 이래 한반도진출을 꾀해온 소련의 한반도관은 바다와 육지만큼이나 달랐다. 독립이 늦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온건한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소련의 급진팽창주의 이념의 충돌은 필시 3차대전의 전주가 된다고 본 미국은 염전사상에 젖어 있던 미국인들로 하여금 한반도를 호시탐탐 노리는 소련에 명예롭게 양보한다는 명분으로 신탁통치안에 양국이 합의하였던 것이다.
 
모스크바협정이라 불리는 한반도신탁통치안은 당사국 한국내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딛쳤고 시간 끌기로 맞선 미-소 양국은 결국 남북에 각각 분단국가수립으로 전후처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낙착했다.
 
미군정장관 하지는 끝내 이승만을 배척하고 呂運亨과 손잡았던 金奎植을 내세워 신탁통치하 좌우합작임시정부를 세우려 모색했으나 이승만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관찰한 그는 이승만의 가택연금을 풀어 주었다.
 
1947년 하반, 역시 좌우연합정부로 출발한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이 스탈린 지배하의 소련 위성국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여실히 본 와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은 극동정책에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전후처리 최하위순에 있던 한반도 문제를 국제연합에 이관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의 직접대결을 피하고싶었던 것이다.
 
1947년 10월 유엔에 의해 한반도에서 실시할 총선감시 임시위원단 결성안이 가결되어 호주 캐나다 프랑스 인도 시리아 중국 필리핀 우크라이나 그리고 엘살바도르 대표가 선정되고 1948년 5월 10일 선거일이 확정 되었다.
 
아는 바와 같이 감시위원단은 소련의 입북 불허로 남한에서만의 선거를 치르고 대한민국 제헌의회를 구성, 자주독립국가 탄생의 첫 발을 내딛게된 것이다.
 
여기 오기까지 이승만과 하지 그리고 미 국무부 청책입안자들 간의 마찰 갈등 특히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이라는 점령군 사령관으로서의 하지와 좌우연합 절대불가를 관철한 이승만 간에 겪은 불화 비방 격멸, 연금까지 당하면서 독립의 기회를 잃을지 모른다는 초조 그리고 외화내빈의 생활고는 이승만에 있어 필설로 다할 수없는 피말리는 3년 세월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은 두 말하면 잔소리, 거기에 바쳐진 위대한 민족 지도자 이숭만 건국대통령의 위상이 지금까지 얼마나 깎겨 왔는가 우리는 4.19 이후 모른척하고 살아왔다.
 
나는 그의 위대함을 Robert T. Oliver 저, 그의 친구 朴日泳 역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 578쪽에 달하는 대작에서 낱낱이 들여다 보았다.
 
 끝으로 의식 있는 독자들 일독을 권하면서.....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8.28. 안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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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