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후면 63번 째 광복의 달이 돌아 옵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가사 첫 머리가 이렇게 시작되죠.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흐르는 韓滿 국경의 물길.....
일제 식민지 지배의 희생이 되어 유랑길에 오른 수 없는 조선인이나 혹은 항일독립 무장투쟁에 뜻을 품은 애국지사들이 만감을 가슴에 품고 건너간 민족의 한을 담은 국경의 강입니다.
1930년대 중반 어느 여름날 만주 일대의 순회공연을 하고 온 극단 예원좌(藝苑座)가 두만강 유역의 도문(圖們)에서 공연을 마치고 여관에 들었습니다. 극단원 중 이시우라는 젊은 음악도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순회공연에 지쳐 곤히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이시우는 갑자기 옆방에서 들려 오는 여인의 오열에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시우는 너무도 슬피 우는 여인의 흐느낌소리에 밤을 꼬박 새우고 날이 밝자 여관보이에게 혹시나하고 그 사연을 물었습니다.
여관보이의 말이
"독립군에 참전하기 위해 출정한 남편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두만강을 건너 왔으나 남편이 이미 전사했음을 알고 저토록 며칠밤을 울어 샌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악도 이시우는 두만강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 여인의 사연을 떠올리고는 생각에 잡겼습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두만강 푸른 물에...."의 가사였습니다. 국경을 흐르는 큰 강물이 푸르다고는 볼 수없었으나 노래 가사는 푸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눈물 젖은 두망강]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이 노래는 그날 밤무대의 막간에서 장성월이라는 소녀가수에 의해 처음 불리어졌습니다. 장내는 환호성이 터져나오고 몇 번의 앵코르를 받으며 공연장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눈물바다로 변했다고 합니다.
노래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1.......................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실고
떠나든 그 배는 어디로 갔소
(후렴)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 (후렴)
3. 님 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그 님이 보고싶고나 (후렴)
청진 나진 원산 등 함경도 동해안 순회공연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시우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히트곡으로 만들기 위해 '뉴코리아 레코드'에 함께 있던 金貞九를 찾아가 의론했습니다. 무명작가 이시우의 곡을 朴是春에게 보이고 레코드화의 주선을 부탁했습니다.
이시우의 작사는 1절뿐이었기 때문에 김정구는 C.M.C.밴드의 트럼본 주자이며 작사자인 金容浩에게 가사 2 3절을 지어 받았습니다.
이렇게해서 [눈물 젖은 두만강]은 박시춘 편곡, 김정구 노래로 녹음되어 1938년 2월 신보로 O.K.에서 발매되었습니다. 대 히트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당시 뜻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민족적 서름을 달래는 약효는 컸었습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은 이를 감지한 일제 총독부에 의해 금지곡으로 되었다가 해방 후 다시 부르게 되었고 6.25전란 후 60년대에 이르러 KBS의 대북방송 반공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테마곡이 되면서 차라리 국민곡이라 할만큼 남녀노소가 열창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오늘날과 같은 이념갈등은 없었습니다.
걸핏하면 독도가 제 땅이라고 우겨대는 일본이 요새 우리의 아픈 사연을 또 건드리고 있습니다.
36년 恨도 모자라 반도의 허리는 잘린채 북한 땅 동포들은 붉은 압제와 굶줄임에 못이겨 다시 두만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정말로 두만강은 민족의 슬픈 눈물의 강인지 모릅니다.
내가 하필이면 이 슬픈 사연을 안은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을 처음 안 것은 일제시 아직 국민학교도 가기 전인 것으로 화실히 기억합니다. 저녁이면 동네 청년들이 우리집 건넌방에 몰려와 유성기를 틀어 놓고 열심히 노래를 따라 배우던 장면이 지금도 빛바랜 사진으로 시야에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따라 수 없이 많은 명곡을 남긴 작고가 박시춘과 KBS에서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열창하던 김정구의 모습도 선합니다. 모두들 수 년 전 작고했죠. 가수 김정구는 말년에 미국 이민가서 치매증에 시달리며 죽는 날까지도 "얘들아 오늘 방송출연해야 하는데 와이셔츠 대려라"며 시구들을 슬프게 했다고 합니다.
기회 있으면 다른 '흘러간 노래' 이야기도 해 볼까 합니다. 과거를 함께 추억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