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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사악한 전교조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위하여

http://cafe.naver.com/antiedu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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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악한 전교조
슬로건 :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위하여



"9평 중국공산당"에 나오는 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공산당은 독재적이고 배타적이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성심성의로 지낸 적이 없으며 어떠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고 어떠한 약속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교훈이라면 만약 누가 어떤 문제에서 공산당을 믿었다면 그는 바로 그 문제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다 읽을 때 까지

학생, 학부모, 국민이 전교조를 해체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전교조의 해악 - 정체 - 전략·전술 - 목적을
정확히 - 쉽게 - 많이 - 빨리 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쉽게 할 수가 있는 활동은
첫째 - http://cafe.naver.com/antieduhope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위하여)
이곳의 카페를 많은 분께 홍보를 하는 것이며
둘째 - 이화일(사악한 전교조)을 멜로 다른 분께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 읽어보시고 많은 분께 홍보를 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하셔도 매우 대단히 애국행동을 하는 것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사악(邪惡)한 전교조 - 글을 쓰면서

전교조를 연구·분석한 계기는 교원평가문제로 홈페이지에 방문을 하였다가 전교조노동자의 궤변(怪變)과 해악(害惡)을 알게 되었으며 알고 있던 조합원이 평소에는 아주 정상적(正常的)이지만 전교조와 관해서는 아주 비정상적(非正常的)인 말과 행동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연구·분석을 하게 되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10년 동안 보통의 사람을 전교조식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였다. 이 같은 굉장한 괴리(乖離)가 왜? 생기게 되었으며 무엇이 문제인지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괴리(乖離)가 곧 수수께끼였으며 이것의 원인을 풀지 못하면 전교조를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할 것이며, 오판(誤判)을 하게 될 것이다.

전교조를 평가 하는데 있어서 스펙트럼하게 논쟁 중에 있다. 전교조를 잘 알고 있는 세력은 이적단체로, 전교조와 연대한 민중(인민)세력은 참교육으로, 일부는 판단을 오판하거나 보류하고 있다. 전교조에 관한 인식의 차이는 지식수준과 역학관계의 이해와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교육인, 언론인, 법률인, 지식인, 정치인도 정확한 원리에 근거하지 못하고 오판을 하고 있다 하물며 일반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체계적으로 분석을 하여 종지부를 찍고 싶을 뿐이다. 지식의 넓이가 우선되고 깊이가 필요하며 상호역학관계의 이해가 핵심이며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전교조 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주의이며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정치로 마감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1848년의 공산당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으며 유태인과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으로는 소련·유럽·중국·일본·미국·한국 등 모두 역학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상과 이념, 조직 등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또한 공산주의 이론의 해석과 적용, 사이비종교, 특수공동체, 세뇌 등 또 마르크스·이승만·박정희 ·김일성·김정일·모택동·김대중·노무현 등 모든 면에서 빠트릴 수가 없다. 전교조를 정확히 이해를 하려면 많은 정보와 자료를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계역사와 국내역사의 관계, 인간심리학, 조직체계 등 다방면의 지식과 시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피라미드 같은 방추형(정사각뿔)의 바둑판과 같은 사실과 지식의 연결고리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원리를 분석을 할 수가 있어야만 피라미드의 진실을 정확히 말을 할 수가 있다. 단편적인 진실과 주관적인 해석은 한쪽만을 보는 오판을 하게 될 것이다.

전교조 연구·분석은 곧 좌익의 연구·분석이며 다만, 전교조를 중심으로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단편적인 지식과 구체적인 이해력 없이 전교조를 보고 있으며 또한 국민 대부분이 그러한 원리를 모르고 있는 것이 현상이다. 전교조를 알리는데 있어서 원리를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결론은 전교조조합원은 김정일 꼭두각시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주요 분석 내용으로는 1.마르크스-레닌주의와 모택동주의, 2.유대교와 기독교, 3.조직과 역사, 4.규정·규약해설, 5.민주집중제, 6.계급성과 대중성, 7.자유민주와 공산민주, 8.민중의 구체적인 뜻, 9.남녀평등과 평등의 구분, 10.중국공산당, 11.거짓명분, 12.특수동공체, 13.사이비종교, 14.세뇌, 15.과거 운동권학생, 16.연대세력, 17.정치세력화, 18.문화대혁명, 19. 주체사상과 선군사상, 20.북한의 4대 군사노선이 대한민국에 적용된 방법 등 이다. 또한 반드시 증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역학관계와 특별한 바탕이 없으면 전교조와 좌익의 전략·전술을 이해하는데 오판할 것이다. 또한 해체하는데 있어서 법과 함께 논리와 증거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총 5부로 나누어 설명을 하였다. 1부는 (사악한 전교조)-공산이론과 전교조, 2부는 (사악한 전교조)-전교조 활동과 좌익, 3부는 (빨갱이 전교조)-민노총과 전교조의 자료, 4부는 (해체 전교조)-학생, 전교조노동자, 일반교사, 학부모, 국민의 소리, 5부는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으로 나누어 실증적인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설명 하였으며 "사악한 빨갱이 해체하여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염원(念願)하였다.

이집트의 전설인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수수께끼를 푸는 자만 살려주었다고 한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같은 이치이다. 전교조를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것과 같이 많은 정보를 정리·정돈하였으며 역학 관계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였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수수께끼를 푸는 자만이 전교조를 정확히 판단을 할 것이다. 전교조를 자료적, 심리적, 논리적, 역사적 등으로 풀기를 바라며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스핑크스 수수께끼"라고 말하고 싶다.

전교조를 평가함에 있어서 수많은 연결고리의 지식과 역관관계를 깨닫지 못한다면 반드시 악(惡) 하거나 선(善) 하거나의 답은 오판일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란 무엇인가? 의 질문에 지금까지 연구·분석을 한 개인적인 판단은 "빨갱이 전교조는 사악하다."가 최종결론이다. 추가설명을 한다면 "세뇌된 사이비 이적 집단"이다.

목적(目的)은 "북한의 4대 군사노선"으로 집중(集中)되며 "연방제 통일"과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바탕이 된 김일성이 주장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을 통일이라는 말로 적화(赤化)시키려는 이적(利敵) 집단으로 집약(集約)된다. 실천연대는 촛불반역행위에서 소위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건설에 나설 것" 을 밝히고 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김정일 통일수령만들기"로 작정한 친북맹종세력이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부르는 것이며 사악(邪惡)은 간사(奸詐)하고 악함을 뜻하는 것으로 교활(狡猾)하게 거짓으로 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고 양심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판단은 각자의 못이지만 수수께끼를 풀면 전교조는 교육과 국가에 해악(害惡)이자 이적(利敵)이며 "빨갱이", "기만(欺瞞)", "사이비(似而非)", "세뇌(洗腦)"와 함께 "사악(邪惡)"이란 말이 가장 명확(明確)한 정답(正答)이다.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을 위하여 국민여러분께 글을 올립니다."












목차입니다.

1부는 (사악한 전교조), 01편부터 24편까지 / 공산주의 이론과 전교조의 이념, 사상, 조직 등 입니다.
전교조의 조직, 약사, 목적과 수단과 방법 등 공산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전교조와 좌익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내용으로 집약되었습니다.

1부
사악한 전교조 (1편) - 조직과 체계에 대하여
사악한 전교조 (2편) - 뿌리를 찾아서
사악한 전교조 (3편) -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사악한 전교조 (4편) - 선언문, 규약, 규정 및 해설
사악한 전교조 (5편) - 규정·규약 해설
사악한 전교조 (6편) - 민주집중제
사악한 전교조 (7편) - 계급성과 대중성
사악한 전교조 (8편) - 자유민주와 공산민주
사악한 전교조 (9편) - 민중의 뜻
사악한 전교조 (10편) - 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이유
사악한 전교조 (11편) - 공산주의 양성평등과 좌익 페미니스트
사악한 전교조 (12편) - 양날의 수레바퀴란?
사악한 전교조 (13편) - 거짓 명분
사악한 전교조 (14편) - 좌익의 욕 문화
사악한 전교조 (15편) - 중국공산당
사악한 전교조 (16편) - 전교조는 사악하다
사악한 전교조 (17편) - 특수공동체
사악한 전교조 (18편) - 특수공동체 에필로그
사악한 전교조 (19편) - 사이비종교와 사이비전교조
사악한 전교조 (20편) - 전교조는 세뇌한다
사악한 전교조 (21편) - 교사와 노동자를 보면서
사악한 전교조 (22편) - 빨간완장 활동가
사악한 전교조 (23편) - 가짜 참교육의 정체
사악한 전교조 (24편) - 김정일 통일수령 만들기.

2부는 (사악한 전교조), 25편부터 61편까지 / 전교조 활동과 주장 그리고 좌익들의 내용입니다.
전교조주장이 궤변이며 그러한 해악이 어떻게 작용되고 주장에 대한 반론과 전교조의 해악에 대하여 알리고자 함입니다. 또한 좌익과 전교조에 대한 공산주의이론에 근거하여 설명을 하며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2부
사악한 전교조 (25편) - 전교조는 기차와 같습니다
사악한 전교조 (26편) - 전교조가 참교육을 한 것이 무엇인가?
사악한 전교조 (27편) - 교육의 주체는 학생이다.
사악한 전교조 (28편) -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사악한 전교조 (29편) - 교사파업권은 악이다
사악한 전교조 (30편) - 전교조가 떨어뜨린 교권
사악한 전교조 (31편) - 교권이란?
사악한 전교조 (32편) - 기회주의적 교사를 키운다.
사악한 전교조 (33편) - 천박한 자본주의?
사악한 전교조 (34편) - 전교조의 학교 행사
사악한 전교조 (35편) - 잡무에 대하여
사악한 전교조 (36편) - 전교조가 살아남게 되는 이유
사악한 전교조 (37편) - 조온마난색기(趙溫馬亂色期)
사악한 전교조 (38편) - 홍위병과 작은 전교조
사악한 전교조 (39편) - 전교조는 한곳으로 모이고 있다
사악한 전교조 (40편) - 단체 협약안
사악한 전교조 (41편) - 일반교사도 전교조화 되고 있다
사악한 전교조 (42편) - 교장 보직제
사악한 전교조 (43편) - 반납투쟁
사악한 전교조 (44편) - 조합원 포섭하기
사악한 전교조 (45편) - 꼭두각시 조합원
사악한 전교조 (46편) - 전교조가 무서워하는 것은?
사악한 전교조 (47편) - 다원주의의 오판
사악한 전교조 (48편) - 진정한 평준화와 거짓 평준화
사악한 전교조 (49편) - 주사파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사악한 전교조 (50편) - 386운동권과 전교조
사악한 전교조 (51편) - 전교조, 좌익의 오류
사악한 전교조 (52편) - 좌익이 극우라고 들이대는 이유는?
사악한 전교조 (53편) - 선동의 최악은 분신이다
사악한 전교조 (54편) - 민중민주주의 인물 소개
사악한 전교조 (55편) - 유대인의 통일전선과 독일의 파쇼
사악한 전교조 (56편) - 홍세화와 똘레랑스
사악한 전교조 (57편) - 문화대혁명
사악한 전교조 (58편) - 좌익의 정치세력화
사악한 전교조 (59편) - 중국공산당 9평과 미필적 고의
사악한 전교조 (60편) - 좌익백서(左翼白書)
사악한 전교조 (61편) - 좌익에 대한 대응 전략

3부는 (빨갱이 전교조), 62편부터 70편까지 / 민노총, 전교조 자료를 올립니다.
수많은(화일 130개 정도에 개당 A4 250페이지 분량정도, 약 총 32,500페이지) 자료 중에 몇 가지를 올리지만 수많은 자료는 곧 좌익과 전교조의 해악과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며 증거입니다. 수많은 자료를 모두 올리고 싶지만 한정된 지면이 안타깝습니다. 이들의 자료를 보면 이미 비정상적이며 활동가의 교육내용은 완전히 빨갱이 교육내용임을 명확히 장담하며 선언을 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자료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렇게 까지 자료를 올려놓은 것은 좌익들의 정체를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여도 이들은 증거를 대하고 합니다. 증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설득을 위한 작업에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3부
빨갱이 전교조 (62편) - 10월 인민항쟁의 증언자
빨갱이 전교조 (63편) - 현재의 시점에서 본 전평운동
빨갱이 전교조 (64편) - 노동조합에서는 선동은 무기다.
빨갱이 전교조 (65편) - 전교조 간부의 역할과 자세
빨갱이 전교조 (66편) - 분회운영규정
빨갱이 전교조 (67편) - 교사는 노동자인가
빨갱이 전교조 (68편) - 계급, 대중조직이다
빨갱이 전교조 (69편) - (공판투쟁)법과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각?
빨갱이 전교조 (70편) - 반역의 노래

4부는 (해체 전교조), 71편부터 100편까지 / 학부모, 교사, 학생의 글을 모아서 올립니다.
좌익과 전교조의 행동이 결국은 다음과 같은 글을 많은 사람들이 올리게 된 입니다. 인터넷에서 올라온 글과 운영하는 카페의 글을 꾸준히 모우고 수많은 글 중에 몇 개를 간추려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나 좌익에 점령당한 방송은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1부 부터 3부까지 설명에 대한 국민의 말이 증거이며 결과가 4부에서 표현이 된 것입니다.

4부
해체 전교조 (71편) - 중학교에 근무 하시는 분의 전교조에 대한 생각
해체 전교조 (72편) - 거대조직 공룡 전교조는 아직 살아 있다!
해체 전교조 (73편) - 고백
해체 전교조 (74편) - 3가지 이야기
해체 전교조 (75편) - 전교조에 대한 추억
해체 전교조 (76편) - 전교조를 탈퇴하면서...
해체 전교조 (77편) - 전교조는 달라져야 한다.
해체 전교조 (78편) - 왜 교사들만 항상 개혁의 무풍지대인가? 교원개혁 시급하다!
해체 전교조 (75편) - 전교조에 대한 추억
해체 전교조 (79편) - 분회 탈퇴를 꿈꾸며.
해체 전교조 (80편) - 3대째 교사집안에서 드리는 솔직한 말입니다.
해체 전교조 (81편) - 기로에선 전교조를 읽고
해체 전교조 (82편) -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해체 전교조 (83편) - 교육개혁의 우선순위는 "전교조 퇴출
해체 전교조 (84편) - 전교조 세미나의 충격!!
해체 전교조 (85편) - "세종대왕·이순신상 철거하자"
해체 전교조 (86편) - 전교조는 교육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왜?
해체 전교조 (87편) - 전교조 가입은 자유의지?
해체 전교조 (88편) - 교사가 분필을 던진 대가
해체 전교조 (89편) - 고교평준화는 만악의 근원이다
해체 전교조 (90편) - 저와 전교조와의 인연 이야기...
해체 전교조 (91편) - 전교조놈들게 빼앗긴 학창시절...
해체 전교조 (92편) - 전교조 선생님의 이념교육을 거부합니다
해체 전교조 (93편) - 참교육을 실천해 주세요.
해체 전교조 (94편) - 전교조 선생님들 부끄러워나 하세요
해체 전교조 (95편) - 노대통령님 "전교조에 의한 장악이 이해가 안되신다구요?"
해체 전교조 (96편) - 전교조 선생들의 시위...
해체 전교조 (97편) - 고등학생으로서 전교조가 왜생긴지 모르겠습니다
해체 전교조 (98편) - 어렸을땐.....실망자체를 넘어 인젠........
해체 전교조 (99편) - 저의 초등학교시절 선생님
해체 전교조 (100편) - 예전에 명신여고 사태를 아시나요?

100편부터 / 학부모, 교사, 학생의 글을 모아서 올립니다.
해체 전교조 (101편) - 마산공고 관련하여 질문을 드립니다.
해체 전교조 (102편) - 일부 전교조 교사를 징계하기 위해
해체 전교조 (103편) - 전교조 선생님
해체 전교조 (104편) - 전교조 탈퇴 방법 알려 주세요
해체 전교조 (105편) - 김진숙, 전교조, 동료 그리고 이랜드......
해체 전교조 (106편) - 아 씨발 대~한미국
해체 전교조 (107편) - 사표를 쓰며 --아내에게



5부는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
전교조 없는 맑은 세상(1편) - 쓰면 이루어진다.



1부는 (사악한 전교조), 01편부터 24편까지
공산주의 이론과 전교조의 이념, 사상, 조직 등 입니다.
전교조의 조직, 약사, 목적과 수단과 방법 등 공산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전교조와 좌익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내용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사악한 전교조 (1편) - 조직과 체계에 대하여

조직현황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 하며 약칭은 전교조(CHUNKYOJO)다.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출범하고 1989년 전교조를 결성하였다. 1998년 하반기에 교원노조법이 상정되고 1999년 1월 6일 국회를 통과하여 합법화 되었다. 조직체계는 북한, 중국공산당과 유사한 조직체계로 학교의 실정에 맞게 적용을 하였다.

조직의 구성
전교조의 계선단위(본부1-지부16-지회282-분회 약9,600)는 교육부의 교육행정단위(교육부-시·도교육청-구·시·군교육청-단위학교)와 단위별 교섭 및 대응을 목적하여 짜여졌다.

조합원
전국 40만 명의 교원 중 1999년 5만5666명으로 출발한 전교조교사는 (회비 납부자 기준) 2002년(3월 84,964), 2003년 93,860명(3월 90,416) ‘10만 조합원’을 내다보기도 했으나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전교조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이나 2003년 3월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 2004년 91,243명(9월88,001), 2005년 90,857명(4월 84,476), 2006년 86,918명(9월 84,000), 2007년 12월 약(77,700명)에 이른다.

조합비
매월 기본급의 0.8% 조합비를 납부하며 2007년 전교조 대의원대회 자료에 의하면 2006년 175억원에서 2007년에 155억원으로 추정(83,400명 기준)하고, 2008년에는 조합원 약 8만명을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148억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05년 전교조 예산이 220억으로 민노총의 5배였다. 노무현 정권하에 2006년 57억 원을 지원 받았다

본부
본부는 서울특별시 영등포동에 있다. 8개의 상임위원회와 2개의 특별위원회를 두며 전임자만 107명 이었다. 2007년에 116명에서 2008년에는 90명으로 축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08년도에 지회장 35%가 세워지지 못하였고, 지회, 분회의 활동력이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본부는 교육부와 대응·교섭을 목적으로 만들었다. (같은 건물 안에 민노총 2층, 전교조 3, 4층, 이적단체인 범민련과 전국연합, 전공노와 ‘월간 말’·‘민중의 소리’ 등 좌익언론들이 입주해 있다.)

기구
의사결정기관 - 전국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
집행기구 - 중앙집행위원회, 상임집행위원회, 사무처, 정책실, 편집실
지역기구 - 지부, 지회, 분회
상설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문산하기구 - 각종 상담소, 각종 연구소, 신문사, 출판사, 교과모임협의회, 기타 기구

본부, 지부 및 지회의 관계
지부와 지회는 전국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결정에 따르며 위원장은 결정에 따른 필요한 조취를 취할 수 있다. 지회는 지부대의원대회의 결의·결정에 따라야 하며 지부장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부
지부는 시·도 단위로, 지방 16개 도시에 위치하며 시·도교육청과 대응·교섭을 목적으로 한다. 조합의 집행력 강화와 조직강화를 목표로 한다. 기능은 조합의 집행의도를 지회, 분회에 전달하고 조직의 투쟁력 강화를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상부로 전달하는 기능과 조합의 제반 문제를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특수성에 따라 활동을 한다.

지회
지회는 282개 지회로 구·시·군단위로 단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둘 이상의 구·시·군을 통합 또는 분할하여 지회를 설치하거나, 급별·설립자별로 지회를 설치할 수 있으며 구·시·군 교육청과 대응·교섭을 목적으로 한다. 기능은 본부의 결의사항을 신속집행, 활동강화, 조직강화에 힘쓰며 특수성에 따라 활동하며 기구는 지회집행위원회가 있다.

분회
전교조의 근간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분회는 가장 발달된 조직이며 약 9,600개(2006년 8만6918명 기준)로 학교단위의 분회를 둔다. 5명으로 구성되며 분회장, 총무, 조직, 교선, 편집의 직책이 주어진다. 학교와 대응·교섭을 목적으로 하며 특수공동체(가족애․동지애)가 근간이다. 조직의 확대강화(세력화), 공개적인 활동전개(투쟁), 조합원 연수강화(세뇌)를 목적으로 한다. 조합 의결사항을 신속히 집행하며 지회 및 근접 분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조합활동의 활성화 및 조직강화에 힘쓰며 기타 분회단위의 특수성을 살려 사업을 수행한다.

전국대의원대회
대의원회는 대의원의 의견(정보)을 모아 통일하여 대중투쟁과 대중적 투쟁의 실천성 담보로 만들어 졌다. 투쟁방향을 설정하기 위하여 대의원은 활동과 정보를 수집하고 경험을 토대하여 중앙위원회에 보고한다. 풍부한 정보 제공으로 대의원, 중앙위원에 대한 적절한 투쟁을 위한 교육 사업이 뒷받침 되었다. 군대의 소대장 역할로 여러 개의 분회를 지휘한다. 약 500명으로 조합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이지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핵심권력이 나오는 기구와 조직으로 편성이 되었다. 의결에서 특이한 것이 공산당과 같이 모든 것은 공개투표이며, 규약의 개정과 임원의 선거·징계·불신임에 관한 사항만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한다.

중앙위원회
약 100명으로 구성되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결의·결정된 사항의 집행하고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만들어진 전략과 전술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집행의 조건(특히, 조직적 역량과 정세)과 상황의 변화를 잘 타산하며 비상시에는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투쟁본부, 투쟁위원회 등 비상조직 조직 체계를 임시로 구성하여 사업을 집행한다. 중앙위원은 대의원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지게 되어 일반조합원의 의견은 반영이 되기 어렵다.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는 전국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의 결의·결정에 따라 조합의 업무와 활동을 지휘·감독하며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여 투쟁의 방향을 설정하고 대중투쟁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중앙집행위원회는 상임집행위원회, 사무처, 정책실, 편집실이 있다. 사실상 중앙집행위원회가 전교조를 움직이고 있으며 투쟁의 실천을 담보로 하여 전략과 전술을 만드는 핵심조직이다.

위원장
위원장은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위원회, 전국대의원대회의 집회를 소집·준비하며, 그 회의에 활동보고서를 제출하며, 그 회의의 의사록을 정리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활동에 조합차원의 대표적 책임을 진다. 중앙집행위원회에 보고서 제출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위원장은 권력이 없다고 하겠다.

11대 위원장이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다른 계파(교찾사)에 의하여 쫓겨난 결과를 만들었다. 결과로 12대 전 장혜옥 전 위원장이 추대가 되었다. 위원장은 모든 내용을 지시하며 관리감독의 차원이 아닌 전교조의 이념·사상적인 대외 활동을 한다. 대표로서 보고를 받고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이 아닌 전교조의 이념적인 차원과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대외적인 꽃(얼굴마담역할?)의 모습이 규정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

전교조의 조직은 "당-위원장-활동가-일반조합원"으로 당이 집중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중앙집행위원회와 마찰이 생기면 중앙집행위원회가 언제든지 위원장을 추출 할 수가 있다. 교찾사는 지부장을 16군데 중에 11명을 내세워 내부적으로 세력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2006년 기준).

"공산당은 지도자가 당의 방향과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그 지도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전교조의 정파 계보 살펴보면
전교조는 교찾사, 참실련, 교선보의 계파가 있다. 전교조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세력은 흔히 ‘정파’라 불리는 의견그룹들이다. 이들 조직은 투쟁기조 등 주요 현안이 최고의결 기구인 대의원회의에서 확정되기까지 물밑에서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위원장선거에서도 사실상 이들이 내세우는 후보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결국 이들이 전교조의 향방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정파’라고 불리는 세력은 중앙집행위원회에 소속되어 8만 조합원을 지휘 및 조정한다. 교찾사와 참실련이 전국단위의 규모를 갖춘 최대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교선보 연대가 전국조직을 꿈꾸고 있다.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교찾사) - PD(People´s Democratic 민중민주, 좌파)
1. 사상 - 계급성을 띠고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민중은 억압받는 다고 주장을 하며 노동자계급 정권 쟁취를 주장.
2. 약사 - 이 조직은 지난 99년 전교조 합법화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 800여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인사들은 학생운동 당시 PD계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3. 인물 - 전교조 내 최대 규모의 조직력을 자랑하는 그룹이다. 사실상의 수장은 조희주(전 대외부위원장)으로 알려졌으며 이외에도 원영만, 장혜옥, 차상철(현 수석부위원장), 이을재(교육희망 편집실장) 등이 교찾사를 이끄는 핵심세력이다. 이외 이현(정책기획국장), 구속 중인 이민숙(대변인), 장인권(사무처장), 조남규(정책위원), 박미자(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현 집행부에 포진해 있다.
4. 활동 -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혁과 반자본투쟁을 주장하며 민노당과 연합하여 교원평가반대, 반미, FTA반대 등을 주장한다.
5. 조직 분파 - ‘좌파’로 통하며(전학협, 전국학생 연대회의, 21세기 진보학생연합)등으로 나눠짐.
6. 한총련과의 관계 - 한총련이 아닌 새로운 단일 연합체를 구상하는 중임. 전학협의 경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을 새로운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세울 것을 계획함.

참교육실천연대 (참실련) -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우파)
1. 사상 - 국가정통성을 부정하고 한국은 미국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고 함
2. 약사 - 교찾사에 맞설 수 있는 전교조내 유일한 조직 이였던 참실련의 전신은 혁단(혁신과 단결)은 2004년 12월 NL계열 운동권 이 주축이 된 ‘참솔’, 그리고 명망가 그룹으로 알려진 ‘교육 과 노동포럼’이라는 조직이 합쳐진 것이다. 이 두 조직은 지난 2002년 12월 위원장선거에서 각각의 후보자를 출마시켰다가 결국 PD계열인 원영만에게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어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조직합병에 들어간 것이다.
3. 인물 - 참솔은 김진경(전 청와대 비서관)과 김민곤(전 부위원장)이 주축이 되었으며 교육과 노동포럼은 이부영·이수호·이수일(전 위원장)이 주축이 된 조직이다. 현재 참실련의 주요 인사로는 이번 서울시 지부장이었던 13대 정진화(위원장)와 경기도 지부장이었던 정진후(부위원장) 그리고 한만중(전 정책교섭국장), 이장원(전 정책실장) 등이 있다.
4. 활동 - 자주, 민주, 통일에 관심이 많아 학교에서 계기교육을 통하여 반미·친북교육을 주도하고 있으며 정권과의 싸움보다 현장에서의 실천을 강조한다.
5. 조직 분파 - 교찾사가 좌파로 통하는 반면 참실련은 우파로 통한다.

교장선출보직제와 학교자치연대 (교선보 연대)
교선보연대는 김대유(서문여중)가 대표를 맡고 있으며 우옥영(전 보건위원장), 승광은(전 대전지부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전교조 조직에 대한 내부비판도 서슴지 않고 교장 선출보직제, 학교 조직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전국조직 외에도 전국 16개 시·도 지부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등이 전국조직과 경쟁, 협력을 하면서 지분을 지켜가고 있다. (2005년 기사 참조)

집행위 8~10명이 지휘 및 조정 한다.

공산주의 운영원리인 민주집중제(복종의 원리)에 의하여 단계별 대응을 목적으로 만들어 졌으며 하부조직은 정보를 수집·보고하며 중앙위원회를 거쳐 중앙집행위원회가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여 투쟁방향을 설정하며 대중투쟁을 실천할 수 있도록 전략·전술을 만들어 일선학교 현장인 분회까지 전달·집행한다. 최고 상부에 중앙집행위원회가 있다.

기사 2006년 / 전교조 관계자는 “현 집행부 내 8~10명이 전교조의 모든 투쟁활동을 사실상 지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해직 교사나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이 관계자는 “과격하게 이념화된 소수의 그룹이 전교조를 사실상 사유화하고 있으며 대다수 전교조 교사와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운동방향과 투쟁의 내용의 사안을 결정하는 핵심인물은 사실상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 산하의 핵심부서인 (상임집행위원회, 사무처, 정책실, 편집실)외 통일위원회, 조직국 등에 포진해 있다. 실제로는 조희주(전 부위원장), 김재석(부위원장), 이을재(교육희망<전교조가 펴내는 주간 신문>편집실장), 윤희찬(조직국장) 등이 장혜옥(위원장)보다 영향력이 센 최고 실세 그룹으로 꼽힌다. 이어 이현(정책기획국장), 조남규(정책위원), 장인권(사무처장), 이민숙(대변인), 박미자(통일위원회 위원장) 등이 30~40대 그룹으로 투쟁이론 등을 제공하는 주요 이데올로그(ideologue)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300명 안팎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교찾사’(교육과 노동을 찾는 사람들) 서클 멤버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이부영·이수호·이수일(전 위원장) 등 소위 명망가 그룹과 16개시도 지부장 등이 일정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 집행부와 경쟁세력인 이장원(전 정책실장), 유상덕·김민곤(전 부위원장) 등도 일정 지분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논란이 되는 계기수업 자료나 교사연수 자료는 정책실과 통일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전교조는 2006년 기사에 대하여 “이번엔 특히 조선일보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면서 “한 놈만 집중적으로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선일보 등 수구 보수 언론의 전교조에 대한 흑색 선전, 색깔 공세, 근거 없는 비난이 도를 넘어 테러 수준에 이르렀다”며 조선일보에 대해 民민·刑事형사 소송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성을 가지고 8만이 넘는 조합원을 중앙집행위원회의 8~10명이 지휘·조정하며 지도함과 동시에 자신도 지도되는 것으로 대중 층에서 동지를 획득하여 서서히 상부조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생명이 있고 살아있는 독립적인 몸이다."



사악한 전교조 (2편) - 뿌리를 찾아서

전교조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며 북한, 남조선 노동당(전평), 민노총과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많은 분들이 참교육을 위한 단체로 창립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으나 내력과 역사에 대하여는 전교조, 민노총에서도 극소수 핵심멤버가 아니면 모르며 전교조를 아주 심도 깊게 연구하거나 역사와 관련하여 일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전교조의 뿌리를 찾으려면 좌익과 맥을 같이 하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의 전후사를 보면 좌익이 가장 활동을 많이 했던 곳이 교육계 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연해주, 시베리아의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맑스주의를 학습하면서 좌익운동이 싹트기 시작 했다. 볼세비키인 코민테른의 지원과 지시 하에 국제공산주의 혁명 전사의 일원으로 조선의 해방과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 온 시기였다.

이때, 지식인 사이에는 자유주의보다는 공산주의의 개념이 많이 받아들였던 시대였으며 일본에 대응을 하기 위하여 마르크스-레닌의 이념을 가지고 활동을 했다. 독립운동가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야체이카같은 조직을 곳곳에 만들었으며 노동단체와 연관하여 활동을 하였다. 좌우익이 모두 일본에 대응을 하던 시기였고 이념의 갈등은 해방의 전에는 거의 필요가 없었다. 특히 일본지역 유학생들은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 출신의 인테리들로서 이들 중 다수가 당시 유행한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결과 해방 후 현재까지 특히 문화 학원가 등 지식인 사회에서 좌익사상이 영향력과 명맥을 유지해 온 요인이 되었다.

이때 벌어진 브나로드운동(소련에서 시작된 농촌계몽운동)도 사실은 사회주의 세력들이 초기에 주도를 했으며 김일성과 함께 정권을 세운 소련파도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편을 잡았던 한인 2세 출신의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다. 마르크스-레닌사상은 이때에 부분적으로 독립운동가중에 사상적인 전환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운동에 투신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공산주의를 택한 것인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에 따라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

해방과 대한민국 수립
1945년 8.15일 해방이 되어 남북으로 분단되고 이념도 분단되지만 북한은 철저한 공산사상을, 남한은 자유주의 기초위에 두개의 이념이 대립된 당시 서울시민 7활이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다.

남한은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인민정권 수립 투쟁기간이다. 소련의 지령에 따라 반탁운동을 벌이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고 인민정권을 수립하기위해 각종 테러, 방화, 파업, 유격전, 무장폭동 등을 자행한 시기이다. 당시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무지했던 국민 다수의 지원세력이 이들의 폭력투쟁에 염증을 느껴 반공으로 돌아서게 했다.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 백남훈 주도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등 40여개의 좌익단체로 분파되어 있었다. 1946년 8월 소련의 지령에 따라 북한에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이 결성되자, 1946년 11월 박헌영 주도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비밀리에 결성되었다. 1949년 6월 남로당은 북로당과 통합하여 조선노동당을 결성했다.

박헌영에 의한 남조선노동당을 공산정권으로 규정하고 대응을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노총을 설립한다. 전평은 좌우대립의 사상적 혼란기에 노동자·농민을 선동하여 결성한 좌익계의 노동단체로 조선민주청년동맹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의 양대 세력이었다. 전평은 명예의장으로 모택동, 김일성, 박헌영을 두고 북한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였다.

1946년 7월 ‘조선정판사 사건’으로 공산당이 불법화 되자, 이들은 테러, 방화, 총파업 및 폭동사건을 일으키며 폭력투쟁을 전개한다. ‘대구폭동사건, 2.7폭동, 5.10총선 방해 책동, 여순반란사건, 제주 4.3폭동, 지리산 무장공비 저항’ 등이 그것이다.

1948년 제주 4.3 사태의 경우에는 조천중학원 소속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가가호호마다 야체이카(소련어로 세포이며 대중 운동의 씨앗<핵>이 되는 세포를 발굴한다는 말로 모택동의 대중조직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금의 전교조, 민노총의 분회나 운동권학생의 서클이 이용되었음) 세포조직을 집중 육성한 결과 도민 전체를 남로당원화 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바 있다. 당시 한라산 인민혁명군 총사령관 김달삼 등 지도부의 상당수가 교사출신이다.

이 자들은 14살 중학교 학생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 "미제와 이승만 모리배들을 타도하자"는 내용의 삐라를 쥐어주며 집집마다 돌리도록 하고 관공서마다 순찰을 돌게 하여 군경의 움직임을 보고하도록 했다. 제주 4.3사건에서 이어진 여수반란 사건에는 이들의 꾐에 빠진 여학생들이 군인을 유인하여 권총으로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제주4.3사건에 학원민주화, 남녀평등 구호 있음)

미군정이 들어옴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관료 역할을 했던 사람이 미군정에 편입이 되어 일정한 역할을 했다. 해방 전 일제에 대응을 목적으로 한 좌익은 미군을 또 다른 적으로 인식이 되었다. 현재도 좌익들은 같은 시각을 보고 있으며 국가보안법과 미군을 최고의 적으로 여기고 있다. 미군타도를 외치는 원인이 여기에 근거하며 비판하는 세력에 "일제앞잡이", "미제앞잡이"라고 하는 말의 근본은 역사적, 사상적 배경에서 찾을 수가 있다. 정부수립과 더불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공정책으로 좌익은 지하로 숨어든다.

김달삼(제주 4.3 사태는 교사인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군사부장 김달삼이 350여 명의 무장폭도들이 12개 경찰지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같은 해 8.25일 월북하여 김일성에게 훈장을 받고 6.25 전쟁 후 게릴라 부대를 이끌고 남침 후에 전사「남조선혁명가」로서 평양 근교 이른바「애국열사릉」에 묻혔다.)

6.25후
1960년 4.19 때에는 한국교원노조연맹으로 활성화를 꿈꾸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국민들의 투철한 반공정신으로 표면화되지 못하고 이어진 1961년 일어난 5.16 군사혁명에 의해 철저히 단속 되었다. 1958년 대구지역 대학교수들이 ‘학교 경영진의 독단적인 비리 척결’(현재 전교조와 같은 구호)구호를 가지고 ‘교원노동조합’으로 시작 하였으나 지지 세력의 부족으로 실패하고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대구지역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원노조를 경성하고 5월 15일 부산중등학교를 거쳐 22일 한국교원노조를 결성하여 강령 3개의 항목과 6개의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하여 ‘교육민주화’구호 아래 활동을 하였다. 5.16군사정부에 의해 해체되었다.

ㅡ> 사악한 전교조 (63편) -10월 인민항쟁의 증언자 / 전 민노총 고문인 이일재씨가 자필로 쓴 내용으로 대구는 당시 전평의 세력이 강했으며 교원노조의 출발점이 대구였다. 또한 한국노련도 전평의 세력이 침투를 하였으며 교원노동조합 등이 노동조합 대구시연맹을 만들었다. 즉 대구의 교원노동조합은 좌익이라는 증명이다. 또한 4.19의 도화선이 된 2·28 대구 학생의거라고 칭하는 것으로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학원의 자유보장하라", "독재정치, 부정부패를 물리치자"는 구호를 앞세워 대구 도심으로 시위를 벌인 것이 민주화란 구호를 앞세워 공산민주를 획책한 좌익들의 선동에 학생이 넘어간 것으로 충분히 짐작을 할 수가 있다.

50년대
1956년 조봉암 등 좌익출신 중심으로 ‘진보당"을 결성하고, 학원 내에 ‘좌경이념써클"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진보당 학생조직인 ‘여명회" 서울대 문리대의 ‘신진회(1957) 김지주<金志柱, 김태정 전법무장관 실형>씨가 주동이었고 그 밑에 고건<전 서울시장>, 이자헌<국회의원>, 최서영<경향신문>, 최영철<서울신문>, 유근일(조선일보)" 서울법대의 ‘신조회(1958) 남재희", ‘사회법학회(1958)" 고려대 경제학과의 ’협진회, 협조회" 서울대의 ’농촌사회연구회", 부산대의 ’암장회" 등의 좌익이념 써클이 등장했다. 이때 이미 학원 내에는 ’좌익혁명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60년대~80년대 초 - 비공개 소그룹 교육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위장기)
교사운동과 관련된 노동운동인 60년도에는 주 형태가 비공개 조직운동이었다. 초창기 교원단체는 합법적이기는 했으나 얼마가지 못했다. 1961년 일어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 남한 내 모든 사회정당 및 단체에 대한 해산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과 국민교육헌장을 반대하는 이념적인 시대이다. 이때 민주화, 인간화, 자주·평화·통일을 주장했으며 비공개 소그룹운동이 주 형태였으나, 엄혹한 시기의 비공개 운동이었던 만큼 전교조 내부에서도 자세한 규모와 활동은 알 수가 없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도 한층 강화된 군부통치로 조직적인 운동기반을 잃고 있던 운동권교사들은 비공개로 활동해 오다가 다른 운동조직과의 관련으로 사건화 되었다. 81년의 "아람회", "부림사건" 82년의 "오송회" 등이 그 것이다.

80년대 - 공개적 교사교육운동의 시작
운동권교사들이 숨어든 공개단체로 1981년 YMCA중등교육자협의회(Y교협)의 결성을 필두로 해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흥사단 교육문화연구회, YWCA 사우회(여교사조직), YMCA 초등교육자협의회 등이 결성되었는데 국제적인 유대가 강한 합법화단체 속으로 침투하여 비호와 우산 속에서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총회, 지역 연수, 회보 발행, 교사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속 강습 및 연극 공연을 통해서 의식 전환을 꾀했다. 또 교사와 학생의 문화적 주체성을 형성했다. 공개단체와 별도로 교사는 소모임을 가지며 활동을 해오고 선도적 투쟁과 이론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민족·민주·교육을 주장하고 새로운 활동으로 (모듬활동, 학급문집, 놀이지도)를 하면서 확대하여 갔다. 또한 교육론(민중교육론, 민족교육론, 민주교육론)과 교육권(국민교육권, 교육의 3주체론) 및 교사관(교육노동자관, 전문직 노동자관, 국민의 교사관)에 관한 논의를 통해 운동 이념을 정립한 시기다.

(민중지 사건과 5.10교육민주화선언)
1985년도 일어난 사건 중 이들 단체가 본격적으로 정부의 주목을 받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민중교육지"사건이다. "민중교육지"사건이란 1985년 브라질 학자 "파울로 프레이리"의 비판적 의식화 교육과 피억압자들의 교육학 등 좌파교육이론을 소개하던 교사들이 정부에 의해 적발된 사건을 말한다. 이때 해직된 교사들끼리 뭉쳐 민주교육실천헙의회,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 등을 거쳐 전국교사협의회로 성장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고 YMCA우산 속에서 1986년 ‘5.10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한다.

1986년 ‘5.10교육민주화선언’은 이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이때는 전교조가 이념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무장하고 전략 전술적 측면에서 활동을 하는 시기이다. 교육민주화 선언이란 구호로 전교조는 집회와 대국민, 대교사 선전, 연대 기구의 결성, 전체 운동과의 연대 강화 등을 통해 거짓민주화 구호로 일어섰다.

(전교협과 교사교육운동의 대중운동화)
1987년 6월 항쟁 직후 공개단체모임을 논의를 거쳐 9월에 ‘민주교육실천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인 전국적인 단체가 출범한다. 교육법 개혁 투쟁과 민주화를 모토로 투쟁을 하며 시도 단위 교협(지회), 시군구 단위 교협(지부), 단위학교 평교협(분회)조직 건설 운동에 돌입하였다. 노동단체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단위노조에서 지역에서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이론과 명분을 내세워 본격적으로 활동을 한다. 7월 27일 광주에서 전국각지에서 모인 40여명의 교사대표들이 ‘민주교육실천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건설을 결의 했으며, 8월 31일 서울에서 6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교협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4차례의 회의 끝에 9월 27일 서울 한신대학교에서 700여명의 교사들이 전교협 창립식을 갖는다. 훗날 전교조의 강령으로 발전된 민주, 민족, 인간화 교육으로 대별되는 참교육의 이념적 기반과 구호가 이때 만들어지고 조직은 강화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단일한 전국조직의 시초이다.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참교육이란 거짓된 명분으로 범국민 서명운동으로 20만 명을 상회하는 성과를 만들기도 하였다.

88년 4월 총선에서 3김씨가 이끄는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이 노태우의 민정당을 압도한 여소야대 국면 이후 비로소 전교협 조직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88년 사학민주화운동은 전교협을 전교조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었고 공립 교사들이 선뜻 나설 수 없었던 교원노조로 가는 길에 과감히 내딛게 한 것이 사립교사들의 대중투쟁이었다. 상대적으로 이념운동으로 보였던 전교협운동을 교사들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 대중운동으로서 분명히 자리 잡게 하였고 이후 교원노조로의 발전 방향성을 명확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노동3권을 주장하는 전교조는 노동자란 명분과 이념으로 틀이 만들어 졌다. 초기운동이며 6월 항쟁의 시기에 전교조의 내부에 지하화 된 한총련이 핵심멤버이며 이념을 정립하고 지금의 토대로 만들게 한 장본인이다. 88년 12월 거창고에서 열린 전교협 간부 연수에서 교원노조건설의 결의하였고 이듬해 전교협 회장단은 89년 1월 20일 중앙위원회의 결의에 2월 2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상반기내 교원노조 결성을 발표한다.

노태우정권인 1989년, 노사분규로 인해 한참 사회적으로 소란스러운 틈을 이용하여 전국적 규모의 "전교조"를 결성한다. 정부의 압박에 사수를 하기 위하여 해직교사들은 사제 만남의 날, 열린교실 등을 열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기도 했으며 합법성 쟁취를 위한 국민대회가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되기도 했다. 이때 전교조에 속은 중·고등학생운동의 폭발적 진출을 가져왔으며. 1989년 충주고등학생 심광보군과 1991년 전남보상고의 김철수군이 전교조의 선동질에 분신자살을 하였다. 89년 9월 여성민우회에서 분파한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가 결성되었다. 89년 전교조 결성이후 민자당에 의해 발의된 "교원지위향상을위한특별법"이 반대로 2년여 가까이 국회에서 계류되어 오다 3월 날치기로 통과됐다. 전교조 결성은 또 87년 이후 흩어져 있던 민중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됐다.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의회(전노협)를 결성하고 5월에는 해직교사 원상복직 추진위원회를 결성한다. 노동단체는 1993년 6월에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이 주축이 되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발족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3월 해직교사 1,524명 중 1,294명을 복직시킨다. 19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노총)이 창립되어 1996년 12월 전국적인 총파업을 실시했다.

92년 총선에서 전교조는 전국연합의 총선 방침에 따라 공정선거 활동과 전교조 합법화를 선거공약화한 32명의 민주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전국연합은 민주당과의 정치연합을 통해 김대중 후보를 범민주 단일 후보로 결정하고 김 후보를 지원하는 활동을 벌인다. 전교조는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전교조 합법화와 민주대개혁을 위한 투쟁본부"를 구성하고 10명 투표 참가시키기, 10명에게 엽서쓰기, 10장 이상 선전물 나눠주기 등 10-10-10운동과 부정선거 고발 등 "4꼭"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한다.

93년 세계교원단체총연맹(WCOPT) 국제자유교원노조연맹은(IFFTU) 각각 총회를 개최해 발전적 해산을 결의하고 다음날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을 창립한다. 한편 나라밖에서 인정을 받기 위하여 EI의 가입을 추진하기로 하고 6월 14일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고 인정을 받는다. 이는 EI가 전교조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승인을 하고 내부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자 국외에서 승인을 받은 것이다. 전교조는 이러한 상황에서 거짓된 참교육과 촌지거부라는 명분을 가지고 국민을 기만하여 여론을 조성한다.

80년대 대표적인 주사파 학생운동가로 알려진 강길모(프리존뉴스 공동대표)는 전교조 창립초기 이를 측면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를 모아 전교조 공동대책위란 조직을 만들었는데 전교조의 실질적인 핵심동력은 모두 주사파 출신들이었으며 이정우 교수(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와 권영길, 민노당 의원 등의 인물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전교조는 김대중 정권을 지지했고 1999년 김대중 당선자에게 전교조 합법화와 해직교사복원을 촉구하자 김대중은 1999년 1월 새벽 날치기 통과로 이적단체를 합법화 하였다. 김대중 정권하에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교사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낮추어 해직교사를 불러들임과 동시에 전교조 최대걸림돌 이었던 교장과 교감을 내몰았다. 이때 핵심 멤버는 지하조직 때의 사람들이고 막연하게 참교육, 교육민주화란 거짓된 구호에 속은 교사나 또는 개인적인 친분, 권위적인 교육의 현장, 교장의 권위와 교총과 교육부에 반기를 든 일부 교사들이 실체를 모른 체 많이 가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결성된 "87/전대협(93/한총련의 전신)", "전민련(전국연합의 전신)", "99/전교조", "전노련(95/민주노총의 전신)"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설립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것은 바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NLPDR)"을 위한 연대세력 형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민중·민주·민족·자주통일·평화·반미의 구호로 나타나며 전교조의 창립선언문·강령 민노총의 창립선언문·강령, 민노당의 강령·당헌·당규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참고 / <이휘재>국내 친북좌익의 실상, 제주 4.3사건, 전교조자료)

전교조의 합법화과정 / 전교조 자료
1958년 대구지역 대학 교수들의 ‘학교 경영진의 독단적인 비리’를 척결하기 위하여 ‘교원노동조합’으로
시작 → 지지세력의 부족으로 실패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다시 대구지역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원노조 결성
5월 15일에는 부산 중등학교 교사들이 교원노조 결성
5월 22일 한국교원노조연합회를 결성하여 강령 3개항목과 6개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하여
학교 교육 민주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원운동 시작 → 5․16군사정부가 들어선 후 해체
1987년 교육법 개혁 투쟁
1989년 2월 2일 교원노조 결성을 선언하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함에 따라
합법적 단체활동 시행
1990년 5월 4일. 현직교사 [해직교사 원상복직 추진위원회] 결성
6월 20일. 문교부, 복직 촉구 서명 주동 교사 중징계 방침 발표
1992년 1월 16일. 노동부 남부사무소 전교조 본부 간판 강제 철거
6월 11일. 교육대개혁 범국민 서명운동 돌입
1993년 1월 26일. [국제교원노조총연맹(IFFTU)]총회에서 전교조 인정과 해직교사복직 촉구 긴급 결의안 채택,
세계 교원 단체 통합하여 [국제교원노조총연맹(EI)] 창립
6월 16일. 전교조 해직교사, 고등법원에서 해임무효소송 승소 판결
6월 30일. 전교조, EI 집행위에서(국제교원노조총연맹) 가입 결정
1994년 3월 초. 해직교사 1,524명 중 1,294명 복직
4월 15일. 4월혁명연구소 주관 "4월 혁명상" 수상
1995년 6월 27일. 지자제 선거에 전교조 후보 기초의회 3명 ·광역의회 2명 등 5명 당선,
교육위원 선거 서울 2명, 광주 1명, 전남 1명 등 4명의 전교조 후보 당선
11월 14일. 교육법 개정 청원(교사 6,032명의 서명참여, 국회 청원)
1997년 5월 25일. EI, 김영삼대통령과 진념노동장관에게 [전교조 인정]촉구하는 서한 전달
6월 2일. 김귀식 위원장 정직 2개월, 유수용 서울지부장 정직 2개월 등 현직교사 지도부 12명 징계 받음
6월 9일. 김귀식 위원장 ILO총회 참석
1998년 2월 4일. EI,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교조 합법화 촉구
2월 6일. 노사정위원회, 교원노조 99년 7월부터 합법화(법제화는 98정기국회) 합의
7월 16일. 교육부, 전교조 활동 관련 미복직 교사 160여명 복직방침 발표
7월 29일. 전교조 이동진부위원장, EI(세계교원노동조합총연맹) 집행위원으로 피선
9월 1일. 전교조 활동 관련 미복직 교사 128명 복직 (99년 3월 복직 희망자 포함)
9월 10일. [교육개혁과 올바른 교원정책 수립을 위한 전국교사서명] 시작
10월 31일. 2기 노사정위원회,[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교원노조법)안 합의
11월 7일. 교원노조법안 정부 입법 예고
11월 23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교원노조법안 의결
12월 11일. 교원노조법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
12월 14일. 교원 84,424명, [교원노조 법제화 및 주요 교육개혁과제 수립 요구] 서명 결과 국회에 청원
12월 29일. 교원노조법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1999년 1월 6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국회 통과
7월 1일. 전교조 합법화 !



사악한 전교조 (3편) -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세력

민중민주주의는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 종북(從北)주의, 자주파, 우파)와 PD(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중민주, 평등주의, 평등파, 좌파)가 있다. NL은 민족해방을 원칙으로 하며 종북주의자들이고 PD파는 평등을 원칙으로 하나 본질적으로 NL, PD은 하나의 목적을 위한 행동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베트남 적화통일방안을 향한 북한의 4대 군사 노선 [국가보안법 철폐-미군철수-평화체제-연방제 통일]을 추종하는 민중(인민)민주주의 세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노동당(민노당),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통일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남측본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실천연대),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등이며 한국예술인총연합(민예총),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민주평통), 여성민우회(민우회), 참교육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한겨레, 오마이뉴스, 전국교수노조, 정의구현 사재단, 김대중·노무현 정권하의 국가기관인 공무원노조, 통일부, 국가인권위와 여성부도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각각의 위치에 각각의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최종목적은 연방제 통일(고려 민주연방제)을 향한 것이다. 2005년 기준 약 1630단체가 있다.

민주노총 (민노총)
민노총의 전신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김일성·박헌영·모택동을 명예위원으로 삼고 1946년 ‘조선정판사 사건’으로 공산당이 불법화 되자 폭력투쟁을 전개한다. ‘대구폭동사건, 2.7폭동, 5.10총선 방해 책동, 제주 4.3폭동, 여순반란사건, 지리산 무장공비 저항’이 바로 이것이다. 민노총은 결론적으로 남조선노동당이며 현재는 김정일을 명예위원으로 모시는 것이다. 민노총은 자랑스럽게 스스로 홈페이지에 전평의 실증적인 계승자라고 하였다.

민노총에 대한 수많은 자료는 이들이 공산집단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공산당들이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조직을 꾸미는 것이 노동단체이며 파고드는 것이 학교이다. 전교조와 동일하게 공산당의 조직과 운영체계 그리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공산혁명집단이며 이적집단이다.

전교조 자료 참조 / 1989년 투쟁본부는 제100회 메이데이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근로자의 날(3월 10일)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노동절(5월 1일)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전야제를 갖고 4월 30일 세계 노동절 기념대회를 개최한다. 1993년 6월에는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대노협이 주축이 되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가 발족한다. 1995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노총)이 창립되어 1996년 12월 전국적인 총파업을 실시한다. 2006년 12월말 민주노총에 가입한 산별연맹 전체조합원 수는 75만 2천 363명이다.
민주노총홈페이지 발취 / 1995년 11월에 창립한 민주노총은 일제 식민지 통치 마감으로 1945년 8월 15일 조국해방과 함께 창설된 50만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의 실질적인 계승자이다. 전평은 해방 이후 노동해방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다 미군정으로 대표되는 자본과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사라지고, 어용노조 세력인 대한노총과 한국노총이 자본과 정권의 도움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민주노동당 (남조선 공산당)
민노당은 강령에 이적성을 그대로 보이며 김대중에 의하여 합법화 되었다. 이적단체로 판명된 한총련, 범민련 등과 같은 이념과 행동을 하는 단체가 합법화 되었다는 것이 오늘날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하겠다.

국민행동본부는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이 국회로 진출하자 정부에 대해서 민노당을 위헌정당으로 규정, 헌법재판소에 해산명령을 내려달라고 제소해줄 것을 청원(민노당 해산 청원서 全文)하고 해산요구 기자회견과 신문광고 투쟁을 벌인 바 있다. 물론 간첩비호 정권은 움직이지 않았고 이 청원은 기각되었으나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순 없다고 했다.

기사참조 / 2007년 문성현 대표 등 13명의 민노당 방북단은 평양을 가서 “중국을 통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평양에 도착하니 기쁨과 설렘으로 마음이 벅차오른다.”는 도착성명을 읽었다. 그는 동맹국인 미국과 우방인 일본을 ‘전쟁광(狂)’으로 모는 발언으로 김정일 정권의 ‘홍보대행’도 멋지게 해냈다. 2006년 김혜경 대표 등 북의 애국열사릉’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당신들의 애국의 마음을 길이길이 새기겠다.”고 적었다. 이곳은 제주4.3사건의 주모자가 묻힌 곳이며 6.25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된 곳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좌익들은 노동단체와 학원가에 숨어든다. 1956년 진보당 외·여명회·신진회·신조회·사회법학회·협조회·농촌사회연구회·암장회 등의 좌익이념 써클이다. 후에 이러한 세력들이 한총련으로 집중화 된다.

한총련의 전신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이다. 1987년 95개 대학에서 결성된 후 93년 전북대학교에서 "한총련"으로 공식 창립하였다. 공산당운영방식인 민주집중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1996년 8월 ‘연세대 폭력 시위 사태’를 계기로 97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한총련을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하고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성된 조직’으로 인정했다.

지금까지 일관되게 20년 동안 친북(親北)·반한(反韓)·종북(從北)노선을 견지하면서 각종투쟁을 선도해왔고 그 동안 배출한 ‘혁명전사’들이 이제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사회 각계분야에 진출하여 ‘주사파’(일명 민족해방파)라는 친북(親北)·종북(從北)운동세력을 형성하여 국가 사회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4년 3월 제12기 한총련이 출범 선언대회를 했다. 이때 채택한 노선은,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에서 밝힌 ‘2004년 통일운동구호’를 그대로 수용하여 대중운동의 기본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이제까지의 친북편향 투쟁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안기부 자료에는 전대협(全大協), 김일성(金日成)주의 지하조직에 장악..『의장들 모두 主事派 조직원』라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 요직에 대거 진출해 있는 전국대학생협의회(全大協) 출신들의 주체사상(主體思想) 추종은 법원 판결·정부 기록·전향자 증언 등을 통해 널리 입증된 사실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조국통일범민족연합(약칭 "범민련")은 90년 남·북한과 해외재야단체 등 3자가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범민족 대회 개최를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범민련 산하에는 남·북·해외동포본부 등 3개 본부가 있으며, 범민련 해외본부 밑에는 일본, 미국, 유럽, 독립국가협동체, 중국, 캐나다, 호주 등에 지역본부가 있다.

지난 95년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는 서울 광주 전남 등 6개 지역본부와 한총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89년 범민련 남측본부 추진위원회 때부터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우리 공안당국은 ‘범민련 북측본부’를 사실상 북한 조선노동당의 하부조직으로 보고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는데, 범민련 남측본부가 이들과 수시로 접촉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소설가 황석영씨 밀입북 사건을 계기로 94년에는 범민련 해외본부도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이 상근부의장이다. 최근까지 한총련 의장이 범청학련 의장을 맡았고, 한총련이 범청학련의 핵심 세력이어서 범청학련은 전교조가 주장하고 통일교육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징적으로 주로 친북·반미를 하고 인물들로는 한총련 계통으로 구성되었다.

전교조의 계기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일부가 한총련 및 범청학련에 가입을 하여 활동한다. 범청학련은 한총련의 결사대라고 할 수가 있으며 약 600명 정도가 활동하고 미군 사격장을 시위하고 계획을 철저히 하였다. 미군 사격장 시위하기 전에 이들은 "결사결의서"를 쓰기도 하였다. 내용 중 “저 미국 놈들이…(중략)…한 몸 바쳐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우리 민족의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는 내용의 "결의서"를 A4용지 한 장에 함께 작성했다.

통일 선봉대
범청학련의 소속에는 통일선봉대(통선대)가 있다. 1992년 발족한 통선대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로 꾸려진다. 따라서 통선대는 사실상 한총련이 움직이는 조직으로 주요 임무는 반전투쟁과 전국 주한미군기지 항의방문 등이다. 통선대는 크게 중앙통선대와 지역통선대로 나뉜다. 중앙통선대는 전국 대학에서 자원한 학생들을 동군, 서군 등 두 그룹으로 묶어 전국 순례를 벌인다. 지역 총학생회연합(총련) 학생들로 꾸려진 지역 통선대보다는 ‘투쟁성’과 ‘의식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공개모집으로 선발돼 ‘반미·자주’ 등을 내용으로 교양교육을 받으며 각종 시위에 동원된다.

중앙통선대는 조직을 하나 더 늘렸다. 수도권에 집중된 주한 미군 기지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통선대’를 만든 것. 경찰은 한총련 내 강경파인 경인총련 학생들이 소속된 수도권 통선대가 이번 사격장 시위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중앙통선대의 3개 조직 구성원은 각각 200명 안팎. 각 산하 조직은 통상 ‘중대’로 불리며 선전, 투쟁 등 임무에 따라 4개 소대로 나뉘는 등 군사조직의 틀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문득 랭보의 싯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개새끼들이다!"


사악한 전교조 (4편) - 창립 선언문, 강령, 규약과 "강령·규약 해설"

전교조 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며 모택동주의, 주체사상, 선군정치를 포함한다. 전교조 대표적인 문건인 ‘창립선언문’, ‘강령’, ‘규약’, ‘강령·규약 해설’, ‘노래’, ‘조국통일론’으로 조합원의 신념이자 믿고 따르며 지켜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강령·규약 해설’은 강령과 규약을 해설한 내용으로 이 문건은 외부로 공개가 되지 않으며 전교조가 공산주의 집단임을 명백히 밝히는 문건이며 핵심을 나타낸다.

이들의 문건을 분석하면 주술적이며 독자적인 언어를 개발하고 이념을 규정하여 일반적인 범주를 벋어나며 정상적인 의식으로 이해하거나 추적을 할 수가 없다. 단순한 내용을 변형하며 익숙한 개념을 재 정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여 인식론적인 분석을 피해가고 실제로는 은유로 포장하고 형이상학적 복잡성은 단순교리로 축소되었다.

언어조작은 조합원의 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규정하고 통제한다. 종교적 신비공간으로 들어가 절대성에 대한 믿음의 토대를 만든다. 교화도구로 사용되며 집단에 한층 더 의존한다. 가장 핵심은 감각과 사고를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전교조조합원은 통제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창립선언문의 숨은 뜻
1989년 5월 28일에 선언된 창립선언문은 이들의 사상을 잘 표현한다. 그러나 전문지식 없이 창립선언문을 읽으면 직감적으로 정확히 보지는 못해도 문제가 있는 글로 판단을 할 수가 있다. 전교조약사, 세계역사, 거짓명분, 계급성과 대중성, 조직, 세뇌, 민중(인민)민주주의, 민주집중제, 자유민주와 공산민주, 중국공산당과 모택동, 중국근대역사, 공산주의이론 등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창립선언문을 읽으면 지식의 정도에 따라 명확히 숨은 뜻을 읽을 수가 있다. 창립선언문을 정의하면 주사파가 전교협부터 파고 들어가 전교조가 합법화되기 전에 만들어 놓은 것으로 주사파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NLPDR)인 혁명논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전교조 창립선언문
겨레의 교육성업을 수임 받은 우리 전국의 40만 교직원은 오늘 역사적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선포한다.

오늘의 이 쾌거는 학생․학부모와 함께 우리 교직원이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며,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실천을 위한 참교육 운동을 뜨겁게 전개해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민족과 역사 앞에 밝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의 현실은 모순 그 자체이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교육이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 일꾼을 길러내는 과업을 담당해야 했듯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수십년 군사독재를 청산하여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우리 교직원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강요로 인하여 집권세력의 선전대로 전락하여 국민의 올바른 교육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진실된 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잘못을 저질러왔다.

독재권력이 강요한 사이비 교육은 교원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고 교단의 존경받는 스승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이 지식판매원, 입시기술자로 내몰렸다. 누가 우리더러 스승이라 부르는가?

역대 독재정권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교육을 악용하여 왔다. 그 결과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을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이기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민족과 역사 앞에서 제 구실을 잃어 버렸다. 가혹한 입시경쟁교육에 찌들은 학생들은 길 잃은 어린 양 처럼 헤매고 있으며, 학부모는 출세지향적인 교육으로 인해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가족이기주의를 강요받았다.

이러한 교육모순은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학부모에게 위임받아 책임져야 할 우리 교직원들로 하여금 교육민주화의 대장정으로 떨쳐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교육민주화를 향한 대장정은 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의 물결을 헤치고, 4.19 교원노조 선배들의 목숨을 건 눈물겨운 투쟁을 시발로 5.10 교육민주화 선언, 사학민주화 투쟁 그리고 전국교사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져 왔다. 작년 교원들의 교육법개정의 뜨거웠던 열기는 올해 발기인 대회로 이어져 드디어 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의 교직원노동조합은 민주시민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에게 교원 스스로 민주주의의 실천의 본을 보일 수 있는 최선의 교실이다. 이 사회의 민주화가 교육의 민주화에서 비롯됨을 아는 우리 40만 교직원은 반민주적인 교육제도와 학생과 교사의 참 삶을 파괴하는 교육현실을 그대로 둔 채 더 이상 민주화를 말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다. 누구보다도 우리 교직원이 교육민주화운동의 구체적 실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건설에 앞장선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동안 독재정권과 문교부, 대한교련 등 교육수구세력은 우리의 참 뜻과 순결한 의지를 폭압적으로 왜곡하고 짓밟아 왔다. 역사의 진로를 막으려는 작태가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보라! 민족사의 대의에 서서 진리와 양심에 따라 강철같이 단결한 40만 교직원의 대열은 수구세력의 기도를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동지여 ! 함께 떨쳐 일어선 동지여 ! 우리의 사랑스런 제자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굳게 뭉쳐 싸워 나가자
교육민주화와 사학민주와 그리고 통일의 그날까지, 동지여! 전교조의 깃발아래 함께 손잡고 나아가자 ! 민족교육 만세 ! 민주교육 만세 ! 인간화교육 만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만만세 !
1989년 5월 28일
전 국 교 직 원 노 동 조 합

창립선언문의 숨은 뜻을 찾아서…

1989년 5월 28일에 선언된 창립선언문은 이들의 사상을 잘 표현한다. 문안의 내용을 보면 단어를 순화하고 의도를 숨겼으나 전교조의 사상과 일제강점기부터 좌익의 뿌리를 알고 있다면 창립선언문의 숨은 깊은 뜻과 글쓴이의 마음과 의도를 알 수가 있다.

(일제 강점기의 민족교육이 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독립 일꾼을 길러내는 과업을 담당해야 했듯이 오늘 우리의 교육은 수십 년 군사독재를 청산하여 민주화를 이루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길 동량을 키우는 민족사적 성업을 수행해야만 한다. )

해설/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한인들과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생들이 맑스주의를 학습하면서 좌익운동이 발아하기 시작 했다. 해방 후 사람들은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지며 좌익의 근본은 북한으로 한다. 조국의 독립일꾼을 길러내어 내는 과업의 시각은 일제강점기 부터 시작된 것이며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NL)"세력 즉 주사파세력이 북한위주의 통일을 뜻한다. 지금 전교조의 통일위원회에서 학생들에게 친북, 북한찬양, 김정일찬양 등 수많은 세뇌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강요로 인하여 집권세력의 선전대로 전락하여 / 독재권력이 강요한 사이비 교육은 / 역대 독재정권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교육을 악용하여 왔다./ 그 동안 독재정권과 문교부, 대한교련 등 교육수구세력은 우리의 참 뜻과 순결한 의지를 폭압적으로 왜곡하고 짓밟아 왔다. 역사의 진로를 막으려는 작태가 춤을 추고 있다. )

해설/사전지식 없이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일제 강점기에 관료를 했던 사람이 미군정에 편입이 된다. 좌익은 미군정과 일제에 편입된 관료를 적으로 간주를 한다. 이들이 비판자에 대하여 일제앞잡이, 미제 앞잡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반공정책은 좌익에게 독재, 수구의 모습으로 보이고 자신들의 혁명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본 것이다.

(교육민주화를 향한 대장정은 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의 물결을 헤치고, 4.19 교원노조 선배들의 목숨을 건 눈물겨운 투쟁을 시발로 5.10 교육민주화 선언, 사학민주화 투쟁 그리고 전국교사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져 왔다. 작년 교원들의 교육법개정의 뜨거웠던 열기는 올해 발기인 대회로 이어져 드디어 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을 보게 된 것이다.)

해설/계속된 방공정책에도 불구하고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대구지역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교원노조를 경성하고 5월 15일 부산중등학교를 거쳐 22일 한국교원노조를 결성하여 강령 3개의 항목과 6개의항목의 결의문을 채택하여 ‘교육민주화’구호 아래 활동을 하였으나 5.16군사정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고 이들은 정체를 숨기고 YMCA의 우산아래서 1986년 ‘5.10교육민주화선언’을 발표한다. 이들이 4.19전부터 활동을 해온 것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학생들을 공동체적인 삶을 실천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도 이기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민족과 역사 앞에서 제 구실을 잃어 버렸다. 가혹한 입시경쟁교육에 찌들은 학생들은 길 잃은 어린 양처럼 헤매고 있으며, 학부모는 출세지향적인 교육으로 인해 자기 자녀만을 생각하는 편협한 가족이기주의를 강요받았다.)

해설/전교조의 공동체는 게르만 특수공동체로 한국의 공동체가 아니며 군사문화의 교육을 국가정체성부정의 시각으로 또 학부모의 출세지향형 즉 정확히 말해서 경쟁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것을 학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지금도 활동가들은 공교육 저하를 교육부, 학부모,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보라! 민족사의 대의에 서서 진리와 양심에 따라 강철같이 단결한 40만 교직원의 대열은 수구세력의 기도를 무위로 돌려놓을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저들의 협박과 탄압이 아니라 우리를 따르는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해설/수구세력을 무위로 돌려놓는 다는 것은 국가를 무위로 즉 공산혁명의 뜻을 주장한 것이며 어떠한 탄압에도 맞설 것을 주장하고 그런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과 초롱초롱 눈빛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전교조가 하는 지금의 작태는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과 목적(공산혁명)을 위한 것이다.

(동지여 ! 함께 떨쳐 일어선 동지여 ! 우리의 사랑스런 제자의 해맑은 웃음을 위해 굳게 뭉쳐 싸워 나가자 교육민주화와 사학민주와 그리고 통일의 그날까지, 동지여! 전교조의 깃발아래 함께 손잡고 나아가자 ! 민족교육 만세 ! 민주교육 만세 ! 인간화교육 만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만만세 ! )

해설/마지막 문단인 동지, 그리고 통일의 그날은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NL)"세력이 뜻을 사상과 목적을 말한 것이며 깃발이란 단어는 주로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단어이다. 민족(북한이 근본인 주체사상), 민주(공산민주), 인간화 교육(참교육으로 말하는 공산혁명교육)의 뜻을 바로 알자!


강령의 숨은 뜻
전교조의 강령은 창립선언문, 규약과 더불어 조합원의 이념이자 행동의 방향이다. 강령은 4개로 구성되며 외부자료와 비공개자료로 구분이 되어있으며 여기서는 비공개자료를 근거로 하여 분석을 하고자 한다. 비공개자료는 외부로 공개된 자료와 해석을 전교조차원에서 만들었으나 구체적, 전문적 지식이 없이 일반인들이 정확히 판단을 하기 어렵다.

전교조의 목적과 사업에 제2조 명문화한 내용으로 전교조의 목적은 민주노총의 조직적과제의 지향과 시사를 하는 것으로 목적은 연방제 통일이며 사업은 노동자계급의 권리와 지위향상, 사회·정치적 개혁, 학생을 공산교육세뇌, 교육부 대안세력정착, 정치세력화를 위한 것으로 강령에 명문화한 내용이다.

강령·규약 해설에서 발취
1. 교육의 국가 독점과 정권의 간섭을 막고 교육의 기본 원리와 성격인 자주성 보장과 전문성 신장을 지향한다.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확립과 교육민주화 실현을 위해 굳게 단결한다.)
- 식민지 지배와 남북분단, 개발독재 등의 역사 과정에서 교육은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 통제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현재도 정권 측에서 세계화와 수요자 논리를 내세워 교육 담당자인 교사들을 배제하고 학부모를 기만하여 교육을 자본과 경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육 주체인 교사․학생․학부모의 교육권을 확립하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 목표이다.

2. 노동조합으로서의 기본적인 요구인 교직원의 사회·경제적인 지위 향상과 권리 보장, 근무여건 개선을 도모한다.
(우리는 교직원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여건의 개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 노동조합의 기본 요구이자 활동이다. 노동조합으로 양적인 성장을 할수록 대중의 이해와 요구가 커져가고 다양해진다. 이 이해와 요구를 올바로 수렴하여 실현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기본 임무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개혁 의미로 확장되지 못하고 자기 이해에만 머물 경우에는 조합주의가 된다.

3. 전교조가 지향하는 교육 이념인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천하는 데 노력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에 앞장선다.)
- ‘참교육’은 한국사회의 변혁운동에서 교육부문의 운동인 전교조의 자기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이제는 보통명사화 됨: 전교조 투쟁의 성과). 참교육 이념을 사회의 변화와 국민대중의 교육적 요구의 변화에 맞추어 이를 올바로 반영하고 풍부화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참교육 이념을 실천하는 다양한 대중적 활동을 총화하고 보편화하는 노력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여 새로운 대안적 교육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4. 국내외 연대활동을 전개한다.
(우리는 자유․평화․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 교원단체와 연대한다.)
- 연대는 일반적으로는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한 활동이나, 전교조의 사회 운동적․이념적 성격(민족․민주․인간화 추구)을 밝히는 측면이 강하다. 국제적․전국적 차원의 연대활동만이 아니라 지역적 연대활동도 중요하다. 중앙의 권력이 일정부분 지방 자치단체에 이양․위임되는 지방화가 진전되고 있기에 지역적 연대 활동 특히 지역주민들의 생활문제인 주택, 환경, 보건의료, 교통 등과 함께 교육문제를 매개로 한 연대활동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또한 교사 노동자라는 성격의 친근성으로 각 부문이나 계급계층운동을 서로 묶는 매개적인 역할이 주목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선언문


"강령·규약해설"을 분석하여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해석: 국가정체성 부정을 위한 것으로 국가가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교육을 통제한다는 좌익의 국가정체성 부정과 적대적원칙으로 말한 것이며 신자유주의·경쟁주의를 반대하는 것을 학부모를 기만하는 것으로 표현하였고 교육권을 확보한다는 말은 교육민주화란 거짓된 교육공산화란 말의 뜻으로 학교를 점령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으로 정의 한 것이다.
2 해석: 노동자로서 철저히 이득을 원칙으로 하며 계급성과 모택동의 대중성을 바탕으로 혁명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계급성이 없이 대중성만 있으면 노동단체는 이익단체로 머물게 된다는 뜻.
3 해석: 전교조의 거짓된 참교육 즉 공산혁명교육은 민족(종북<從北>주의), 민주(공산민주), 인간화교육(공산화교육)을 실천하는데 있으며 참교육의 정체인 혁명을 위해 국민의 대중성을 파악하여 정확히 활동하고, 다양하고 보편적인 노력을 조직적으로 전개하여 혁명을 위한 교육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 (모택동의 모순론을 근거함)
4. 해석: 공산혁명을 위하여 이념이 같은 단체와 연대를 한다. 민족·민주·인간화교육을 근거하여 국제적·전국적·지역적으로 연대를 하며 중앙의 권력이 지방자치화 분산되는 것을 놓치지 말고 지역주민에게 교육문제와 연관하여 교사라는 친근한 직종을 이용하고 계급성에 뿌리를 내려 선동·투쟁하도록 역할을 한다는 뜻.

규약의 숨은 뜻
창립선언문, 강령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규약이다. 규약은 직접적인 행동규칙을 설명한 자료로서 한나라의 헌법과 같은 것이다. 본부, 분회는 각각의 규약 해설은 따로 있으며 비공개 문서이다. 본부의 규약은 1989년 5월 28일 제정 되었고 14차례에 걸쳐 1999년 6월 27일 전면개정 되었다. 이미 합법화되기 10년 전 1989년 이전부터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다. 즉 전교협87년에 국가를 위한 조직구성이 아닌 주사파가 공산혁명을 위하여 만든 내용으로 일부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를 위하여 일을 하지 않는다. 규약에는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를 했다. 여기서 사용자란 학교에서는 교장, 교감을 말하는 것이며 포괄적으로 국가의 개념이며 국민과 학생, 학부모도 포함이 된다. 전교조에 가입하면 국가를 위한 사람들이 아니며 전교조를 위하여 즉 전교조의 목적 공산혁명을 위한 존재만이 전교조에 가입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으로 전교조 조합원의 퇴출의 근거를 마련을 할 수가 있다. 규약 자체가 헌법에 위배되고 국가공무원이 될 수가 없으며 공무원법에는 정치운동 금지의무, 집단행위 금지의무가 있다. 지금 전교조는 이런 것을 지키지도 않으며 또한 국가보안법의 이적행위 금지에도 위배된다.
둘째, 계급성과 대중성에 기초를 두고 자주적인 대중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의 조직적 과제(공산혁명)와 지향(志向)에 시사(示唆)하며 노동자계급의 권익과 목적을 위해 조합, 조직 강화를 위한 규칙이다. 교육부와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