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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중도주의와 불교의 중도사상

- 중도사상의 원리가 한국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가?

政治的 중도주의와 불교의 中道사상
- 중도사상의 원리가 한국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가?



韓 昇 助 (대불총 상임고문, 前 고려대 명예교수)

불교사상의 기본이 되는 것이 四諦八正道(사제팔정도)이다. 四諦(사제)는 苦(고) 集(집) 滅(멸) 道(도)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하며, 그런 고통의 輪廻(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천 수행하는 길이 八正道(팔정도)이다. 그것이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의 수행인데 이 팔정도가 바로 中正이며 中道의 완전한 수행법이라고 석가는 가르쳤다.


1. 불교의 중도사상과 정치적 중도주의

불교가 실천 수행의 正과 邪를 엄격하게 가르치는 이유는 이로 인하여 불교의 正道와 邪道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고행에도 쾌락에도 치우침이 없으며 過不足(과부족)함이 없이 中道를 실천하는 것이 正道(정도)이다. 대승불교에서 中道사상 곧 中道主義를 가장 명확하게 이론화한 분이 BC 2-3세기 인도의 간다라 지방에서 살았던 龍樹(용수)보살이었다.

용수의 中觀論(중관론)은 有論[유물론]과 無論[무심론], 假와 空, 또는 常과 斷의 두 변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도록 中正의 자세를 유지할 것을 가르쳤다. 불교의 중도사상이 그를 통하여 불교사상의 正說(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中道라는 말로써 正道나 中正을 뜻하는데 비하여, 정치세계에서는 중도노선이나 중도주의란 말처럼 대립하는 사상에서 中間이나 折衷(절충)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정치적인 분야에서 중도주의라고 하면 좌우익의 대립에서 어느 한 쪽에 가담하지 않고 그 중간적 위치에서 온건한 중도적인 정치노선을 표방하거나 中間派나 절충주의의 입장, 또는 좌우대립을 완화 조정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좌우합작을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들의 정치노선을 지칭한다.

외국의 상황을 참고해 본다면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보수성향의 정당과 공산당이 대결하는 가운데 사회민주주의 내지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여 선진사회에 있어서의 계급대립을 완화하는데 기여하였고, 또 실제로 보수정당과 공산당의 대립을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제2차 대전 후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타협 절충을 시도해 왔던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에는 ‘제3의 길’을 제시하며 나서는 세력들도 생겨났다.

한반도에서는 일제시대부터 공산주의운동이 전파되었는데 그들은 8・15해방후 정치적인 공백기를 타서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공산주의나 좌파의 영향력이 크게 신장하는데 놀라고 겁을 먹은 보수우파세력은 그 좌파세력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을 규합하기 위하여 사회명사와 지주계급들로 구성되는 한국민주당이라는 보수우익정당을 만들어 냈다. 미국에서 이승만 박사가 돌아오고 김구를 비롯한 상해임시정부의 요인들도 귀국하자 이들을 우파의 지도자로 옹립하였다.

이 左右양파가 건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자 보수당과 혁신당간의 대립을 완화 시정할 목적으로 온건 우익정당과 온건 좌익정당이 생겨났다. 이들은 미군정의 후원으로 잠시 정치행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누렸으며 좌우대립과 양극화의 추세를 완화 조절해 보려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도리어 좌우의 극렬대립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러한 초기의 중간파 내지 중도주의자들의 대립조정노력이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그 실패한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해방후의 혼란과 극도로 흥분된 좌우파 정치세력의 政爭(정쟁)은 소수의 중간파나 좌우합작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고 더구나 조정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좌우대립의 완화시도는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도 있었다. 여야당이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었을 때,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당수자리에 있었던 이철승씨는 여야간의 극한대립을 막아보려고 ‘중도통합론’을 들고 나와서 한국에서는 국가안보도 필요하고 민주화도 중요하므로 양쪽의 입장을 충족하며 조화시키기 위하여 여야가 화해 타협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나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당시에 여론, 특히 반정부세력으로부터 ‘사꾸라’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불신을 당한 결과 야당 당수자리에서도 밀려나고 말았다.

좌우대립과 남북관계의 세 번째 조절시도는 1987년의 6・10 반정부시위후에 노태우정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중도통합의 시도는 중간파나 중도주의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6・29민주화선언으로 여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선출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정권이 추진하였다. 부드럽고 팔방미인적인 태도로 좌파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때문에 노태우정권하에서 좌우대립은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그 대신 여야간의 정권투쟁이 심하여 정치사회적인 불안은 멎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노태우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은 김영삼도 본래 중도파나 중간파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나 그가 대통령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권위주의세력으로 지목되었던 보수우파 인사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응징함으로써 과거에 반공정책으로 억압되었던 좌파세력의 득세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김대중 노무현의 좌파정권이 10년이나 계속되는 동안 좌파세력이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잃게 되자 과거 좌파세력의 일부가 좌파진영을 이탈하여 뉴라이트운동으로 변신함으로써 새 세력으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들은 좌파세력의 정치노선에서 이탈하였으나 종래의 보수우파들로부터 차별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뉴라이트운동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이명박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노무현정권으로부터의 정권교체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어느 정도는 뉴라이트세력의 등에 업혀서 정권을 잡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 뉴라이트운동과 중도주의

그러나 뉴라이트운동의 내부가 몇 갈래로 갈라져 있어서 통합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 표방하는 길이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떠한 정치사상과 노선을 표방하고 나설 것인지 아는 사람이 매우 적은 것 같다. 어쩌면 뉴라이트세력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좌편향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 이외에는 어떠한 右派노선 내지 중도주의를 표방하는지 아직도 정해지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지.

노무현의 좌파정권으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의 운영방침으로서 實利主義(실리주의)를 들고 나왔다. 명목은 그렇게 내세웠지만 실리주의적 中道主義 노선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이념적으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지만 오로지 實利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쪽과도 거래할 수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명박의 이념적인 색깔을 말한다면 그의 중도주의는 좌파와 우파의 중간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명박정부의 실리주의적 중도주의에 대하여 그 실체를 의심하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정부측은 그에 대하여 일언반구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中道主義는 그 내용이 애매모호하여 아직도 그 성격이나 가치가 미정립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적인 중도주의는 크게 보아서 ① 정치적인 중간주의냐? ② 제3의 길을 따르는 절충주의를 표방하느냐? 아니면 ③ 기타로 분류되는데 필자는 佛敎的인 중도사상이 시사하는 화해 협조적인 성격의 중도주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교의 중도사상에서 말하는 中道主義는 中間(중간)을 말하는 것도 折衷(절충)노선을 표방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A라는 입장과 B라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불교의 중도주의는 A(자유로운 시장경제)도 아니고 B(혼합경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C(계획적 요소가 약간 섞인 혼합경제)를 고집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A(자유로운 시장경제)도 B(혼합된 시장경제)도 중도사상이 될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3. 불교철학사상에서 말하는 중도주의

금강경이 강조하는 사상 중의 하나는 我空(아공) 法空(법공)의 개념이다. 我空이란 나는 없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는 노력이이다. 法空이란 진리도 법도 空하여 대부분이 실체가 없는 妄想(망상)의 소치이므로 어떤 일에도 구애받거나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수우익의 사상이나 좌경이데올로기는 결함이 많으므로 의지할 것이 못된다. 그러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중생구제의 願力(원력)이고 자비심이고 그리고 출세간적인 깊은 지혜 곧 깨달음이다.

佛書의 古典(고전) 중에 信心銘(신심명)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중도주의와 관련된 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至道無難 唯嫌揀擇(지극한 진리는 어렵지 아니하다.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唯滯兩邊 寧知一種(오로지 양변에 머물면 어찌 한 가지임을 알 수가 있으리오). 이것은 지극한 진리의 단계에 가면 어떤 사상이던 염려할 것이 없다. 좌우익 양쪽으로 갈라졌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 한 가지이니 별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元曉(원효)의 <大乘起信論대승기신론>을 보면 一心二門란 말이 나온다. 한 마음에서 眞如門(진여문)과 生滅門(생멸문) 등 두 가지 문이 나오는데 생멸문에서 보면 두 사상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여도 眞如門 곧 一心에서 보면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둘이 있다고 해도 하나에서 나와서 끝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남도 달라보여도 깊은 道的인 차원에서 본다면 결코 둘이 아니요 모두 하나다. 이런 말들은 非一非異(비일비이), 좌우파가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깊이 알고 보면 모두 하나에서 나와서 하나로 돌아가는 不一不異(불일불이)의 사상이므로 숙명적으로 싸우지 않을 수가 없는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華嚴經(화엄경)을 보아도 萬法(만법)은 歸一(귀일)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義湘(의상)대사가 지은 화엄일승 법계도 법성계에도 一中一切 多中一(하나 속에 일체가 들어있고) 一卽一切 多卽一(하나가 바로 일체이며 다수가 바로 하나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이데올로기가 많아도 그 원리는 모두가 하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상을 좌우익의 사상대립에 적용해 본다면 좌우익 사상이 달라서 서로 부정하며 싸워야 할 것 같아도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므로 화해 협력할 수 있는 관계라는 말로 풀이 된다. 이처럼 實相(실상)의 세계에서는 좌우익도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우리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리 이질적이어서 대립하고 싸우지 않을 수가 없어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화엄의 사상은 시사하고 있다.

실상과 현상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은 현상의 뿌리가 깊지 않으며 매우 가변적임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좌우대립과 남북갈등의 문제는 신중하게 풀어나감으로써 이익을 최대화하되 피해는 최소화하도록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4. 정치적 中道主義와 관련된 세 가지 중요문제

(1) 대한민국에서 현재 중도세력임을 자처하는 정치세력은 누구인가? 한국의 보수우익세력은 중도주의에 적대하는 극우반동세력인가?
현재 중도세력임을 자처하는 정치세력은 뉴라이트 집단세력인가? 아니면 보수우파세력인가? 뉴라이트 집단세력이 좌파정권에 반대하며 한국의 보수세력과 차별화하고자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 보수세력을 강경한 보수꼴통들로 몰아서 차별화하겠다는 정신자세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在來의 반공보수세력을 모두 보수반동세력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말하겠다. 해방후 건국기와 발전의 시기에는 이승만의 건국노선과 그를 따랐던 사람들이 보수우익의 세력이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건국노선을 반대하여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이며 조선인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조선공산당, 남조선노동당 추종세력이 좌익세력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정부를 세우고 지키며 급속한 산업화정책을 추진하였으며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남한의 체제민주화와 복지사회건설에 주력했던 보수우익정부를 과격한 반공보수정권이라고 단정하며 배척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승만과 보수우익노선도 보기에 따라서는 中道노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겠다. 첫째, UN감시하의 총선거와 그것을 반대하며 外軍철수후의 조선문제의 자주적 해결의 주장 사이에 알력은 있었지만 가능한 지역에서라도 총선거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중도적인 현실 타협노선이었던 것이다.

둘째,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1953년에 휴전협정을 받아들였다. 그후 평화적인 체제경쟁을 계속하다가 남북대화의 길을 열고 끈기 있게 지속해 왔다는 점. 또 UN에 동시가입하여 남북화해와 교류를 위하여 나름의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런 정치집단을 극우보수반동이라고 폄하할 수가 없다고 본다.

특히 1980년도 이후에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받아들였으며 나중에 김대중・노무현정권과 같은 좌파정권을 10년동안 집권함을 허용했다는 점에서도 대한민국과 보수우익세력을 중도주의도 허용하지 않았던 보수반동세력으로 몰아붙일 수 없을 것이다.

(2) 中道의 사상은 左右가 和解하고 合作하자는 주장이 아니냐?
좌우가 합작하면 우파가 좌파에 흡수 소화되어 버리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그 말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국민 대다수가 가난하고 무지했던 시대에 절실하였다. 앞으로도 그럴 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나 그런 문제는 남한국민들의 정신자세 여하에 따라서 얼마라도 극복할 수가 있다고 보아진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 과반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제도적인 우수성을 믿으며 받들고 있다. 또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보호를 위하여 싸울 마음의 자세를 갖는 중산층 내지 보수우익세력도 이제 만만치 않다. 이들이 인간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확고하게 지키려는 의지를 유지하는 한 중도성향의 정권이 출현하더라도 그리 쉽게 좌파의 계략에 넘어가서 체제변혁을 묵인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左右가 화해하고 합작한다? 그것은 좌우가 모두 자기를 비우며 자기들의 사상을 고집하지 않을 때라야만 가능하다. 右派의 사상은 엉성한 대신 융통성이 많아서 어떤 변화에도 견뎌낼 수가 있지만 左派의 사상은 치밀하나 경직되어서 마치 견고한 건물구조와 같다. 보수우파의 사상은 아무리 잘라도 곧 다시 솟아나지만 좌파사상은 한번 무너지면 붕괴 와해되어서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좌우화해와 中道를 들고 나가는 것이 북한을 개방케 하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다. 또한 그러지 않으면 젊은 세대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만 할 것 같다.

(3) 한국의 현시점에서 불교적인 중도주의 사상이나 그런 정치가 과연 가능하며 또 바람직한가?
한국은 해방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좌우대립과 남북갈등의 비극을 곱씹어 왔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남북화해나 좌우융합의 문화나 사상을 찾아서 적대관계를 종식시켜야 할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까지 좌우익의 대립으로 갈라지고 또 남북한 관계도 갈등 속에서 계속해 나가려는 것인가?

불교를 포함한 동양사상에는 서양사상의 對立(대립) 分化(분화) 모순 갈등의 정신과는 달리 和解(화해) 統合(통합) 調和(조화)의 정신을 지향하며 부추기는 성향을 간직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서양의 자본주의나 보수주의(백색)와 공산주의나 급진과격사상(적색)은 서로 화해하거나 융합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불교를 포함한 동양의 中道思想은 모든 정치사상을 포용하며 융합시킬 수가 있다.

이러한 중도사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내지 전체주의의 대립, 세속적인 이익과 정신적인 가치의 대립과 갈등에서 쌍방을 수렴하여 조화하도록 만드는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제반 현실여건으로 보아서 이런 동양의 중도사상과 원리를 한국적 패러다임의 발판으로 삼아서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나갈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08.12.23)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