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국회의원) (前略) 오늘 제가 오랫동안 알고지내는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정의구현사제단"쪽으로 이야기가 갔습니다. "자매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괴롭습니다. 사실 가톨릭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렇게 큰 비중도 대표성도 없습니다. 매우 특정한 분들이 특정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고 할까요? 저 자신도 오랫동안 지켜보며 너무 실망했습니다. 더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요즘 다시 봄날의 기지개켜듯 그분들이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할 뿐입니다, 물론 그 분들을 위해서도- 이것이 신앙의 자세입니다."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쏟아낼까 하다 저 자신 다 거둬들였습니다. 언젠가 명동성당 앞에서 "이러러면 차라리 환속하십시오-신부님"이라고 쓰여진 현수막도 보았습니다. 또 적잖은 이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을 "붉은 사제단"으로 불리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저 역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2일 용산참사에 대해 어김없이 시국미사를 열면서 "현시국은 사제단이 창설된 1974년을 연상시키는 독재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이 신부님은 과연 1974년을 어떻게 지내셨나 싶었습니다. 유신독재였던 그때-봄이여도 따뜻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제 대학시절 역시 삼엄하고 살벌한 통제와 감시 아래 살얼음 걷듯 대학을 다녔습니다 . 그 당시 정말이지 뛰어난 친구들은 다 공장으로 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뛰어난 이들이 나라걱정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햇빛 찬란한 사회로 나갑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걱정하며 자유와 민주의 이름 아래 그들은 어두컴컴한 음지로 갔습니다. 그때 정의구현사제단은 두려움없는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절실한 시국선언이 필요했던, "존재의 이유"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신부님의 "1974년 운운"하는 발언을 들으면서 정말로 저분이 그리워하는 것은 "당신들의 존재의 이유"가 있었던 1974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2009년을 어찌 1974년에 비유하겠습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은 "거룩한 분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왜 "거룩한 참회와 반성"은 없습니까? 효순이 미순이 사건의 왜곡, 광우병파동을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선동. 용산참사를 또 다시 갈등과 미움으로 부추기는 선연한 적의, 그 모든 곳에, 그 모든 순간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은 있었습니다. 정의는 오로지 길거리 시위에서만 구현됩니까? 고통받는 이들을 선동하는 것이 과연 사제들의 자세인지-- 정치와 종교는 분명 그 갈 길이 다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제정일치의 시대를 위해 극렬한 반정부투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2일 시국미사 행진을 마치고 "금년 봄 농사가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사제들의 농사는, 땀과 헌신은 정권타도가 목적이란 말입니다. 경찰에게는 경찰이 할일 있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정치인이 할 일이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 "그때 그 사람"으로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오늘도 내일도 길거리 시위에 나선다면 제가 권해드릴 일이 있습니다. 차라리 옷을 벗고 정치에 입문하십시오. 2009년 2월 5일 전여옥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