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면서 시마네현(島根縣)이 "다케시마(竹島)의 날" 제정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 되었던 상태에서 2005년 판(版) 일본중학교 공민 교과서에는 독도에 대해서 "한국이 불법 점거를 하고 있다"거나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쓰는 등 역사 왜곡도 모자라 한국에 대한 침략과 패권주의를 정당화 하려는데 대해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독도 망언에 맞서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였다"는 지리면과 인종적 역사적 사실을 밝힌다. 부산에서 더 가까운 대마도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날이 맑으면 부산의 용두공원에서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 규슈(九州)에서는 147㎞로 두 배 이상 멀다. 이미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조선지도에도 조선 땅으로 표기 되어 있다. |
대마도인은 순수한 우리 핏줄 1975년 일본 후생성(厚生省)이 발표한 "HB항원 분포도"를 보면 HB항원은 adr형과 adw형으로 구분되는데 「한국인과 대마도인은 100% adr형으로 일치」하며, 규슈.후쿠오카인의 92%로 일치하는 반면 도쿄(東京)인은 67%의 수치가 같은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에 부속된 대마도 대마도가 문헌을 통해서 우리의 영토임을 살펴 본다면, 첫째, 고려시대 진봉(進奉)의 조공관계, 11세기후반 11대 문종(文宗,1046~83)이래 대마도와는 진봉선 무역으로 정례화 되었다. 진봉선 무역은 조공(朝貢) 무역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러다가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 침공이 시작되면서 진봉제는 종말이 되고 대마도는 왜구(倭寇)로 변하게 되었다. |
둘째, 조선시대 대마도 정벌,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자 상왕 태종은 1419년(세종 원년) 대마도 정벌을 결심한다. 그때 밝힌 교유문(敎諭文)서두에서 "대마도는 섬으로 본래 우리나라의 땅이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리고 정벌이 끝난 후 대마 도주에게 "대마도는 섬으로 계림(鷄林:경상도)에 예속되었던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文籍)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 할 수 있다." 며 군신관계를 재확인 하였다. 세종실록 원년(위 자료의 내용은 동국여지승람, 1481년 왕명으로 편찬)에 그대로 계승하면서 조선시대 대마도 인식의 근간을 이루었다. 맺은 말 1949년 1월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이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 주장하며 제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따라서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근거는 첫째, 거리의 가까움 둘째, 인종적인 측면. 셋째, 고려와 조선에서 관리. 넷째, 초대 대통령의 반환 요구 등 학술적 역사적으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에 비하면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과 근거도 있다. 또한 일본의 62년만의 정권교체로 외교정책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며 깊이 있는 대화로 우리의 국익을 따져야 할 것이다. 대구 지회장 유 상 종 (경운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