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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命論

-수행자가 신도를 기만하여 돈을 챙기며 망국으로 갈 때, 불교는 망한다-

한국은 물론이요, 지구촌 곳곳이서 생활하는 고해대중의 얼굴 가운데, 건강과 부귀와 행운속에 웃는 사람들 외에 대다수 가난한 얼굴들은 고통스러운 우비고뇌(憂悲苦惱)가 가득차 있다. 신불(神佛)께 애소하며 기원을 드려도 소원은 대다수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고 고달픈 인생속에 죽어간다. 이것은 인간 각각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운명에는 개인의 운명이 있고, 단체, 국가의 운명도 있다.

운명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전지전능한 신이 정하는 것일까? 전지전능한 법신불(法身佛)의 화신인 부처님이 만드시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깨닫고 보면, 인간 개개인이 전생에 스스로 지은 인연작복의 결과이다. 단체, 국가의 운명은 구성원들이 만드는 것이다.

전생은 아득한 세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초전도 전생이다. 스스로 자기운명을 정해놓고, 운명이 고통스럽고 마음에 안든다, 신불께 울며 간구한다고 운명이 바꿔질까? 기적같은 행운이 있기도 하지만, 솔찍이 지난(至難)한 일이다.

고달픈 고해대중이 신불(神佛)께 기도, 간원(懇願)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나? 가난한 중생에게 신불이 황금을 줄 수 있나? 죽어가는 운명을 바꿀 수 있나? 종교신앙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첫째, 마음의 위안이다. 고달픈 인생에 있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마음의 위안을 얻어 삶의 동력을 얻는 것이다. 둘째, 공부많이 한 수행자로부터 바른 깨달음을 전수받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도처에서 재산을 갈취하고, 인생을 황폐화 시키며,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사이비종교인(似而非宗敎人)들이 불면나차(佛面羅叉)같이 정신을 빼앗는 주술을 걸어오는 것이다. 또 스스로의 전도몽상(顚倒夢想)으로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셋째, 새로운 인생, 즉 내세를 준비하기 위한 인연작복을 해야 하는 것이다. 1초후에도 내생인 것이다. 이 또한 올바른 스승을 만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올바른 스승이 아니면, 역시 불면나차(佛面羅叉)같은 자들이 재산과 목숨까지 빼앗는 주술을 걸어올 뿐이다.

한국불교는 신라, 고려에서 국교(國敎)의 자리에 있었다. 휼륭한 수행자는 왕사(王師), 국사(國師)로 존중받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불교의 교세는 나날히 추락해가고 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불교인의 숫자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정도로 발전해가고 있다. 불교인들이 개종하는 대다수의 종교는 천주교이다. 왜냐하면 천주교의 의식이 불교와 비슷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불교의 교세가 추락해가는 것인가? 불교의 가르침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시대의 포교사가 되고 스승이 되어야할 승려들이 도도한 민심을 잃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심을 잃는 승려의 처신인가? 무엇보다 오늘을 사는 승려들은 고해대중에게 진실하게 대해야 한다. 고해대중은 고달픈 운명속에서도 시주물을 바치며, 올바른 깨달음을 얻고저 진실하게 대하는데, 일부 승려들은 위선자(僞善者)의 모습으로 고달픈 고해중생들을 기만하고 있다. 필자가 제일 통탄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부처 팔아 수백억 부정축재 하면서 무소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무소유노래는 탁발가(托鉢歌)요, 구걸가(求乞歌)이다. 신도에게 승려가 무소유 노래를 부르는 뜻은 “돈 좀 보시하라”는 소식이다. 승려 자신은 호화인생을 살면서, 위선을 떨며, 월세도 간신히 내는 월셋방 고해대중에게 도움은 못줄 망정 구걸가를 계속 불러대서야 되겠는가?

40여년전 한국의 대다수 사찰은 가난하여 수행자들이 하루 세끼를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시골 가난한 절에는 승려들이 걸망을 지고 동네마다 다니며 가가호호(家家戶戶)앞에서 탁발을 해야 불전에 공양을 올릴 수 있었고, 끼니를 떼울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탁발을 했었다.

그러나 국민경제가 좋아진 지금에는 많은 사찰이 예전 천석군(千石君), 만석군(萬石君)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어 있다. 일부 승려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해외 골프와 선상 낚시를 즐기며,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을 즐기는 설(說) 조차 나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한국불교는 오히려 고해대중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시대의 올바른 불교실천이다. 자신은 탐욕을 부리면서 고해대중에게는 돈을 달라 탁발가를 불러야 되겠는가.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졸부(猝富)가 될 수 있는 곳은 조계종이라는 말조차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학벌도 필요 없다. 실력도 필요 없다. 줄을 잘 서 돈 많이 나오는 사찰 주지를 한 번 하면 졸부가 되는 것이다. 직장이 없어 거리를 헤매는 구직자들이 1백만이 넘는 작금의 세상에, 입으로는 무소유를 강변하면서, 돈 많이 나오는 사찰 주지를 하기위해, 또 연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가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아아, 중이 될 때의 본원(本願)은 진짜 무소유 수행자가 아닌 졸부였든가? 졸부가 되고져 불교를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사자신충(獅子身蟲)이다.

앞서의 사자신충같은 자들이 졸부가 되어 벌이는 행각 가운데 더욱 경악스러운 행각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망치기를 위한 이적행위를 하는 것이다. 진실한 신도들이 부처님께 바친 시줏돈을 수술비가 없어 죽어가는 어린 생명이나, 여타 가난한 중생을 돕는 복지를 위한 보시를 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망치기를 위해 지원하는 것이다.

사자신충같은 자들이 하나같이 벌이는 언행은 수백만을 기아로 인민을 죽이면서 북핵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죽여오는 북한 세습독재자인 김정일에 대해 질타가 없이 추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사자신충같은 자들이 활보하는 세상이기에 불교의 교세는 나날히 추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한달에 단 돈 1만원의 고정급여가 없는 사람이다. 승려가 주지를 하지 않고, 진실한 신도들에게 탁발가, 구걸가를 부르지 않는다면, 돈이 어디서 나올까? 그런데 어떻게 먹고살며, 사이트는 어떻게 운영하는가? 에 대해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한국불교계에서 승려로서 필자 혼자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소신의 글을 집필하기에 공감하는 승려와 신도들이 가믐에 콩나듯, 조금씩 보조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필자의 글을 보고 동의한다며, 서울 거리의 탁발승이 2만원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사이트는 미국에 거주하는 자유대한의 애국교포가 만들어 주어 글을 써오고 있다. 왜 구구한 이야기를 하느냐면, 수백억 부자 절 주지를 더하기 위해 사회와 조계종간에 시비를 일으키는 자에게 “탐욕을 버리라”는 뜻이다. 속인은 돈을 많이 벌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소유를 말하는 승려가 돈이 많으면 사기꾼이요, 도적일 뿐이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는 돈이 아니요, 마음에 있다고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면서 내심은 탐욕을 부리는 자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필자에게 좌파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좌파가 어딧나? 당신같은 극우자(極右者)가 좌파, 우파를 만든 것이다”며 맹공격을 한다. 한국사회에 정말 좌파가 없나? 좌파는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북한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에 시비를 걸어대고 있다. 필자는 극우자가 아니다. 좌파를 향해 질타를 하는 이유는, 오직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자유의 터전에서 불교중흥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필자는 지병이 깊어지고 있다. 지병이 악화되면, 자유대한을 위한 글을 쓰는 것도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그 때 가서야 필자에게 욕설을 해오는 좌파 인사들의 이메일, 전화도 종지부를 찍지 않을까.

이 글의 주제는 운명이다. 개인이나, 단체나, 종단이나, 국가나 운명이 있는 것이다. 그 운명의 흥망성쇠는 개인이나 구성원들이 만드는 것이다. 불교의 구성원들인 승려들이 고해대중에게 진실하게 대하지 않고, 종교를 말살하는 북한정권에 충성 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망칠 때, 국교였든 불교는 저 인도와 아프카니스탄에서 불교가 이슬람에 의해 소멸되었듯이, 북한정권에 의해 소멸당할 수 있다. 북한불교를 보라. 진짜 승려는 사찰에 단 한명이 없다. 예전의 승려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민재판에 의해 처형되거나, 강제환속, 그리고 요덕수용소같은 사상교화소에서 김일성어록을 염불처럼 외면서 죽어갔을 뿐이다. 북한 사찰에는 진짜 수행자는 없고, 관광 안내원만 있을 뿐이다. 그런 불교를 원하는 것인가?

오늘날의 한국불교는 지난날 국교였다는 추억만을 안고 살 뿐이다. 필자를 포함한 부족한 승려들 탓으로 국교였든 불교가 기독교, 천주교 등의 종교에 의해 추월당하는 지경이 눈앞이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거나, 오불관언(吾不關焉)으로 오직 첫째, 돈많이 나오는 절에 탐착하여 사회혼란을 일으키어 지탄을 받고, 둘째, 종교말살의 북한정권에 빌붙고 충성하여 대한민국을 향해 도끼질을 상습적으로 한다면, 대한민국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도도한 민심이 떠나버려 한국불교의 운명은 소멸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거듭 경고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 이법철(www.bubchul.net/전재 및 재배포 허용)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