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의식에는 고해성사라는 게 있다. 신부님은 신자들로부터 고해성사를 듣는다. 이러저런 신앙적인 이야기이겠지만 사생활도 털어놓게 된다. 심지어 상대에 따라서는, 고해성사자가 범인이었다면. 살인을 했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고해상사를 바치는 신부에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받았던 신부가 신자의 사생활을 털어놓거나 사법기관에 고해바쳤다는 말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가톨릭과 불교는 신앙의 섬김, 즉 신앙의 주체가 다른 종교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종교에도 여러가지 금기가 있다. 성직자가 습득한 정보를 마음대로 털어놓거나 거기에다가 사실이 아닌 것을 더 덧붙여서 세상에 알린다면 그 성직자의 정신적 생명은 거기에서 끝날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불교 조계종의 한 성직자의 행보가 가톨릭 성직자와 불교 성직자의 다름을 부각시키는 듯한 사건이 발생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불교 조계종단은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외압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과 봉은사가-.불교단체들은 지난 4월 30일에 사태 해결의 방안을 찾는 토론회를 열었다. 조계종 총무원 측에서는 총무부장 영담 스님 등 3명, 봉은사 측에서는 명진 등 3명, 그리고 불교단체에서도 대표 3명이 참석한 토론회 자리였다.
이 토론회 석상에서 사회자가 문제의 승려인 명진 스님에게 “봉은사 사태가 외압이나 명진스님의 사퇴를 위한 게 아니라고 한다면 사과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명진 스님은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와 총무원장 스님과의 얘기는 아직 30% 밖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그의 발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추가로 밝히겠다며 만약 자기 주장이 거짓이라면 주지에서 물러나고 승적을 파겠다는 주장을 폈다.
성직자의 덕목은 남의 비밀이 공개되어 사회의 독이 된다면, 아는 것도 감춰주는데 있다. 성직자로 한평생을 사는 동안에 신도들의 감춰두고 싶은 사생활적 비밀이 한 두 가지이겠는가? 총무원장 관련발언의 나머지 70%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또 그런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세속인으로서 매우매우 궁금할 뿐이다.
명진 스님이 어떤 인연이 있어 총무원장 스님과 정치인 간의 모임자리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당사자들 간의 문제이다. 애초 이 문제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이라는 조계 종단 내부의 문제였다. 그런데 명진 스님이 개인적인 이유로 정권외압설까지 주장, 사건의 파장이 커졌다고 본다.
명진 스님은 봉은사의 직영이 안상수 원내 대표의 외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크게 부풀려져 있다는 게 조계종 총무원측의 해명이다. 봉은사 직영 전환은 이미 2005년에 결정된 사안이라는 것. 직영화의 결정도 조계종 중앙종회의 의결 절차에 따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진 스님은 종교 내부문제를 이념과 정치 문제로 끌어당겨 신도들을 선동하고 진실을 왜곡해왔다.
명진 스님은 봉은사의 일요법회를 통해 신도들에게 자신이 정권에 의해 탄압받고 있는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려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지난 4월 18일 일요법회에서는 “봉은사에서 이루고자 한 꿈이 힘들겠구나 싶으면 점차적으로 내 몸에 피와 고름을 묻히고 더러운 냄새를 맡더라도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종단의 부조리와 권력야합 행위들을 배를 가르겠다”라고 말했다. 영혼의 정화를 위해 참석하는 종교집회에서 “배를 가르겠다”라는 격앙된 말을 했던 이유는 진정으로 무엇일까? 종교지도자가 할 말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말인 듯 하다. 걸러지지 않은, 순화되지 않은 감정의 떨림을 담은 법문이 신도들에게 과연 유익한 것일까?
명진 스님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속한 종단을 향해 “부처님 법의 탈을 쓴 이해집단으로 종단이 전락하는 것을 놔둘 수 없다”고 말했다. 불교계 안팎에서,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위해 불교계 전체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차나 한잔 마시면서 나눈 가벼운 이야기 속에 그토록 악독한 독이 들어 있었단 말인가? 의아스럽다. 명진 스님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를 알만하다.
명진 스님의 현재-과거 전력은 부처님 법에 비춰 100% 깨끗한 승려일까? 모든 인간은 완전한 절대자 앞에서는 모두 불구자이다. 마찬가지로 불교가 정한 갖가지 계율을 지키며 사는 완벽한 승려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명진 스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각 언론들은 명진 스님의 과거 행각을 문제 삼고 있다. 계를 지켜야할 스님이 가서는 안될 장소에 가서 이해 못할 짓을 했다는 것이다. 밤의 술자리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명진 스님은 이적단체로 분류된 범민련 후원회장을 지냈다. 이 당시 발언 내용을 보면,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위원장과 관련된 친북성 발언도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인간에게 떳떳하지 않은 과거는 있을 수 있다. 명진 스님도 역시 떳떳하지 못한 과거 행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성직자로서 성직자가 지녀야할 덕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가 가톨릭의 고해성사에서 나온 말은 아닐 지라도, 성직자로서 품위는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간 그가 쏟아놓은 말들은 수많은 불교 성직자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누가 스님을 믿고 이런저런 말을 하겠는가?
종교를 개인의 욕심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술책은 이미 낡고 어두운 술책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저급 행동을 하는가? 그것도 성직자가.
명진 스님과 관련, 필자가 칼럼에서 지적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명진 스님은 당장 다 불어라!
막말로 명진 스님이 폭로하려는 말 속에 나라가 망할만한 중대한 말이 들어 있겠는가, 아니면 그 말 속에 조계종단이 없어질 수 있는 위험한 말이 들어 있겠는가? 단호한 결론은 “아니다”이다. 나라나 조계종단의 존재와는 무관한, 사적(私的) 말장난일 뿐일 것이다.
불에 타버린 나무가 새 싹을 틔우지는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무(無)로 돌아간다. 명진僧, 그는 이미 스스로가 스스로를 태워버린 재와 같은 성직자다. ◇
문일석(주간현대, 사건내막, 브레이크뉴스 대표,moonilsuk@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