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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 정객, 지미 카터의 초라한 말로(末路)

-미국은 언제까지 중국이 두려워 북한에 사죄할 것인가-


미국은 또한번 자국 국민을 적지에서 구출하는 감격적인 모습을 미 전대통령 지미 카터 (미국 39대 대통령, 재임기간:1977-1981)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미 가터는 지난 8월 25일, 불법입국죄로 북한 당국에 수감되어 고통속에 자살까지 시도한 미국인 곰즈씨를 석방키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그런데 필자의 관심은 친북정객 카터가 받은 김정일에의 홀대이다. 김정일은 국제사회가 개탄하는 홀대를 해버렸다.

카터는 대한민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친북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트루먼과 맥아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하여 꽃다운 나이에 공산주의자들의 총포에 살해되고, 중부상 당해 고통속에 신음하는 미국인과 기외 유엔군들을 무시하듯, 북한정권의 수령, 김일성과 친교를 맺었다. 카터는 북한으로 달려가 김일성을 보비위하듯 찬사를 하고, 특별대우를 받았다.

카터가 그의 조국 미국에 일말의 충성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스탈린과 모택동과 짜고 ‘6, 25 남침전쟁을 일으키어 미국의 우방인 한국인 수백만명을 살상하고, 미국인을 위시한 유엔군을 살상한 김일성 앞에 연방 입을 헤프게 웃어 이빨을 보이는 웃음속에 김일성과 함께 대동강 유람을 하는 모습의 사진을 국제사회에 자랑스럽게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카터는 왜 김일성에게 보비위하듯 언행을 했을까?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척 하면서, 내심은 국제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서는 김일성왕조를 건설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환장한 것일까? 아니면 김일성이 보안속에 건네는 검은 돈 때문이었을까? 항설(巷說)에는 김일성의 하사금조로 큰돈을 받아 Carter Center도 마련했다는 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자들은 포섭 대상자를 돈과 미희로서 접대하여 수하에 이용한다는 고담(古談)이 있고, 작금에 평양행 한국인 일부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미주가효(美酒佳肴)와 절세미녀들을 동원하여 접대하여 혼백을 빼앗고 충성맹서를 받는다는 설이 있는데, 카터도 혼백을 빼앗는 접대를 받아서 친북행각에 주저하지 않은 것이었을까? 필자는 그 설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카터에 대한 친북 행각에 대한 분분한 항설은 전부 믿을 것은 아니나, 카터는 김일성의 맹우(盟友)였다는 것은 주장할 근거는 있다.

카터는 김일성을 위해 충성같은 어떤 일을 자행했다고 볼 수 있나? 첫째,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반공의 보루를 높이 구축하고, 들째, 6,25 참전으로 희생된 우방 미국에 보은키 위해 월남참전을 결행했고, 셋째, 한국경제의 초석을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광적으로 증오하고, 주한미군 철수 등 해코지하는 음모의 공작을 펼친 것이다.

1979년 6월29일 카터는 도쿄에서 7개국 경제 정상회담을 마치고 김포로 들어오게 되었다. 영접 나간 박정희 대통령은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카터는 두 시간이나 기다린 박대통령과 악수만 나누고, 곧바로 미 해병대 헬기를 타고 동두천 미 2사단내의 숙소로 떠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카터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조깅을 시작했다. 카터는 반바지의 조깅을 하기 전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어야 했다. 카터는 그것을 무시하고 제마음대로 반바지로 뛰었다.

1979년 6월 30일, 카터와 박대통령은 제1차 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에서 대좌했다. 한국측에서는 최규하 총리, 박동진 외무장관, 노재현 국방장관, 서종철 안보특보, 김용식 주미대사, 김계원 비서실장, 통역을 맡은 최광수 의전수석 비서관이 배석했다. 미국측에서는 밴스 국무장관,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 글라이스틴 대사, 베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배석했다.

이날 박대통령은 카터는 대통령 후보로서의 공약이 주한미군 철수였기에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부당성에 대해 카터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박대통령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방위뿐 아니라 동(東)아시아와 자유세계의 방어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점을 역설했다. 박대통령은 내심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한미군을 울타리 삼아 산업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박대통령은 애소하듯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보류하기 위해 열심히 카터에게 설명했으나, 카터는 펜을 들어 메모지를 들고 경청하는 척 했으나 불쾌한 얼굴로 카터는 메모를 적어 은밀히 브라운 장관과 밴스 장관에게 슬쩍 넘겼다. 거기엔 “ 저자의 입을 닥치게 하시오.”, 또 “만약 박정희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주한미군 전원을 철수시키고 말겠소”라고 적혀 있었다.

<두 개의 한국>이란 책을 쓴 돈 오버도퍼 기자에 따르면 카터의 철군(撤軍) 특사 하비브와 브라운은 카터 대통령이 1977년 5월 초에 서명한 1급 비밀문서(撤軍 일정표)를 박 대통령에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1978년 말까지 1개 여단 6,000명을 빼내가고, 1980년 6월 말까지 또 1개 여단과 지원병력 최소 9,000명을 철수하며, 한국에 있는 핵무기는 줄여 가다가 철군(撤軍) 완료와 함께 다 가지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군론은 박대통령에게만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주한미 8군 사령부 참모장 존. K. 싱글러브 소장이 철군부당성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주한 미 8군 참모장은 WP지 동경 지국장과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을 철수 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카터는 격노했다. 싱글러브 소장을 백악관으로 소환하더니 30분 면담후, 그를 미8군 사령부 참모장직에서 해임했다. .싱글러브 소장의 용기있는 행동은 아직도 한국인들은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환영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싱글러브 소장의 용기있는 발언의 배후에는 뜻을 함께하는 당시 ‘베시’주한미군 사령관이 있었다. 베시 사령관은 6·25 때 주한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한 반면 휴전 이후에는 전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주한미군이라는 전쟁 억지력이 엄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싱글러브 소장이 직위해제를 당해야 했듯이, 베시 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 물망에 올랐으나, 카터의 농간으로 참모차장에서 옷을 벗어야 했다.

대한민국에도 대통령의 군사문제에 대한 부당성에 정면 문제제기를 하여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을 바꾸려는 베시 사령관과 싱글러브 소장같은,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장군들이 출현해야 해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주지하시다시피 민족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주한미군이 철수했기에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는 제2 한국전을 불러들이는 흉계요, 음모였다.

마침내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정책과 박대통령에 대한 증오는 미 CIA의 충견인 김재규 정보부장의 손에 박대통을 암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시 주한 미대사 글라이스틴과 CIA 한국 지부장 부르터스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장차 역사가 증명하겠으나, 카터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증오는 김재규가 암살의 총을 뽑도록 고무시켰을 것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규는 자신이 천거한 참모총장 정승화를 별채에 대기시커 놓고, 박대통령을 시해한 것이다. 땅을 치고 통분으로 호곡할 일이다.

월남에서는 미CIA가 사주하여 월남의 국가원수인 디엠이 성당에서 미사드리고 나오는 순간에 같은 월남군인들이 디엠을 자동차 안으로 강제로 밀어넣고 디엠을 암살한 것은 국제사회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강대국인 미국은 약소국의 정치 지도자는 제마음대로 파리 죽이듯 하는 특권이 있는 것인가? 세계 도처에서 미국은 음모했다. 보릿고개 때면 아사(餓死)하는 민초들이 속출하는 한국을 아사하지 않도록 조국에 충성한 박대통령의 암살도 배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후의 사주를 받았건, 아니건, 국가원수를 암살한 암살자와 그 패거리들이 정권을 잡을 뻔 했다. 그러나 우리의 충의로운 국군들이 궐기하여 암살자와 패거리를 법정에 세운 것은 첫째, 암살자의 배후자들을 간접 응징한 것이요, 둘째, 암살자와 패거리를 응징한 것이니, 필자는 태극기를 흔들어 충의를 찬양하는 바이다. 어떤 자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제마음대로 죽이는가!

카터는 재선에서 레이건에게서 실패했다. 낙선한 그는 비로소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카터는 자발적으로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에게 인사하고, 그의 로비스트가 되었다. 그의 로비스트로서의 수훈갑(殊勳甲)은 94년 6월, 클린턴 대통령이 북핵을 저지하기 위해 영변 원자로를 폭격하려는 시나리오를 잠재운 것이다.

1994년 6월 14일, 클린턴 대통령은 장관급 회의를 할 때, 작전명, "오시라크(Osirak) 옵션"이라고 불린 새로운 대안을 화제 삼았다. 오시라크는 1981년 이스라엘이 공중폭격을 통해 파괴한 이라크의 원전시설을 의미했다. 카터는 즉각 김일성에게 달려갔다. 위급을 알려주고, 클린턴에게 전화하여 폭격을 막았다. 카터의 주한미군철수론은 가까이로는 김일성을 위해, 멀리는 소련과 중공을 위한 공작이라고 볼 수 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군론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무산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월과 1985년 4월, 2차례에 걸쳐서 미국을 방문하고, 1983년 11월에는 레이건 미 대통령을 서울로 초청하여 3차례에 걸쳐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첫 번째는, 전두환 대통령이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한지 1주일만인 1981년 1월 28일부터 2월 7일까지 10박 11일 동안 미국을 방문하여 2월 1일 오전 11시 백악관의 대통령집무실에서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때 전임 카터행정부에서 제기했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백지화하고, 안보협력을 강화했다.

박대통령이 오매불망 한국전의 폐허 위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주한미군을 울타리 삼아 산업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념이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구현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래전통의 예절은 친구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어머니”로 호칭히고, 자신의 어머니 대하듯 예를 갖춘다. 아버지의 친구 역시 아버지를 대하듯 예를 갖추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카터는 아버지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악 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25일 방북한 카터에게 김정일은 아버지의 맹우인 카터를 영접하지 않고, 외면하고, 제자식 대동하여 중국으로 유람을 떠나버렸다. 이 무슨 홀대의 극치인가? 낙원동 5호선 6번출구 먹자 골목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노인들이 김정일을 두고 “후레자식!”이라고 성난 논평을 해대고 있다. 왜 그곳 뿐일까?

김정일은 왜 후레자식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처신을 국제사회에 보여주었을까? 카터는 김일성의 맹우가 아니었을까? 카터는 김일성이 검은 돈을 쥐어주고 이용하는 고용주와 피고용주와의 사이였을까? 아버지가 부리던 노복(奴僕)정도로 치부하여 만나 줄 필요성이 없다는 것일까? 김정일의 방약무인의 행동은 카터를 국제사회에 초라한 신세로 만들었고, 미국을 엿먹였다. 중국의 백을 믿고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극치를 보여주는 김정일이 아닐 수 없다.

카터는 김일성에게는 환대받는 인물이었느나, 김정일에게는 만나 줄 필요도 없는 인물로 전락되었다. 카터는 지난 1월25일 북한에 무단입국한 뒤 체포돼 8년 노동교화형과 7천만원(북한 원화 기준)의 벌금을 선고받았던 곰즈씨를 약 7개월만에 자유의 몸으로 특사를 받게 하여 지난 27일, 대동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조선중앙통신은 사나운 음성으로 이렇게 보도했다. “카터는 미국 정부와 전(前) 대통령의 이름으로 곰즈의 불법 입국에 대해 사죄하고 재발 방지를 담보하면서, 위대한 장군님(김정일 지칭)께서 특사권을 행사해 돌려보내 주실 것을 요청하는 편지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장을 통해 올렸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에 의하면, 카터를 만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국제사회가 만류하는 북핵(北核)을 만들어 한국과 미국을 공갈협박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조선반도 비핵화”는 무슨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인가? 사기협잡도 유분수이지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면서 왜 북핵을 폐기하지 않는 것인가? 개가 크게 대소할 대화를 나누었으니, 그것도 카터와 농담 따먹기를 한 것이다.

끝으로,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을 지낸 카터가 친북 행위로 일관하다가 맹우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에게 만나주지도 않는 홀대를 받으면서 곰즈를 위해 사죄하고, 곰즈의 벌금을 대납하고, 간신히 곰즈를 대동하고, 북한을 방문할 때나 떠나갈 때 초라한 모습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오바마도 카터가 친북정객이라는 것을 알고 보냈을 것이지만, 김정일에게 그토록 홀대를 받을 것은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친북 정객 카터의 말로를 보는 것같다. 카터여,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그대는 천수를 다하기 전, 대한민국 국민들과 박대통령에게 사죄할 것을 맹촉하는 바이다.◇


이법철(bubchul@hotmail.com)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