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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1950년 6월25일의 朴正熙와 金鍾泌


한국군이 전면 남침이란 결론을 내린 것은 남침 여섯 시간 뒤였다. 박정희는 고향에서 전보를 받았다.

새벽 3시 직후부터 全(전) 전선에서 인민군의 남침을 전하는 보고가 육본 정보국 상황실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全面戰(전면전)이란 판단을 한 당직장교 김종필 중위는 정보국장 장도영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북괴군이 全 전선에서 포격을 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나는 잠결에 그 이야기를 얼핏 듣고 수화기를 놓다가 말고 잠이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 벌떡 일어났다. 김 중위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포격이 심하면 有線(유선)이 끊어질 염려가 있으니 연락이 두절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 하라. 내가 곧 나간다”고 지시했다>(《장도영 회고록》 중)

장도영 국장은 육본의 국장들 가운데 가장 먼저 새벽 5시쯤 나왔다. 새벽 4시 서울역, 6사단 정보참모로 전출되는 前(전) 전투정보과장 유양수 중령은 전송 나온 이영근 중위와 두 명의 장교들에게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정신 차려 근무하라”고 당부하고 원주行(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네 시간 뒤 원주 사단본부에 도착해서야 그는 6사단이 공격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김종필은 육본의 국장들에게 연락을 취한 뒤, 귀가하여 막 잠이 든 이영근 중위를 비롯한 정보국 장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새벽잠을 깨웠다. 그는 또 작전국으로 달려가 일직사령에게 “전군에 비상을 걸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사령은 “나에겐 그런 권한이 없다”고 했다. 전군 비상령이 내려진 것은 전면 남침 후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인민군의 남침에 대한 작전을 총지휘해야 할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24일 밤 육본 장교구락부 준공식 파티에 참가하여 밤늦도록 놀다가 25일 새벽 2시쯤 관사에 돌아왔다. 육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관사로 최초의 전화가 걸려온 것은 새벽 5시 10분쯤. 6사단 7연대장 林富澤(임부택) 중령이었다.

전속 부관 나엄광 중위가 전화를 받았다. 임 중령은 “華川(화천)지구 전면에 걸쳐 적이 포격을 가해오고 있으니 빨리 총장님에게 전하라”고 했다. 나 중위가 총장 부인 白慶和(백경화) 씨를 깨웠고 백 씨는 남편을 깨웠으나 채병덕은 잠결에 “어차피 38도선의 분쟁일 거야”라고 말한 뒤 다시 잠들어버렸다. 임 중령은 그 전에 金鐘五(김종오)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간밤의 장교구락부 파티에 참석하러 서울에 가고 사단에는 없었다.

이날 새벽 대부분의 일선 사단은 파티 참석 등의 사유로 사단장(수도권 부대에서는 연대장까지)이 營內(영내)에 없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 전체 병력의 3분의 1 이상이 외출, 또는 農繁期(농번기) 휴가로 나가 있었다. 육본에서는 아무리 총장 관사로 전화를 걸어도 바꾸어 주지 않자 일직사령이 달려왔다.

그제야 잠자리에서 일어난 채병덕은 신성모 국방장관 공관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채 총장이 장관 비서실장 申東雨(신동우) 중령에게 전화를 거니 “공관에 계시지만 그분은 일요일에는 전화를 받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습관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채 총장은 신 중령을 불러 함께 신 장관을 찾아갔다. 신 장관은 잠옷 차림으로 응접실로 나와 지도를 앞에 놓고 채 총장의 보고를 청취했다. 이때가 남침 개시 네 시간이 지난 아침 7시쯤.


전쟁지휘를 하는 데 있어서 육군총참모장에 못지않게 중요한 직책은 육본 작전국장이었다. 육본에서 김종필 중위는 장창국 작전국장을 찾으려고 했으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장 대령은 육본 근처의 관사에 살다가 한 일주일 전에 아현동으로 이사를 갔고 아직 전화를 집에 놓지 못하고 있었다. 육본에선 헌병들을 아현동으로 보냈다. 이날 아침 장 대령은 아내와 함께 마포 어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사가지고 왔다고 한다. 한가롭게 집에 있는데 바깥에서 사이렌이 자꾸만 울려대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헌병차였다. 그 차에 타고 육본으로 달려갔다. 그는 남침이 시작된 지 일곱 시간이나 지난 오전 10시쯤 육본에 도착했다. 이때는 벌써 開城(개성)이 적의 수중에 떨어진 뒤였다. 남침 시작 일곱 시간이 지나도록 일선 사단과 육군본부의 지휘탑은 술 취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6시 30분 서울역 상공에 검은색 야크 전투기가 저공 비행으로 출현했다. 육본 근방의 對空(대공) 포대에 있던 수도사단 8연대 소속 姜英煥(강영환) 중위는 50mm 기관총으로 야크기를 향해서 수십 발을 쏘았다. 야크기는 한강 쪽으로 사라졌다. 한 10분 뒤 육본에서 장교가 튀어나오더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사격을 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강 중위나 그 장교나 남침이 시작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육군본부가 전면전이란 결론을 내린 것은 25일 오전 9시를 지나서였다. 연중 계속되던 38선상의 국지전 정도라고 생각하고(또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던 육본 참모들은 상황실 지도판을 뒤덮기 시작한 붉은 화살표의 南進(남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오전 10시에 경무대에 들렀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경회루 연못으로 낚시를 간 뒤였다. 오전 10시 30분 집무실로 돌아온 대통령에게 신 장관이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탱크를 막을 길이 없을 텐데…”라고 했다.

이 시간에 김종필 중위는 미래의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한다. 박정희는 사흘 전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김 중위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 근무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구미경찰서로 연락하라”고 못을 박아두었던 것이다. 1975년 6월 25일자 일기에 박정희 대통령은 25년 전의 그날을 적었다.

<1950년 6월 25일 나는 고향집에서 어머님 제사를 드리고 문상객들과 사랑방에서 담화를 하고 있었다. 12시 조금 지나서 구미읍 경찰서에서 순경 한 사람이 급한 전보를 가지고 왔다. 장도영 대령이 경찰을 통해 보낸 긴급전보였다. ‘今朝未明(금조미명) 38선 전역에서 적이 공격을 개시, 목하 전방부대는 적과 교전 중. 급히 귀경’이라는 내용이었다. 새벽 4시에 38선에서 전쟁이 벌어졌어도 12시까지 시골 동네에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동리에는 라디오를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후 2시경 집을 떠나 도보로 구미로 향했다. 경부선 上行(상행) 열차에 병력을 만재한 군용열차가 계속 북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5일 야간 북행 열차를 탔으나 군 병력 前送(전송)관계로 도중 역에서 몇 시간씩 정차를 하고 기다려야 했다. 이 열차가 서울 용산역에 도착한 것은 27일 오전 7시경이었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불안에 싸여 있고 위장을 한 군용차량들이 최대한도로 거리를 질주하고 서울의 거리에는 살기가 감돌기만 하였다. 용산 육본 벙커 내에 있는 작전상황실에 들어가니 25일 아침부터 밤낮 2晝夜(주야)를 꼬박 새운 작전국, 정보국 장교들은 잠을 자지 못해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질서도 없고 우왕좌왕 전화통화로 실내는 장바닥처럼 떠들썩하기만 하였다> ◇


趙甲濟(조갑제 닷컴 대표)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