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무상 보육에 필요한 예산 가운데 서울시가 분담할 돈의 부족 부분을 2000억원의 지방채(債)를 발행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서울시가 추경을 편성해 무상 보육 예산을 확보하면 정부 몫의 지원금을 보내주겠다고 해왔다. 이렇게 해 무상 보육 중단 사태가 일시적으로나마 고비를 넘긴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식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내년부터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는 여전히 막막하다.
문제는 작년 말 국회가 재정 확보 방안 없이 '소득 하위 70%'를 주된 지원 대상으로 삼은 정부의 무상 보육 계획을 '소득에 관계없이 0~5세 아이를 둔 모든 가정'으로 확대시키면서 비롯됐다. 무상 보육 예산은 재정 자립도가 높은 서울시의 경우는 '국비 20%+지방비 80%'로, 나머지 지역은 '국비 50%+지방비 50%' 비율로 마련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만 80%를 부담하는 건 불공평하다"며 영·유아보육법을 바꿔 서울시 부담을 60%로 줄여달라고 요구해 왔다.
무상 보육 정책을 지금처럼 끌고 가려면 국민 세금을 더 걷든지 빚을 내든지 아니면 기존 사업 예산을 절감하는 방법밖에 없다. 무상 보육비를 정부와 지자체가 어느 정도씩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은 부차적(副次的) 문제다.
지방채 발행은 증세(增稅)에 대한 납세 저항이나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이해집단의 고통을 피하면서 부담을 다음 세대로 떠넘겨버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건 우리 세대의 빚을 우리 아들·딸들의 어깨 위에 얹어놓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10월 "2014년까지 서울시 부채를 7조원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취임 당시 산하기관까지 합쳐 19조9800억원에 이르던 서울시 부채가 현재 18조4300억원까지 줄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내건 목표엔 크게 모자란다. 이 상황에서 2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 새 빚을 얻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빚을 내겠다고 하기에 앞서 고통스럽더라도 공공 부문 지출을 어디에서 얼마큼 줄이겠다는 구체적 각오를 보이고, 무상 보육 정책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代案)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