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경희대 교수·국제학
김관진 국방장관이 지난 일요일 한 연설에서 북한이 국내의 종북(從北)세력과 손잡고 ‘4세대 전쟁’을 획책하려 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여기서 4세대 전쟁이란 비국가 조직이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비정규적이고 비대칭적인 공격활동을 가리킨다. 이러한 4세대 전쟁이라는 개념이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유용한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러나 김 장관이 이 용어를 사용하며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선, 우리 사회에 ‘대한민국의 체제와 이념을 부정하는 종북세력들이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북한과 연계해 ‘사이버전·미디어전·테러 등으로 사회 혼란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보(安保)를 지키는 것이 우리 군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는 것이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발표 이후 우리 사회에는 김 장관이 말하는 4세대 전쟁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라면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공안사건을 터뜨려 이른바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종북세력의 존재와 이들의 파괴적 활동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다.
물론 아직도 과거와 같은 인식의 틀로 이석기 사건이나 노무현·김정일 남북회담 회담록 공개 사건을 바라보는 정치세력이 있다. 국정원이 이러한 사건들을 터뜨려 자신이 저지른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물타기 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가능성, 또한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치적 논란으로 증폭시킬 게 아니라 그 진실을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안보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분단과 적대적 공존의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큰 숙제다. 특히,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보여주듯, 국내의 종북세력들이 제도권 정치 속으로 들어와 합법적 수단을 활용하며 대한민국의 안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면 이런 세력들이 발붙일 틈이 없어질 것이라는 근본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담당하고 있는 국군과 국정원이 이러한 가능성을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처하는 것을 막아서도 안된다.
과거처럼 민주화 세력을 용공(容共)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공안통치의 잘못을 결코 반복하지 말아야 하지만, 자유와 민주의 이름 뒤에 숨어 이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을 모른 체하고 심지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까지 해주는 잘못을 저질러서도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세력들이 공안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공안사건을 조작하는 행위도, 민주의 가면을 쓰고 친북(親北)·종북 행위를 하는 행위도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군과 정보기관이 조국 분단의 현실에서 북한 관련 업무를 엄정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그 정체성과 역할을 보장해 줘야 한다. 남북교류와 협력은 통일부와 같은 정부의 다른 부서가 수행하게 하고, 군과 정보기관을 이러한 목적에 끌어들여선 안된다.
이제 우리도 민주주의와 안보를 더 이상 대립적인 개념으로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양쪽 모두 대한민국의 중요한 가치다. 우리는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다. 어렵게 성취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안보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민주정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