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에 실시되는 지차체 선거 등 선거철에 대한민국 수호와 번영을 간망(懇望)하는 보수우익의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에게 고귀한 선거의 표(票)를 주어야 할 것인가? 물론, 진보라는 미명으로 좌파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변함없이 표를 찍고, 보수우익 유권자들을 유도하기 위해 현혹술을 부려댈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보수우익의 민심은, 왜적과 전쟁중 한산도(閑山島) 수루(水樓)에 홀로 앉아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깊은 시름 잠긴 이순신(李舜臣)장군같이, 깊은 시름에 잠겨 보인다.왜 선거를 앞 둔 보수우익의 민심을 이순신(李舜臣)장군과 비교하는 주장을 하는가? 근거는 이순신장군과 그를 따르는 충의장병들이 제아무리 목숨 바쳐 조국 조선(朝鮮)과 선조(宣祖) 조정을 위해 수호해도 왕과 측근인 신하들은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순신을 연행하여 죄를 뒤집어 씌우고, 고문을 가했고, 계급도 없는 군인으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모욕을 주었듯이, 보수우익이 제아무리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번영시키기 위해 진력해도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과 정부는 보수우익의 여망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보수우익이 대통령을 선출해주고, 국회의원을 과반수로 선출해 주어도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가장 가슴 아프게 들리는 소리는 한국인의 정치 한계를 지탄하듯 모욕을 주는 말이다. “한국인에게 민주화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것같다” 는 말이다. 왜 한국정치에 희망이 없다는 소리가 충천하는 것인가? 미국군의 덕택에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후 한국인은 자유민주주의를 시작했고, 어언 70년이 가까워온다. 그러나 무슨 잡귀(雜鬼), 악귀(惡鬼)의 농간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본연 근성인지 민주화를 다투워 말하면서도 여전히 민주화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고, 여전히 지역주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분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같은 한국정치가 보일 뿐이다. 오죽하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한국인의 개혁해야 할 근성을 두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절규하듯 외쳐 각성시키려 했겠는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전라도, 경상도” 등 지역주의가 만성병 노릇을 했다. 그러나 전북은 물론, 전남의 각 지역에서는 與野를 가리지 않고 지역 민심에 인정받는 인재라면, 국회의원에 당당히 당선될 수 있었다. 인재 위주가 있었던 것이다.예컨대 전북에는 전북 출신 보수우익 정치인 이철승(李哲承)의원이 정
국민 대다수의 분노하는 여론은 박근혜정부의 2014년 예산안 통과를 흥정으로 야합하여 與野가 통과시킨 국정원법은 박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통과시킨 국정원법은 국민 대다수가 대한민국을 망치는 북괴를 위한 보비위법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국정원법의 통과는 與野의 합작품이지만, 분명한 것은 야당의 승리요, 북괴의 승리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통과된 국정원법은, 與野가 北에 대해 이적행위를 했다는 여론이 충천한다. 북핵을 가지고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는 북괴에 대해 목숨바쳐 수비해야 할 대한민국이라는 성(城)을 수호하는 국정원의 눈을 멀게 하는 이적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야당은 어느 나라 의원인지 소속을 의심하게 하는 행동을 이번 국정원 법 통과에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친북, 종북 대통령으로 보수우익에 회자되는 DJ, 노무현의 정치사상을 계승하는 자들의 복심(腹心)인지, 18대 대선불복으로 1년 내내 민생은 아랑곳없이 투쟁해 국민을 실망시켜오더니 년말년시(年末年始)를 기해 북괴가 열광하며 기뻐할 국정원법을 통과시키고 말았다. 정치의 정도(正道)에 있을 수 없는 예산안 통과를 흥정으로 이용, 통과시킨 것이다. 여당은 다수당으로 왜 국
천주교의 성당은 오래전에 정부로부터 공권력이 못미치는 치외법권(治外法權)의 성역(聖域)으로 대우받은 지 오래이다. 성역의 대우를 받는 것은 해당 정부가 천주교를 대우하는 나라여야 가능할 뿐이다. 천주교는 물론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성역은 없다. 98년 12월 23일 법난(法亂) 이후, 한국불교 총본산인 조계종 본부가 있는 조계사는 명동성당같은 성역으로 정부는 대우하고 있다. 그 내막은 어떤가? 특정종교의 지역이 성역으로 대우받는 것은 헌법으로 명문화 된 것은 아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부가 종교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대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지탄하는 범죄자들을 뻔히 알면서 성당이나 조계사에서 숨겨주고 숙식을 제공하며 활발히 운동하게 하는 것은 준법(遵法)정신의 국민들에게 허탈감은 물론, 범죄자를 숨겨주는 종교에 대해 맹비난과 증오심을 자초하는 행위라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천주교는 범죄자를 숨겨주는 천주교를 향해 “준법!”을 외치는 국민들의 비난성에 굴복하여 80년대 이후 범죄자를 숨겨주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운동권 신부들은 범죄자를 숨겨주는 역할을 대신 조계사에 하게 한 듯 보이고, 범죄자들이 조계사에
지구촌 경제가 어려웠을 때 자본가에 의해 박봉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고통속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이라곤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는 공산당 선언은 하늘에서 내린 복음(福音)과 같았다. 하지만 작금에 한국의 민노총(民勞總)이 철도파업과 총파업을 주도하는 작태는 의미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배부른 일부 노동자들이 첫째, 대정부투쟁으로 정부를 무력화 하고, 둘째,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상습적인 만행과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이 지구촌의 노동자들에게 복음(福音)이 될 때의 무렵은 노동자들이 극빈속에 자본가들에게 노동력을 터무니 없이 값싸게 착취 당하고, 복지가 전무하다시피한 열악한 환경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공산주의 등장으로 1억 5천명이 넘는 남녀들이 지구촌에서 비명횡사를 한 후 “민주”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은 비교적 급여와 복지가 좋아졌다. 특히 민노총(民勞總) 소속의 핵심인 파업을 상습적으로 벌이는 자동차 노조, 철도 노조, 지하철 노조 등은 서민들로부터 귀족노동자, “배부른 노동자”로 비아냥의 대명사가 되어 된 지 오래이다. 상습적으로 파업을 일으키는 노조의 속셈은
대한민국 남녀 가운데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직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속세의 부귀영화를 추구하지 않고, 신불(神佛)을 갈구(渴求)하는 종교인들, 또는 몸은 속세에 살고 있지만, 정신세계는 속세를 초월한 달인지사(達人志士)는 혹 대통령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되려고 목을 매는 듯한 정치인들은 있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려는 뜻이 다른데 있는 것이 문제이다. 꿩이 오직 생각은 콩밭에 있듯이 말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타에 비교할 수 없는 국민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구원해주고, 헌신봉사할 수 있는 큰 마음과 경세(經世)의 탁월한 경륜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탁월한 경세와 경륜이 있고,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라고 본다. 그는 소련과 중공을 배후에 업고, 한반도를 적화(赤化) 하려는 김일성의 야망에 도저히 대한민국을 넘길 수 없다고 결심한 것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 당시 이승만 박사 보다 세계 정치를 통찰한 국내 정치 지도자가 또 있을까?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을 존중하고 사랑했기에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한 것이다.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한
北의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공식석상에서 강제 연행하고, 살해당한 소식을 국민에게 알려준 국정원의 정보 능력에 대해 국민은 기립박수를 쳐 찬사를 보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김정은의 처 리설주를 지목하여 “우리처럼 놀았다”는 말을 실토한 악단의 관계 남녀들을 호젓한 곳에서 기관총으로 난사하여 집단 학살하고, 그 시체에 화염방사기로 불을 뿜어 개태우듯 하다가 뼛조각까지 불에 태웠다는 뉴스는 국민들은 물론 국제사회를 경악시키고 남았다.또한 장성택의 측근들이 중국으로 황급히 도피, 한국행을 하기 위해 국정원 요원들에 보호, 심사중이라는 뉴스는 더 한층 국정원의 능력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고, 급기야 능력있는 국정원을 축소 하려는 야당에 대해 질책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김정은의 무자비한 처형방식과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옥도(地獄圖)와 비교할 수 없는 살인극을 연출하고도 눈섶 하나 미동하지 않을 냉혹무비한 김정은의 진면목을 보고 남북한의 국민들은 공포는 물론 평화통일은 신기루(蜃氣樓)와 같다는 것을 절감하지 읺을 수 없다.김정은이 고모부를 전격 살해한 것은 윤리를 중시하는 남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 오래오래 경계의 교훈으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북괴의 통칭 대남공작부서는 대한민국을 향해 민주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귀를 의심하는 헛소리 같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들의 속셈은 ‘조선인민민주화’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민주화라면 덮어놓고 반색을 하고 표를 주는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하기에는 최적의 민주화 구호인 것이다. 그 민주화 바람이 대한민국 민주화와 뒤섞여 혼란을 가져오고 대한민국의 운명을 나날이 재촉하고 있다.‘조선인민민주화’ 민주화를 충실히 봉대하듯 대한민국에 실행하는 자들이 즉 종북 좌파들이다. 타고난 반역자의 씨앗인지, 아니면 그 무엇으로 현혹하는 지 북괴가 감탄할 정도로 북괴의 그 민주화로 국민을 기만해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온전하고 번영하려면, 북괴가 조종하는 종북 좌파들이 60년이 넘는 세월에 대한민국 국민을 거짓 민주화로 기만해왔다는 것에, 국민들은 대오각성해야 할 때가 되었다. YC, DJ,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들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이었기에 국가원수인 대통령직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김씨 왕조에 존재했다면 김씨 왕조의 국가원수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일 것이다. 김일성 왕조 치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