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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언론의 세월호 왜곡 보도 사례 모음

조갑제닷컴은 세월호 사고 직후부터 사실에 기초하여 언론의 선동적 보도와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여 왔다. 리얼 타임에 李東昱, 趙甲濟 기자가 쓴 대표적인 비판 글을 뽑았다.

화물을 제대로 묶지 않으면 급회전 때 탈락, 배가 기울 수 있다
선장도 암초 충돌설 부인. '쾅' 소리는 컨테이너가 넘어지는 소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려 있었는데, 사고 전날에도 배가 기울었다는 증언 나와.

趙甲濟
*세월호 침몰 원인이 화물 적재 문제일 것이라는 점을 최초로 지적한 기사이다. 언론이 좌초설로 기울 때인 사고 당일 늦은 밤에 써올린 글이다.
침몰된 페리호 세월號(6825톤)에는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려 있었다고 한다. 승객들의 몸무게는 합쳐서 30톤 정도였을 것이다. 이 화물들을 무게에 따라 左右(좌우), 前後(전후) 균형을 맞추어 적재하고 단단히 묶지 않았다면 급회전 같은 어떤 충격이 올 때 화물이 탈락하거나 한쪽으로 급히 기울 수가 있다. 이때 컨테이너 같은 게 넘어지거나 떨어져 한쪽으로 쏠리면 선체가 더 빨리 기운다.
며칠 전 중국 연태항에서 약 3500톤의 화학비료를 싣던 북한 선적의 국봉호가 20도나 기울기 시작하였다. 선원들이 화물 적재를 중단하고 물탱크의 양을 조절, 균형을 회복하는 데 여덟 시간이 걸렸다.
뉴시스1이 전한 증언에서도 화물의 불균형 적재와 연관된 사고가 아닌가 의심할 만한 내용이 있다. 구조된 서희진(54)씨는 어제 오후 실종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씨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적재 화물의 무게 분포가 불안정 해져 배가 기울어진 채 항해하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서씨는 어제 아침 '전날 밤 휘청거렸던 방향과 같은 쪽으로 배가 넘어갔다'며 '사고 당시 '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쾅 소리가 들렸다고 해도 이는 배가 암초와 충돌한 소리가 아니라, (배가 기울거나 자체 무게로) 적재 화물이 넘어지거나 떨어지면서 선체를 더욱 기울게 하는 소리였을지 모른다. 안산 단원고 임형민군(YTN과 인터뷰)은 '갑자기 배가 흔들렸다.1층에 있는 컨테이너들이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쾅' 소리는 컨테이너가 넘어지는 소리였을 가능성이 있다. 세월호도 구조요청을 하면서 '현재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컨테이너도 넘어가고'라고 했다.
배가 급히 회전하면 불안정하던 적재 화물이 한 쪽으로 쏠리거나 탈락, 배가 기울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船體가 왼쪽으로 기울면 탈락한 컨테이너 등 화물도 왼쪽으로 쏠리거나 넘어져 배는 빨리 전복된다. 이때 강한 조류가 밀면 경사는 더 심해진다. 급회전 하나만으로는 배가 전복되지 않는다.. 급회전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화물적재를 정상적으로 하고 잘 묶어놓으면 안전하다. 어선은 선체가 30도나 기울어도 복원력이 있다. 화물적재에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급회전이 가해져야 기운다.
*구조된 김성묵 씨 증언: '그 꼭 배가 크게 회전하는 듯이 차를 타면 크게 회전했을 때 갑작스럽게 회전했을 때 한쪽으로 쏠리잖아요. 그런 순간처럼 한 번에 확 한쪽으로 쓱 올라가면서.'
조선닷컴에 따르면 세월호 조타수 등 승선원들은 “사고 해상에는 암초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며 “(쾅 소리는) 선박에 실린 컨테이너가 컨테이너끼리 또는 선체와 부딪히면서 난 소리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종된 아들과 이날 오전 8시30분께 전화통화를 했다는 한 어머니도 '아이가 배가 자꾸 움직여서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 배멀미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고 직후 선내 안내방송이 승객들에게 한쪽으로 몰리면 배가 넘어가니 현위치에서 가만 있으라고 당부한 것도 세월호의 불안정성에 대하여 선원들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는다. 선장 이씨도 동아일보 기자에게, “암초 충돌은 아니다. 갑자기 가라앉았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만사가 균형을 잃으면 순식간에 전복되는 수가 있다. 대한민국은 겉으론 세월호처럼 멀쩡하지만 안으론 썩어드는 부분이 많다. 주로 뇌수, 심장, 신경계통이다. 이런 상태에서 외부 충격이 세게 가해지면 세월호처럼 기울고 뒤집어질 것이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 기지에서 이륙한 보잉 747 수송기가 상승중 추락, 승무원과 조종사 일곱 명이 죽었는데, 원인은 적재한 군용 차량 등이 한쪽으로 쏠려 균형을 잃은 때문이었다.
<2014년 4월17일 새벽1시27분>



바다에 무식한 '산소통' 기자들의 오만
자신에겐 부정확성을 허용하고, 남에게만 정확성을 요구하는 한국 언론의 암담한 모습
李東昱
1. ‘산소통’ 메고 잠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

바다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 연일 현장 보도가 신문과 방송을 압도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들도 검증없이 보도되고 이로 인한 질타도 뜨겁다. 헌데, 유독 바다에 대해 우리는 무식하고 여전히 그 무식한 태도를 수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 중 가장 거슬리는 표기가 ‘산소통 메고 들어가는 잠수부’라는 표현이다.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산소통’은 ‘Oxygen Tank’로 의료계나 산업현장에서 용접용으로 사용하는 실린더를 말한다. 다이버들이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면 산소 중독으로 경련을 일으키다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다이버들은 ‘산소통’이 아니라 ‘공기통’을 메고 들어간다. ‘공기통’은 ‘Air Tank’로 압축된 공기를 담은 실린더를 의미한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78.5%의 질소와 20.95%의 산소 그리고 0.55%의 아르곤과 같은 활성기체로 이루어져 있다. 量으로 따져도 ‘질소통’에 가깝지 ‘산소통’은 아니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아무도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함께 레저 인구도 급성장해 우리나라의 스쿠버 다이빙 인구가 대략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만 명이 넘는 기자들 가운데 스쿠버 다이빙을 해본 기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스쿠버 다이빙과 관련한 지식 정보는 상식의 세계에 속할 것이다. 최소한 ‘산소통’과 ‘공기통’을 구별해 표기할 수 있을 텐데도 이런 誤記(오기)는 고쳐질 줄 모른다.
바다와 관련된 지식의 부족함은 서식지와 생김새가 다른 ‘숭어’와 ‘송어’의 혼란에서도 드러난다. ‘슈베르트의 숭어’를 지금도 버젓이 음악교과서에 싣고 있으며, 잘못 되었다는 지적이 여러 해 전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三面(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토에서 살아온 우리의 不正確(부정확)한 不誠實(불성실)이 부끄럽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이 폭침되었을 때 우리 국민은 거센 조류 앞에서 시신과 함체의 인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학습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 4년 뒤 우리가 겪는 이 불행에서 그때의 학습효과는 얼마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일까.
필자도 다이빙을 즐긴다. 1979년에 첫 다이빙을 한 이후 지금껏 여유가 되면 다이빙을 즐기며 횟수로도 200회 이상이니 아마추어로서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구조 다이버 자격증과 마스터 자격증도 갖고 있다. 深海(심해)잠수는 65m까지 기록했고 수중탐사로 수심 45m 아래의 북한이 판 땅굴로 의심되는 곳을 탐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2노트 이상 되는 潮流(조류)는 마스터 할애비라도 불가항력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거슬러 갈 수 없다. 필자는 수심 30m 부근의 視界(시계)가 20cm도 안 나오는 뻘탕 속에서 강한 下降(하강) 조류를 만나 표류하게 된 사고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길게는 한 시간 반 이상 표류하다 지나가는 여객선에 의해 겨우 구조된 경험도 있다. 그때가 2노트였는데 하물며 6~8노트의 조류에서랴. 이 정도의 조류는 마치 대형 트레일러를 날려버리는 허리케인 앞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빨리 구조하지 않는다고 성화다. 정작 현장에서 목숨을 내 놓고 구조 작업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말이 없다. 그들을 대신해서 말해줄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빙을 좀 안다는 필자는 작금의 언론행태가 밉다.

2. 말과 글이 땀과 기술을 압도하는 과정

급류에 발 한번 담궈보지 못한 자들이 정부를 탓하고 현장의 전문가를 비난하며 완벽하지 못한 제도와 절차를 헤집는다. 이 틈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가짜들이 설친다. 설치는 자들은 한결같이 ‘名分(명분)’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名分’은 陣營(진영) 논리를 낳는다. 名分이 같으면 언론도 엄격하게 검증하지 않는다.
홍XX라는 여성이 MBN에 등장해 ‘민간 잠수부’라며 떠벌릴 때 웬만한 다이버들은 한 눈에 ‘저건 가짜’라고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체구로는 잠수장비를 제대로 운반도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민물이 아닌 바다에서라면 부력을 상쇄시킬 鈉(납) 벨트만도 8Kg 이상을 허리에 둘러야 한다. 특히 수온이 낮은 서해바다에서는 신체를 물과 완전 분리시키는 드라이 수트(Dry suit)를 착용해야 하니 벨트는 그보다 훨씬 무거워진다. 공기통까지 포함하면 40~50kg의 중량을 견길 수 있어야 한다.
저런 몸매로는 관광지에서 레저 다이빙이나 스노클링 몇 번 해 본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한 눈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거센 조류에 맞서며 수중 30m 부근에서 살았을지 죽었을지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엔 知力(지력)은 고사하고 體力(체력)으로도 역부족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의심나면 다이빙 경력부터 물어보거나 확인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방송인들은 이 절차를 생략했다.
이XX라는 사람도 그날 오후 MBN에 등장해서 현장의 구조작업을 비판하며 ‘다이빙 벨’을 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던 이 사람의 주장이 이미 황당한 내용이었음이 밝혀진 지도 4년이 다 돼 가는데, 방송과 언론들은 진영논리에 휩싸인 채 李 씨의 낚시밥을 또다시 덥석 물고 말았다. 하지만 ‘다이빙 벨’은 급류에서 무용지물임이 서서히 밝혀졌다. 뒤늦게 방송과 언론들도 발을 빼는 중이다.
아마추어들이 전문가를 압도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땀과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세상이 됐다. 이들은 말과 글로 명분을 만들어 칼로 삼는다. 칼자루를 쥔 쪽은 死生결단하고 상대를 공격하면서 ‘완벽하지 못함’에 대해 단죄하려 든다. 거짓이 사실을 압도한다. 명분으로 무장한 진영논리가 거짓세력을 권력화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士林 당파가 무색하다.

3. 거짓과 無知의 암흑속으로 침몰시키려는 세력들

왜 우리는 정확성에 대해 둔감한 국민이 되었을까? 왜 우리는 정확성을 거부하면서도 상대에게는 완벽성을 요구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런 증상을 앓기 시작한 것일까? 수 천년 이어져 온 ‘주먹구구의 문화’를 타파한 것이 5·16 군사혁명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급속히 ‘명분’과 ‘체면’을 앞세우는 조선조 유교사회로 침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리분별을 따지면 ‘과격하다’, ‘싸움꾼 같다’란 손가락질이 드세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진영논리가 판을 친다.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변론을 이어가면 어느새 ‘일리 있다’며 편드는 패거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패싸움으로 변모한다. 패싸움은 항상 이 나라의 정치권 어느 언저리와 맞 닿아있고, 그 양태는 조선조 黨派(당파)싸움의 모양새를 띤다.
절대로 사실이 거짓을 이기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명분만 있으면 그 어떤 거짓말도 세력을 형성해서 살아남는다. ‘명분’은 선비가 重視(중시)여기는 ‘예의’와 ‘체면’의 방패가 된다. ‘명분’을 보호막으로 삼는 ‘예의’와 ‘체면’만 갖춰지면 ‘인맥’과 ‘신분’도 유지된다. 선비가 중시여기는 ‘예의’와 ‘체면’이 전문가들이 중시 여기는 ‘사실’과 ‘정직’을 압살한다.
사실을 기록한 역사를 뒤틀고도 여전히 學界(학계)에서 군림하는 학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誤報를 밥 먹듯 하고도 살아남는 언론, 헌법의 해석을 제멋대로 해도 身分戰線(신분전선)에 이상 없는 검찰과 사법부도 한 통속이다. 민생법안을 장식품 정도로 치부한 채 궤변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이 그들의 대표주자이다. 이들 모두는 말과 글로 밥벌이를 하는 지식층으로서 조선조 선비들의 DNA를 불려 받았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거짓과 無知(무지)의 암흑속으로 침몰시키려 하고 있다.

4. 거짓과 無知의 암흑을 깨부숴야 한다

다시 세월호 참사로 눈을 돌려 보자. 정작 세상이 무너질 듯한 절망속의 유족들에게 빛이 되어줄 救援(구원)의 말과 글은 거짓 선동이 아니라 올곧은 정직함에서 비롯된다. 정직한 말과 글만이 그들에게 오늘의 悲劇(비극)을 딛고 일어설 힘이 된다.
며칠 전 기고된 金東吉 선생의 ‘Life must go on though good men die (선한 자가 죽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글처럼 우리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안내해 주어야 한다. 정직해야만 진정한 용기가 생겨난다. 비극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직함으로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인생은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 살든 프랑스에 살든 아프리카 밀림이나 남태평양의 피지 섬에 살든 이런 비극이 올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고에서는 神을 믿든 안 믿든 무관하고, 착하게 살든 악하게 살든 상관없으며, 부자이든 가난뱅이든 무차별적으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을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敵은 지금도 불확실성의 커튼 뒤에서 우리의 삶을 노리고 있으며,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했듯 우리도 불확실성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줄여가도록 현실을 딛고 일어서서 노력하자는 다짐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救援(구원)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체면이나 허풍같은 허위의식은 벗어던지고 냉철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거짓과 無知의 암흑을 깨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론이 처음 이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된 ‘啓蒙主義(계몽주의)’는 아직도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언론 스스로가 가장 먼저 계몽되어야 할 것 같다.
<2014년 5월17일 조갑제닷컴>



조선, 중앙의 海警 때리기 기사, 팩트부터가 틀렸다!

趙甲濟

중앙일보가 하자는 대로 했다면 구조자가 과연 늘었을까? 배의 바닥이 절벽이 되고 절벽이 천장이 되는 상황에서, 또 선장이 도망가 선내의 지휘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해경이 시간에 쫓기면서 제한된 자원으로 중앙일보가 바라는 방향의 구조작업을 펼쳤더라면 구조된 이는 줄었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오늘(2014년 5월13일) '해경은 왜 47분간 맴돌고만 있었나'라는 논설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헬기와 경비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30분 안팎이었는데,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을 구조한 뒤 물에 뛰어든 승객만 구하며 선체 내부로 진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세월호 상황에 대해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DFC)를 통해 분석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오전 9시30분에 45도 정도이던 배의 경사도는 선장이 해경 구조선에 오르던 9시47분에 60도를 넘었고, 배 안의 단원고 학생이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10시17분엔 100도 이상 기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최소한 선장이 해경 구조선에 오르던 때까지만 해도 해경의 구조 작업은 가능했다>면서 <선체 내부 진입이 어려웠다면 세월호에 올라 조타실 등에서 승객들에게 탈출 안내방송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구조대원이 60도를 넘어 급속도로 엎어지는 선체를 오르려면 목숨을 걸어도 불가능했다. 조타실은 5층에 있었다.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장과 선원들은 급한 기울기에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선실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다가 탈출했다. 선원들이 포기한 역할을, 더 악화된 조건에서 해경이 해야 했다는 이야기인데 이상론을 넘어서 영화에서나 봄직한 超人的(초인적) 노력을 요구하는 비판이다.
<해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월호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는 표현은 막말에 가깝다. 해경은 주위를 맴돌기만 했는데 누가 승객들을 구조했기에 170명 이상이 살았나?
해경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운운은 팩트가 틀린 문장이다.
중앙일보의 지적이 무리라는 건 논설 안에 있다. <경사도는 선장이 해경 구조선에 오르던 9시47분에 60도를 넘었고, 배 안의 단원고 학생이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던 10시17분엔 100도 이상 기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문장이다. 30분 사이에 선체가 60도에서 100도까지 기우는 조건에서 해경이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自力(자력)으로 선실을 탈출한 승객들을 구조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해경은 해냈다. 배의 바닥이 절벽이 되고 절벽이 천장이 되는 상황에서, 또 선장이 도망가 船內의 지휘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해경이 시간에 쫓기면서 제한된 자원으로 중앙일보가 바라는 방향의 구조작업을 펼쳤더라면 구조된 사람은 줄었을 것이다. 그때 중앙일보는 무모한 구조작업으로 피해자가 늘었다고 비판할 것 아닌가?

해경이 엉망인가, 조선일보 1면 톱이 엉망인가?

며칠 전 조선일보도 1면 머리 기사로 해경을 난도질했다. 내가 '난도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반론권이 있는 해경의 해명이 일체 반영되지 않는 일방적 비난 기사였기 때문이다. 기사 제목부터 저널리즘의 일반 원칙을 위반하였다.
<세월호 침몰 순간에도… 초기 구조작업도… 사후 수습 과정도… 현장에 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 災難(재난) 전문가 아닌 펜대 굴리던 관료가 事故대책 총괄.>
전통 있는 신문이 1면 제목에 '얼치기만 많았다'는 욕설 비슷한 표현을 했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현상이다. 보도문에 어떻게 격문 같은 제목이 붙을 수 있나?
조선일보 1면 머리 기사의 副題(부제)도, <① 초기 구조 海警 - 배 밖 선원 구조에만 집중… 갑판으로 승객 대피 유도 못해 ② 사고 수습 정부 - 시종일관 쩔쩔매다가 가족별 전담 공무원 11일 만에야 배치 ③ 침몰 당시 선원 - 처음 탄 항해사가 교신… '위기 상황땐 반드시 선장이 했어야'>로 비난 일색이었다.
기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리드 문장도, <세월호 침몰 이후 선원들의 승객 대피 유도, 해경의 초기 구조 작업은 물론 실종자 가족 지원 등 사고 수습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였다. '모든것이 엉망'인데 어떻게 170여 명이 구조되었을까? '모든것이 엉망'이란 주관적 표현이 보도문에 등장한다면 이 신문사엔 데스크 기능이 고장 났든지 마비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 기사는 <사고 당일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해경은 선내 승객들의 대피를 유도하거나 선내에 진입해 구조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어렵더라도 선내로 들어가거나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나오라고 알려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고 질타하였다. 이 기사는 船內와 船室을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구조선을 몰고온 해경은 동영상에 나온대로 船內로 올라갔고 헬기를 몰고온 구조대원은 船室에 들어갔다.
3, 4층이 물에 잠겨 할 수 없이 배를 탈출할 때까지 船內에 남아 학생들을 구조하는 일을 했던 김성묵 씨는 헬기를 타고 온 구조원들이 船室에서 하는 일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김성묵 씨는 지난 17일 CBS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울어진 상태라서 홀로 들어가면 붙잡을 데도 없고 버틸 데가 없어서 (우현) 난간 쪽으로 나와서 서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선원으로 보이시는 분들이 옥상으로 올라가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헬기가 왔습니다, 구조 헬기가. 헬기가 도착하자마자 헬기 구급요원이랑 눈이 마주쳐서 안에 분들,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옮겨드렸습니다. 5층 쪽에서 119 구급대원들이 구조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4층에 있던 아이들을 5층으로 올려 보냈습니다. 구급대원들이랑 같이. 옮기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빠르게 안 돼서 하나씩 하나씩 올려보냈습니다. (기울어진) 홀에 있던 아이들이 난간 같은 걸 잡을 데도 없고 벌써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홀의) 바닥을 붙잡고 올라와야 되는데 거기가 미끄러져서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고요. 그래서 소화기 호스를 던져서 끌어당기는데. . . 몇 명 못 구했는데 90도 가량 기울어지다 보니까 아이들 힘이 부족해서인지 잡고 있지 못했습니다.'
<사고 당일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해경은 선내 승객들의 대피를 유도하거나 선내에 진입해 구조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읽어본 독자들은 아무도 선내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오해하게 된다. 김성묵 씨의 증언에 의하면 헬기 구조대원들은 船室로 내려가 학생들을 끌어올려 헬기에 태웠다.
해경이 공개한 초동 단계의 구조 동영상엔 해경 구조대가 船內에 들어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람을 받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해경이 배에 올라가 구병筏(벌)이 담긴 통을 발로 차는 장면도 보인다. 해경은 船內에 들어갔던 것이다.
해경이 한정된 인원을 어디에 투입하여 구조하느냐 하는 것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판단하는 게 가장 옳았다고 봐야 한다. 기자가 시간이 흐른 뒤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 한가하에 논평하는 것은, 타이밍을 놓친 훈수에 지나지 않는다. 급하게 넘어가는 세월호를 상대로 해야 하는 해경이 시공적으로 제약된 조건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제한되어 있었다. 조선일보 기자는 당시 해경이 마치 육지에서 구조활동을 한 것처럼 전제하고 논평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해경이 船內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오판하고 무자비하게 해경을 비판한 조선일보 1면 머리 기사문은 팩트부터가 틀린다. 팩트가 틀린다면 <현장에 專門家는 없고 '얼치기'만 많았다>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는 기사야말로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
중앙, 조선일보가 이런 수준의 기사를 계속 쓴다면 세월호 침몰은 한국 언론의 침몰을 부를 것이다.

조선일보 1면 톱의 무리한 海警 비난

조선일보 1면 머리 기사 제목은 가로 全面(전면)에 걸쳐서 <세월號 '탈출할까요' 海警 '선장이 판단하라' 서로 미뤘다>이다. 本文(본문)의 핵심 기사는 이렇다.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 직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세월호는 탑승객의 탈출 여부를 해경(海警) 관할의 진도해상교통센터(VTS)에 묻고, 진도VTS는 '선장이 최종 판단해서 탈출시킬지 결정하라'고 답했다. 세월호와 진도VTS는 사고 당시 31분간 교신을 했지만 서로 승객 탈출 결정을 떠넘긴 것이다. 그 사이 구명조끼까지 갖춰 입은 탑승객들은 '대기하라'는 말만 믿고 선실에서 기다리다 탈출 기회를 잃었다. 위급 상황에서 사고 선박과 VTS 간 '폭탄 돌리기'로 참사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양측이 교신을 하는 동안 사고 상황을 전하는 데에만 시간을 소진하고, 정작 중요한 결정인 '승객들을 배에서 탈출시키라'는 결정은 하지 않았다. 진도VTS는 위급함을 알리는 세월호에 대해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우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이 시각은 세월호가 '(배가)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좌우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진도VTS에 이미 알린 상황이었지만, 진도VTS는 '상황을 잘 몰라서'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船長(선장)의 법적 권한에 대한 無知(무지)에 근거, 사고 책임의 상당 부분을 海警에 떠넘긴 誤報(오보)이다. 선박 안전법 제31조는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아니 된다>이다. 이 법은 벌칙으로, <제31조의 규정을 위반하여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한 자에겐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고 했다.
'누구든지' 안엔 해경도 포함된다. 선박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는 선장이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으므로 '전문적인 판단'을 내릴 권한을 독점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해경 관할의 교통센터가 세월호를 보지도 않고 무슨 능력으로, 무슨 권한으로 선장을 젖히고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나?
센터 측에서 '세월호 인명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하셔서 인명 탈출 시키세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께서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충고이다. 이를 '책임 회피' 폭탄 돌리기'라고 몰고간 조선일보는 無知에 惡意(악의)를 더한 셈이다.
만약 센터 측이 세월호 선장을 무시하고 탈출 명령을 내려 사망자가 생겼다면 선장과 언론은 해경의 越權(월권)을 규탄하였을 것이다. <세월號 '탈출할까요' 海警 '선장이 판단하라' 서로 미뤘다>란 제목 자체가 너무 감정적이고, 단정적이다. 요사이 언론은, 오랜만의 海難(해난) 사고라서 그런지 해양과 海運(해운)에 대한 초보적 이해가 안 된 상태에서 너무 심하게 정부만 비난한다는 인상을 준다.
세월호 사고는 선장과 船社(선사)가 1차 책임자. 감독기관이 2차 책임자이다. 언론은 해경과 같은 구조기관까지 무리하게, 가혹하게 비판한다. 人命(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였고, 지금은 위험한 잠수작업을 펼치고 있는 海警이 오늘자 조선일보를 읽고 어떤 감정을 갖게 될지도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선장과 해경을 비판할 때 참고해야 할 사실

세월호 침몰 상황과 구조활동을 이해하고 따지는 데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배가 급히 기운 다음에 복원력을 상실, 매우 빠른 속도로 뒤집히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타이타닉 침몰과 다르다. 타이타닉 호는 빙산에 뱃전이 긁힌 뒤 서서히 침수, 가라앉았기에 구명정을 내리고 사람들이 옮겨 탈 여유가 있었다. 세월호는 순식간에 30도 이상 기울더니 점점 경사 각도가 심해져 1시간 반 만에 완전히 전복되었다. 船內(선내)에서는 상하 좌우(上下 左右)의 이동이 어려워지다가 곧 불가능하게 된다. 왼쪽으로 30도, 45도, 60도, 90도, 120도, 180도로 뒤집어지는 과정 속에서 승객과 선원 및 구조대원들의 행동은 결정적으로 제약되었다.
승객은 물론이고 선장, 선원, 해경, 구조대 모두 '빠르게 배가 넘어간다'는 공간적, 시간적 절대 조건의 지배를 받았다. 이런 한계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선장과 해경의 행동을 일면적으로 분석, 비판, 조사하는 것은 사실과 동떨어진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언론은 선장과 해경을 비판할 때 이런 시간적, 공간적 조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해경이 절벽처럼 넘어가는 船體(선체)를 타고 올라가 선실에 갇힌 승객들을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고 집중 비난을 퍼붓는다. 평지에서, 유장한 시간적 여유 속에서 구조활동이 있었던 게 아니다. 바닥이 벽이 되고 나중엔 천장이 되는,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급전하는 시공적 조건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한 비판이어야 이 사건으로부터 훌륭한 교훈과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조준기 조타수는 면담 온 강정민 변호사에게 '(승객이 갇힌) 船室(선실)로 가려면 복도와 계단을 지나 내려가야 하는데 너무 경사가 심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 등반 전문가는 '배가 60도 이상 기울고, 더구나 잡을 게 없다면 암벽 등반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세월호와 진도 VTS(Vessel Traffic System)의 交信(교신)에서도 1등 항해사는 기울기를 걱정한다. 그는, 9시10분 “너무 기울어져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2분 뒤 진도 VTS가 “지금 승선원들은 라이프 래프트(Life Raft) 및 구조보트에 타고 있냐”고 묻자 “아직 못 타고 있다. 지금 배가 기울어 움직일 수가 없다”고 답했다. 9시14분에는 “지금 배가 많이 기울어 승객들의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3분 뒤에는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사람이 左右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 선원도 라이프 재킷(구명조끼)을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사실 입었는지 확인도 불가능한 상태이고, 선원들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18분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진도VTS: '세월호 현재 물이 얼마나 차 있습니까?'
*세월호: '그것도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 데크(갑판)에 컨테이너 몇 개가 빠져 나간 거는 船首(선수)에서 확인이 되는데 이동이 안 되어서 브릿지(선교. 조타실)에서 좌우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입니다.”

9시23분 진도 VTS가 “경비정 도착 15분 전이다. 방송 해 승객들에게 구명 동의를 착용토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세월호는 “방송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진도 VTS가 “방송이 안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란다”고 하자 세월호는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고 물었다. 진도 VTS는 “라이프링(구명튜브)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빨리”라고 지시했다. 세월호는 오전 9시37분 마지막 교신에서 “침수 상태 확인 불가하고, 상선들은 50m 접근해 있고 좌현으로 탈출할 사람만 탈출 시도하고 있으나 좌현으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다. 배가 한 60도 정도 좌현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고 했다.
세월호 1항사는 교신의 대부분을 배가 기울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소연으로 채웠다.

절벽으로 변한 배

증언과 동영상을 분석해보면, 세월호 船體는, 9시쯤 왼쪽으로 45도, 9시17분엔 약50도, 9시38분에 약60도나 기울었고, 10시13분엔 약80도, 15분엔 약90도, 25분엔 180도로 완전히 뒤집혔다. 기우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는 얘기다.
생존자 김성묵씨는 지난 4월17일 CBS 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 스마트폰으로 각도를 쟀는데 45도였다고 했다. 이어서 위험하니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다.
'처음에는 (방송을 듣고) 거진 다 가만히 있었고 나도 가만히 있다가 아니다 싶어 (오른쪽) 4층 난간 쪽으로 나왔다. 홀에 있던 아이들이 잡을 데도 없고 벌써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바닥을 붙잡고 올라와야 되는데 거기가 미끄러져서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소화기 호스를 이용해서 끌어당기는데 몇 명 못 구했는데 90도 가량 기울어지다 보니까 아이들 힘이 부족해서인지 잡고 있지 못했다.'
왼쪽으로 배가 60도 이상 기울면 선실에 있던 이들은 절벽 밑에 놓인 꼴이 된다. 이 절벽은 조금 전까지는 선실 바닥이었는데 맨들맨들하다. 기어오르려 해도 잡을 게 없다. 위(오른쪽 난간)에서 던진 호스를 잡더라도 몸을 의지할 데가 없다.데롱데롱 매달려 있다가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진다. 곧 바닷물이 들어왔다. 용감한 시민들이 소방 호스를 던져서 끌어올리기도 했으나 몇 사람 살리지 못했다. 한 시민은 '아래에 있는 학생들은 꼭 우물에 빠진 것 같았다'면서 '고무호스를 던지는 나에게 '아저씨,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라고 애원하는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고 울먹였다.
아무리 선체가 기울어도 선장은 사고현장에 남았어야 했다. 선장 신분도 밝히지 않고 구조선을 탄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 배 안의 상황을 잘 아는 그가 현장에 남아서 해경과 협조하였더라면 더 많은 승객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휘체제가 무너진 세월호를 상대로 해경과 어업지도선은 나름대로 노력을 하였다. 정보가 제한되고 시간적으로 촉박한 조건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해경을 상대로 수사를 하겠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해야 한다. 선동적 언론이나 감성적 여론을 따라가는 수사는 사실과 법리를 떠난 결과를 빚을 위험성이 있다.

<2014년 5월17일. 조갑제닷컴>






해양국가가 해경을 해체? 朴대통령의 非理性的 결정을 개탄하다!
언론의 선동 보도에 굴복하고, 해경의 구조가 실패하였다는 誤判에 근거한 과격한 처방은 그의 지도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은 言論(언론)의 선동에 굴복, 진실·正義(정의)·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정신과 국가이익에 배치되는 내용의 발표를 했다. 특히 세계적인 해양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을 海警(해경)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였다. 海警 해체는 海軍(해군) 해체와 비견되는, 너무나 非이성적이고, 과격하고, 감정적인 결정이다. 물론 국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어야겠지만 오늘 朴 대통령의 연설은 그의 지도력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약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그는 바다와 배를 모르는 기자들의 과장과 왜곡과 날조 보도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人命(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는 말은 우선 사실과 다르다.
평온한 바다에서 過積(과적), 急變針(급변침) 등의 사유로 큰 배가 갑자기 기울어 한 시간 반 만에 전복된 것은 세계 海難(해난) 사고 역사상 유례가 드문 경우이다. 그만큼 구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해경은 구조요청을 받은 뒤 40분을 前後(전후)하여 세월호에 구조헬기와 구조정을 보내 배가 뒤집어지기까지의 40여분 사이 172명을 구조하였다.
언론의 보도태도를 보면 왜 전원 구조하지 못하였느냐는 식이다. 해경은 결정적 제약 조건하에서 구조활동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暴論(폭론)이다.

1. 船長(선장)과 선원이 먼저 배를 버리고 탈출, 船內(선내)의 지휘체제가 무너졌다. 바깥의 海警과 긴밀하게 협조, 구조 작업을 이끌어야 할 船內의 사령탑이 없어졌으니 해경은 자신들의 정보와 수단에 의존하여 自力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구조할 수밖에 없었다.
2. 해경은, 배가 처음 30도 이상으로 기울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속도가 붙은 듯 급하게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에 쫓기면서 구조하여야 했다. 구조선이 도착하였을 때는 船體(선체)가 이미 60도로 기울어 사실상 절벽이 되었고 40여분 뒤 완전히 전복되었다. 바다와 배에 無知(무지)한 기자들은 왜 해경이 船室(선실)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온갖 비방을 쏟아놓지만 평평했던 바닥이 수직의 벽이 되고 종국에는 하늘처럼 천장이 되는 상황에서 그런 이상적인 구조 작업은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하였다. 제한된 인력으로 제한된 시간에 무리하게 船室에 들어가려고 했더라면 구조대가 구조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살릴 수 있던 사람을 놓쳤을 것이다. 다수 구조 전문가들도 船室 진입은 불가능하였다고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이 가능하였다고 전제하고, 해경을 비방하는 기자들의 억지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해경의 구조작업을 실패라고 규정, 해체를 결정했다. 실패라고 규정한 것은 허위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고 그 誤判(오판)을 근거로 하여 해경 해체라는 중요 국가 정책을 결정한 것이다. 2중의 잘못이다.
3. 해경 해체는 국가의 안전 및 안보와 관련된 주요 기관을 없애는 일로서 해양국가에선 유례가 없는 일종의 暴擧(폭거)이다. 해양국가에서 해군이 안전 사고를 냈다고 육군에 흡수시켜버리는 것과 같은 결정이다.
朴 대통령은 <앞으로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겨서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지극히 전문성이 있는 해경 업무를 바다를 잘 모르는 비전문가에 맡겨 전문성과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모순이다. 그동안 해경이 잘한 일은 전적으로 무시하고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 구조를 실패라고 규정하니 처방이 이렇게 과격하고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이다. 領海(영해)를 침범하는 중국어선에 올라가 血鬪(혈투)를 벌이는 해경, 천안함이 폭침될 때 해군보다 먼저 달려가 전원 구조한 해경, 연락을 받자마자 주변 선박에 비상을 걸고 全速(전속)으로 세월호에 접근, 172명을 구조한 해경은 대한민국 해경이 아니고 무슨 유령국가의 해경이었던가?
4. 주자학과 士農工商(사농공상)의 신분 차별을 받아들인 조선조는 반도국가임을 잊고 內陸國(내륙국) 행세를 하면서 해운과 漁業(어업)과 무역을 멸시하고 폐쇄정책을 폈고 그 결과는 망국과 식민지였다. 뱃사람들은 바다와 배를 모르는 육지의 양반들로부터 '뱃놈'이라고 불리면서 거의 賤民視(천민시)되었다. 그들의 운명을 바꾼 것은 대한민국의 建國(건국)이었다. 대한민국이 분단된 조건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출범, 수출입국 정책을 펴니 남한은 사실상 섬이 되었다. 李承晩(이승만), 朴正熙(박정희)는 이런 조건을 逆(역)으로 활용,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무대를 바다와 해외에 걸었다. 그리하여 한국은 무역, 해운, 조선 등 해양 분야에서 세계적인 신흥강국으로 急浮上(급부상)하였다. 해양정신의 재발견인 것이다.
5. 이번 세월호 침몰을 보도한 언론은 뱃사람을 멸시하고 해외진출을 억제하던 조선조의 닫힌 양반처럼 바다도 海運(해운)도 모르면서, 그 無知(무지)를 덮기 위하여 海警을 난도질하였다. 무식하므로 용감했던 것이다. 해경에 대한 인민재판 식, 마녀사냥 식 보도는 사실과 현실과 과학을 떠난 공상소설 수준이었다. 이런 선동 보도를 견제하고, 반박하면서 목숨을 건 수색 작업을 펼치는 海警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와 대통령은 선동 언론에 굴복, 해경의 등에 칼질을 하더니 해경 해체라는 전근대적, 수구적 처방을 내어놓았다. 해경을 희생양으로 바쳐 대통령의 인기를 지켜주려는 發想(발상)에 朴 대통령이 넘어간 것인지, 朴 대통령의 독단적 발상에 전문가들이 굴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책임은 朴 대통령이 져야 한다.
6. 오늘 對국민 선언은 일시적으로 朴 대통령의 인기를 회복시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의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을 가할 것이다. 검찰 조사, 國政(국정)조사 이전에 대통령이 나서서 爭點(쟁점)이 있는 사안에 대하여 '해경의 구조가 실패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통령이 사법부의 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三權(삼권)분립의 원칙, 無罪(무죄)추정의 헌법적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목숨을 건 수색 작업을 펼치는 해경에 피눈물을 나게 하는 지극히 비윤리적 행동이다. 해경의 구조가 실패하였다는 公言(공언)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죽게 하였다는 선동세력의 공격에 아무런 방어 수단 없이 노출되는 처지가 되었다. 自業自得(자업자득)이다.
진실이 아닌 허위, 합리가 아닌 감성, 國益(국익)이 아닌 인기에 근거한 국가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前科者(전과자)가 20%나 되는 국회가 理性(이성)을 발휘하여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해주기를 바라야 하는 처지가 비참하다.

*덧붙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관피아'라는 말을 썼다. 기자들이 만든, 과장된 용어를 국가의 공식문서에 담았다. 한국의 관료가 마피아라는 뜻이다. 대통령은 그렇다면 마피아 두목인가? 언론의 선정적 造語(조어)를 이성적이어야 할 국가가 수용하면 國家(국가) 이성은 마비된다.
<2014년 5월17일. 조갑제닷컴>


언론이 가장 큰 개혁대상임을 확인

-대통령에게 3大 허위정보를 올린 이는 누구일까? 해경이 수사에 치중, 구조 업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허위정보(해경의 수사 인력은 5%에 지나지 않는다), 해경 122 구조대가 헬기가 없어 두 시간 뒤 현장에 도착했다는 허위정보(헬기는 편제에 없다), 해경이 즉각적으로,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30분 만에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 그 뒤 40여 분 만에 172명 구조)는 허위정보.

세월호 침몰 이후의 사태를 개관하면 이렇다.
*사고의 본질: 세월호는 배가 아니라 떠다니는 棺(관)이었다. 무리한 增改築(증개축), 화물 과적과 묶음 不實(부실), 평형수 빼기 등으로 복원력을 약화시켜 사고가 나게 한 책임은 청해진 해운, 이준석 선장, 그리고 결함이 많은 선사의 안전운항 규정 위반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해수부, 연안 선박 운항관리의 책임을 진 해운조합, 해운조합의 감독권을 가진 해수부, 부분적 지도 감독 의무를 진 해경, 안전관리상의 문제를 인식한 해경이 추진한 改善(개선) 입법을 미룬 국회와 방해 로비한 업자들, 연안해운의 문제를 덮은 언론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책임자는 절대로 운항하도록 해선 안되는 조건 하에서 세월호를 바다에 띄운 청해진 해운과 해수부이다.

1. 침몰한 배의 선장과 선원이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감으로써, 또 船內(선내)의 침몰 직전 상황이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통하여 생생하고 애틋하게 전달됨으로써, 무엇보다도 침몰과 구조 작업의 全과정이 언론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조명됨으로써 全국민적 체험이 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어떤 사고보다도 강한 사회적, 정치적 충격이 된 것이다.
2. 이런 충격의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그 나라 정부와 사회의 수준이 좌우한다.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언론이다. 한국의 언론은 船社(선사), 船長(선장)에 분노를 쏟아내더니 곧 海警(해경)을 난타하기 시작하였다. 해경의 초동 대응이 잘못되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이 왜곡, 과장, 조작된 내용이었으나 아무런 견제와 제동 없이 난무했다. 특히 바다와 선박을 잘 모르는 기자, 자칭 평론가들이 습관적으로 집단폭행식 비방을 했다. 정부 관련 부처 안의 특정 세력이 조직을 보고하기 위해서이거나 박근혜 정부를 흠집 내기 위한 목적으로 언론에 海警에 불리한 정보를 왜곡, 유출시킨 혐의도 있다.
3. 선장이 도망가 지휘체제가 무너진 세월호가 급속도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人命(인명) 구조 가능 시간은 30분(123정 정장 주장)~40분(언론 주장) 정도였다. 언론은, 이런 제약 조건을 무시하고, 마치 평지에서 일어난 사고이고 구조 시간은 무한대로 존재하였던 것처럼 想定(상정)한 뒤 해경의 초동 대응을 비방하였다. 구조신고를 받은 해경이 30분 만에 헬기를, 35분 만에 123정을, 이어서 어선과 지도선들을 현장에 도착시켜 172명을 구했다는 사실은 묵살되었다. 해경이 잘못된 보도에 대하여 해명과 정정을 요구해도 거의 무시되었다. 해경 담당자는 기자로부터 '죄인이 무슨 변명인가'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한국 언론사상 이번 해경 관련 보도처럼 많은 오보가 있었던 적도, 오보임이 밝혀져도 訂正(정정)이 적었던 적도 없을 것이다.
4. 문제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였다. 언론의 이런 해경 비판에 항의하기는커녕 海警 난타에 가담하였다. 검찰과 감사원이 목숨을 건 수색-수습 작업을 벌이는 해경을 상대로 조사, 수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론의 해경 때리기는 더욱 난폭해졌다. 저널리즘의 모든 원칙이 무시되었다. 객관성, 반론권 보장, 독자적 검증, 정확한 용어 사용 등 기자들이 귀가 아프도록 듣는 직업윤리는 海警이란 단어 앞에서 마비되었다.
5. 해경에 대한 집단폭행식 보도에선 左右(좌우)의 구별도 없어졌다. 언론의 正道(정도)를 지켜간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종편까지 왜곡-과장-선동에 가담하였다. 광우병 亂動(난동) 때는 사실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朝中東(조중동)이 해경을 때리는 보도에선 이성을 잃었다. 언론은 워낙 해경 공격에 집중하다 보니 선장과 船社와 해수부가 책임 져야 할 부분까지 해경에 轉嫁(전가)하였다. 청해진해운과 함께 세월호를 침몰시키는 데 가담한 해수부를 감싸고 해경을 비방하는 보도가 많은 것은 해수부 내 특정세력과 언론의 유착을 의심케 한다.
6. 해경에 대한 언론의 집단폭행식 보도, 정부의 無力(무력)한 대처는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떠넘기는 결과를 불렀다. 해경만 동네북이 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코너로 몰렸다. 언론을 상대로 진실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할 정부가 이를 포기하고 陣地(진지)를 내어주니 계속 후퇴하게 되었다. 구원파마저 '침몰 책임은 청해진 해운이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한 것은 해경 책임이다'는 취지의 막말을 했다. 해경은 언론의 횡포와 정부의 비겁함에 협공당하여 무장해제된 것이다. 해경이 무너지니 세월호 침몰의 책임이 정부, 특히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自業自得(자업자득)이었다.
7.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對국민담화에서 '해경은 즉각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誤判(오판)을 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언론의 선동에 굴복, 국가적 진실의 수호 임무를 포기한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123정 김경일 정장)는 해경을 버린 것이다. 국가적 조사가 나오기 전에 대통령이 '해경은 실패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해경 해체'라는 前代未聞(전대미문)의 징벌적 조직해체였다. 海警은 영해를 지키는 일을 하는데, 북한군과 대치중인 한국에서는 안보적 기능이 많아 제2의 해군으로 불린다. 朴 대통령의 해경 해체 결정 과정에 합참, 국방부 같은 안보 부서가 협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불투명하다.
8. 해경 해체 결정 과정에서 朴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말로 해경을 비판하였다. 이는 그가 부정확한 정보 보고를 받아 상황을 오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군통수권자이기도 한 대통령이 정보를 誤判(오판)하면, 특히 해경 해체와 같은 안보 문제에서 정보 관리에 실패하면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아래와 같은 3大 허위정보를 제공한 자는 색출, 문책해야 한다. 해경이 수사에 치중, 구조 업무를 소홀히 하였다는 허위정보(해경의 수사 인력은 5%에 지나지 않는다), 해경 122 구조대가 헬기가 없어 두 시간 뒤 현장에 도착했다는 허위정보(헬기는 편제에 없다), 해경이 즉각적으로,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30분 만에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 그 뒤 40여 분 만에 172명 구조)는 허위정보. 대통령은 정부 내 불순세력과 선동 언론이 합작한 정보 조작에 조종당한 느낌이 든다.
9. 朴 대통령은 성난 여론 앞에 해경을 희생양으로 바쳐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잠수사들이 죽어 나가는, 목숨을 건 屍身(시신)수습 작업의 주체인 해경을 격려하고 보호하기는커녕 선동 언론과 합세, 뭇매를 때린 대통령을 공무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10. 세월호 사고 이후의 한국은 검사와 기자들이 수사와 비방을 주도, 차분하게 사고의 교훈을 살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검사와 기자는 상호 견제를 해야 하는데, 수사와 보도에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 무리가 생긴다. 인민재판, 마녀사냥식 보도는 한국 언론의 악습인데, 이번엔 가장 추한 모습으로 재발하였고 대통령을 그 방향으로 끌고 갔다. 해경에 대한 집단폭행식 보도와 해경을 희생물로 바친 대통령의 행태는 반드시 代價(대가)를 치를 것이다. 대통령이 선동에 굴복, 국가적 진실을 포기하면 반드시 正義(정의)와 자유도 포기한다. 정의는 진실 위에 서야 하고 그런 정의(法)만이 자유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11. 이번 사고로 한국의 언론이 가장 큰 개혁 대상임이 확인되었다. 다른 부서는 자신이 개혁대상임을 인정하는데 언론만은 자신이 개혁의 主體(주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정말 개혁 대상이다.
12. '해경 해체'라는 말은 國政 경험자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표현이고 발상이다. 朴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말이든지, 행정 경험이 얕은 측근(들)이 秘線을 통하여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극단적 처방으로 올린 아이디어를 대통령이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해경 해체'라는 말에선 해경 업무에 대한 오해나 無知가 묻어난다. 노무현의 연합사 해체가 안보에 대한 無知와 편견을 드러내었듯이. '해경 해체'는 안보와 國益에 심대한 해독을 끼칠 것이므로 빨리 취소하거나 수정하는 게 나라를 위해서 좋을 듯하다. '해경 해체'라는 과격한 정책을 건의한 秘線 조직이 청와대에 있다면 더 큰 실수가 예상된다. 대통령이, '해경 해체' 결정을 보안하기 위하여 有關기관과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면 국가적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제도화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13. 세월호가 증개축 이후 최대 적재 한도 화물량이 1070톤 이하로 제한되었다는 핵심적인 정보는 선급 협회와 청해진 해운과 해수부만 갖고 있고, 해운조합과 해경에는 통보되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은 이를 악용, 화물을 두 배로 과적,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를 속이고, 침몰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 死角 지대가 官과 회사의 유착에 의한 것인지, 단순 실수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2014년 5월30일. 조갑제닷컴>

고참 선장의 評, '最惡은 청해진, 最善은 해경 구조대'

趙甲濟

'바다에서 船體(선체)가 그렇게 기운 것을 올려다 보면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야말로 멘탈붕괴 상태가 된다. 배가 흉악하게 보인다. 더구나 언제 배가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하기 힘든 일이다. 아들이 배 안에 있어도 아버지가 하기 힘든 일이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책임자들이 어느 정도 밝혀진 단계에서 평소 자문을 해주던 고참 선장(60대 후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런 所感(소감)을 밝혔다.
<죽일 X은 청해진 해운이다. 안전운항의 최종 책임자는 해운조합도, 해수부도, 해경도 아닌 선박회사이다. 법적으론 선장이지만 회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안전점검을 하고 출항허가를 내어주는 권한을 가진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들이 구속되고 있는데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인천항을 떠나는 모든 선박의 화물 적재 적정 여부를 일일이 현장에 가서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울을 떠나는 모든 화물차를 교통경찰이 확인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해운조합을 감독하는 해수부와 해경도 마찬가지이다.
선박의 안전은 기본적으로 船社(선사)와 선장의 책임이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죽고 망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증개축이 문제라고 하는데 증개축은 흔히 하는 일이다. 船主(선주)가 하겠다면 말릴 수 없다. 船級(선급)협회에서 증개축을 허가한 뒤 최대 적재 화물 한도를 반으로 줄여 1070t 이상은 싣지 않도록 했다. 증개축을 한 목적은 돈을 더 벌려는 것인데, 이렇게 하면 화물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청해진해운은 화물을 허가된 한도보다 두 배나 過積(과적)하고는 만재흘수선을 넘지 않기 위하여 평형수를 허용한도보다 덜 실었다. 이렇게 하여 배의 무게 중심이 올라가고 불안정해진 것이다.
화물과 평형수를 맞바꾼 이런 범죄적 행위와 서류 조작을 해운조합의 운항관리자들이 알 수 있었을까? 해운조합이나 해경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흘수선만 넘지 않으면 출항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흘수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배 밑에 싣는 평형수가 줄어들고 배 위에 싣는 화물은 늘어 배의 무게 중심이 올라가고 불안정해졌다는 사실까지 외부에서 일일이 검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선박회사가 그런 범죄를 저질러도 선장과 1등 항해사가 문제를 제기, 출항을 거부할 순 있다. 乙(을)의 위치에 있는 선장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당위론적으로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生計(생계)의 목을 회사에 걸어놓고 있는 사람이 회사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했더라면 회사에선 “지금까지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녔는데 왜 그래?”라고 했을 것이고 고집을 부리면 내보냈을 것이다.
배의 안전은 회사와 선장 책임이고 한국적 현실에선 회사의 책임이다.
이번 사고에서 회사가 가장 惡質(악질)이었다면 가장 잘한 이는 해경 구조대이다. 구조 경비정이 도착했을 때 배는 50도 기울었고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바다에서 船體가 그렇게 된 것을 올려다 보면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야말로 멘탈붕괴 상태가 된다. 배가 흉악하게 보인다. 더구나 언제 배가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배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하기 힘든 일이다. 아들이 배 안에 있어도 아버지가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해경은 배 안으로 들어가 172명을 구했다. 해경 구조대는 언제 배가 넘어갈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기울어가는 배 안으로 들어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구조를 한 것이다. 다 끝난 다음에 구조 가능 시간이 몇십 분이었다고 하는데 그 순간 그 배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해경은 10초 뒤에 船體가 전복하여 넘어갈지, 10분 뒤가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에겐 골든 타임이란 게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검찰 공소장은 이렇게 적었다.
<세월호는 09:34:03경 52.2도로 기울어진 것을 비롯하여 09:35:02경 52.9도, 09:36:17경 54.1도, 09:38:44경 54.4도, 09:39:10경 54.9도, 09:40:52경 55.3도, 09:41:26경 55.4도, 09:43:27경 56.2도, 09:44:38경 56.7도, 09:45:03경 57.3도, 09:46:38경 61.2도, 09:47:37경 62도, 09:49:44경 62.8도, 09:50:22경 62.6도, 09:51:46경 63.3도, 09:54:35경 64.4도, 10:07:41경 68.9도, 10:09:03경 73.8도, 10:10:43경 77.9도로 기울어지다가 10:17:06경 108.1도로 전복되었다.>
해경 헬기와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세월호는 52~55도 기울어져 있었고, 넘어가는 데 가속도가 붙어 10시9분에 74도이던 배가 1분30초 뒤엔 78도, 8분 뒤엔 108도가 되면서 전복된다. 기우는 배로 들어가 구조작업중이던 해경 구조대는 자신들의 육안으로 거대한 선체가 머리 위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보이는 승객들을 다 구했다. 동영상엔 배로 올라간 구조대를 향하여, '배가 넘어간다. 빨리 나와'라는 소리도 들린다.
朴槿惠(박근혜) 대통령은 그럼에도 '해경의 구조작업은 즉각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여 사실상 실패했으므로 해경을 해체한다'고 일종의 死刑(사형)을 선고했다. 언론과 정부가 해경 구조대를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것을 본 구원파도 '침몰은 청해진 책임이지만 승객이 죽은 것은 해경 책임이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最惡(최악)과 最善(최선)이 뒤바뀐 것이다.
<2014년 6월1일. 조갑제닷컴>

에스토니아 침몰과 세월호 침몰 비교 연구
왜 스웨덴은 屍身 인양을 포기하였나?

趙甲濟

발틱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船社 소속의 The Estonia(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건은 1994년 9월28일 발틱해에서 일어났다. 자체무게가 2800톤이고 길이 156, 너비 28미터의 페리船(선)이었다. 크기는 세월호와 비슷하다. 803명의 승객과 186명의 선원을 합쳐서 989명이 승선했다. 배는 9월27일 저녁 7시에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출발,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배는 화물을 적재 허용량까지 가득 실었다.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항해했는데, 화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거셌다. 초속 15~25 미터에 波高(파고)는 4~6 미터나 되었지만 출항 금지를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페리들도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발틱海는 늘 2000척 정도의 배가 떠 있는 분주한 곳이다.
새벽 1시쯤 금속이 船首(선수)의 문을 치는 소리가 났다. 10분 동안 소리가 계속 나더니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船首 쪽 문이 열리고 물이 들어와 자동차가 주차해 있던 갑판을 덮었다. 1시15분, 배는 처음엔 오른쪽으로 30~40도 기울었다가, 1시30분엔 90도로 기울었다. 에스토니아호는 왼쪽으로 돌다가 네 개의 엔진이 꺼지면서 멈추었다.
1시20분, 船內(선내) 방송으로 여자 목소리가 “비상, 비상, 비상”이라고 소리쳤다. 선원들에게도 비상벨이 울리고, 구명정을 타라는 경보도 울렸다. 배가 너무 기울어 승선자들이 구명정이 있는 갑판으로 올라가기 힘들었다. 이것도 세월호와 비슷한 점이다.
1시22분, 선원이 구조신호를 발신했다. 너무 서둘렀는지 국제구조 신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호는 발틱해를 항해하는 실자 유로파 호를 불렀다. 에스토니아호는, ‘메이데이(긴급상황)’라고 했다. 유로파 호의 1등 항해사는 영어로 “에스토니아, 긴급상황인가?”라고 되물었다. 에스토니아호의 교신자가 바뀌더니 핀란드 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하다가 정전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자 에스토니아호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에스토니아호는 1시50분에 다른 선박의 레이다에서 사라졌다. 수심은 약 80미터. 기울기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만에 전복, 침몰한 것이다. 세월호는 한 시간 반 만에 전복되었다.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지 22분이 지난 2시12분에 마리엘라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배는 구명벌을 바다로 던졌다. 에스토니아호의 구명벌에 타고 있던 탈출자 13명이 던져진 구명벌에 옮겨탔다. 이들은 다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어디 있는지를 알렸다. 마리엘라호는 에스토니아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떠 있는 위치를 스웨덴과 핀란드 헬리콥터들에 알렸다. 스웨덴 헬기는 승선객들이 탈출을 시작한 지 90분 뒤에 날아와 생존자들을 육지로 옮겼다(세월호의 경우는 신고를 받고 30분 만에 해경 헬기가 도착했다). 핀란드 헬기 두 대는 구조하러 온 다른 페리호에 내렸다. 한밤중에 아주 위험한 착륙이었다. 이 헬기는 44명을 구조했다. 이사벨라호는 구조 슬라이드를 내려 16명을 살렸다.
989명의 승선자중 137명이 구조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죽었다. 배가 건진 이들이 34명, 헬기가 구조한 인원은 104명. 852명이 죽었는데, 93軀(구)의 시신은 33일 안에 수습되었다. 배를 탈출한 이들중 반이 구조되었다. 상당수는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低(저)체온증으로 죽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온은 맹골수로와 비슷한 섭씨 10~11도였다. 젊은 남자들이 많이 살았다. 55세 이상 중엔 7명만 살았다. 12세 이하에선 한 명도 없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310명의 승선자들이 외부 갑판으로 올라왔으며, 그중 160명은 구명벌과 구명정에 탔다고 계산하였다. 이들이 주로 구조된 것이다. 757명의 실종자 중 650명은 배 안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월호도 그러했지만 배가 급하게 기울면 배 안에서 이동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고의 主원인은, 船首에 있는 門의 잠금장치가 파도를 맞고 이탈하면서 문이 열려 물이 주차 공간 안으로 들어와 배를 기울게 하였다는 점으로 확인되었다. 문에 이상이 생겨도 조타실(브릿지)에선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선원들은 비상벨을 너무 늦게 눌렀다. 승객들을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페리의 주차 데크로 일단 물이 들어오면 물이 표면을 쓸고 다니면서 배의 복원성을 약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침몰한 에스토니아 호를 인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屍身(시신)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水域(수역)으로 설정했다.
수년 전 독일 함부르그의 유체力學(역학) 연구소와 함부르그 기술대학의 연구팀은 에스토니아호의 침몰 과정을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연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토니아호의 승선자들은 약 40분간의 탈출 가능 시간대가 있었다. 船首 문짝이 떨어져 나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서 전복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국제海事(해사)기구의 규정대로라면 船室에서 갑판으로 다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여 실험 결과는 승선자 989명중 278명만이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 이유는 배가 일단 기울면 탈출로는 사람이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급해진다든지 쏟아져 내린 물건이 막는다든지 하는 이유에서였다. 넘어가는 船體(선체)에선 구명정을 제대로 내릴 수가 없음도 확인되었다. 기울어져가는 에스토니아號는 일종의 棺(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서 많은 승선자들이 갑판으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2015년 9월30일. 조갑제닷컴>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