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사회부장 일부 네티즌이 안철수 의원이 펴냈던 책 ‘안철수의 생각’을 찢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 그룹 지지자들일 것이다. 탈당을 결행한 ‘안철수의 행동’에 격분해 ‘안철수의 생각’을 찢은 셈이다. 자칭 진보진영 지지자들이 남의 책을 찢는, 문명사회에 있어서는 안 될 야만적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그들이 찢어버린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난 2012년 7월, 정치 입문을 앞둔 ‘청춘 콘서트 스타’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지금껏 또렷이 남는 대목은, 그가 대학 시절 무의촌 의료봉사를 할 때의 경험을 전한 것이다. 당시 그를 비롯한 의대생들이 성심껏 진료했으나 환자들의 병이 도무지 낫지 않았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숙한 처치 탓이라고 여겼다. 알고 보니 환자들이 무료로 받은 약을 먹지 않아서였다. 그때 그는 단돈 100원을 받고 약을 팔기 시작했다. 공짜 약을 먹지 않던 환자들이 돈을 내고 받은 약은 꾸준히 복용했다. 그 덕분에 치유율이 크게 높아졌다. 이 일로 그는 무료 제공이 최선의 부조(扶助)가 아님을 깨닫게 됐다.
안 의원은 최근 자신의 복지관을 ‘보편과 선별의 전략적
조합’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중도(中道) 노선이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건 ‘청년 수당’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청년 수당은 미취업 청년 중 사회활동 의지가 있는 3000명을 선발해 매달 50만 원씩 6개월간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공짜 복지 논란이 벌어졌을 때,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서울시 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공짜 제공을 서슴지 않는 복지 노선을 드러낸 것이다. ‘정의로운 복지’를 내세우면서도 무료 제공은 경계하는 안 의원 생각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안 의원 탈당은 권력 투쟁의 결과다. 그 바탕에는 인간적 불신과 함께 정치적 노선 차이가 있다. 서로 함께할 수 없었던 이들이 정권 쟁취라는 깃발 아래 잠시 모여 있었던 것일 뿐이다. 이들이 다시 통합해야 한다거나 내년 총선 직전에 단일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후진적이다. 한국 정치를 3류에 계속 머물게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 쟁취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우리 여의도의 현실이긴 하다. 그럼에도 정책을 통해 국민에게 선택받는 정치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있다.
정치권에 정책 경쟁을 주문하면서도
선거철이 다가오니 걱정이 앞선다. 지난 2012년 총선, 대선 국면에서 불었던 복지 광풍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탓이다. 당시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0∼5세 무상보육, 고교 무상
교육, 기초연금 도입 등을 약속했다. 이 공약들이 뒤에 제대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기초연금 공약은 예산 부족으로 수정을 하는
바람에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무상보육 예산을 두고 현재 중앙 정부와 전국 교육청이 대립하고 있고, 고교 무상교육은 공약(空約)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걸 뻔히 아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내년 총선 공약으로 ‘복지 확대’를 제시했다. 사회 격차를 해소하고 기회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복지 국가.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누가 그걸 부인하겠는가. 다만 이 시점에서 여당이 정책의 방점을 복지에 찍을 수 있는지 냉철히 판단해 봐야 한다. 지금은 땅에 떨어진 경제성장 동력을 일으키는 데 내남없이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우리 앞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경기 둔화라는 외부 위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국내 기업의 수출경쟁력 저하, 구조개혁의 답보 등은 내부적 걱정거리다.
성장 동력의 추락을 막지 못하면, 외환위기 때처럼 비참한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복지는 성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상황인 줄 알면서도 정치권은 표심을 잡기 위해 각종 복지 공약을 쏟아놓을 것이다.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헛된 공약은 자제해 주세요.”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것은 공염불이다. 국민 스스로 선거용 복지 공약을 멀리할 수 있는 안목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 유권자를 모시는 척하며 속으로는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들이켜는 존재’쯤으로 여기는 후보의 공약은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그들을 표로 심판할 줄 아는 국민이라야 자신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