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긴급 소집해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첫 시험용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동북아의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북한 핵 문제의 성격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수소폭탄의 위력은 기존 핵폭탄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넘는다. 북한이 ‘소형화된 수소폭탄’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결합시킬 경우 북핵은 한반도를 넘어 미국과 국제사회를 직접 겨냥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나 중국의 6자회담 재개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최악의 핵 재앙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군과 정보 당국은 북의 핵실험 징후도 알아채지 못하는 치명적 ‘안보 구멍’을 드러냈다. 북한의 핵실험장이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도 우리 정부가 아닌 유럽지중해지진센터였다. 군 당국은 이번 실험의 위력이 3차 핵실험과 비슷한 6∼7kt(킬로톤)이어서 수소폭탄으로 볼 수 없다며 평가절하에 급급했다. 수소폭탄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이라고 해도 이번 핵실험의 엄중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작년 12월 김정은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을 “블러핑(허풍)”이라며 안이하게 판단하다 뒤통수를 맞았다. 북이 실제로 핵 공격을 했다면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판국이다.
북의 핵 도발이 세계를 겨냥함으로써 이제 세계는 중국을 주시하게 됐다. 북한은 과거 핵실험 때 직간접적으로 예고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미국 중국에도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전통적 북-중관계 복원을 앞세워 북에 핵 보유만큼은 결코 허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던 시진핑 국가주석이 허를 찔린 셈이다. 중국 정부는 어제 외교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조선(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고, 상황을 악화하는 그 어떤 행동도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중국은 당연히 해야 할 국제사회의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 새벽 긴급 소집되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지만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북한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성이 또한번 확인된 이상 중국은 언제까지 북한을 ‘자산’으로 여기며 끼고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함부로 핵 도발을 하는 북한을 ‘완충지대’로 두는 것보다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평화통일이 중국의 안정과 번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불용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보다 주도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북이 4차 핵실험 뒤 국제사회의 압박이 정권과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으로 예상했다면 이번 핵실험을 감행하지 못했음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증강된 북의 핵 위협에 과연 핵 없이 대처할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확고하다 해도 유사시 얼마나 즉각적으로 효과를 낼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미국이 전 세계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면서 한반도에서도 철수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방안도 핵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검토할 수밖에 없는 비상 상황이다. 1991년 남북의 비핵화선언은 북의 핵개발로 휴지조각이 됐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어떻게든 북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도록 노력하되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을 비롯해 확실한 자위적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북의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도 전면적인 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북핵 문제는 어떤 부담이 따르더라도 이번엔 반드시 끝을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김정은 정권 교체로 이어지는 역사의 대변환을 내다보지 않고, 핵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는 데 정부와 국민이 뜻을 모으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김정은의 도발에 대한 응징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역사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