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지형이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재편된 이후 산업·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 등 시급한 국정 과제가 흔들리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 정당’을 표방했던 여야가 포퓰리즘 악습을 재연하면서 구조개혁의 발목부터 잡는 양상이다. 노조 편들기 경쟁은 일파(一波)일 뿐이다.
23일 대우조선해양으로 몰려간 여야 수뇌부는 우려했던 대로 노조가 듣기 좋은 얘기만 늘어놓았다.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노조의 동참과 고통 분담이 필수다. 그러나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에 대한 언급은 쏙 빼고 구체적인 실업대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에 당이 나설 것이라고 생색을 냈다. 본말과 선후를 바꾼 처신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우조선 노조에 한 말은 야당임을 고려하더라도 경제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그는 1만 명 이상 고용하는 업체는 근로자의 경영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김 대표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관심을 가져온 노조의 경영 참여는 독일 특유의 노사 문화의 소산으로,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잖아도 노조의 경영 참여를 요구해온 대우조선 노조로선 환호작약할 얘기 아닌가.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에 노조를 끼워 넣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김 대표 스스로 ‘경제민주화의 최종 단계’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만큼 더 차분한 연구·토론이 필요한 주제라는 점에서, 김 대표 발언은 시점도 장소도 매우 부적절했다.
이미 노동계는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조선업체 노조들은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면서 내달 초 단체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해고·취업규칙 등 2대 지침을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키로 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선 전만 해도 노동계는 취약 업종의 구조조정이 얼마간 불가피하다는 분위기였으나 반전되는 양상이다. 노조와 야당이 합세하고, 여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박근혜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동력을 잃고 있다. 더민주가 성과연봉제 조사단을 꾸리는 등 정부를 압박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불법·탈법이 없게 하겠다”고 물러서고 말았다.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한시가 바쁜 구조조정은 산으로 가는 양상이다. 노동개혁은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절실하지만 여대(與大) 국회에서도 해내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도, 노동개혁을 위해서도 노조 기득권 개혁이 절실하다. 여야 할 것 없이 노조에 러브콜만 보내다간 구조개혁은 물 건너가고 한국경제의 근간도 흔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