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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김정일이 푹 빠졌던 노래 그때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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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평양 유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남한의 '국민가수' 조용필의 콘서트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 있을 때 저는 한국 노래 녹음테이프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카세트라고 불렀죠? 지금 이 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분들도 몰래 한국노래 카세트를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참 알 수 없었던 건 카세트마다 적혀있는 팝송, 트롯트, 메들리 이런 노래 종목들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팝송은 대중음악이라는 뜻이고 트롯트는 일제 강점기 류행가 형식의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메들리는 한 가수가 류행가인 트롯트를 연속적으로 부르는 것으로 연속음악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듯합니다. 북한 정권이 총칼을 휘두르며 다스려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 우리 민족의 향기가 넘쳐나는 경쾌하고 구수한 한국 음악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속에 한국노래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때는 ‘고난의 행군’ 직전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을 드나들던 밀수꾼들이 중국인들로부터 한국음악 카세트를 공짜나 헐값에 들여와 장마당에서 비싼 값에 몰래 팔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노래를 단순히 북한의 간부들이나 일반 주민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민들을 향해서는 그토록 한국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협박해 오던 김정일은 1960년대부터 한국음악에 푹 빠져 살아왔습니다.

2000년 6월 6.15 남북정상회담 때에 대한민국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이 오찬장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내 곁에 있어 줘’를 부르고 나서 김정일에게 한국 가수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여성 가수로는 이미자와 김연자, 은방울 자매를, 남성가수는 조용필과 나훈아, 남진을 꼽았을 정도로 한국노래는 물론 가수들의 이름까지 낱낱이 외울 정도였습니다.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은 미국의 유명한 가수 에릭 클랩튼의 노래를 듣기 위해 숱한 돈을 들여가며 싱가포르를 방문할 정도였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김정은과 매우 가까이 지내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올해 5월에도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북한을 탈출할 때 김정은의 사진을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 김정일의 후계자가 김정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입니다.

후지모토 겐지가 일본에서 출판한 책 ‘김정일 요리사’를 보면 김정일이 성혜림과 연애를 할 때 승용차 안에서 밤새 한국의 이름난 가수 심수봉이 부르는 ‘그때 그 사람’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만큼 김정일은 한국의 노래를 일찍부터 들었고 누구보다 사랑과 배신을 밥 먹듯 때린 인간이었습니다. 김정일이 한국노래를 좋아한다는 소식은 1980년대 중반 북한의 문화예술부문의 간부들을 통하여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앙당 선전선동부 강연자들이 직접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였습니다. 강연자들이 말하기를 ‘김정일은 그 많은 세계명곡들 중에 한번 들었던 노래는 꼭 기억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노래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앙당 선전선동부는 한때 김정일이 업무를 보면서 두 세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고 많이 선전했습니다. 한쪽으로는 노래를 감상하면서 제의서를 비준했고 동시에 전화를 걸어 고위 간부들과 사업토의를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우상화교육이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한국에 와서 컴퓨터를 켜놓고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와중에 전화를 하면서 하루 일과까지 체크해야 하는 나는 김정일보다 몇 배 위대한 인물이 아닌가 생각돼 괜히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업무를 보면서 김정일이 늘 들었던 음악은 한국노래들이라고 북한에 있을 때 어떤 고위급 자제였던 친구로부터 들었습니다. 워낙 외국어는 하나도 모르는 김정일이 호기심에 세계명곡들을 한 번씩 들어 보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닐 때 동창생이었던 최세현은 아버지가 호위사령부 보위부에서 부부장을 하였고 집은 주석궁전이 있던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의 단독주택이었습니다. 그 주석궁전이 바로 오늘날 금수산기념궁전입니다.

지금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라고 주석궁이었던 금수산기념궁전을 개방해 놓았지만 1990년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까지만 해도 그 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할 수가 없을 정도로 경계가 삼엄했습니다.

호위사령부 간부들의 사택은 김일성종합대학 기숙사에서 주석궁전 방향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였습니다. 호위국장과 부국장, 보위부장 등 장령급 군관가족들은 담장으로 둘러막힌 큰 독립주택에 살았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1984년, 오후가 되면 부모들이 출근하고 텅 빈 최세현의 집에 자주 놀려 다녔습니다. 당시만 해도 김정일이 운동효과도 있다며 디스코 춤을 허용했는데 훗날 사회무질서를 질타하며 디스코 춤을 일체 금지시켰습니다.

대학 기숙사에서 가까운 최세현의 집은 그때 우리들의 디스코 춤판으로 변했습니다. 초기에는 북한노래 중에서 ‘군밤타령’, ‘휘파람’, ‘배우자’ 등 빠른 곡에 속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음악에 맞춰 디스코 춤을 추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일본산 카세트식의 ‘파나소닉’ 녹음기가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그런 녹음기가 있는 집이 정말 드물었습니다. 최세현은 그 녹음기를 가리키며 김정일이 자기의 아버지에게 직접 하사한 선물이라고 늘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일요일이면 돈을 모아 평양시 중구역 창광원 옆에 있는 딸라상점인 락원백화점에 가서 외화로만 판매하는 음악이 든 카세트를 사다가 최세현의 집에 가서 녹음기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것을 한 달에 네댓 번씩 조직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져간 카세트를 녹음기에 넣으려다가 안에 다른 카세트가 있어 틀어보니 북한 노래가 아닌 다른 나라 노래가 울려나왔습니다. 깜짝 놀란 친구가 녹음기를 꺼버렸는데 술이 한잔씩 들어가자 우리의 설득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최세현은 검열차원에서 아버지가 듣는 것이라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당부했습니다. 그때 처음 한국의 트롯트 음악을 들어보았는데 너무 긴장되고 황흘한 나머지 가수의 이름이나 제목도 새겨두지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김정일은 늘 한국음악에 빠져 살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1988년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는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9명의 대학생들이 평양시의 각 구역 체신소 우편함에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투서를 보낸 사건이었습니다. 투서는 보낸 사람의 주소도 없었고 필적감정에 나타나지 않게 타자로 글을 썼습니다.

편지내용에는 ‘한사람을 위한 음악’, ‘한사람을 위한 나라’, ‘말할 자유마저 빼앗긴 인민의 삶은 과연 무엇인가?’ 등의 질타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판하면서 중국처럼 개혁개방 하여 경제발전을 이루고 개인숭배를 없애야 한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한명은 김일성종합대학 2호교사 9층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붙잡혀 정치범관리소에 끌려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인민들에겐 노래 한곡 자유롭게 듣지 못하게 만든 나라가 김일성이 세운 조선이었습니다.

김정일에 이어 권력을 휘두르며 인민들을 무자비하게 혹사하는 김정은은 선대 독재자들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하지만 목숨은 버릴지언정 자유는 못 버린다는 인간 본성의 감정을 잊지 말라고 김정은에게 조언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


출처 자유아시아방송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