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공식 일정이 26일 끝났다. 이번 ARF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처음 열리는 다자 회의로, 앞으로 북핵·사드 외교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하지만 이번 ARF에서 한국은 대북 제재의 국제 공조 필요성만 반복했을 뿐 ‘무기력·무능’ 외교의 현주소만 드러냈다. 물론 이번 ARF는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더욱 격렬해진 회의여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 외교의 입지가 여의치 않은 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국제 정세는 충분히 예상된 터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자리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 “쌍방의 신뢰를 훼손한 것”이라며 한국 측을 공개적으로 면박했다. 그러나 윤병세 장관은 속수무책일 뿐이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했을 땐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의 ‘사대주의적 외교’를 틈타 북한은 이번 회의를 핵보유국을 정당화하는 외교 무대로 삼는 등 공격적인 외교를 펼쳤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하늘로 날아갔다”며 북핵을 노골적으로 옹호했다. “핵 억지력은 자기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협박까지 늘어놨다.
북핵 제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사항이다. 또, 사드는 북핵을 막기 위한 자위 수단이다. 북핵과 사드는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는 ‘사드 방어’에 급급했다. 그마저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으니 한심할 뿐이다. ‘복수의 외교장관들이 사드 계획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내용이 ARF 의장성명 초안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물론 미국과 일본이 강력 반대하고 있어 이 구절이 그대로 채택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만약 ‘사드 우려’가 의장성명에 최종적으로 명시된다면 한국 외교의 실패(失敗)다. 이런 재앙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사드 문제는 앞으로 줄줄이 열릴 다자회의에서 계속 쟁점화될 게 분명하다. 당장 8월에는 일본에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예정돼 있고, 9월에는 광저우 G20 정상회의 등이 열린다. 이 와중에 미·중 간의 경쟁·대립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이번 ARF 외교 결과를 제대로 결산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논리와 촘촘한 외교 전략을 짜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과 같이 절박성과 치열성 없는 외교로는 험난한 동북아 국제정세의 파고(波高)를 견뎌낼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