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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탄핵문제로 국론갈려 내전-분열돼선 안됩니다!”

<단독 접견기>연희동 사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다!

“내 일생의 실천의 화두는 忠-義였다”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하고 강조하였다.

나는 신년 인사차 나는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하였다. 2017년 2월 9일 오후 2시 연희동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으니 인적이 끊긴 고적한 산사같은 분위기였다. 과거 북적이던 아래층 비서실은 불도 꺼지고 인적이 끊겨 있었다. 두 번째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특별법에 의해 수난을 당해서인가. 응접실에서 나는 새해 문안 인사를 드리니 전대통령은 나의 산사에 찾아가고 싶다고 위치를 물었다. 속세의 인심의 제행무상을 절감하면서 산사에 가고 싶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정을 나는 이해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충의를 다 바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자까지 붙잡아 법정에 세웠는데, 그의 딸은 대통령이 되자 추징금을 받아 낸다는 명분을 세워 부관참시(剖棺斬屍)하듯 YS에 이어 두 번 째 소급 입법으로 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족 전체는 물론이요, 처남 등에까지 마치 연좌제를 적용하듯 재산을 추징하고 수모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추징금을 찾아내기 위해 전파 탐지기 까지 동원하여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사저가 있는 땅속까지 뒤졌다는 후일담(後日譚)이 전해온다. 왜 그랬을까? 온국민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들은 YS의 특별법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옥고와 법정에 최고형을 받고, 추징금을 받아낸 것을 알고 더 이상 고통을 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전직 대통령에 예우를 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야기 도중에 불쑥 “최태민은 아직 살아 있지요?”내게 물었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94년도 돌아가셨어요.” 나는 내심 나의 답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자책했다. 그것은 선문답(禪問答)같은 질문이었다. 최태민의 육신은 떠나갔지만, 사상과 비법(秘法)을 물려받은 사람은 존재하는 것이다.

곧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조로 자신의 이야기와 어머니의 불심(佛心)과 기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충의사상은 남 달랐다고 나는 주장한다. 근거는 6,25 김일성의 남침전쟁이 일어나고 낙동강 전선에 몰려온 북괴군의 포탄이 대구 근교에까지 떨어질 무렵,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의 전두환 학생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각오와 구호아래 태극기를 이마에 매고 전선에 자원입대 하려 했다. 소식을 들은 고향의 어머니가 달려와 “학교를 졸업하고 가라”는 눈물로 만류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에 효심으로 전선으로 달려가는 것을 유예 하다가 그 후, 그는 진해에 있었던 육사로 달려갔다. 그 때 또하나의 자원 입대자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그들은 기차에 타고 진해의 육사로 가면서 애국가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한다. 그 후 전두환 전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최초의 정규 육사 4년제로 하여 11기 졸업생이 되었다. 12기에는 평생 동지인 박희도 장군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위 시절 5,16 혁명을 성공시킨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에 근무하는 인연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차지철과 전두환 두 사람에게 국회로 진출할 것을 명령하듯 권유하였다. 차지철은 국회로 진출하였지만, 전두환 대위는 박정희 대통령에 “조국에 충성하는 군인의 길로” 소원하고, 완강히 거부의사를 표명하여 군에 남을 수 있었다. 대령 계급장을 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월남에 파병되어 백마부대 29연대장으로 활약했었다.

군인으로 조국에 충성하겠다는 전두환 당시 장군에게 기이한 운명의 날이 닥쳐왔다.

1사단장으로 군무할 때였다. 부하 사병이 한국 최초로 북괴군의 지하 땅굴을 발견하였다. 주한 미군 사령관이 수차 달려오고 박정희 대통령이 수차 찾아와 노고를 치하하고, 급기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 되었다. 그 후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자와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군의 선배, 동료, 부하들의 핵심이 되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김재규 체포 결단이 없었다면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과 관련자들이 또하나의 혁명정권을 등장 시키는 불행한 수순이 있을 뻔 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하였다. “나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을 전혀 안 했는 데…” 그의 기이한 운명을 거듭 이야기 하였다.

설악산 봉정암에 기도차 등산했을 때, 부인 이순자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처럼 장기집권을 하면 안된다,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떠나자“고 강권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내의 권유가 옳다고 생각하고, 장기집권을 포기하였고, 문민 대통령들의 시대를 빠르게 오게 하는 ”6,29 선언“을 기초하였다. 그는 회고하면서 결론 지었다. ”모두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지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북핵이 언제 기습해올지 모르는 위기의 대한민국에 대통령 탄핵문제로 “국론이 내전이 일어날 정도로 분열되어서는 안된다”고 깊이 우려하였다. 국론 분열을 가장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들은 북이라고 지적하고, “6,25 전쟁 같이 동족을 살해하는 전쟁은 다시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북은 북핵 등으로 연일이다시피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공갈협박을 해대는 데, 첫째, 북핵증강을 의미하는 대북퍼주기가 민족의 활로라고 믿는 정치인은 깨어난 국민들이 각성시켜 주어야 하고, 둘째 음지에서 북의 대남공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국정원을 폐지 하거나 국내부서를 폐지햐야 한다고 ”정치 공약같이 주장하는 정치인“은 역시 국민들이 나서 대오각성 시켜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나도 정보부에 조금 인연이 있었는 데… 대한민국 운영에 대단히 중요한 기관중의 하나요. 선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에서는 정보부 역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정치인들처럼 “제 맘에 안들면 국정원을 폐지 또는 국내 부서를 없앤다고 공약같이 말하는 정치인은 선진국에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야댱 모 정치인의 국정원 폐지 또는 국내부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한국에 ”북의 간첩 세상을 한국에 만들겠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릅니까? 과거 북의 무장 간첩 등에게 무고한 국민들이 얼마나 살해당했습니까?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머니를 회고하였다. “내 어머니는 처녀 때부터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삼존불(三尊佛)께 지극지성으로 기도하였답니다. 내가 기이한 운명으로 대통령이 된 것도 어머니의 기도 덕“으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중생의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주신다”는 대적광전 부처님의 영험설화는 어머니의 믿음이었지요.“ 또, 전대통령은 백담사 법당에서 2년이 넘는 세월에 새벽이면 지장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 일화를 회고하였다. ”나에게 그동안 닥친 불행에 절망하지 않은 것은 불교의 “마음공부”라고 증언하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강력히 동양 삼국 한-중-일의 평화론을 주장하였다. “한국은 일-중의 강대국 사이에 끼어 그동안 부지기수의 불행을 겪었지요. 현명한 정치인들은 군사적 충돌 보다는 외교적으로 충돌없이 상호 협력하는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한국 불교의 승려들이 동양평화를 위해 중국불교계의 승려들과 일본불교의 승려들을 설득하여 ”동양 삼국이 평화속에 협력하고 공존할 수 있도록 기여를 하였으면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중국 불교계는 한국에 불교를 전해준 인연이 크지 않습니까? 한-중-일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 안됩니다. 한국의 사드배치에 중국정치는 반발과 보복으로 나가는 데, 중국은 먼저 북핵 해체에 앞장 서는 모습을 보여야지, 오직 사드배치만 비난하고 보복운운 하는 것은 맞지 않은 정치“라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제하고, 한국불교 승려들이 나서 불교를 전해준 중국불교계에 감사인사를 하고, 불교가 동양평화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바랬다. 또 한국의 승려들이 일본불교의 승려들에게 동양평화에 나서 주기를 윤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내 일생의 실천의 화두는 忠-義였다”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거듭 회고하고 강조하였다. “조국을 구하겠다” 고교시절 태극기를 이마에 매고 애국가를 부르며 자원입대한 정신, 군인으로 살겠다는 정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자를 전격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는 정신은 충(忠)과 의(義)의 압권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헤어질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은 탄식하듯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대통령 재임기간 서민들의 경제를 위해 더욱 헌신하지 못한 것이 통한이요. 작금에 서민들의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는지 오래인데 한국정치판은 탄핵으로 국론분열이 나날히 우심해져서 큰 걱정이요, 스님은 오직 서민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그들에 희망주는 글을 많이 써 주시오.” 거듭 당부 하였다. 내가 걸망을 매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추운데 서서 전송해주었다. 그는 조국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忠-義를 바쳤지만, 구순을 바라보는 가난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