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무슨 길고 짧음이 있나 !
-己亥를 己解로 바꾸면 바로 나의 해탈-
이종찬(동국대 명예교수)
섣달그믐이 내일 모레이다.
또 한 해가 다 갔으니,
이런 때 흔히 쓰는 용어가 무상이다.
그러나 이 무상 그 자체가 바로 일상의 정상이 아닌가.
섣달그믐의 자정 전 1초를 놓고 올해와 다음 해를 구분하려 하여
한 해의 경계로 삼으니 인간 세상의 산수법이 참으로 어지러운 셈이다.
여기서 또 의상대사의 “한량없는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의 당체(無量遠劫卽一念)”이라 한
법성게의 한 구절이 진리임을 알게 된다.
그믐의 자정을 지나 설날 아침에 떡국 차례상을 마주한 조손간의 느낌도 바로 하늘 땅의 거리가 된다.
어린 손자는 한 살 더 먹어 좋다 하고 늙은 할아버지는 한 살 더 늙어 서글프다 할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들이 설정한 시간 단위의 그물에 스스로 갇힌 생각이다.
여기에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 1178-1234)의 설날 법어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少者添一歲(소자첨일세) 어린이는 한 살 더 먹는다 하고
老者減一年(노자감일년) 늙은이는 한 살 줄었으면 하지만
非干老少者(비간노소자) 늙은이 어린이 가릴 것 없이
無減亦無添(무감역무첨) 덜함도 없고 더함도 없는 것
添減無添減(첨감무첨감) 더함 덜함이나 더함 덜함 없다함이나
都拈放一邊(도념방일변) 모두 집어서 한 편으로 내어 던져라.
시간에 무슨 장단이 있으며 공간에 무슨 광협(廣狹)이 있나,
사람들이 공연히 제나름으로 설정해 놓고 좁다 넓다 길다 짧다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가는 해, 오는 해라 하더라도 이에 편승하여 희비애락을 담지 말자.
기해(己亥)년이 되었으니,
이 기해를 기해(己解)로 바꾸면 “내(己) 나름대로의 해탈(解脫)”이 되지 않겠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