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한국사회, 폭력시위에 필수로 등장한 죽창들
대정부 시위 때 준 군사무기로 무장한 시위대들이 투쟁하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닌 한국의 현실이 되버렸다. 화염병, 대형 고무줄 새총으로 쏘아대는 쇠구슬, 벽돌 던지기, 솨파이프, 낫, 죽창 등으로 시위대는 공권력을 향해 준 군사작전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죽창(竹槍)이다. 시위대들이 공권력을 향해 후려치고 쑤셔대는 죽창에 다수의 전경들이 중경상을 입는 가운데 어느 전경은 죽창에 한쪽 눈이 질려 실명위기에 처 하기도 했다. 좌파 정당같은 민노당과 민주당은 시위대의 폭력시위를 ‘시위문화’라고 강변하여 옹호, 두둔한다. 그 죽창의 시위는 발전하여 언제 일반국민을 향할 지 예측불허인 위기에 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과거 역사가 죽창에 의해 무수히 인명을 살상 한 생생한 역사가 웅변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띠라서 예방차원에서 필자는 경세(警世)의 목탁을 두두리지 않을 수 없다.
▲1948년 06월, 전남 광양지부 대종청년단 결단식, 죽창을 잡은 여중생들.@중앙불교(www.jab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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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은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인명 살상을 위한 준 병장기(兵仗器)이다. 죽창은 대나무로 만들어지며, 가벼워서 소년소녀까지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전란시 호국을 위해 죽창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반란군들과 폭도, 산적들 등이 죽창을 들어 관군을 살상하기도 했다. 또 김일성 왕국을 추종하는 좌익들이 대한민국을 말살하기 위해 죽창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대사에 죽창이 난무한 것은 제주 4,3사태요, 14연대의 반란으로 시작한 여순반란(麗順叛亂), 한국전에서 인민군이 장악한 지역에서 좌익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들어 좌익이 아닌 대한민국의 애국자들을 먼저 살상했다. 붉은 완장들이 높이 든 죽창의 첫 희생자는 군경(軍警)이요, 그들의 가족, 판검사(判檢事), 지주(地主), 우익인사들이었다. “저 사람은 군경가족이요” 이 한마디면 붉은 완장들은 죽창으로 무조건 찔러 죽였다.
Ⅱ.토지무상분배의 당근에 든 죽창들, 오늘도 있을 수 있어
붉은 완장들은 누구인가? 토착 빨갱이들이다. 그들 대다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같은 붉은 사상책자를 본적도 없는 자들이다. 좌익 지식인들이 지주들로부터 토지의 무상몰수를 통해 인민들에게 무상분배를 해준다는 그 선동의 주술(呪術)에 취해 죽창을 높이 들은 것이다. 인민군이나 반란군이 점령한 지역에 붉은 완장들은 토지무상분배를 통해 인민의 낙원이 오는 것을 상상하며, 무상분배의 걸림돌인 지주의 가슴에 죽창을 쑤셔 박고, 군경과 그들의 가족, 판검사, 우익인사들의 가슴에 죽창을 찌르고 또 찔렀다. 토지 무상분배는 새빨간 사기였다. 토지 무상분배를 염원하며 죽창을 든 농부들은 국유화된 집단농장에서 비민주, 무인권속에 김정일의 머슴살이를 할 뿐이었다.
죽창의 제조법은 어렵지 않다. 대나무 밭에서 선택하여 대나무 끝을 칼로 날가롭게 만든다. 그다음에 큰 가마솥에 콩기름을 펄펄 끓인다. 그 끓는 콩기름속에 날카롭게 만든 대나무 끝을 집어 넣어 튀긴다. 일정시간 튀기면 대나무 끝은 칼처럼 단단해지고 예리해진다. 이렇게 만든 죽창은 예리하고 가벼워 소년 소녀들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환장한 어른들의 조종으로 여중생들까지 집단으로 죽창 교육을 받은 기록사진이 있다.
학살만행의 전형적인 모습인 ‘킬링필드’의 학살 사건 때도 죽창은 난무했다. 폴 포트(Pol Pot)가 공산 게릴라군인 크메르 루주(Khmer Rouges, ‘붉은 크메르’라는 뜻)군을 이끌고 1975년 4월 18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점령했다. 폴포트는 1975년 4월, 정권을 잡고부터 1978년까지 통치하는 동안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200만 명을 학살했다. 이른바 ‘킬링필드(Killing Field)’라고 불리는 대량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폴포트의 학살의 변(辯)은 “인민의 낙원을 위한 쓰레기 청소”를 한다는 것이었다. 학살은 주로 청소년들을 시켰다. 독자들이시여, 초중생들이 총을 들어 결박당한 인사의 뒷머리에 총을 발사하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것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처형당한 인사 가운데는 그들의 신앙의 대상인 승려들도 있었다.
Ⅲ. 초중생들이 총과 죽창으로 8만명의 승려들을 학살
폴 포트는 모든 대학과 학교를 폐쇄하고 교수의 80~90% 이상을 처형했다. 대학생 50%를 처형했다. 죽음을 당한 사람 중에는 안경을 썼거나, 영어를 배웠거나, 손이 부드럽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종교를 금지했다. 붉은 청소년들을 시켜 거의 모든 사원을 파괴시키고, 전국 승려들을 체포하여 8만여 명의 승려들을 주로 죽창으로 처형했다. 살아남은 승려는 500여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강제노동으로 끌려갔다. 사원은 텅 비고 말았다. 불교의 수난이 어찌 캄보디아 뿐일까. 1975년 4월 30일, 월맹 공산군이 사이공 시(市)를 점령하여 월남을 패망시켰다. 같은 해 라오스에도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인도 차이나 지역이 공산통차 지역으로 바뀌며 “인민의 낙원을 위한 쓰레기 청소”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청소년들이 높이 든 죽창에 죽은 자들은 시산혈해(尸山血海)를 이루었다.
▲2009년 대전 시가지에서 민노총, 화물연대 등이 공권력을 향해 찌르고 쑤신 죽창들.@중앙불교(www.jabg.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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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캄보디아와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대량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을까? 물론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겠지만, 그들이 정권을 잡도록 일반인과 학생, 승려 등 여타 종교인들이 직간접으로 협력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불교국가의 지도적인 승려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협조했기에 자업자득(自業自得)으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떼주검을 당한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극렬히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배격하며 공산주의에 협조한 월남의 승려들이 결국은 떼주검을 당하고, 산자는 국외 탈출 한 것을 우리는 절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작금에 한국불교계에도 일부 좌파승려들이 상습적으로 정부의 국책사업 망치기에 나섯고, 민족통일을 운위(云謂)하며, 자유대한 망치기에 도끼질을 쉬지 않고 있다. 어찌 통탄, 개탄을 금할 수 있을까!! 그들이 한국사회에 죽창시절을 앞서 부르는 것같다.
폴포트가 인간백정이 되어 수백만의 국민을 죽일 때, 이를 묵인해준 캄보디아의 왕은 ‘시아누크’였다. 시아누크, 폴포트, 김일성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은 친구였다. 시아누크는 김일성은 의형제를 맺어 북한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 국제적 뉴스가 되었다. 폴포트 보다 더 무서운 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한국전 때 만약 김일성이 승리했다면, 세계사에 유례없는 학살이 있었을 것인데, 이를 피한 것은 국운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핵폭탄을 만들었다. 핵폭탄의 사용처는 미국, 일본, 중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협박하고, 말살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김정일은 폴포트 처럼 "인민의 낙원을 위한 대한민국 청소"를 공공연히 부르짖고 있다. 죽창의 등장은 김정일을 부르는 전초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민노당, 민주당의 굿장단에 폭난의 춤을 추어대는 민노총 등이 서울, 대전중심가에서 시위할 때, 1000여 개의 죽창으로 공권력을 향해 찌르고 쑤신 소식은 나변에 있는가? 첫째, 통치자를 무시하고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둘째, 법을 집행하는 검경(檢警)과 법원을 무시하고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셋째, 폭난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을 무시하고,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민노당, 민주당은 죽창시위에 “시위문화”라고 찬가를 부르며, 북장구를 쳐대고, 민노당, 민주당에게는 “잘 한다, 더욱 분투하라”고 북장구를 쳐대는 곳이 북한정권인 것은 한국의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주지하는 사실이다.
Ⅳ. 중도로 좌파에게 추파보내고, 토목공사만 성공하려는 대통령?
죽창 등 폭력시위의 문제 해결에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는 최대 걸림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DJ, 노무현, 그리고 DJ의 아류(亞流)인 YS의 통치기간 잃어버린 15년 탓에 죽창이 시위문화의 마땅히 있어야 할 소품으로 된 세상을 묵인하고 법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보수우익 덕에 대통령이 되고서도 보수우익을 부정하고, 국내 좌파와 그들의 상전인 북한정권이 두려워 중도주의자로 자처하는 것은 비겁과 기회주의자의 절정이라고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가가대소(呵呵大笑)할 수 있다. 대통령이 죽창을 든 좌파 척결을 하지 않으니, 사법기관은 솜방망이 처벌이요, 복지부동(伏地不動)이다. 좌파들에게 자신은 중도라고 추파를 보내고, 돈되는 대형토목공사만 성공하려는 이대통령이 아닌가? 토목공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대한에 대한 선명한 충성이라는 것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이대통령이 보수우익을 부정하고 있으니,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는 옛말처럼 판사가 스스로 헌법재판소에 심야에도 야간시위를 할 수 있도록 제소하고, 헌법재판소는 승인하듯 판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모두 국내 좌파들과 북한정권에 보비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일부 판사들은 중도를 넘어 좌파들 편에 섰다고 우익논객들에게 지탄을 받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닌 추잡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좌파들에게 보비위히기 위해 좌파들을 엄단한 선배들의 판결을 뒤엎고, 또 자신은 솜방망이 판결을 해주는 일부 판사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보위한다는 논객들 가운데 괴이한 자는 있다. 우익적인 글을 써 고성대명(高姓大名)을 얻으며 상술(商術)의 도(道)로 같은 우익논객들을 감탄시키더니 결정직인 순간에는 우익 지도자에게 필도(筆刀)로 찌르려 들고, 북한정권을 변호하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농간하는 것 아닌가? 결국 좌파들을 향한 보비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 개탄치 않을 수 있는가? 지탄의 소리가 충천하다. 대한민국을 보위하려는 각오가 그러하니 죽창부대가 나날히 치성할 수 밖에 없다.
Ⅴ.죽창시위는 엄단해야
병이 골수에 사부치면 백약이 무효로서 저승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옛말이 있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북한정권의 충복들이 자행한 잃어버린 15년에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중환자가 되어 버렸다. 오늘의 주제인 죽창이 오늘은 공권력을 향했지만, 내일, 아니 언제든 자유대한을 수호하려는 애국국민들의 가슴을 겨눌지 그것은 그 누구도 장담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이다. 과거처럼 토지무상분배를 위해 지주의 가슴을 죽창으로 찌르듯, 자유대한의 경제인사, 있는 자들의 가슴을 겨눌지 모르는 것이다.
끝으로, 죽창이 오면 뒤따라 총성이 울려 퍼진다. 한국전에도 좌익들은 총과 죽창이 함께 자유대한의 인사들을 학살한 전력이 있다. 좌파들이 죽창을 들어 일반 국민들을 찌르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좌우익의 공존을 외쳐온 잃어버린 15년은, 한국전을 불러온 전초전처럼, 총성없는 전쟁, 좌우대결만을 만들었을 뿐이다. 존경하는 이대통령과 국민들이시여, 죽창 시위는 엄단해야 한다. 죽물(竹物) 만들기를 즐기는 민족이라면, 대나무로 죽창이 아닌 ‘장군죽비’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장군죽비는 깨우침을 맹촉하는 경책의 죽비이다. 장군죽비로, 좌파가 주는 통일사기극의 미혹의 마주(魔酒)에 취해, ‘조선민주주의’를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착각하여 대한민국을 망치는 자들을 깨우쳐, 좌파 척결과 자유대한 수호에 대한 각성을 맹촉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이 법 철(bubch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