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승가 불쇠퇴법을 통해 본 한국불교의 현실 90년대 3차례 종단사태와 94년 개혁회의가 행한 제도개혁의 문제점 가운데 승단 칠불쇠퇴법과 육불쇠퇴법에 비추어 조계종과 한국불교교단의 미래를 전망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1. 석존의 법․율과 종헌․종법에 반한 승려대회 지난 반세기 조계종의 역사는 승려대회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승려대회는 조계종과 한국불교의 진로와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29년 1월 3일 각황사에서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와 50년대 불교정화 때 개최된 비구승대회를 비롯한 몇 차례 승려대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승려대회가 석존의 법․율과 조계종의 종헌․종법에 비추어 보면 반불교적 비승가적인 비법불화갈마(非法不和羯磨), 즉 비법으로 일부 대중만이 불법집회이자 폭력행사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94년 4월 10일 조계사에서 개최된 승려대회(이하 4․10승려대회)이다. 조계종 재적승려 10,013명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2,000 내외의 승려들이 모여서 조계종의 종권을 인수하는 수권기구인 ‘개혁회의’를 출범시키는 등 일체 종단사를 결정하고, 실력행사를 통해 종헌기관인 총무원 청사를 점령했다. 동 4․10승려대회의 개최와 그 결의는 종단 분열을 금지한 구족계․승잔법(제10, 제11)과 종단 분쟁 해결의 기본법인 구족계․칠멸쟁법(종헌 제9조 ①항) 그리고 종단신성과 종통승계의 최고의 지위와 권위를 가진 종정의 대회금지 교시(종헌 제19조 종정 지위와 권위)를 위반하여 개최되었다. 나아가 동 집회는 당시 종법인 승니법(제45조 <치탈사유> 1, 2, 4, 7, 10호, 동법 제46조 <제적사유> 7, 15호) 등에 반한 범법행위로 치탈(멸빈)과 제적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앞서 본 칠불쇠퇴법의 제2법 ‘화합해서 모이고 화합해서 행동하고 화합해서 승려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법부가 전거의 제시도 없는 소위 개혁종단 측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들여 종단 문제 해결의 기본법으로 불개변의 원칙인 멸쟁법을 비롯한 종헌상의 석존의 법·율과 종헌․종법 등에 반한 4․10승려대회와 같은 불법집단폭력행사 부처님 재세시부터의 의견 수렴절차인 ‘대중공사’, ‘산중공사’의 전통을 따랐다는 전제하에 대오판을 했다. 종래 개최되어 온 승려대회와 관련하여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조계종 내 쟁사 즉 승쟁(僧諍, saṅgharāji)에 대한 문제 해결에 종파와 승속을 초월한 범불교도대회의 개최와 국민선동이다. 94년, 98년, 99년 종단사태 때 몇 차례 범불교도대회와 신도대회가 개최되었다. 99년 10월 2일 98년 종단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내려지자 국민까지 선동하는 글을 한겨레신문에 투고한 승려가 있었다. 이는 승단의 쟁사에 대한 석존의 교계와 조계종을 비롯한 출가 승단의 쟁사 해결의 기본법인 칠멸쟁법에 비추어 절차도 원칙도 위반한 처사이다. 또한 다른 종단의 승려들은 물론 일반 불교도 내지 신자들이 관여할 단계도 아니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종단 내 문제에 사부대중과 국민까지 선동을 하는 자세는 승단의 쟁사에 대한 석존의 가르침과 승려 된 분한을 망각한 처사이다. 종단사에 종단 내의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사부대중과 국민까지 선동하는 언동을 한 것은 한마디로 참여와 투쟁을 일삼고 있는 잘못된 사회운동에서 오도된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 율장과 종헌의 징계규정에 반한 조계종 징계제도 조계종의 징계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졸고「조계종의 징계제도와 그 문제점」(『僧伽和合과 韓國佛敎의 未來』(1) 제2부 제3장)에서 상세히 밝혔다. 따라서 그 개요를 간단히 설면하면 조계종은 율장과 종헌상의 규정은 물론 세간의 법과 제도에도 현저히 반한 징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종법(총무원법과 호계원법)에 근거한 궐석징계이다. 문제는 세간의 사형에 해당하는 치탈(멸빈)처분까지도 진술과 자백 등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궐석징계가 가능하고, 한번 징계가 확정되면 제심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조계종의 징계제도는 초․재심의 양심제도이다. 그런데 본인의 재심 청구가 없으면 치탈과 극 징계처분도 초심의 결정으로 확정되고, 한번 치탈이 확정되면 구제받을 길이 없다. 세간의 법과 제도는 반인륜적인 범죄도 궐석으로 재판하지 않고, 사형수도 재심사유가 발생하면 재심을 하도록 되어 있다. 승단의 계율이 철저히 세간법을 고려해 제정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살인죄와 5전 이상 절취한 죄를 당시 세간법으로 사형에 처하는 점을 고려해서 승단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4바라이죄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예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율법의 규정들이 세간법보다 높은 윤리 도덕적인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치외법권적인 수행공동체를 보전해 나아가도록 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같은 불교법률의 제정의 인연과 제정제계십리(制戒十利), 즉 열 가지 이익을 위한 계법의 제정을 고려할 때, 세간법에 현저히 반하는 종법운영은 종단이 반사회적 기형적인 집단으로 전락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하면 반불교적 비법적 요소의 제거를 개혁이념(개혁회의법 제3조)으로 천명한 그들이 관재불교의 잔재인 치탈과 같은 악법을 폐지하지 않고, 살생과 부정행 등 십분구족(十分具足)의 사미승과 올바른 의식을 가진 비구에게 적용할 수 없는 멸빈으로 개칭하여 그대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징계와 관련해 또 하나 지적해 두고 싶은 바는 4․10승려대회와 같은 불법집회에서 부재중인 종정에 대해 행한 불신임이다. 당시 서암 종정은 종헌(제9조 ①항 구족계․칠멸쟁법, 제19조)․종법(승니법 제45조 1, 2, 4 7, 10항 등)과 승가 고유의 회의법인 갈마법에 입각하여 승려대회를 금지하는 교시를 내렸다. 그리고 종정의 동 교시는 멸쟁법의 멸쟁(滅諍, adhicaraṇa samathā), 즉 문제의 진정, 평화를 의미함과 동시에, 칠멸쟁법의 다멱비니법(多覓毘尼法), 즉 승가 다수결의 원칙에는 분열할 우려가 있거나 그럴 확신이 있을 때는 갈마(회의)를 중지하도록 한 10대 원칙에 합치하였다. 또한 원로회의에서는 종정 불신임이 없었음에 불구하고, “원로회의 종정 불신임에 동의합니까.”?라고 물어서 운집대중으로부터 박수 동의를 받았다는 점이다. 만일 그들이 제3법의 ‘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 [새롭게] 제정하지 않고, 이미 제정되어 있는 것을 버리지 않으며, 학처(學處)에 제정되어 있는 대로 수지(受持)하여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고, 제4법의 ’경험(經驗)이 풍부한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와 승단의 아버지[敎團의 師父]격이며, 승단의 지도자인 비구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며, 경애(敬愛)하고, 공양하며, 또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세존의 유계를 조금이라도 의식하는 승려들이라면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3. 94년 개혁회의의 종법 개정과 재가승단화 50년대 불교정화를 통해 회복한 출가승가인 조계종의 정체성을 훼손한 94년 개혁회의의 종법개정과 그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94년 승려대회를 통해 종권을 장악한 개혁회의는 94년 10월 26일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종법개정을 하고 있다. 즉 당시 승니법 제45조 ‘치탈사유’ 4항 “불계중 중계를 범한 자”를 “불계중 4바라이죄를 범하여 실형을 받은 자”(승려법 제46조 ‘멸빈사유’ 3항)로 개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9월 10일 승려법 제54조 3(징계에 의하지 아니하는 제적처리) ①의 1 ‘다’ “호적상 혼인관계나 사실혼 관계가 확인 된 자”를 신설했다. 이상과 같은 기존의 승니법 개정과 승려법 신설은 불개변의 원칙인 종헌 제9조 ①항 구족계의 제1계인 부정계(淫行法)를 범해도 실형만 받지 않으면 문제를 삼지 않음과 동시에, 다만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자에 대해서만이 제적의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동 54조 3의 제적처리는 복적(復籍)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결혼생활도 인정한 셈이다. 이는 출가승단인 조계종을 재가승단(대처승단)보다도 타락한 종단으로 전락케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법의 승려대회에 의한 종권장악과 궐석징계에 의한 치탈(멸빈) 그리고 조계종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종헌에 반한 종법개정을 통해 불법을 파괴하는 자들이 종권을 장악하고, 자신들에게 불응하는 자는 가차 없이 제재를 과하고 추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종법 개정은 제3법 ‘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을〔새롭게〕제정하지 않고, 이미 제정되어 있는 것을 버리지 않으며, 학처(學處)에 제정되어 있는 대로 수지(受持)’하고, 제5법 ‘미망(迷妄)의 생존(生存)을 일으키는 갈애(渴愛)가 일어나도 그것에 의해 지배(支配, vasa)되지 말라’와 제7법 ‘좋은 동료 수행자(pesalā sabrahmacārin)들에게 정당한 보호와 지지를 하고, 아직 오지 않은 좋은 동료 수행자들이 영토에 오도록 하고, 이미 와 있는 좋은 동료 수행자들이 영토 내에서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라는 유계에 반한다. 4. 원로를 존경하지 않는 종단 풍토와 그 문제점 90년대 종단사태 때 두 차례(94년 송서암 종정과 98년 윤월하 종정)나 종헌․종법과 석존의 법․율에 입각해 여법한 교시를 내린 종정을 불신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가하면 윤월하 종정과 법전 종정의 사면 교시를 비롯해 원로회의의 화합차원의 유시와 본사 주지들의 결의에도 불응하고, 원로회의 의장단(의장 : 배도원)이 중앙종회를 찾아가 참아 필설로 말할 수 없는 자세로 화합을 위한 사면 결의를 당부를 했지만 거절당했다. 91년 종단사태의 발단도 종정 추대에 관한 종헌과 원로회의의 결의 및 원로의원들의 절대다수의 뜻을 무시하고, 중앙종회(의장 : 서정대)가 인준되지 않은 종헌․종법에 근거하여 종정추대위에서 종정을 추대하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종회의원들 가운데는 원로들을 ‘끌어내’ 하고 고함지르는 의원도 있었다. 이는 동 제4법에서 말하는 종단의 원로(장로)를 존경하지 않는 승려들이 종단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제4법은 ‘출가한지 오래된 장로들(therā rattaññū)’ 또는 ‘승단의 아버지들(pitaro)’ ‘승단의 지도자들(saṃgha-parināyakā, 導師)’을 존경․숭앙․공양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sotabba)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율장은 승단은 의장격인 갈마사의 제안인 갈마설(羯磨說, Kammavācā)에 합일하게 되어 있다. 승단 다수결 즉 다멱비니(多覓毘尼) 의 10대 원칙을 보면 갈마사는 화합이 깨질 우려가 있거나 그럴 확신이 있을 경우, 갈마(회의) 를 중지하거나 연기하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이 화합한 가운데 여법한 결의가 불가능할 때는 무리한 수단을 써서라도 대중을 해산시키게 되어 있다. 제2법에서 말하고 있는 ‘화합’이 승가에 있어서 최상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의 해결이 어렵고 화합이 파괴될 우려가 있을 때 양측 대표의 선설(宣說)로 일체를 덥고, 화합하도록 되어 있는 여초부지법(如草覆地法)을 구족계의 마지막에 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5. 율사․강사를 비롯한 지도층 승려들의 자세(역할) 조계종과 한국불교의 향방을 결정해 나아가야 할 율사와 강사를 비롯한 지도층 승려들의 영향력과 그 역할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율사와 강사를 포함한 학승과 수행승이라고 자부하는 소위 수좌들의 종단 내 영향력은 종단 내 원로들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들이 종단 내 출가승려와 재가불자들까지를 교육하고, 신행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94년 종단사태 때 강사와 율사를 비롯한 학승들과 장차 종정과 수좌를 약속 받은 수행승들이 개혁회의 의원으로서 앞서 3항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종법 개정을 통해 출가승가인 조계종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종법개정을 묵인하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이다. 또한 그들이 개혁회의 소속 초심(1심)․재심(2심) 호계위원(護戒委員=징계위원)으로서 사태의 주역들이 시키는 대로 종헌상의 칠멸쟁법의 현전비니멸법, 즉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결의를 무효가 되는 규정에 반한 궐석심판에 의한 치탈(멸빈)처분에 동의하였다는 것을 필자는 납득할 수 없다. 이들 강사와 율사 및 선사들이 장차 조계종과 불교계를 이끌어 갈 인제들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열반경』에서 경율(經律)에 입각해서 판단하도록 가르치고 있는 사대교법(四大敎法, cattāromahāpadesā)과 같은 석존의 유교를 망각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면 90년대 종단사태의 주역들과 일부 원로의 선동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율사와 강사 및 수좌계에서 차출된 호계위원들이 호계(護戒)의 의미 등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다면, 90년대와 같은 불행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여법한 교시를 내린 종정 불신임과 같은 원로에 대한 불경은 물론 ‘미망(迷妄)의 생존(生存)을 일으키는 갈애(渴愛, taṇhā)에 지배’되지 말라’는 석존의 유교에 반하여 종법개정(현행 승려법제 46조 3항)을 통해 출가승가인 조계종의 법통성을 훼손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율장은 승가에 있어서 지도자, 즉 문제를 해결하는 단사인(斷事人)이 지녀야 할 자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 떠나고, 계행의 구족과 미소(微少)한 죄과에도 두려워하고, 학처(學處)를 집지(執持)해서 배우고, 다문지적(多聞持積)하고, 만약 쟁사가 일어나면 능히 이를 감내하여 기쁘게 멸할 수 있는 유능 총명한 승려라야 한다. 종법상 승려의 승급 승진 과정의 교육과 종단 지도급 승려의 자격규정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6. 90년대 종단사태의 특징과 그 의미 90년대 3차례 종단사태는 많은 과거 종단사태 때와 현저히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50년대 불교정화를 전후해서 발생한 많은 종단적인 사건 때 등장한 명분과 구호를 보면 ‘정화’, ‘중흥’, ‘재건’ 등이었다. 그런데 94년 종단사태 이후는 종단문제와 관련해 종래에 찾아 볼 수 없었던 ‘민주’와 ‘개혁’(개혁회의법 제3조 이념) 및 ‘자주’ 등의 구호가 등장한다. 문제는 이들 구호들이 석존의 가르침에서 도출된 것이 아님은 물론 통일 민족사관에 경도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부정하는 소위 수구좌경 세력들이 주장하고 있는 진부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둘째, 소위 개혁종단은 94년과 98년 두 차례나 종헌․종법에 입각하여 여법한 교시를 내린 두 분의 종정(송서암, 윤월하)을 불신임하여 하야시켰다. 70년대 조계사․개운사 간 분규의 와중에서 종령(宗令)으로 종헌기관인 중앙종회를 해산한 이서옹 종정을 치탈처분한 일이 있었지만, 이내 화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셋째, 50년대 불교정화 당시 비구승 측의 승려대회를 비롯해 승려대회는 83년 9월 5일 조계사 승려대회, 84년 해인사 승려대회와 같이 많은 승려대회가 조계종의 종권과 한국불교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94년 4․10승려대회와 같은 불법집단 폭력행사를 ‘우리의 법’이요 ‘불교 오랜 전통’ 등으로 주장하는 일은 일찍이 없었고, 승려대회에서 종정을 불신임하는 일 또한 없었다. 셋째, 강남 봉은사 경내지 매각 등 위법 부당한 행위와 관련해 중진승려에 대한 치탈(멸빈)처분은 있었다. 하지만 90년대와 같은 종단사태의 와중에서 불교승가에 있을 수 없는 ‘인적청산’이란 목표를 세우고, 초심(일심)에서 원로 중진 승려들을 숙청하는 바와 같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종헌규정에 반하여 궐석심판으로 위법 부당하게 승권을 박탈하고도 ‘원칙’과 ‘절차’를 운운하며 화합을 위한 사면을 반대하는 그런 철면피한 승려들은 더더욱 없었다. 넷째, 치안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공권력 행사를 법난(法難)으로 규정하는가하면 자신들의 위법 부당한 종권장악을 상황논리로 정당화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각종 ‘선전’과 ‘선동’으로 대중을 현혹케 하는 일도 없었다. 그 외 94년 4․10승려대회의 결의에 의해 출범한 개혁회의는 출가승가인 조계종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불교정화이념을 부정하는 종법개정을 단행하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조계종의 승려이자 불제자로서 이상과 같이 종단을 전복하고 폐불기석(廢佛棄釋)의 만행을 자행했다는 것은, 그들의 정체와 함께 그들이 목표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이는 그들이 태고보우 국사가 말하는 단순히 삿된 승려들이거나 탐진치의 삼독심(三毒心)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휴암의 말을 빌리면 그들의 종권찬탈과 제도개혁은 불교를 멸망케 하는 獅子身中의 벌레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魔軍衆으로써 사찰을 민중정치운동의 場으로 만들기 위한 문화적 침공인 것이다. Ⅳ. 맺음말 승가 5종의 칠불쇠퇴법 가운데 제1 칠불쇠퇴법과 육불쇠퇴에 비추어 조계종과 한국불교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외 4종의 승가 칠불쇠퇴법은 요약하고, 조계종과 한국불교계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맺음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1. 승가 제2 불쇠퇴법은 ①. 일 에 즐거움을 갖지 않고, 일을 즐기지 않으며, 일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으며, ② 담화(談話)를 기뻐하지 않고, 담화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담화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으며, ③ 수면(睡眠)을 기뻐하지 않고, 수면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수면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으며, ④ 사교(社交)를 기뻐하지 않고, 사교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사교의 즐거움에 빠지지 않으며, ⑤ 악용(惡欲, pāpicchā)을 갖지 않고, 악욕에 지배되지 않으며, ⑥나쁜 친구를 갖지 않고, 나쁜 동료를 갖지 않으며, 악으로 기울지 않으며, ⑦ 조금 수승(殊勝)한 경지(境地)에 도달하였다 하여, 도중에 후퇴해 버리는 일이 없는 한. 비구들에게 번영은 기대되지만 쇠망은 없을 것이다. 2. 승가 제3 불쇠퇴법은 ① 신앙(saddhā)을 갖추고, ②참심(慚心, hirimanā) 이 있고, ③괴(愧, ottāpī) 를 갖추고, ④ 다문(多聞, bahussutā)이고, ⑤ 노력․정진하고(āraddha-viriyā), ⑥념(念)을 확립하고(upaṭṭhita-satī), ⑦ 지혜(智慧)를 갖추고 있는(paññāvanto) 한,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며 쇠망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승가 제4 불쇠퇴법은 ① 념(念)각지(覺支), ② 택법(擇法)각지, ③ 정진(精進) 각지, ④희(喜)각지, ⑤ 경안(輕安)각지, ⑥ 선정(禪定)각지, ⑦사(捨) 즉 평정(平靜)의 7각지를 닦는 한,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며 쇠망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승가 제5 불쇠퇴법은 ①무상(無常)), ② 무아(無我), ③ 부정(不淨), ④ 위난(危難), ⑤ 사단(捨斷), ⑥ 소멸(消滅), ⑦ 멸진(滅盡)의 상(想)을 닦는 한, 비구들에게는 번영만이 기대되며 쇠망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3. 조계종은 아직도 90년대 종단사태의 연장선상에서 그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5종의 칠불쇠법 내지 육불쇠퇴법과 같은 석존의 유교를 받드는 출가 승려들의 공동체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특히 육불쇠퇴법은 비구들이 신구의(身口意)의 삼업에 있어서 공사(公私) 간 자비심으로 동료 범행자(梵行者)들을 대하고, 바른 법에 의해 얻어진 이익을 평등하게 수용하며, 지계(持戒)와 견해를 평등하게 수지해 화합해나가면 승가의 번영은 기대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쇠망한다는 가르침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만일 조계종단의 관계 책임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율불쇠퇴법과 같은 석존의 유훈과 그 의미를 올바로 알고 실천하는 승려가 있었다면 90년대와 같은 비법불화의 승려대회를 통해 종권을 찬탈하고, 원로 중진 승려들을 구족계법과 같은 종헌규정(제9조 ①항)에 반하여 궐석심판으로 치탈(멸빈)하고, 종단화합과 회생들에 대한 원상회복을 반대할 수 있겠는가? 4. 외국에서 불교가 망해가는 모습을 보려면 한국불교 조계종의 분규를 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90년대 종단사태는 국제사회에서 불교가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종교인 줄 알고 있던 지성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도에 대해 의문을 갖기에 충분했다. 90년대 종단사태를 주도한 승려들과 종단의 지도자들에게 자비심이 있고, 반점(斑點)과 오점(汚點)이 없으며, 선정으로 이끄는 계(戒)”를 공사(公私) 간에 실천하고, 바르게 얻은 이익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를 모든 승려들과 공유하고, 해탈로 이끄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올바른 견해를 갖추고 있었다면 90년대와 같은 불행이 발생하고, 법전 종정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아직도 그 여진에 시달리겠는가? 불도와 원로에 대한 불경을 포함해 승려대회를 통한 종권찬탈과 궐석심판에 의한 원로 중진 숙청 그리고 종헌 제9조 ①항 구족계에 반한 종법개정 내지 신설 등은 석존의 법․율을 근본이념과 기본 원리하는 종단법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함께 승려들의 무지와 반이성을 드러낸 것이다. 5. 조계종은 금후 94년 제도개혁으로 인해 훼손된 비구승단의 정체성과 90년대 승려들 간의 폭력대결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추락한 신뢰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한국 정치사회의 극심한 좌우의 갈등과 대립에 편승한 승려들의 본분을 망각한 망국적인 언행도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90년대 종단사태의 주역들의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시국법회와 같은 종교행사를 가장한 반정부세력에 동조하는 행위를 변명하지 말고 이제는 진솔하게 반성해야 할 줄 안다. 그리고 남북한의 문제를 포함해 국내의 모든 갈등과 대립도 먼저 율장의 멸쟁법(滅諍法)의 멸쟁의 본래 의미인 진정하고 평화스러움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래서 불가능할 경우는 역시 율장의 부동주법(不同住法)에 따라 별로 존립하되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 부동주법은 ‘화합’이 불가능할 때 별도의 승가로 분리해 공존함으로써 승가에 있어서 가장 죄악시되는 ‘파화합’을 피하고, 불법을 올바로 전승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율장의 가르침이다. 일제강점기 승려들이 대처화해 갈 때 백용성 선사가 조선총독부 제등총독에게 건의한 ‘제2차 건백서’(대처승․비구승의 주처를 별도로 할 것)도 율장의 부종주법과 같은 취지로 이해된다. 6. 우리는『大寶積經』의 불법파괴에 설시를 주목해야한다. 즉, “나의 법 가운데 이와 같은 악비구(惡比丘)― 이양(利養)을 탐착(貪着), 탐리(貪利)에 가리어, 악법(惡法)을 멸하지 않고, 선법(善法)을 수습(修習)하지 않으며, 망어(妄語)를 떠나지 못하는― 출현한다. 가섭, 이와 같은 악비구가 나의 법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자신중(獅子身中)의 충(蟲)의 비유를 들어 악비구와 치인(癡人)의 무리가 석존의 법을 파괴한다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율장에 명시된 승가 고유의 회의법인 갈마법(羯磨法)과 종헌․종법질서에 반한 승려대회를 통한 위법 부당한 종권찬탈과 반불교적․반인권적인 악법인 치탈을 멸빈으로 개칭하여 최대한 악용한 것은 , ‘민주화’와 ‘반불교적 비법적 요소제거’라는 소위 개혁이념에도 반한다. 90년대 폐불 사태를 주도한 승려들이 근래 전개하고 있는 ‘생명․평화’의 행각과 ‘환경운동’ 과 같은 명분과 구호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종단과 나라를 구하는 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