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설정 → 돌발사건 → 합의위반 → 진실왜곡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되는 과정을 보면 북한은 이번에도 그들만의 전형적인 ‘협상 공식’을 대입시켰다. 회담의 기습제의(6일)부터 회담대표의 ‘격(格)’을 문제 삼아 결렬(11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과거 협상장에서 북한이 되풀이해 구사했던 술수의 판박이라고 문화일보가 보도했다.
북한 협상술의 6대 특징은 ▲결론이 담긴 의제 ▲계산된 돌발사건 ▲의도적 합의 위반 기만술 ▲협상장에 배후조정 실세 끼워 넣기 ▲논점 흐리기 및 약속파기 ▲사후 진실왜곡 등이다.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치밀한 무대설정에도 신경 쓴다.
김태효(정치외교학) 성균관대 교수는 14일 “북한의 행태는 6·25전쟁 정전협정 유엔측 수석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이 공산권과 자유진영 간 협상 역사를 분석한 패턴과 꼭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다 수령주의, 신정정치라는 북한 만의 특징이 더해지면서 협상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결론이 담긴 의제 = 이번 당국회담에서 북한은 의제로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상봉, 6·15 공동선언 및 7·4 남북공동선언 행사 공동개최 등 ‘열거식’을 고집했다. 남측과의 의견차이 때문에 ‘남북관계 포괄적 현안’이라고 하자는 남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각각 ‘정상화’, ‘재개’, ‘개최’ 등의 결론을 목표로 한 의제들이다. 북측의 회담 제의 목적에 유리한 결론들로 구성된 의제를 전제로 회담을 시작하려는 노림수였다. 조이 제독은 ‘속임수가 숨어있는 의제’로 평가했다.
◆계산된 돌발사건과 합의 위반 술수 = 북측은 남측 회담 대표단의 급(級)이 낮다는 이유로 회담을 결렬시키는 돌발 사건을 일으켰다.
관례상 방문하는 쪽에서 대표단 명단을 먼저 건네지만 이번에는 ‘동시교환’을 제안했다. 통일부 장관과 통일전선부장 간의 ‘장관급 회담’을 남측이 주장했지만, 결국 차관보급인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을 회담대표로 내세웠다.
이를 예측한 정부가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회담대표로 내세우자 북한은 대표의 급을 문제 삼으며 회담을 결렬시켰다. 회담을 결렬시킬 만한 이유인가 의문이라는 점에서 의도된 술수로 해석된다.
◆협상장에 배후조정 실세 끼워 넣기 = 북측은 협상대표 5인 이외에 수석대표로 거론되던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보장성원(수행원)의 한 명으로 끼워 넣었다. 회담을 총괄 지휘하는 상황실장 역할을 하면서 물밑대화를 통해 남북 간 복잡한 현안을 풀어나가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논점 흐리기 및 진실왜곡 = 기습 대화제의 이후 남측이 제시한 역제안을 모두 수용하는 것 같았지만, 속내는 딴 데 있었음이 드러났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당초 논의하려던 의제는 사라졌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내용은 묻히고 대표 간의 ‘격 과 급 논쟁’만 남게 된 상황이다.
북한은 어쨌건 중국과의 약속대로 남측과의 ‘대화’를 하는 모양새는 취했고, 대화 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다. 북측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뒷얘기까지 공개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장문의 담화를 발표한 것도 중국에 변명의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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