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법정 밖에서 떠드는 게 합당한 일일까?
이렇게 되기 전에는 세상이 와글와글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법이 개입한 이후에는 사건을 정치보다는 법에 일임하는 게 당위(當爲)일 것이다.
국회의 국정조사는 하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실체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기보다는, 사건을 피차 주관적으로 정쟁화 할 우려를 동반한다.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사건을 ‘장외투쟁’ ‘촛불 집회’ ‘대선 원천무효’ ‘박근혜 퇴진’ 운운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더 지나치다. ‘과잉’ ‘부풀리기’라고 밖엔 할 수 없다.
‘장외투쟁도’ 다른 방법이 두절됐을 때라면 모르되, 국정조사도 하겠다, 대통령 차원의 ‘진실규명’ ‘국정원 개혁’ 발언도 있었겠다, 하는 판인데 왜 굳이 ‘장외투쟁’인가?
‘촛불집회’도 너무 관행적으로 하다 보면 약효가 줄어든다.
이명박 팀이 한 ‘댓글’을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다.
대선 원천무효라는 것도, 대다수 대중들은 댓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을 터인데
그걸 보고 ‘찍을 후보’를 바꿨을 사람들이 과연 있었을까?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을 두고서도 다툼을 벌리고 있다.
다툼은 물론 항상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개’ 시비가 본안(本案)인가, 대화록 내용이 본안인가? ‘대화록’이 본안일 것이다. ‘공개’ 논란은 파생상품이다.
파생상품이 썩 잘된 게 아니라는 시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본안을 덮을 순 없다.
본안이 너무나 엄중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개’가 ‘댓글’을 물 타기 하려는 것이라 하겠다면,
‘공개’ 시비도 ‘대화록’ 내용을 물 타기 하려는 것이라는 반격을 받을 수 있다.
피장파장이다. 장군 멍군이다.
이런 ‘때리고 맞는 양(兩) 선수’ 하다 보면 레드 오션(red ocean)이 돼버려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국민이 피로해진다.
그래서 묻고 싶다.
파생상품에 너무 몰입하다가는 자칫 원점에서 너무 멀리 가진 않겠느냐고.
원점은 무엇인가?
(1) 노무현 발언에 NLL ’포기‘란 용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는 것뿐 아니라,
’포기‘의 용의(用意)라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것.
(2) NLL ‘포기’란 용어나 뜻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따지는 것뿐 아니라,
다른, 그만 못지않게 중요한 대목은 어떠냐 하는 것. 등등.
‘공개’는 그 당부(當否) 논란 여하 간에 이미, 일단, 돌이킬 수 없게 돼버린 현실이다.
잘한 일이라고 보든 잘못된 일이라고 보든 이걸 되돌릴 순 없게 됐다.
그리고 그로 인한 파생물일랑 파생물에 맞는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
그에 대한 논란이 본래 쟁점 이상으로 커지는 것은 본말(本末)이 바뀌는 것이다.
'댓글‘은 법정 안으로 밀어 넣어 그것에 일임하면 된다.
’공개‘ 시비도 ’공개‘가 법에 저촉되는 행위였느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끝장을 보겠는가? 무한 정치투쟁? 그건 끝이 없다. 이게 좋은가?
본질문제를 두고, 그걸 중심으로 해서, 가릴 건 가려야 한다.
그러나 말이 말을 낳고 그게 또 말을 낳고 그게 또... 하는 무한 파생은
너무 멀리 떠내려 가는 것이다.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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