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진정한 사상전향은 가능한 것인가? 김정은 정권의 내폭(內爆)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주사파에서 전향한 것으로 알려진 지식인들의 행태가 묘하기만 하다.
주사파 원조로 알려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영환 위원(사진)은 7일 중앙선데이에 장문의 글을 기고했다. 金위원은 이 글에서 남북문제 해법으로 북한체제의 종식(終熄) 이후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자유통일 대신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내자고 주문했다. 놀라운 것은 남북 교류·협력 과정에서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을 적용해야 한다는 등 전제조건을 언급치 않고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햇볕정책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특히 “남북 교류·협력을 소위 반대(反對)하고 방해(妨害)하면 북한이 중국에만 경제를 개방할 것”이라는 전형적인 햇볕정책 논리를 동원, “북한을 바다로 이끌어 내야 한다. 서울과 평양 그리고 개성이 인접한 바로 서해(西海)가 그 터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金위원은 또 “NLL 수호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내고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유도하는 게 몇 배 더 중요하다”며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개혁·개방이 NLL 수호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金위원의 중앙선데이 기고문 결론 부분은 이렇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국민의 안보의식이 높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남북 교류·협력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데까지 가면 안 된다. NLL 수호도 중요하지만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내고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유도하는 게 몇 배 더 중요하다. 북한은 지난 몇 년간 중국과의 교역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북한이 중국에만 경제를 개방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바다로 이끌어 내야 한다. 서울과 평양 그리고 개성이 인접한 바로 서해가 그 터전이 돼야 한다”
2.
金위원은 남북 교류·협력을 하다보면 북한이 개혁·개방할 것이고 근본적 변화와 발전을 할 것이란 논리를 폈다. 이 같은 발언은 헌법(憲法)은 물론 현실(現實)과 동떨어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 15년 이상 남북 교류·협력이 진행돼 왔지만, 북한정권은 개혁·개방을 철저히 거부해왔다. ‘나에게 어떠한 변화도 바라지 말라’던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역시 ‘사회주의와 주체(主體)의 한 길을 고수할 것(2013년 신년사설 外)’이라고 말해왔다.
“개혁·개방설을 짓부수고 산산쪼각 낼 것(2012년 8월16일 노동신문)” “적대국이 바라는 개혁·개방은 없다(2012년 7월11일 조선신보)” “그런 바램(개혁·개방한다는) 은 어리석고 미련한 개꿈(2012년 7월29일 조평통)” 등 개혁·개방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기사는 지금도 쏟아져 나온다.
3.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한 탓에 소위 남북 교류·협력은 결과적으로 북한 주체사상 체제와 공산주의 정권을 지지·지원·강화해왔을 뿐이다. 예컨대 98년~2007년 사이 69억5천만 달러의 현물·현금이 북한에 갔지만 북한은 국방비 지출만 대폭 늘렸고 이것은 2006년 10월 핵실험으로 돌아왔다.
金위원은 김일성 왕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개혁·개방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말하지 않는다. 백보 양보해 남북 교류·협력을 한다 해도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을 적용해야 북한의 근본적 변화가 생긴다. 金위원은 이런 전제조건도 말하지 않는다. 오직 “남북 교류·협력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데까지 가면 안 된다”며 우회적인 북한 체제와 정권 지원만을 주장한다.
더욱 묘한 것은 그가 남북 교류·협력의 대상지역을 “서해(西海)”로 특정, 이곳에서의 교류·협력이 ‘NLL 수호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점이다. 구체적 언명은 안 했지만 최근 논란이 된 서해평화협력지대나 공동어로수역을 언급한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金위원이 NLL 이남(以南) 서해에 평화협력지대·공동어로수역을 만들자는 노무현 前대통령 아이디어에 동의한 것인지 궁금하다.
金위원은 이른바 전향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주장해왔다. 그는 지난 해 9월12일 수요일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새천년대강당에서 “국가보안법 7조를 없애도 한국 국민들이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위험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논리를 폈었다.
4.
金위원 바램(?)과 달리,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 내 두 개의 국가를 인정치 않는다. 북한정권은 반국가단체이며 북한주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 곧 자유통일의 원칙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해체(解體)의 대상이며 북한주민은 해방(解放)의 대상이다. 다만 이것을 평화적으로 진행할 것을 헌법은 명령한다.
한국정부는 자유통일을 위해 김일성 왕조만 배 불리는 남북 교류·협력이 아니라 탈북자 구출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 : 자유를 사 오는 조건 아래 지원), 심리전 등 효용성 있는 압박(壓迫)으로 북한정권을 교체(regime change)시켜야 한다. 설령 남북관계 특수성 때문에 교류·협력을 한다 해도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근본적 변화가 생긴다. 무엇보다 NLL을 무력화하고 수도권을 위협하는 서해(西海)는 교류·협력의 대상지가 될 수 없다. 어이없게도 金의원은 이 모든 조건을 무시해 버렸다.
헌법과 현실, 안보를 무시한 對北전문가들이 소위 좌파는 물론 우파 안에서도 세력을 넓히게 된다면 평화적인 자유통일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결정적 순간엔 더욱 그렇다.
조갑제 닷컴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