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정신
---건국과정에서 나타난 남, 북한의 건국정신 비교---
이 주 영 (건국대 명예교수, 이승만포럼 대표)
오늘날 남북관계(南北關係)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두 지역 사이의 큰 격차(隔差)이다. 즉, 1945년 해방 당시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두 지역이 지금와서 ‘자유와 번영’의 자유주의(自由主義) 국가와 ‘압제과 빈곤’의 전체주의(全體主義) 국가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은 대륙문명권의 소련군과 해양문명권의 미군이 각각 다른 문명의 씨앗을 뿌린 데 있다. 그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의 결과가 나타났다. 그 때문에 오늘날의 한반도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해방후의 남‧북한의 건국과정(建國過程)에 대한 탐구가 절대로 중요하게 되었다.
1. 김일성은 처음부터 소련에 의해 집권자로 지명이 되었지만, 이승만은 3년간의 경쟁과정을 거처 스스로 집권자가 되었다.
제2차대전말기 소련군은 동유럽에서 점령하는 지역마다 ‘꼬마 스탈린’들을 내세워 위성국 정부인 ‘화물열차 정권’을 세웠고,김일성의 북한도 그 경우의 하나였다. 그 때문에 김일성은 쉽게 정권을 잡았고 스탈린을 모방해 처음부터 개인숭배와 자기신비화의 길을 밟게 되었다.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북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와는 달리, 남한의 이승만은 3년 동안 미군정과 대립하고 김구,김규식 등의 다른 지도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첬다. 그는 칭송과 비난 속에서 “있었던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힘들게 집권자의 위치에 올랐다.
2.북한에서는 소련군의 진주와 함께 정부가 세워졌지만, 남한에서는 3년간의 우여곡절을 거처 겨우 정부가 세워졌다.
스탈린은 해방 한 달 뒤인 1945년 9월20일의 전문을 통해 북한에서 단독정부를 세우라고 지시했고,그에 따라 1946년 2월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세워졌다. 그것이 정부였다는 토지의 몰수와 분배, 산업국유화, 화폐 교환과 같은 공산혁명을 추진한데서 드러나고 있다. 그와같은 혁명적인 조치는 정부가 없으면 추진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와는 달리 남한에서는 3년간의 복잡한 과정을 거처 1948년 8월 15일에 건국이 선포되었다. 북한은 이미 건국을 해놓은 상태에서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을 정식으로 선포했는 데, 그것은 순전히 분단의 책임을 남한에게 떠넘기려는 술책이었다.
3. 북한은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로, 공산당을 노동당으로 위장했으나, 남한은 서투르나마 민주주의를 초보단계부터 실현해 나갔다.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는 국민이 집권자를 직접 뽑는 자유선거(自由選擧) 제도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것을 한 번도 시행한 적이 없으므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시행해 오던 이른바 ‘흑백함(黑白函) 투표’는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처음 공산주의라는 말을 사용했으나 신의주 학생사건을 계기로 그것이 인기가 없음을 알게 되자 민주주의라는 말로 바꾸고, ‘공산산혁명’을 ‘민주개혁’으로 고처 불렀다. 공산당도 노동당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와는 달리 남한에서는 1948년의 5.10선거부터 초보적인 것이나마 자유선거를 실시해 왔다. 6.25전쟁 중에도 선거를 할 정도로 그것에 충실한 덕분에 지금은 모든 집권세력을 자유선거를 통해 국민이 직접 뽑게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북한의 그것과 구별하기 위해 민주주의 보다는 자유민주주의로 부르는 것이 더 좋다.
4. 북한은 봉건주의,전체주의 체제를 ‘진보’로 착각했지만, 남한은 진보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다
역사에서 진보(進步)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쪽에서 진보는 자연세계를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기 위한 기술(技術)의 발전을 가리키고, 다른 쪽에서는 사회의 일부 세력에게 쏠려있는 특권을 줄임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평등(平等)의 구현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 공산주의자들이 ‘진보’를 두 번째 의미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진보’의 구호 밑에서 실제로 실현한 것은 특권이 세습되는 군주제와 봉건제의 부활이었다. 북한의 최고권력은 김일성으로부터 그 아들을 거처 손자에게 세습되고 ‘공산당원들’의 특권적 신분도 세습되게 됨으로써 봉건제가 부활했다.
이와는 달리 남한에는 여전히 특권이 많이 존재하지만, 자유경쟁의 원리에 따라 특권의 유지와 세습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형태이다.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유동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5.해방당시 남북한의 미래를 결정하게 만들 결정적인 요인은 기존 엘리트의 존속 여부 였다.
해방 당시 북한사회의 인재(人才)들은 일제시대에 일본식 학교교육을 받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직장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엘리트는 친일파로 매도당하고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공산혁명의 과정에서 '배운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그리고 무산대중을 찬양하는 민중주의(民衆主義)의 바람이 휩쓸게 되었다. 그것은 “배운 사람들”에 속하지 못한 김일성의 빨찌산 파들의 집권이 가저 온 결과였다. 그들은 과격한 혁명을 통해 어두운 과거와 손을 끊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는 데, 그것은 인간의 삶을 단절과 혁명의 과정으로 보는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와는 달리 남한에서는 인간의 삶을 지속과 개혁의 과정으로 보는 역사관이 우세했다. 그 때문에 기존의 엘리트들이 거의 그대로 살아 남았고, 결국 그들은 신생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렇게 된 데는 이승만을 비롯한 남한의 지도자들이 고학력과 실무경험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6. 북한의 집권세력은 6.25전쟁에서 자신들을 승리자로 착각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데 비해 남한의 지도세력은 언론자유를 통한 비판 때문에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전쟁에서 패전국(敗戰國)은 사람이 더 많이 죽고 국토가 더 파괴된 쪽이며, 따라서 패전국의 집권층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6·25남침전쟁에서 최대의 패전국은 북한이며, 그 때문에 김일성 일파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도 북한에서는 패전의 책임이 엉뚱하게도 권력의 변두리에 있던 박헌영 일파에게 씌어졌다. 김일성은 자기네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그 폐허 위에서 전승기념대회(戰勝記念大會)를 열었다. 지금도 그 날은 전승절(戰勝節)로 경축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6.25남침전쟁 초기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그 명예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든 좋든 일어난 일들을 “있었던 그대로” 보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의 왜곡은 위험한 단계로 까지는 가지 않았다.
7. 이제 한반도에는 조선과 한국의 두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한민족’ 대신 ‘김일성 민족’과 ‘태양민족’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에 민족의 개념은 흔들리고 민족주의의 이상은 유지될 수 없다. 일본과 중국도 이제는 남북을 각각 한국과 조선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의 국가주의와 국민주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의와 국민주의가 있을 뿐이다. 즉, 국가와 민족은 분리되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북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보아야 한다. 남한인과 북한인은 과거에 하나의 민족이었으므로 무조건 통일을 해야한다는 주장만 가지고는 남북간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 조선왕국 500년 동안에 서북인들에게는 벼슬을 주지 않음으로써 남북 사이에는 진정한 민족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던 사실, 그에 따라 일제시대 독립운동에서도 지역적 갈등이 심했던 사실, 그리고 해방후 북한에서는 남한과 합처 통일국가를 건설해보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사실 등이 중요시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유행했던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의 이상에 숨어있는 비현실성 또는 허구성을 파헤처야 할 때가 왔다.
<참고문헌>
이주영, <대한민국의건국과정>(2013), 정가 8천원(우송료 포함)
이영훈, <대한민국 역사>(기파랑,2013)
차하순 외, <한국현대사> (세종대학교 세종문화연구원,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