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2007년쯤 통일부를 담당하면서 여러 번 북한에 갈 기회가 있었다. 요즘은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아 통일부 기자들도 북한 땅 밟을 기회가 흔치 않지만, 당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은 갈 기회가 너무 많아 서로 가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굳이 평양까지 가보지 않더라도, 개성이든 금강산이든 한 번이라도 북한 땅을 밟아보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건 아니라는 것, 북한 체제의 오류와 경직성이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가리려 해도 오며 가며 볼 수 있는 허름한 집들, 남루한 주민들의 옷차림은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또 북한에 가면 긴장을 풀 수가 없다. 특히 '최고 존엄'이 있는 '왕조 국가'이기 때문에 오는 경직성이 가장 큰 문제다.
2006년쯤 금강산 온정리 외금강호텔에서 열린 남북 행사를 취재할 때였다. 행사 마지막 날이라 조금 긴장이 풀린 사람들은 로비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숙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도 하나 찍어볼까 하고 그 앞에 막 섰을 때 당 간부로 보이는 여성이 갑자기 "무엄하게 백두산 3대 장군을 모신 영상 앞에서 사진을 찍느냐"고 호통을 쳤다. 너무 갑작스러워 뭐라 대꾸할 말도 찾기 힘든 상황이었다. 다행히 우리 측 진행 요원이 개입해 무마했지만 불쾌한 기분은 오래 남았다. 북한에 가면 다시 군사분계선을 넘어올 때까지 조금만 방심하면 곤경에 처할 수 있다. 2008년 금강산 총격 사건은 이런 경직성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 방문 횟수가 늘어날수록 반북 성향도 커진다는 말은 방북하면 바로 이런 체제 오류와 경직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여러 번 북한 땅을 밟으면서도 이런 찜찜함을 뭐라 규정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소설가 이호철 선생이 명확히 해주었다. 선생은 2007년 경의선·동해선 시범 운행에 참석하고 쓴 글에서 "이날 하루, 무언지 불편하고, 무겁고 딱딱했다는 느낌…북한 체제 냄새나 분위기가 너무 진하게 배어 있어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모름지기 이런 일은 남북을 막론하고 쉽게 쉽게 '평상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날 하루 짧은 일정이었지만 혜안을 가진 지식인은 정확히 문제를 짚어낸 것이다.
내란 음모 혐의로 5일 구속 수감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과 2007년 3월 두 차례 방북했다. 2005년 3월 31일~4월 1일 1박2일간, 2007년 3월 16~18일 2박3일 금강산 관광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가 아무리 세상 공부를 게을리했더라도 몸으로 북한을 느꼈을 텐데, 어떻게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규정하며 북한이 공격하면 주요 기간 시설을 파괴하는 논의를 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정말 뼛속까지 친북주의자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