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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시기별 좌경(左傾) 지하당-지상정당 계보

한국의 역대 진보 정당은 대개 국시(國是)인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에 ‘급진․좌파’(radical left) 정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여러 사람들이 모두 동의하는 어떤 특정원리에 입각해서 그들의 합치된 노력을 ‘국가의 이익’에 헌신하기 위해 결합된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버크의 논리를 한국의 역대 ‘진보정당’에 적용하면, 이들 정당은 대개 국시(國是)인 자유민주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에 ‘급진․좌파’(radical left) 정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진보’(進步)라는 용어를 정치적으로 쓰면 공산주의 또는 친공(親共)이란 말과 거의 동의어로 쓰고 있다.

대한민국의 역대 진보정당은 크게 ▲초창기(해방~1959년) ▲침체기(1960~1986년) ▲준비기(1987년~1996년) ▲활성기(1997년~현재)로 구분되며, 활동 형태상으로는 ‘공개’(합법 정당) 조직과 ‘비공개’(비합법 정당) 조직으로 나누어져 이중적 구조를 띄어왔다.

건국 이후 현재까지 진보정당의 계보와 주요 활동 아래와 같다.

1. 초창기(해방~1959년)

1945년 8월15일 해방과 함께 공산주의 세력은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과의 합당을 통해 박헌영 주도로 남조선로동당(남로당, 1946년 11월 결성)을 조직했다.

남로당은 초기 미군정(美軍政)하에서 합법적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 노동자․농민들을 선전․선동해 각종 파업 등을 주도하며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 등을 일으켰다.

1946년 정판사(精版社) 위폐사건으로 남로당의 활동이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되자 당의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월북(越北)했다. 남로당은 1949년 6월 북조선로동당(북로당)과 합당해 조선로동당이 됐다. 조선로동당이 결성되자 박헌영을 주축으로 했던 남로당 세력은 김일성의 지배 하에서 갖가지 명목으로 숙청 및 처형을 당했다.

남로당의 궤멸이후 국내 진보정당의 계보는 조봉암 주도의 진보당(1956년 11월 창당)으로 이어졌다. 조봉암은 일제시대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을 수료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이 조직됐을 때 조직중앙위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제3대 대선에 출마해 30%의 지지율을 얻기도 했던 조봉암은 1958년 상인 출신의 양명산을 통해 북한으로 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진보당 사건)를 받아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을 당했다. 진보당은 1958년 2월25일 소멸될 때까지 약 15개월간 존속했다. 진보당 해산 이후 국내 진보정당은 민중당(1990년 창당)이 등장할 때까지 30년 넘는 공백기가 발생했다.

2. 지상정당 침체기(1960~1986년)

1960년부터 1986년 시기는 진보정당 활동의 침체기에 해당된다. 이 기간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집권시기로 통일사회당, 대중당, 사회당, 사회민주당 등의 진보정당이 조직됐으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단명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김일성의 ‘지하당 구축 강화’ 지령에 따라 인혁당(인민혁명당), 통혁당(통일혁명당),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등의 지하당이 남한에서 구축됐던 시기이다.

인혁당은 남파간첩 김영춘에 의해 포섭된 도예종, 이재문 등이 북한의 조선노동당 강령을 토대로 작성한 정강에 기초해 1962년 1월에 결성되어 1964년 중앙정보부에 검거됐다. 도예종은 1973년 인혁당 재건(제2차 인혁당 사건)을 꾀하다 1975년 사형당했고, 이재문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후 1981년 서대문 구치소에서 병사(病死)했다.

통혁당 역시 북한의 지령을 받아 1961년 12월 전남 무안 임자도 주민 최영도가 남파 공작원 김수영에게 포섭되며 조직됐다. 최영도는 이후 평양을 오가며 조선노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질락․이문규 등과 통혁당을 조직했다.

이 사건에는 한명숙 前 민주당 대표와 그녀의 남편 박성준 성교회대 교수 등의 인물들이 연루됐다. 통혁당 조직원들은 1968년 8월 중앙정보부에 검거됐다.

남민전(1979년 10월 검거)은 1964년 인혁당 사건 연루자인 이재문 등이 출소 후 결성한 지하공산혁명 조직이다. 남민전은 민중봉기로 공산혁명을 한다는 목표 아래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고, 결정적 시기에 북한군 지원을 요청할 계획을 세웠다.

주범 이재문, 신향식은 검거 후 사형선고를 받았고, 안재구(前 숙대 교수), 김승균(前 ‘사상계’ 편집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이학영(민주당 의원) 등의 인물들이 구속됐다.

3. 준비기(1987~1996년)

1987년부터 1996년 시기는 조봉암의 진보당 해체 이후 침체됐던 진보정당이 다시금 합법적 활동을 재개하는 기간이다. 대표적 진보정당으로는 민중의당, 한겨레민주당, 민중당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민중당은 이우재, 이재오, 장기표 등이 민중의당과 한겨레민주당 참여인사들을 중심으로 1990년 11월 창당한 운동권 진보정당이다.

민중당은 강령에서 국보법․안기부법 등 반(反)민주 악법 철폐, 남북한 연방제 통일, 재벌 해체 및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 국유화 등을 주장했다.

민중당은 또 북한과의 공조에도 역점을 기울였다. 1990년 8월3일에는 소위 북한의 정당 및 사회단체와 민족통일문제를 협의한다는 명목으로 30명에 달하는 북한방문대표단(단장 이재오)을 구성, 1991년 2월23일 조선로동당의 초청을 수락해 방북을 결정하기도 했다.

민중당은 제14대 총선에서 제6공화국의 실정을 비판하고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중의 이익을 대변할 것을 주장하며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단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해 1992년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이와 함께 일부 간부들이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 지역당’(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안기부 기록에 따르면 사건의 주범 이선실(북한 간첩)이 김낙중(민중당 공동대표)에게 접근해 거액의 공작금을 제공했다. 또 민중당 정강정책위원장이었던 장기표는 이선실이 북한의 간첩임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 

1987년부터 1996년 기간은 중부지역당 사건을 비롯해 구국전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등 지하당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구국전위는 주모자들이 북한으로부터 공작금을 받고 구축한 지하당으로 1994년 6월 공안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민혁당은 김영환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1992년 3월 조직한 지하조직이다. 지난 18대 총선을 통해 국회로 진출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이 민혁당 사건 연루자이다. 이 의원은 1999년 민혁당 사건 발표 이후 지하로 잠적해 3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다 2002년 5월 공안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4. 활성기(1997~현재)

1997년 이후 발생한 진보정당은 기존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보며 친북(親北)색채가 강한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계열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PD(People's Democracy)계열로 양분되어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1997년 대선을 기점으로 민노총 위원장 출신의 권영길이 주도했던 국민승리21은 당시 운동권 내 NL-PD그룹이 연대해 조직했던 진보정당으로 민주노동당(민노당)의 전신(前身)이 됐다. 민노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의 국회의원 확보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민노당은 2011년 12월 야권소통합의 일환으로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와의 합당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으로 당명을 개정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통진당은 강령에서 국보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6.15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명시하고 있다.

국회에서 6석을 확보하고 있는 통진당은 김재연, 오병윤, 이석기 의원이 모두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다. 현재 통진당의 주도세력은 NL그룹으로 채워져 있으며, 기존의 당내 PD그룹은 2012년 당 비례대표 후보자 부정경선 사건이후 집단 탈당, 같은 해 10월 진보정의당(정의당, 의석수 4석)을 창당했다.

1997년 대선당시 권영길의 국민승리21에 참여했던 PD그룹은 국민승리21이 계급투쟁을 간과했다면서 1998년 2월 청년진보당을 창당했다. 국보법 철폐와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했던 청년진보당은 2001년 8월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반(反)자본주의 노선을 표명했다.

사회당은 이후 희망사회당, 한국사회당, 다시 사회당으로 수차례 당명을 바꾼 뒤, 민노당 탈당파(PD계열)를 중심으로 조직된 진보신당(2008년 3월 창당)과 2012년 3월 흡수 통합됐다. 진보신당은 2013년 7월 임시 당대회에서 노동당으로 당명을 개정해 활동 중이다.

2000년대 이후 공안당국에 의해 적발된 지하당 형태를 띤 조직으로는 ‘일심회’와 ‘왕재산’을 들을 수 있다. 일심회는 2006년 10월 국정원이 적발한 조직이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장민호가 조직 총책이었으며, 최기영(前 민노당 사무부총장), 이정훈(前 민노당 중앙위원)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됐다. 2011년 적발된 왕재산은 1990년대 민혁당을 지도했던 북한의 대외연락부(現 225국)가 남한에 조직한 지하당이다.

공안당국의 수사결과 왕재산은 2014년 인천을 거점으로 인천남동공업단지 등을 폭파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유사시 인천광역시에 행정기관, 軍부대, 방송국 등을 장악 후 수도권 지역에 대한 시위 형태의 공격작전 및 궐기대회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남로당 등 공산주의 세력은 6.25전쟁이후 주축세력이 와해됐지만 그 잔존세력은 끝까지 살아남아 ‘변신’을 거듭하며 합법영역에서는 정당을, 非합법영역에서는 지하당을 조직해왔다.

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