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헌법이 국회에 준 고유 권한이다. 국회가 행정부의 전횡(專橫)을 견제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18일로 감사 엿새째를 맞는 올해 국정감사는 헌법 본래 취지를 잊은 듯하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17일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이석채 KT 회장 등 기업인 20여명을 추가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느라 오전 회의를 그냥 흘려보냈다. 이 위원회는 이날 노사정(勞使政)위원회와 중앙노동위, 고용보험심사위 등 11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 11개 기관은 이날 정상 업무를 접고 국회에 나왔다. 그런데 이들은 오전 내내 여야 의원들 간의 입씨름만 지켜봐야 했다.
미국 하원은 2010년 2월 급발진으로 인명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본 도요타 본사 사장과 간부들을 증인으로 불러냈다. 8시간에 걸쳐 미국 의원들의 질의와 비판, 도요타 측의 답변과 반박이 이어졌고 결국 도요타 사장이 울먹이면서 미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책을 내놓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 국정감사는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16개 상임위가 부른 기업인 증인이 200명을 넘는다. 어느 위원회는 기업 이름만 보고 부동산 임대업을 외제차 수입업으로 착각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증인을 부르는가 하면, 기업인들로부터 전후 사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소명을 듣기보다는 "'예' '아니요'로 짧게 대답하라"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한 기업인은 3시간을 기다려서 "나는 그 일과 관계없다"고 30초 동안 딱 한마디 하고 국감장을 떠나기도 했다.
국정감사가 국회의 횡포(橫暴)처럼 비치면 국회의 권위가 손상되고, 언젠가는 국회의 국정감사권 자체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국회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그 기반 위에서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국회가 헌법이 규정한 국정감사의 본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꼭 불러야 하는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고, 준비를 철저히 해 꼭 물어야 할 것을 묻고, 국가적 현안의 진상을 밝히거나 해법을 제시하는 국정감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만 제대로 지켜도 국회와 국정감사를 보는 국민의 생각이 확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