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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박정희와 비바람의 추억 (비바람)

유엔총회에서 필리핀 수석대표가 태풍 하이옌의 피해를 입은 필리핀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면서 눈물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필리핀의 피해는 2004년 발생했던 인도양 지진해일 피해규모를 능가한다고 한다, 눈물의 호소 덕분인지 필리핀에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진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인 느낌이다,

 

내가 사는 제주도는 태풍이 많은 지역이다, 내 필명이 비바람인 것도 태풍과 관계가 있는 이름이다, 몇 년 전 나리 태풍이 제주를 방문했을 때는 태풍의 위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급류로 변한 복개도로에는 차량들이 떠내려가고, 아랫쪽에서는 떠내려가던 차량들이 담장을 부수고 집안 거실로 들어가기도 하고, 떠내려온 차량들이 흡사 폐차장처럼 산더미를 이루기도 했었다,

 

아마도 필리핀이 하이옌을 오래동안 잊지 못할 것처럼, 제주도에도 잊지 못하는 태풍이 있는데 바로 사라호 태풍이다, 내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사라호는 제주를 방문했다, 그래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소시 적에 비바람이 거세어지는 날이면 부모님은 예외없이 그 때 그 사라호를 언급하곤 하시면서 몸서리를 쳤다,

 

사라호는 1959년 9월 16일 제주를 덮쳤다, 9월 16일은 추석 전날로 '맹질떡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불어대던 비바람은 저녁때부터 악마로 변했다, 사라호는 악귀처럼 날뛰면서 진흙집에 짚으로 지붕을 덮고 사는 초가집 마을들을 유린했다, 창호지 문은 쓸모가 없어져 방안으로 굵은 빗방울과 거센 바람이 날라들고, 초가지붕은 힘없이 벗겨지고, 지붕 위로는 부서진 문짝들이 날라 다녔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태풍에 특화된 마을이었다, 담장은 무거운 돌담으로 만들고, 지붕은 새끼줄을 단단히 꼬아 가로 세로로 촘촘히 덮어, 그야말로 비바람이 상습적으로 치는 섬에서, 비바람과의 전쟁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하고 사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라호는 이런 원시적인 방패들을 비웃으며 제주도를 초토화시켰다,

 

해마다 두어 개에서 서너 개 까지 태풍은 제주를 방문했다, 고요한 마을에 비바람이 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전깃줄은 귀신처럼 울부짖고, 나무들은 머리를 풀어헤쳐 몸부림치고, 몇집 건너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진군하는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로 들렸다, 태풍은 전쟁이었다, 비바람은 내 유년의 아이콘이었고, 제주도의 모습이었고,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그 섬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사라호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사망자 849 명, 부상자 2500여 명, 이재민 37만 3459 명을 남겼다, 사라호는 우리나라에 비바람을 몰고 온 손님 중 가장 규모가 큰 태풍이었고, 역대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태풍이기도 하다, 1959년은 초가집과 판자집의 시대였다, 이런 것들은 태풍과 겨루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것들이었고, 태풍의 먹잇감으로 딱 좋았다,

 

필리핀의 태풍 피해가 막심했던 이유 중의 하나에는 필리핀의 후진성도 일조를 했다는 생각이다, 대리석 건물보다는 판자집이 태풍에 취약한 것은 불문가지, 필리핀에 목제건물이 많았던 것은 태풍 피해를 키운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이옌이 덮친 지역에 전부 석조건물이나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면 당연히 피해는 지금보다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라호가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세계의 최빈국에 속했다, 그때 필리핀은 아시아의 선진국이었고 6.25 참전국이기도 했다, 필리핀의 기술자들이 장충체육관을 지었고, 1966년에는 박정희가 돈을 빌리러 필리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때 박정희는 '우리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라호가 우리를 찾아오고, 하이옌이 필리핀을 방문하기까지 약 두 세대가 흘렀다, 하이옌의 필리핀의 모습은 사라호의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두 세대 만에 두 나라의 모습은 정 반대쪽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초가집의 나라에서 대리석의 나라로 탈바꿈을 했고, 필리핀은 판자집의 나라로 국내총생산 세계165위로 후퇴를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에게는 박정희가 있었고 필리핀에는 박정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디오가 생기고부터 부모님은 태풍예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불시에 기습을 받는 것보다 전투에서 유리했다, 태풍예보가 내려지면 부모님은 초가지붕 위에 무거운 것들을 올려놓거나 끈으로 더 동여매기도 하셨다, 바람에 날라갈 만만 것들은 안으로 옮겨놓고, 창호지를 바른 문에는 비닐을 씌우거나 멍석을 대기도 하셨다,

 

이런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비바람과 싸우는 민초들 앞에 지도자가 나타났다, 박정희는 그런 방법을 쓰지말고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석조건물을 짓는 방법을 알려줬다, 석조건물을 짓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근면'이었다, 박정희는 근면이라는 하나의 무기로서 굶주림을 물리치고 인간을 괴롭히는 자연재해를 물리쳤다,

 

필리핀에 목제건물 대신에 대리석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필리핀에도 박정희가 있었다면 1만여 명 이상이 사망하는 저런 대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가 사리사욕을 탐했다면 우리도 필리핀을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보다 언제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선택했던 박정희가 있었기에 우리는 어지간한 태풍에 코웃음을 치게 되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리석 건물에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만원 시스템 클럽 / 비바람

추천 : 77

inf247661 13-11-13 11:13
 
http://blog.daum.net/juoh79/4590
'필리핀'은 1950.6.25 때, 우리를 도와줬었던 UN군이었는데, '태풍'으로 많은 고통을 겪는 보도에 맘이 편치 않읍니다. 우리도 '10匙(시) 1飯(반)' 격으로 뭐든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필리핀'은 '막사아사이'대통령상도 있었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는데 빨갱이들이 집권한 뒤부터 빈국으로 급전직하!,,.
'비바람'님의 비교.대조에 공감합니다! '필리핀'에는 '박 정희'같은 지도자가 없어서 이런 自然 災害가 속수무책으로 반복/크다는 표현에요! ,,. 각설코요; 1960.4.19 데모 사태도 선거투표부정이 어니고, 사실은 1959년 발생했었던 '颱風 SARA號'에 의한 재해로 말미암은 민생 경제 파탄에 의해, 오히려 정치/투표 무관심했었지, '부정 선거 함수 관계'는 없었다죠. ,,. 마산 사태 '김 주열'군도 全北 南原에서 慶南 馬山까지 친척집 고교 유학와 눈치밥 먹는 주제에 '데모'라는 것도 있을 수도 없었고; 순진한 학생을 유인, 눈에 최루 총류탄을 눈에 꼽아 쥑이고, 경찰이 저능아처럼 부둣가에 돌을 달아 屍身을 유기 했다면서; 시체.송장 놀음으로 데모를 선동.재연시킨 빨갱이.간첩들의 천인공로할 조작.날조극! 청계천 '전 태열'군처럼 ,,. 빠드~득! /////////// 여불비례, 총총.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