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인 10일째를 맞은 철도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논란 등 현재 진행형인 각종 사회 갈등의 밑바닥에 뿌리 깊은 ‘불신(不信)’ 코드가 깔려 있다. 대통령의 공언은 물론 교사의 설명도 믿지 못하고 오직 자기 편의 주장에만 공감한다. 특히 중재에 나선 제삼자는 갈등 조정이 아닌 조장자 역할을 하고 있어 갈등에 따른 사회적 손실이 계속 커지고 있고 각종 음모론과 괴담까지 가세해 갈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통령이 말해도 못 믿어 = 18일 관련 기관에 따르면 연일 역대 최장 파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철도파업은 노사 간 입장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대치 중이다. 핵심 쟁점인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에 대해 정부와 코레일 측은 코레일이 지분의 41%, 공공자금이 59%를 차지하고 민간에 팔지 못하게 돼 있는 정관을 들어 민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노조는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정관을 고칠 수 있다며 민영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민영화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철도노조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며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의료 민영화 논란 역시 정부 발표와 달리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에 대해 “부자 병원에만 혜택이 돌아가므로 결국 민영화 전 단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 믿지 못하다 보니 갈등을 중재하는 기관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6일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제에 대해 출제 오류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소송을 제기한 학부모와 학생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거대 로펌을 선임해 법조계 전관예우를 악용했다”며 불복하는 모양새다. 각종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그 역할을 포기한 지 오래다.
갈등을 조정하겠다고 나선 제삼자가 오히려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8년을 끌어온 밀양 송전탑 건설 논란이 대표적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 송전의 원천 반대를 주장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개입해 상황을 악화시켰다.
◆막대한 사회적 손실 불가피 = 코레일 측에 따르면 철도파업 이후 지난 16일 현재까지 파업에 따른 코레일 측의 영업손실액은 77억 원에 달했다. 이미 연평균 5700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보고 있는 코레일이 파업에 따른 영업손실까지 떠안을 경우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난 8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불신으로 말미암은 사회 갈등으로 입는 손실액이 연간 82조∼246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더 큰 문제는 꼬리를 문 불신으로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고 음모론과 괴담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최근 연예인 성매매 사건이 보도되자 철도 민영화 등 반정부 이슈를 덮기 위한 음모라는 설이 돌고 장성택 실각설 보도가 국가정보원의 물타기라는 주장이 무책임하게 나돌았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