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레이건의 對蘇붕괴 전략
-군사력은 방패, 인권과 자유는 槍이다. 공산주의는 타협이 불가능한, 인간과 자유의 敵이고 惡이다.
요약: 레이건이 1981년에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은 소련의 공세로 最惡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越南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赤化에 이어 아프가니스탄도 소련의 침공을 받아 反共세력이 게릴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카터의 위선적 인권외교는 朴正熙나 팔레비 같은 자유진영의 反共지도자들을 코너로 몰았다. 親美的이던 이란의 팔레비 정권은 무너지고 反美 호메이니 정권이 등장하자 중동이 戰禍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이란에서 인질로 잡힌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려던 미국의 特攻작전은 離陸도 못해 보고 우스꽝스럽게 실패했다. 미국의 경제도 높은 인플레에 휘말려 경쟁력을 상실하고 일본이 세계최강경제국으로 등장했다. 자신감을 잃고 체력이 떨어진 미국을 레이건은 어떻게 回生시키고 내친 김에 소련과 東歐 공산진영까지 무너뜨리게 되었던가?
친북좌파는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추행하면서 국가 조종실을 차지한 이후 親北反美정책으로써 대한민국을 絶體絶命의 위기에 빠뜨렸다. 이런 위기는 그러나 레이건과 같은 지도자를 만나면 김정일을 수괴로 하는 한반도의 守舊좌파를 소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된다.
가. 挽回가 아닌 逆轉勝을 목표로: 2007년 大選과 2008년 總選을 친북좌파 소멸의 계기로 삼고 여세를 몰아 김정일 정권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자유통일을 앞당긴다. 레이건은 롤 백 작전의 목표를 挽回가 아닌 소련의 붕괴에 두었다. 정치나 전쟁에선 일단 반격이 성공하면 完勝을 기대할 수 있다.
나. 善과 惡의 대결: 레이건은 美蘇 대결을 철저하게 善과 惡의 대결로 보았다. 南北 대결의 본질도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과 善과 惡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공산주의를 惡으로 보아야 자유진영은 도덕적 優位에 서면서 행동해야 할 의무를 진다. 공산주의를 꺾는 데는 합리성만으로썬 충분하지 않고 신념화된 이론이 있어야 한다. 김정일을 비롯한 守舊좌파를 惡으로 봐야 대한민국 수호 세력은 正義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이런 자기 확신에 차 있어야 좌파소멸과 자유통일을 위한 國力과 개인적 수단을 총동원할 수 있다.
다. 경제력과 인권과 진실의 무기화: 대한민국 세력의 강점은 경제력과 인권과 진실이고 守舊좌파의 약점은 궁핍과 억압과 거짓이다. 레이건은 減稅정책으로 미국의 경제력을 회복시킨 바탕에서 軍備경쟁을 시작하여 소련의 경제를 망가뜨렸다(1979년에 미국의 국방예산은 1193억 달러였는데 1983년엔 2096억 달러로 거의 倍增했다). 동시에 소련의 인권문제를 제기하여 소련내 反체제 인사들을 격려했다. 우리도 김정일의 핵무장과 같은 비중으로 김정일의 대학살을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김정일을 북한인민뿐 아니라 지배층 내부에서도 고립시켜야 한다. 북한지배집단으로 들어가는 현금줄을 차단하면 김정일 주변에서 동요가 생긴다. 우리의 强點으로 적의 弱點을 쳐야 한다.
라. 폴란드와 SDI: 레이건은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을 지원하여 東歐 공산권을 흔들고, ‘별들의 전쟁 계획’으로써 소련 경제를 出血시키는 것을 2대 전략 포인트로 삼았다. 한반도의 守舊좌파에 결정타가 될 이런 급소를 찾아야 한다. 납북자, 탈북자, 국군포로 문제, 특히 중국의 납북자 강제송환 문제가 폴란드인가? 금강산 관광 등 對北현금 지원의 차단이 SDI 역할을 할 것인가?
마: 데탕트와 햇볕정책: 레이건은 1970년대의 데탕트가 인류의 敵인 공산주의와 공존을 모색하다가 이용만 당한 부도덕하고 실패한 정책이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롤 백도 6·15 반역선언을 철저히 비판하고 원인무효임을 선언한 바탕에서 이뤄져야 한다. 6·15 선언으로 상징되는 햇볕정책의 파산을 선고하고 이를 대체할 가칭 ‘자유통일 10대 원칙’ 같은 것을 만들어내어 국민들(국회)의 同意를 구해야 한다. 헌법의 원칙, 정권-주민 분리의 원칙, 자유의 원칙, 正義의 원칙, 시장의 원칙 등 남북관계의 기본 룰을 설정해야 한다.
바: 압박해야 변화: 레이건의 전방위적인 對蘇압박은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소련공산당 역사에서 처음으로 내부 개혁을 결심하게 만들었고 고르바초프를 그 騎手로 등장시켰다.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소련은 체제자살의 길로 달려갔다. 김정일 정권을 압박해야 그런 내부 변화가 생기고 한번 시작된 변화는 정권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공산세력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이다.
사: 자유통일 주체세력의 등장: 대한민국 수호 세력은 과거와 현재를 기준으로 정체성을 설정하는 데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親北좌파를 소멸시키고 自由통일을 이룩하여 一流국가를 건설하자”는 행동의 방향을 확실히 함으로써 진취적으로 사회 분위기를 日新하여 자신감을 되찾자. 우리는 오늘에 안주하는 수비형 보수가 아니고 공격적인 자유통일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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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산주의를 멸망시킨 戰略 문서 NSC 68
-군사력은 방패, 인권과 자유는 槍이다. 공산주의는 타협이 불가능한 인간과 자유의 敵이고 惡이다.
‘NSC 68’이란 유명한 문서가 있다. 1949∼50년 사이에 입안된 백악관 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전략문서이다. 이것을 기초한 사람은 폴 니츠 당시 국무부의 정책기획실장이었다. 애치슨 국무장관의 후원을 받아 작성되어 트루먼이 서명함으로써 미국의 對蘇기본전략으로 채택된 이 문서는 그 뒤의 냉전전략과 歷代 美 대통령의 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다. “NSC 68 때문에 미국은 냉전에서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 문서가 작성되고 있던 때 트루먼 대통령은 軍費를 감축하고 국내 복지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고 했다. 폴 니츠는 NSC 68에서 소련이 서구문명을 파괴하려는 惡의 세력이라고 단정한 뒤에 對蘇 강경론을 주장하고 군비증강을 요구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4월7일에 이 문서에 서명은 했지만 군비증강 건의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그러다가 두 달 뒤에 6·25 남침이 일어났다. NSC 68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를 예언한 폴 니츠의 분석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트루먼은 당장 다음 회계연도의 국방예산을 세 배로 늘리도록 지시했다. NSC 68과 한국전쟁의 이런 타이밍이 미국의 본격적인 冷戰 전략을 출범시켰다는 해석이 主流를 이루고 있다. 냉전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고 한반도 통일은 그 냉전을 최종적으로 종식시킬 것이다.
소련 공산주의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非문명적, 非서구적, 非기독교적, 反개인주의적 異端세력이란 것이 이 문서가 서두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는 도덕적 관점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부른 근거가 여기에 있다. 폴 니츠는 소련의 침략노선으로부터 방어해야 할 가치를 개인주의와 자유에 두었다.
<자유로운 사회는 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본다. 개인의 自律과 自重만 있으면 개인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는 층돌 없이 공존할 수가 있다. 이런 자유사상에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과 깊은 관용, 그리고 法治의 전통이 생겨난다. 이것이 자유 사회의 통합성과 활력을 조성하는 것이다>
폴 니츠는 또 “공산주의는 이런 장점을 악용하여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의 非이성적인 측면을 선동하여 사회를 파괴하려고 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고 단정했다.
<소련공산주의의 가치관만큼 우리와 화해가 불가능한 게 없다. 우리를 파괴하려는 집념이 그토록 강한 이념도 없다. 우리 사회의 위험하고 분열적인 성향을 악용하는 데 그토록 유능한 이념도 없다. 인간본성에 내재된 비이성적인 면을 그토록 기술적으로 강력하게 선동할 수 있는 가치관도 없다>
NSC 68은 공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평화'를 기만이라고 단정했다.
<소련 공산당 전당대화가 정의한 대로 '평화정책'이란 것은 '자본주의와 싸울 때 쓰는 더 유리한 방식'이며 非공산주의 국가를 분열시키고 마비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소련의 정책에 대한 완벽한 승복을 뜻한다>
요사이 남북한 사이비 좌익들이 쓰는 평화의 뜻도 같다. 한국사회를 분열시키고 자유수호 의지를 마비시키기 위해서 쓰는 것이고 북한정권의 對南적화전략에 대한 저항력을 죽이려는 말이다.
NSC 68은, 자유세계의 약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최후 수단으로서가 아니면 전쟁이나 폭력수단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허용되는 폭력의 사용은 두 가지 경우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들의 기본권을 파괴하려고 할 때, 또 다른 사회가 자유사회에 대해서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할 때이다. 따라서 對蘇 전략도 자유세계의 이런 약점을 직시한 바탕에서 저들의 군사적 모험주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유사상의 우월성을 과시함으로써 “러시아 인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니츠는 “소련 체제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꾸어놓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본질적인 성격변화가 외부로부터 강요되어서가 아니라 “소련 내부의 자체적인 動力에 의하여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라고 니츠는 강조했다. 그는 군사력을 방패로 보고 인권을 槍으로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증강하여 소련의 침략을 저지한 다음에는 자유세계의 강점인 人權과 자유를 무기로 삼아 전체주의의 反인간성을 폭로함으로써 敵의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다.
NSC 68은 보고서의 끝에서 몇 가지 정책 건의를 하고 있다.
*소련의 영향력과 國力을 축소시킬 것.
*러시아가 유엔 헌장의 국제적 행동규범을 따르도록 한다.
*소련 내부에서 反정부 운동이 일어나도록 권장한다.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한다.
*미국의 保安태세를 강화하여 간첩, 태업, 반역을 저지한다.
*경제력을 강화한다.
*非소련권 국가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유도한다.
*소련 권력층에서 긴장과 분열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미국 시민들에게 안보 위협 상황을 알려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
위의 건의사항에서 소련을 북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면 아직도 유효한 내용이다.
2. 공산권해체 위해 준비된 레이건
-그는 국내戰線에서 20년간 매일 공산당과 싸워 이겼던 사람이다. 그는 이 경험을 소련에 적용하여 이겼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을 필두로 하는 국제 공산주의 제국을 붕괴시킨 主役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助役은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영국수상, 바웬사, 그리고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다. 美蘇 냉전은 스탈린이 도발하고 트루먼 대통령이 이에 응전하면서 시작되었다. 트루먼은 자신과 미국의 對蘇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