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 노역(勞役) 하루 5억 원’ 논란과 그 여진이 법원·검찰의 치부를 새삼 들춰내기에 이르고 있다. 2011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과 벌금 4억 원 확정으로 일단락되기까지 검찰 구형과 1·2심 재판이 줄곧 감형(減刑)을 다투다시피 했다. 검찰이 1심에서 징역 5년, 벌금 1016억 원을 구형하면서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할 때부터 사법정의(司法正義)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1심의 징역 3년(집행유예 5년) 및 벌금 508억 원을 2심이 반감시키면서 50일 환형유치(換刑留置) 기간을 선고한 전말은 가위 ‘합작 감형’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들끓는 공분 속에서 법원과 검찰이 잇달아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재산을 빼돌리고 법치를 농락하다시피 하는 ‘제2 허재호’ 케이스를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1일 대법관회의가 열렸다. 향판(鄕判) 제도와 환형유치 제도의 개선 방안이 의제다. 단위 사건 재판을 넘어 법원조직법의 대법관회의가 긴급 소집된 것부터 이례적이다. 사법부 내부의 긴장도를 가늠할 수 있다. 또 서울중앙지법은 대법원이 마련한 환형유치 제도 개선책을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벌금 1억 원 이상의 경우 벌금액의 1000분의 1을 환형유치 기준으로 정한 이번 개선책은 국회에 계류 중인 ‘허재호 방지법’과도 유사한 취지라는 점 또한 돋보인다. 검찰도 국세청·관세청 등과 허 전 회장의 국내외 은닉 재산을 추적하면서 대주건설 계열사, 하청업체 등을 상대로 한 비자금 수사 체제를 본격 가동시켰다.
법원과 검찰의 이들 조치는 특정 사건의 사후 내지 뒷북 재정리 차원 이상이어야 한다. 허 전 회장에게 확정된 형을 제대로 집행하고 여죄(餘罪)를 밝혀내는 것을 넘어 형사 사건의 수사와 재판 그 전반적인 체계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당시 담당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지만 문책 여부도 치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 법원의 사법권, 검찰의 준사법권 모두 그들의 권한이기에 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