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일본은 19세기 중엽 이후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하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 근대화를 성취하였다.
그리고 1945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된 폐허 속에서
불과 2-30년 만에 미국 다음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이룩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일본의 긍지이자 자존심이고, 국력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로부터 2-3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노쇠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20년에 걸친 불경기와 경제 침체에 더하여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사태까지 겹치게 됨으로써,
특히 경제면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반면에 동맹국 미국의 경제적 침체와 함께 아시아에서의 패권 다툼의 상대국인 중국이
일본의 세계 제2의 경제력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분쟁 도서인 센가쿠열도를 중심으로 압박을 가해오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특히 경제·안보 면에서 위기의식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일본의 긍지와 자존심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히고, 자신감 상실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일본개조론, 재무장론, 헌법 제 9조의 개정을 통한 교전권 확보 등을 제기해 왔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롯카소무라(六ケ所村)의 핵 재처리공장 가동 강행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곧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을 통한 극단적인 우경화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정책 기조의 궤도 수정은 곧바로 한국에 대한 도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일부 각료와 정치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위안부 만행 부정 및 고노(河野)담화 재점검,
독도의 영유권 주장,
역사 왜곡 및 왜곡 교과서 발간·교육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총리를 비롯한 각료와 정치인들이
A급 전범 14명을 몰래 합사한 신사에 참배한 것은 전쟁 도발 책임의 뒤집기이고,
전후 처리의 합의에 대한 불복이다.
또한 위안부 강제 동원 등 만행을 부정하면서
그것을 인정·사과한 고노담화를 재점검하겠다는 것 역시 역사 왜곡이고 책임회피이다.
고노 담환는 피해자의 진술뿐만 아니라,
특히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의 요시미 요사아키(吉見義明) 교수 등의 검증에 근거한 것이어서, 그 적실성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일본이 침략전쟁을 통하여 저지른 온갖 만행과 살상의 역사를 부인·왜곡·미화하고,
그 허위의 내용을 교과서에 실어서 학생들에게 교육한 것은,
독일의 사례에도 반함은 물론, 인류의 양심이 용서하지 않을 일이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 차원의 도발과 함께,
최근에 극우의 시민단체에서 펼치고 있는 이른바 혐한(嫌韓)운동은 적반하장의 표본이다.
주로 청년학생 층에서 펼치고 있는 이 운동은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주도하고 있다.
이 재특회는
아우슈비츠에서만도 200만 이상을 학살한 살인마 히틀러를 추모하기 위하여
“히틀러 탄생 126주년 기념파티”를 운위할 정도로 최악의 극우 단체이다.
이들이 가두시위 또는 웹사이트에 올려놓은 구호는
“한국인을 대학살하겠다”,
“조센징을 죽이자”,
“한국 여성을 강간하자”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극악한 것들이다.
더욱이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혐한 구호를 가리켜 언어폭력이란 뜻으로 ‘헤이트 스피치’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 말이 지난해 일본 유행어 “톱10”에 선정되었다니 아연 실색할 뿐이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극단적인 우경화를 통한
대한 공세와 극우세력의 혐한운동은 선진국 일본의 품위에는 물론,
이웃 우방인 피해국에 대하여 취할 태도가 아니다.
오늘의 일본이 당면한 군사적·경제적 심각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과거의 반민주적 군국주의에의 회귀라는 인상을 주거나,
역사를 왜곡하면서 이미 시인·사과한 사실까지 뒤집으려는 시도는 안 된다.
더욱이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인을 죽이겠다는 막가파식 겁박은 문제의 해결은커녕
자신들을 옥죄는 사슬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의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의 지속을 원치 않는다.
협력과 상생관계의 복원을 희망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의 대한 도발은 당장 멈춰야 한다
김선형(인천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