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대통령이 만사제지하고 진도 앞바다의 조난현장으로 달려갈 만큼 이번에 일어난 여객선 참사는 가히 국가적 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언론이 일제히 이 조난 사고를 대서특필하는 것을 보면 이 비극은 어쩌면 전 세계를 눈물짓게 하는 희랍의 비극을 닮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생존의 영원한 수수께끼’에 대한 어떤 답을 요구합니다.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따지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우리들의 질문은 ‘어떻게’(how)보다는 ‘왜’(why)라는 질문에 쏠립니다.
‘How’를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책임의 소재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일이겠지만 상처 받은 우리들 모두의 마음에 조금도 위로가 되지는 않습니다. ‘Why’는 우리들을 조금은 더 사람다웁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장은 왜 배에서 죽어야 하는가?” 그는 그 배의 왕인데, 일이 잘못되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조난당한 승객들을 그대로 두고 선장이 먼저 구조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입니다.
이 나라의 ‘기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집만 번듯하게 지어 놓았을 뿐, 기초 공사는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가 조난을 당하면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 선장과 선원들은 최선을 다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면 선장은 배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선장의 본분입니다. ‘오호 통재, 오호 통재!’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